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에도 수백만 명이 ‘3.3% 계약서’에 서명하며 사업자가 된다. 세금 3.3%를 원천징수하는 그 계약서 한 장이 노동법의 울타리 밖으로 밀어낸 사람들 —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배달기사, 프리랜서 강사, 골프장 캐디 — 이 870만 명이다. 그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는 문이 이번 5월 국회에서 열릴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근로자 추정제'(근로기준법 개정안)와 ‘일하는 사람의 권리에 관한 기본법’을 한 묶음으로 추진하고 있다. 특정 직종에 혜택을 주는 수준이 아니다. 핵심은 입증책임의 주체가 바뀐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근로자임을 증명하라’는 부담이 노동자에게 있었다면, 앞으로는 ‘당신이 근로자가 아님을 증명하라’는 부담이 사업주에게 넘어간다.
지금까지는 어떻게 판단했나
현행 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 제1호는 근로자를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문언은 단순하지만 실제 판단은 훨씬 복잡하다.
대법원은 오래전부터 이른바 ‘사용종속관계 테스트’를 사용해왔다. 업무 지휘·감독 여부, 근무시간·장소 구속 여부, 비품·원자재 제공 주체, 보수의 성격(임금 vs 도급료), 전속성, 경제적 종속성 등 다양한 요소를 종합해 판단한다(대법원 2006다49484 등). 어느 하나만으로 결론이 나지 않는 복합 판단이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을 노동자 쪽이 주장하고 입증해야 했다는 점이다. 계약서에 ‘도급계약’ 또는 ‘용역계약’이라고 쓰여 있으면, 노동자는 그 계약서의 내용이 실질과 다르다는 것을 사실로 증명해야 했다. 임금명세서도 없고, 지시 내용도 구두로만 이루어지는 현장에서 이 입증은 종종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결과 ‘3.3%로 신고하면 일단 사업자’라는 통념이 굳어졌다. 매월 일정 시간 특정 장소에 출근하고, 업무 지시를 받으며, 사실상 전속으로 일해도 계약서에 ‘프리랜서’라고 적혀 있으면 근로자가 아니었다.
근로자 추정제 — 무엇이 바뀌나
근로자 추정제의 핵심 구조는 간단하다. 타인의 사업을 위해 직접 노무를 제공한 사실이 인정되면 일단 근로자로 추정한다. 반박은 사업주 몫이다.
사업주가 반증에 성공하려면 다음을 입증해야 한다:
- 해당 노무 제공자가 독립적 사업자로서 스스로 업무 방식과 시간을 결정했다
- 사업 위험(수익·손실)을 본인이 직접 부담했다
- 복수 사업자와 자유롭게 계약했으며 전속성이 없다
- 지휘·감독 없이 결과물만을 제공하는 도급 구조였다
이 반증에 실패하면 계약서 내용과 무관하게 근로자로 인정된다. 그 순간 최저임금, 주휴수당, 연차휴가, 퇴직금, 4대보험 가입 의무 등 근로기준법 전체가 적용된다.
현재 정부안은 근로기준법 제2조를 개정해 추정 규정을 신설하는 방식을 검토 중이다. 추정 효과가 발동하는 요건(노무 제공 사실)은 비교적 넓게 설계하되, 사업주의 반증 기준은 구체적 요건으로 한정하는 구조다. 근로기준법 위반에는 형사 처벌이 따르는 만큼, 입증책임 전환과 무죄추정 원칙의 충돌 문제는 입법 과정에서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일하는 사람 기본법 — 추정제에서도 빠지는 사람들을 위한 안전망
근로자 추정제를 통과해도 여전히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진정으로 독립적인 사업자이거나 반증이 성공한 경우다. 그 빈틈을 채우는 것이 ‘일하는 사람의 권리에 관한 기본법’이다.
이 법은 고용형태나 계약 명칭과 무관하게 모든 노무 제공자에게 8가지 기본권리를 보장한다:
- 공정한 계약 체결권 — 불공정 조항 무효
- 최소한의 보수 보장 — 최저임금 준용 또는 별도 기준 적용
- 차별 금지 — 성별·나이·고용형태 차별 불가
- 모성 보호 — 임신·출산 관련 계약 해지 금지
- 직장 내 괴롭힘 금지
- 안전하게 일할 권리 — 산업안전보건법 준용
- 최소한의 휴식권
- 사회보장제도 접근권 — 고용·산재보험 가입 기반
현행 근로기준법이 ‘근로자’에게만 적용되는 것과 달리, 일하는 사람 기본법은 근로자성을 묻지 않는다. 구독형 플랫폼 크리에이터든, 프리랜서 디자이너든, 보험설계사든 ‘타인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면 원칙적으로 적용 대상이다.
바꾸지 않는 것 — 혼동하면 안 되는 세 가지
근로자 추정제가 시행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실무에서 이 세 가지를 혼동하면 오히려 큰 혼란이 생긴다.
