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를 했는데, 회사가 아무것도 안 한다면?
직장내 괴롭힘을 신고한 뒤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이것입니다. “회사에서 조사를 한다고 했는데, 몇 주가 지나도 아무 연락이 없어요.” 또는 “조사가 끝났다는데, 저는 결과를 전달받지 못했습니다.” 신고 이후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 피해 근로자가 무엇을 요청할 수 있는지 모른 채 시간만 흘러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3은 신고 접수부터 가해자 징계까지 사용자에게 단계별 의무를 부과하고, 각 단계마다 피해자를 보호하는 장치를 두고 있습니다. 이 조문을 제대로 알아두면, 회사가 절차를 지키지 않는 순간을 포착하고 권리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법은 어떤 절차를 규정하고 있나
근로기준법 제76조의3은 직장내 괴롭힘 신고부터 사후 조치까지 다음과 같이 5개 단계의 의무를 사용자에게 부과합니다.
1단계 — 신고·인지 (제1항·제2항)
“누구든지” 직장내 괴롭힘 발생사실을 알게 된 경우 사용자에게 신고할 수 있습니다(제1항). 피해자 본인뿐 아니라 동료, 제3자도 신고할 수 있습니다. 신고 기한은 별도로 정해져 있지 않아 퇴직 후에도 신고가 가능합니다(다만, 재직 중 보호조치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사용자는 신고를 접수하거나 발생사실을 인지한 경우 지체 없이 당사자 등을 대상으로 객관적 조사를 실시해야 합니다(제2항). ‘지체 없이’는 즉시와 다르게, 정당한 사유에 따른 지체는 허용되지만 사정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가장 신속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조사의무를 위반하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2단계 — 조사기간 중 피해자 보호조치 (제3항)
사용자는 조사기간 동안 피해를 입은 근로자 또는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근무장소의 변경, 유급휴가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합니다. 이 단계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규정이 있습니다. 사용자는 피해근로자의 의사에 반하는 조치를 해서는 안 됩니다.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데 강제로 부서를 이동시키거나, 피해자를 원거리 사업장으로 발령하는 것은 이 규정 위반입니다. 충주지원(2021.4.6, 2020고단245)은 객관적 근무환경이 더 좋은 곳으로 전보했더라도 피해자의 주관적 의사에 반한 조치라면 불리한 처우가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제처 해석(22-0271, 2022.8.29)에 따르면 ‘조사기간’은 조사 시작 시점부터 괴롭힘 발생 여부가 확인될 때까지입니다. 괴롭힘이 확인된 이후 제5항에 따른 조치가 이루어지기 전까지의 기간은 ‘조사기간’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이 시점부터는 제4항에 따른 사후 보호조치가 적용됩니다.
3단계 — 조사 결과에 따른 사후조치 (제4항)
조사 결과 직장내 괴롭힘 발생사실이 확인된 경우, 피해근로자가 요청하면 사용자는 근무장소 변경, 배치전환, 유급휴가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합니다. ‘피해근로자가 요청하면’이라는 문구가 핵심입니다.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 조치를 일방적으로 시행할 수 없고, 동시에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요청하면 사용자는 이에 응해야 합니다.
4단계 — 행위자(가해자) 조치 (제5항)
괴롭힘 사실이 확인되면 사용자는 지체 없이 행위자에 대해 징계, 근무장소의 변경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절차적 권리가 하나 있습니다. 사용자는 징계 등의 조치를 하기 전에 반드시 피해근로자의 의견을 들어야 합니다(제5항 후단). 이 의무를 위반하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입니다.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어떤 조치가 내려졌는지 확인하고, 조치가 내려지기 전 자신의 의견을 전달할 권리가 있습니다.
5단계 — 신고 후 불이익 조치 금지 (제6항)
사용자는 직장내 괴롭힘을 신고한 근로자 및 피해근로자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됩니다.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5단계 중 가장 강력한 제재입니다.
대법원(2022.7.12, 2022도4925)은 사용자가 조사 절차를 모두 완료한 이후에 행한 전보조치에도 제6항이 적용된다고 판시했습니다. 조사 결과와 관계없이, 신고 이후 피해자에게 불리한 모든 처우가 금지됩니다. ‘불리한 조치’에는 파면·해임·해고뿐 아니라 직무 미부여, 직무 재배치, 본인 의사에 반하는 인사조치도 포함됩니다(청주지법 2022.4.13, 2021노438).
