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상반기, 글로벌 테크 기업에서만 14만 명 넘는 인력이 정리됐다. AI를 이유로 든 곳도 있고, ‘과잉 채용’을 탓한 곳도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적어도 한 CEO는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을 곧장 HR에 돌렸다. “나쁜 HR과 특권의식에 젖은 직원들 때문”이라고. 과연 HR이 대량해고의 원인일까? 아니면 HR이야말로 이 혼란을 수습할 유일한 부서일까?
솔직히, 둘 다 맞는 말이다. HR은 채용 버블을 함께 만들었고, 동시에 그 버블이 터진 뒤 남은 조직을 다시 세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능이기도 하다. 문제는 HR이 그 역할을 실제로 해낼 준비가 되어 있느냐다.
한 줄 요약: 대량해고 시대, HR은 ‘범인’이 아니라 ‘재설계자’여야 하지만 — 그러려면 HR 자신이 먼저 변해야 한다.
“HR이 만든 거품” — CEO들의 비판은 절반쯤 맞다
2020~2022년, 테크 기업들은 폭발적으로 채용했다. 메타는 인력을 2배 가까이 늘렸고, 아마존은 물류 인력만 수십만 명을 충원했다. 당시 HR의 KPI는 단 하나였다 — ‘빈 자리를 빨리 채워라.’ 채용 속도가 곧 성과였고, 조직 설계나 직무 적합성 같은 질문은 뒷전이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2025년 미국 테크 업계에서만 12만 7천 명이 정리됐다. 2026년에는 상반기도 채 되지 않아 14만 3천 명을 넘어섰다. 하루 평균 993명이 일자리를 잃은 셈이다. 한 CEO는 이 사태를 두고 “리더십 팀의 연속적 판단 오류”라고 표현했는데, 그 판단 오류의 실행 부서가 어디였는지는 모두가 안다.
개인적으로는, HR만 탓하는 건 불공정하다고 본다. 채용 목표를 설정한 건 경영진이었고, HR은 실행 라인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HR이 ‘우리는 시킨 대로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면, 그건 전략적 파트너가 아니라 행정 부서임을 자인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HR의 딜레마가 시작된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 숫자가 보여주는 긴축의 민낯
글로벌 추세가 한국이라고 비켜갈 리 없다. 한국 대기업 정규직 신입 채용 공고는 2024년 3,741건에서 2025년 2,145건으로 43% 급감했다. 2026년 3월에는 전년 동기 대비 다시 45%가 줄었다. IT·통신 업종은 899건에서 293건으로 67% 감소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41%
긴축경영 계획 대기업 비율
한국일보·전경련 조사, 2026
67%
IT·통신 업종 신입채용 감소폭
ZDNet Korea, 2025–2026
61%
긴축기업 중 ‘인력 운용 합리화’ 선택 비율
전경련 기업조사, 2026
0.7%
HR 예산 증가율 전망 (전년 2.4%→)
가트너 HR 서베이, 2026
300인 이상 대기업의 41%가 긴축경영을 예고했고, 그중 61%가 구체적으로 ‘인력 운용 합리화’를 선택했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구조조정이다. 그런데 HR 예산 증가율은 2025년 2.4%에서 2026년 0.7%로 급락할 전망이다. 조직 재편이라는 가장 복잡한 과제를 맡기면서 예산은 깎는 모순. 이건 좀 이해하기 어렵다.
채용에서 재배치로 — HR의 축이 90도 돌아가고 있다
긴축 국면에서 HR의 역할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가트너는 “HR이 채용 역량의 3분의 1을 내부로 돌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누구를 뽑을 것인가’에서 ‘있는 사람을 어디에 쓸 것인가’로 질문 자체가 바뀐 것이다.
이 전환은 단순한 배치전환이 아니다. 직무 자체를 재정의하는 작업이다. MIT 슬론 리뷰의 연구에 따르면, 장애인 직원을 위한 직무 재설계 과정에서 기존 업무의 비효율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았고, 그 개선이 전체 조직에 이익이 됐다. 한 사람을 위한 설계가 모두를 위한 설계가 된 셈이다.
사례 — 인크루트 2026 HR 이슈 조사기업회원 650명 대상 조사에서 2026년 HR 이슈 1위는 ‘더 강화된 중고 신입 선호 현상'(33.5%)이었다. 2위 ‘AI로 인한 일자리 감소'(21.5%), 3위 ‘AI로 자동화된 채용 시장'(20.8%)이 바로 뒤를 이었다. 기업들이 신입보다 즉시 투입 가능한 경력직을 선호하면서, HR의 온보딩·육성 기능은 축소되고 배치·재배치 기능이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 흐름은 분명하다. 인사 제도의 축이 ‘사람 중심’에서 ‘직무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누가 일하느냐’보다 ‘어떤 직무가 얼마만큼의 가치를 창출하느냐’를 기준으로 조직을 재편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HR이 이 전환의 설계자가 되느냐, 단순 실행자로 남느냐가 갈림길이다.
