번영하는 직원, 44%까지 추락하다
2024년까지만 해도 글로벌 직장인의 66%가 스스로를 “번영 중(thriving)”이라고 답했다. 불과 2년 뒤인 2026년, 그 수치는 44%로 곤두박질쳤다. 코로나 팬데믹 한복판이던 2020~2021년보다 낮은 수준이다. 머서(Mercer)가 매년 실시하는 Inside Employees’ Minds 조사에서 드러난 이 숫자는 단순한 만족도 하락이 아니라, 직장인의 심리적 안전망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는 경고다.
경기 불확실성, AI가 내 일자리를 대체할지 모른다는 불안, 인플레이션에 의한 실질소득 감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AI에 대한 고용 불안은 2024년 28%에서 2026년 40%로 급등했고, 직원의 53%는 “새로운 기술이 내 직업 안정성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응답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2026년 2월 기준 사업체 이직률은 4.8%로 전년 동월 대비 0.4%p 상승했고, 국내 직장인의 61%가 정신건강 문제로 인한 업무 생산성 저하를 경험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 줄 요약: 직원 웰빙이 팬데믹 수준 이하로 추락한 지금, 직원 경험(EX)을 비용이 아닌 경영 인프라로 격상하지 않는 한 ‘조용한 잔류’의 시한폭탄은 해제되지 않는다.
떠나지 않는다고 안심할 수 없는 이유
역설적이게도, 직원들은 떠나지 않고 있다. 머서 조사에서 73%의 직원이 “현재 조직을 진지하게 떠날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2023년의 68%보다 오히려 높아진 수치다. 대퇴직(Great Resignation) 시대는 끝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충성이 아니라 동결이다. 경제 불확실성 속에서 새 직장으로 옮기는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현 직장에 발을 붙이고 버티는 전략적 선택에 가깝다. 직원의 70%가 인플레이션과 시장 변동성으로 재정적 스트레스가 증가했다고 응답했고, 76%는 관세 등 거시경제 충격을 우려하고 있다. 이직을 꿈꾸지만 움직일 여력이 없는, 이른바 “조용한 잔류(quiet staying)” 상태다.
문제는 조용한 잔류 상태의 직원이 조직에 실질적 가치를 만들어내느냐는 것이다. 번아웃 상태에서 자리만 지키는 직원은 혁신을 시도하지 않고, 동료와의 협업 품질이 떨어지며, 고객 경험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직률이 낮다는 지표만 보고 안심하는 순간, 조직은 내부에서 천천히 무너진다.
44%
번영 중이라고 답한 직원 비율 (2024년 66%에서 급락)
Mercer Inside Employees’ Minds / 2026
73%
이직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 직원 비율
Mercer Inside Employees’ Minds / 2026
61%
정신건강 문제로 생산성 저하를 경험한 직장인
Reportera / 2026
4배
전담 EX팀 보유 조직의 ROI 달성 확률
Mercer EX Survey / 2025
직원 경험(EX), 비용에서 인프라로
“직원 경험(Employee Experience)”이라는 말은 이미 HR 업계에서 수년간 회자됐다. 그러나 대부분의 조직에서 EX는 여전히 복지 프로그램, 사무실 인테리어, 간헐적 설문조사 수준에 머물러 있다. 1,500명의 글로벌 HR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가 이 격차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전담 EX팀을 운영하는 조직은 그렇지 않은 조직 대비 기대 투자수익(ROI)을 초과 달성할 확률이 4배 높았다. EX에서 양(+)의 ROI를 거두는 조직은 HR팀의 EX 설계 역량에 의도적으로 투자할 확률이 역시 4배 높았고, 고객경험(CX) 지표와 직원경험 지표를 연동시킬 확률이 3.3배 높았다.
패턴은 명확하다. EX를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니라 경영의 핵심 인프라로 취급하는 조직만이 실질적 성과를 거둔다. 구체적으로 세 가지 조건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1. 공식적 오너십(Alignment)
EX를 누가 책임지는지 명확해야 한다. 전담팀이 없으면 EX는 여러 부서 사이를 떠도는 미아가 된다. 인사팀, 총무팀, IT팀이 각자 파편적으로 관여하되 누구도 전체 그림을 그리지 않는 상태가 가장 위험하다.