단계별 의무·권리·벌칙 비교표
| 단계 | 조문 | 사용자 의무 | 피해자 권리 | 위반 시 제재 |
|---|---|---|---|---|
| 1단계 신고·조사 개시 |
제76조의3 제1·2항 |
지체 없이 객관적 조사 실시 | 누구든 신고 가능, 퇴직 후에도 가능 | 500만원 이하 과태료 |
| 2단계 조사기간 중 보호 |
제76조의3 제3항 |
근무장소 변경·유급휴가 등 사전 보호조치 | 피해자 의사에 반하는 조치 요구·거부 가능 | 별도 과태료 없음 (제6항 불이익금지 적용) |
| 3단계 조사 후 사후조치 |
제76조의3 제4항 |
괴롭힘 확인 시 피해자 요청에 응한 조치 | 근무장소 변경·배치전환·유급휴가 요청 가능 | 별도 과태료 없음 (제6항 불이익금지 적용) |
| 4단계 가해자 징계 |
제76조의3 제5항 |
징계 전 피해자 의견 청취 의무 | 징계 전 의견 진술 기회 | 500만원 이하 과태료 |
| 5단계 불이익 금지 |
제76조의3 제6항 |
신고·피해자에 대한 모든 불리한 처우 금지 | 조사 이후·결과 무관하게 불이익 방어 |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 |
실무에서 놓치는 포인트
조사 결과를 피해자에게 알려줄 의무는?
현행 법문에는 사용자가 피해자에게 조사 결과를 반드시 서면으로 통보해야 한다는 명시 규정은 없습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의 직장내 괴롭힘 예방·대응 매뉴얼(2023)에서는 피해자에게 조사 결과를 알리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실무적으로는 조사 완료 후 결과를 고지해 달라는 요청을 서면으로 남겨두는 것이 좋습니다.
비밀유지 의무 — 조사 내용이 유출됐다면?
조사를 실시한 사람, 보고받은 사람, 조사과정에 참여한 모든 사람은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비밀을 피해자 의사에 반해 누설해서는 안 됩니다(제76조의3 제7항). 법제처(23-0706, 2023.11.21)는 이 의무가 조사참여자 개인에게 부과된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조사 내용이 직장 내에 유포됐다면, 조사에 참여한 사람이 누설했는지를 특정해 문제 제기를 해야 합니다.
사용자가 행위자라면?
대표이사나 사업주 본인이 행위자로 신고된 경우, 감사가 조사 결과를 이사회에 보고해 이사회에서 주주총회 등을 통해 조치를 취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이 경우 일반 직원 간 괴롭힘보다 절차 설계가 복잡해집니다. 사용자가 행위자인 사건에서는 고용노동부 신고(진정)를 병행하는 것이 실질적 구제에 더 효과적입니다.
자문 현장에서 보면, 신고 후 피해자가 가장 많이 놓치는 권리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조사기간 중 ‘유급휴가 명령’을 요청할 수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가해자 징계가 결정되기 전에 피해자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절차입니다. 회사가 이 두 단계를 생략한 채 징계를 내렸다면, 500만원 이하 과태료 대상인 동시에 전체 징계 절차의 하자 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피해자 행동 체크리스트
- 신고는 서면 또는 이메일로 — 접수 일자와 내용을 증거로 남길 것
- 조사기간 중 가해자와 공간이 분리되지 않는다면 근무장소 변경 또는 유급휴가 명령을 서면으로 요청
- 조사 결과를 알려줄 것을 사용자에게 서면으로 요청
- 가해자 징계 전에 자신의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요청
- 신고 후 어떠한 불이익(근태 지적, 업무 배제, 인사 조치 등)이 생기면 날짜·내용을 기록하고 노동청에 별도 신고 검토
- 사용자가 조사를 진행하지 않을 경우 고용노동부 진정 또는 신고 가능(과태료 500만원)
자주 묻는 질문
Q. 신고 후 회사가 조사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근로기준법 제76조의3 제2항 위반으로 사업주에게 500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고용노동부에 신고하면 근로감독관이 조사 여부를 확인하고 개선을 권고합니다.
Q. 신고했더니 저를 다른 부서로 발령냈습니다. 이게 불법인가요?
피해자 의사에 반하는 인사조치는 제76조의3 제6항 위반으로,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 대상입니다. 조사가 끝난 이후의 전보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대법 2022.7.12, 2022도4925).
Q. 가해자 처벌 수위가 너무 낮다고 생각할 때, 이의를 제기할 수 있나요?
징계 양정 자체는 사용자의 재량이므로 그 경중을 직접 다툴 수는 없습니다. 다만, 징계 전 피해자 의견을 듣지 않았다면(제5항 위반) 절차 하자로 문제 제기할 수 있습니다.
Q. 회사 내부 신고가 두렵습니다. 바로 노동청에 신고할 수 있나요?
네, 가능합니다. 회사 내부 신고와 고용노동부 진정은 별개입니다. 다만 사업주가 근기법 제76조의3에 따른 조사 기회를 먼저 갖도록 하는 것이 절차상 기본이며, 조사를 하지 않거나 부실하게 할 경우 노동청 신고가 더 실질적입니다.
Q. 5인 미만 사업장도 직장내 괴롭힘 규정이 적용되나요?
아닙니다. 직장내 괴롭힘 금지 조항(제76조의2, 제76조의3)은 상시 근로자 5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됩니다.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나 형사(폭행·모욕 등) 경로를 검토해야 합니다.
작성: 서재홍 | N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