첫째, 근로기준법 제2조 근로자 정의 자체는 그대로다. 추정제는 ‘증명 방식’을 바꾸는 것이지, 근로자의 법적 정의를 새로 쓰는 것이 아니다. 사용종속관계 판단 기준 — 지휘감독, 전속성, 임금성 — 은 여전히 최종 판단의 척도로 남는다. 법원과 노동위원회는 지금도 그 기준으로 근로자성을 판단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둘째, 3.3% 계약서가 자동으로 무효가 되지 않는다. 계약서의 형식은 그대로 존재한다. 단지 분쟁이 발생했을 때 반증 책임이 사업주로 넘어갈 뿐이다. 실제로 독립 사업자로 활동하는 프리랜서라면 사업주가 충분히 반증할 수 있고, 그 계약은 유효하게 유지된다.
셋째, 추정제 통과가 ‘870만 명 전원 근로자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분쟁이 생겼을 때 입증의 편의를 주는 것이지, 사전에 모든 계약관계를 근로관계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다. 분쟁이 없으면 현 상태가 유지된다. 그러나 ‘분쟁이 생겼을 때의 불확실성’이 사업주에게 전가된다는 점에서 계약 설계 방식 자체를 바꿀 유인이 생긴다.
실무에서 지금 당장 주목할 포인트
사업주·인사담당자 체크리스트
- 현재 3.3% 계약(도급·용역) 인원 전수 조사 — 실질적 지휘감독 여부 확인
- 독립 사업자성을 입증할 수 있는 서류 정비 (복수 거래처 계약서, 업무 지시 없음을 보여주는 기록)
- 분쟁 발생 시 반증 가능한 기록 체계 구축 (업무 수행 방식, 보수 산정 기준 문서화)
- 실질적으로 직원처럼 운영하는 계약 인원 → 정규 고용 전환 또는 4대보험 가입 선제 검토
- 입법 시행 전 분쟁 리스크 높은 계약 관계 자체 감사
프리랜서·특수고용 종사자 확인 사항
- 자신이 실질적으로 사용종속 상태인지 판단 — 근무시간·장소 구속, 업무 지시 수령 여부
- 분쟁 발생 시 노무 제공 사실 입증 자료 확보 (카카오톡 지시 내용, 출퇴근 기록, 업무 메일)
- 입법 시행 전이라도 현행 기준으로 근로자성 인정 가능한 경우 임금채권 소멸시효(3년) 내 구제 신청 검토
입법 일정과 변수
정부와 여당은 5월 노동절을 전후해 근로자 추정제 입법을 공식화했다. 이재명 정부의 1호 노동입법으로 분류되며 고용노동부가 입법예고 절차를 진행 중이다.
변수는 두 가지다. 첫째는 6월 3일 지방선거다. 선거 일정을 앞두고 기업 부담 논란이 있는 입법의 속도를 조절할 가능성이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사업주가 근로자가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려면 지휘·명령을 하지 않았다는 점 등 여러 요건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에게는 사실상 불가능한 부담”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둘째는 국회 일정이다. 법안이 발의되더라도 상임위 심사와 본회의 의결까지 최소 수 주가 소요된다.
고용노동부는 동시에 고용보험 소득 기준 전환도 추진 중이다. 현재는 ‘근로자냐 아니냐’로 가입 여부가 결정되지만, 소득이 있으면 형태와 무관하게 고용보험에 가입하는 구조로 전환하겠다는 방향이다. 이미 2025년부터 특수형태근로종사자와 플랫폼 종사자에게 산재보험이 확대 적용되고 있는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870만 명의 법적 지위가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는 입법이다. 실무 영향의 핵심은 숫자가 아니라 구조다. 누가 증명하느냐 — 그 한 가지가 분쟁의 판도를 바꾼다.
자주 묻는 질문
Q. 3.3% 프리랜서 계약서가 있으면 무조건 사업자 아닌가요?
계약서 명칭보다 실질이 우선합니다. 근로자 추정제 시행 후 분쟁 발생 시 사업주가 독립 사업자임을 반증하지 못하면 근로자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Q. 근로자 추정제가 통과되면 모든 프리랜서가 근로자가 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분쟁 시 입증 책임이 사업주에게 넘어가는 구조로, 실제로 독립 사업자인 경우 사업주가 반증 가능합니다. 사전에 모든 계약을 근로계약으로 전환하는 것이 아닙니다.
Q. 일하는 사람 기본법과 근로기준법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에게만 적용됩니다. 일하는 사람 기본법은 근로자성 판단 없이 노무를 제공하는 모든 사람에게 8가지 기본 권리를 보장하는 포괄적 안전망입니다.
Q. 사업주가 반증에 실패하면 어떤 책임이 생기나요?
근로자로 인정될 경우 최저임금·주휴수당·퇴직금·연차수당 미지급 책임이 소급 적용될 수 있으며, 4대보험 미가입에 따른 보험료와 과태료 부담이 발생합니다.
Q. 입법 전에 이미 3.3%로 일했던 사람도 구제받을 수 있나요?
추정제 자체는 소급 규정을 두기 어렵지만, 현행 사용종속관계 테스트로도 근로자성이 인정된다면 임금채권 소멸시효(3년) 내에서 노동위원회 구제신청이나 민사청구가 가능합니다.
작성: 서재홍 | N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