2. 전용 예산(Dedicated Budget)
EX에 별도 예산이 없다는 건 경영진이 이를 우선순위로 보지 않는다는 신호다. 교육비, 복지비, 조직문화 예산이 분산되어 있으면 효과 측정도 불가능하고, 연말 예산 삭감 시 가장 먼저 날아가는 항목이 된다.
3. 크로스펑셔널 팀(Cross-functional Team)
EX는 HR만의 영역이 아니다. IT(디지털 도구), 시설관리(물리적 환경), 커뮤니케이션(내부 소통), 재무(보상 설계)가 한 테이블에 앉아야 직원의 일상 전체를 설계할 수 있다.
사례 — Shopify의 회의 폐지 실험Shopify는 정기 회의를 전면 폐지하는 실험을 통해 32만 2,000시간을 회수했다. 직원 경험 개선이 거창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 자체를 재설계하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LinkedIn 역시 “회의 없는 수요일”을 도입해 직원들이 집중 업무 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 사업장에서 EX를 작동시키는 세 가지 실행안
글로벌 데이터가 보여주는 방향은 분명하지만, 한국 조직에 그대로 이식하기엔 맥락 차이가 크다. 연공서열 중심 인사체계, 강한 집단주의 문화, 상대적으로 높은 노동시간이 교차하는 한국 사업장에서 EX를 실질적으로 작동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실행안 1: “잔류의 질”을 측정하는 지표 도입
이직률만으로는 조직 건강을 진단할 수 없다. 재직 중이지만 몰입도가 낮은 직원의 비율, 내부 공모 지원율, 자발적 프로젝트 참여율 등 “잔류의 질”을 드러내는 선행 지표를 설계해야 한다. 분기별 이직률 보고서에 “잔류 품질 지수”를 병기하는 것만으로도 경영진의 시각이 달라진다.
실행안 2: AI 전환기의 불안을 관리하는 커뮤니케이션 설계
AI 도입을 추진하면서 직원의 불안은 방치하는 조직이 많다. AI에 대한 고용 불안이 40%에 달하지만, HR 리더 중 디지털 전환의 정서적 영향을 고려하는 비율은 19%에 불과하다. AI가 “대체”가 아니라 “업무 재설계”라는 메시지를, 막연한 슬로건이 아닌 직무별 구체적 변화 시나리오로 제시해야 한다. “당신의 업무 중 A는 AI가 처리하고, B에 더 집중하게 된다”는 수준의 투명성이 필요하다.
실행안 3: EX 전담 기능의 최소 단위 구축
대기업이 아닌 중소·중견기업에서는 전담팀을 신설하기 어렵다. 그러나 인사담당자 1명에게 EX 코디네이터 역할을 공식 부여하고, 분기 1회 직원 펄스 서베이 결과를 경영진에게 직접 보고하는 라인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오너십은 확보된다. 핵심은 EX가 누군가의 공식 업무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웰빙 투자는 비용이 아니라 보험이다
직원이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주하는 조직은 위험한 착각 속에 있다. 떠나지 않는 것과 몰입하는 것은 전혀 다른 상태이고, 지금의 “조용한 잔류”는 경기가 반등하는 순간 대규모 이탈로 전환될 수 있다. 번영하는 직원이 44%에 불과한 현실에서, 직원 경험을 경영 인프라로 격상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급여 인상만으로는 부족하다. 직원의 37%가 급여를 가장 강력한 유인 요인으로 꼽지만, 실제 이탈을 결정하는 건 일상의 경험 — 불필요한 회의, 불투명한 커리어 경로, AI 전환기의 방치된 불안 — 이다. EX를 설계한다는 것은 이런 일상의 마찰을 하나씩 제거하는 작업이며, 그 시작은 거창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누가 이것을 책임지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실무 시사점: 이직률이 낮다고 안심하지 말 것. “잔류의 질”을 측정하는 선행 지표를 설계하고, EX를 공식 경영 어젠다로 격상시켜야 한다. AI 전환기에는 직무별 변화 시나리오를 투명하게 공유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리텐션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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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링크
- Mercer, “Inside Employees’ Minds 2026 — Executive Summary” (2026)
- Mercer, “The Employee Experience Advantage: Survey Insights for HR Leaders” (2025)
- HR인사이트, “직원 이탈 방지와 조직문화 개선 전략” (2026)
- Mercer, “Amid Economic and AI Anxieties, US Employees Are Choosing to Stay Put” (2026)
- Reportera, “직장인 61%가 겪고 있는 심각한 비상사태” (2026)
작성: 서재홍 | N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