AI 시대, HR의 새 직무는 ‘번역’이다
코른페리의 CEO·이사회 서베이에서 82%의 경영진이 향후 3년 내 AI로 인해 최대 20%의 인력을 줄이겠다고 답했다. 그런데 가트너 연구에 따르면, AI 투자 50건 중 혁신적 성과를 낸 건 단 1건이다. 투자 5건 중 1건만이 측정 가능한 수익을 냈다. 경영진의 기대와 현실 사이에 거대한 간극이 존재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조직 내 인식 격차다. C-레벨 경영진의 69%가 “AI에 대해 매우 명확하게 소통했다”고 답한 반면, 실무 직원 중 같은 응답은 12%에 불과했다. 경영진의 74%가 AI 덕분에 조직 몰입도가 높아졌다고 느끼는 동안, 일선 직원 중 그렇다고 답한 비율은 27%였다. 같은 조직 안에서 완전히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것이다.
HR의 새 직무는 이 간극을 메우는 ‘번역’이다. 경영진의 AI 전략을 현장 언어로 바꾸고, 현장의 불안을 경영진이 이해할 수 있는 데이터로 전환하는 것. 맥킨지에 따르면 AI 유창성(AI fluency)에 대한 수요는 2년 만에 7배 뛰었다. 그런데 HR 리더의 92%가 AI 도입 과정에 관여하고 있지만, 실제 AI 전략 수립에 긴밀하게 참여하는 비율은 21%에 불과하다. HR이 번역가가 되려면, 먼저 번역할 언어를 배워야 한다는 뜻이다.
HR은 자기 자신부터 재설계해야 한다
딜로이트의 2026 글로벌 인적자본 트렌드 조사에서 기업 리더 10명 중 7명이 “향후 3년간 핵심 경쟁 전략은 빠르고 민첩하게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 민첩성을 조직 구조로 실현하는 부서가 HR이다. 그런데 정작 HR 자체의 민첩성은 어떤가?
CHRO들은 시간의 33%를 CEO·리더십 자문에, 30%를 전사 변혁 과제에 쓴다고 한다. 합치면 업무 시간의 63%가 전략적 역할이다. 하지만 앞서 봤듯이 AI 전략에 실질적으로 관여하는 비율은 21%. 전략 테이블에 앉아 있되, 가장 중요한 안건에서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핵심은 이것이다. HR이 대량해고의 범인이냐 아니냐는 잘못된 질문이다. 더 정확한 질문은, HR이 다음 위기에서도 같은 역할 — 경영진이 정한 숫자를 실행하는 역할 — 을 반복할 것이냐다. 만약 HR이 조직의 ‘재설계자’가 되겠다면, 먼저 자기 부서의 역량부터 재설계해야 한다. AI를 이해하는 역량, 직무를 분해하고 재조합하는 역량, 그리고 경영진에게 “그 숫자는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역량. 그것 없이는, 다음 위기에서도 HR은 똑같이 비난받을 것이다.
💡 실무 시사점: HR이 전략적 파트너로 인정받으려면, 채용 KPI에서 재배치·직무재설계 KPI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AI 전략 수립 과정에 HR이 초기부터 참여하는 구조를 만들고, 경영진과 현장 사이의 인식 격차를 데이터로 가시화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사람을 관리하는 부서’에서 ‘일을 설계하는 부서’로의 정체성 전환이 필요하다.
#HR전략#대량해고#직무재설계#AI도입#조직설계#인력재배치
참고 링크
- Inc.com, “Tech Mass Layoffs: This CEO Says Blame HR and Entitled Employees” (2026)
- Inc.com, “What’s Going on With HR? How Top Companies Manage the Future of Work” (2026)
- Gartner, “2026 HR Trends: Top CHRO Priorities” (2026)
- Deloitte, “2026 Global Human Capital Trends” (2026)
- ZDNet Korea, “신입 채용 거의 반토막…전 업종 동시 하락 이례적” (2026)
- 한국일보, “2026년 대기업 41% 긴축경영 예고” (2025)
- McKinsey, “People in Progress” (2026)
- 더페어, “인사 담당자가 꼽은 2026 HR 이슈는?” (2026)
작성: 서재홍 | N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