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글로벌 기업들 사이에서 흥미로운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AI 도입을 성과 지표로 내건 기업이 몇 달 만에 그 결정을 번복하는 현상이다. 어학 플랫폼 듀오링고는 2025년 직원들의 AI 활용도를 독립적인 성과 평가 항목으로 만들었다가, 직원 반발과 실효성 부족을 이유로 철회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액센츄어는 직원들에게 이메일과 프레젠테이션 같은 일상 업무에 AI를 적극 활용하라고 독려했다가, 비용이 통제 불능으로 치솟자 오히려 “루틴 업무에 AI를 쓰지 말라”고 방향을 틀었다.
솔직히, 이건 예견된 결과다. AI를 ‘얼마나 쓰느냐’를 잣대로 삼는 순간, 조직은 도구의 효과가 아니라 도구의 노출 빈도를 관리하게 된다. 한국 기업들도 같은 갈림길에 서 있다. 2026년 하반기, 국내 대기업 상당수가 사내 AI 도입률을 KPI에 반영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이 글은 그 선언이 왜 위험한지, 그리고 성과관리에 AI를 제대로 녹이려면 무엇을 측정해야 하는지를 추적한다.
한 줄 요약: AI를 성과 ‘지표’로 강제하면 실패하고, 성과 ‘도구’로 설계하면 전문가의 판단력이 증폭된다 — 측정해야 할 건 사용 횟수가 아니라 업무 지능의 축적이다.
‘AI 활용도 = 성과’ 공식이 깨지는 이유
듀오링고 CEO 루이스 폰 안은 철회 이후 이렇게 말했다. “가장 중요한 건 자기 일을 최대한 잘하는 것이다. AI가 도움이 될 때도 많지만, 도움이 안 되는 상황에서 강제할 생각은 없다.” 이 발언이 핵심을 찌른다. AI 활용을 독립 지표로 만드는 건, 아웃풋과 연결되지 않은 인풋에 보상을 거는 것과 같다.
인사 컨설팅 기업 웨이포워드 어소시에이츠의 더스틴 스나이더는 이를 더 직설적으로 정리했다. “아웃풋과 연결됐는지도 모르는 인풋에 보상을 주는 건 기업이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실제로 직원들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글래스도어 수석 이코노미스트 대니얼 자오에 따르면, AI가 성과 리뷰에 언급될 때 직원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건 ‘효율 향상’이 아니라 ‘고용 불안’이다.
5%
생성형 AI 프로젝트 중 측정 가능한 ROI를 달성한 비율
MIT, 2025
18%
AI 투자 후 높은 비즈니스 가치를 보고한 데이터 리더 비율 (우선순위라 답한 99%와 대비)
SHRM 조사, 2026
3명 중 1명
AI로 인한 1년 내 일자리 상실을 우려하는 글로벌 근로자 비율
SHRM 글로벌 직원 모니터, 2026 Q1
개인적으로는, 이 숫자들이 말해주는 메시지는 하나다. AI에 돈을 쏟는 것과 AI로 가치를 만드는 것 사이에는 아직 거대한 간극이 있다. 그 간극을 ‘사용량’이라는 허영 지표로 메울 수는 없다.
10분 만에 끝낸 성과 목표 점검 — 되는 방식은 따로 있다
AI가 성과관리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사례는 존재한다. 다만, 그 방식은 ‘AI 얼마나 썼느냐’와는 정반대다. 미국 헬스케어 성과 분석 기업 메디어널리틱스(MedeAnalytics)의 HR팀은 ChatGPT 엔터프라이즈를 사내 성과 목표(SMART Goal) 품질 검증에 투입했다. 매년 약 1,000건의 직원 목표를 경영진 MBO와 대조해 정렬도를 확인하는 작업이었는데, 종전에는 하루 이상 걸렸다.
이 팀이 설계한 방식은 두 단계 프롬프트 시스템이다. 첫 번째 프롬프트가 ADP 인사정보시스템에서 추출한 목표 데이터(목표당 약 20개 필드)를 표준화하고, 두 번째 프롬프트가 각 목표의 MBO 정렬도를 세 범주로 분류한다 — ‘직접 성과 책임’, ‘지원을 통한 기여’, ‘미정렬’. 최고인사책임자 리사 킹은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은 목표가 정렬됐고, 저 사람은 안 됐고 — 이걸 10분 만에 파악했다.”
이건 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메디어널리틱스 사례에서 AI는 ‘성과를 평가받는 대상’이 아니라 ‘성과를 점검하는 렌즈’로 작동했다. HR 전문가가 종일 걸리던 정렬 작업을 10분으로 줄였지만, 판단 자체는 여전히 사람의 몫이었다. 해외 근무 직원의 목표가 문화적 맥락 때문에 애매할 때, AI가 플래그를 달면 HR 담당자가 직접 대화로 풀었다. 기술적으로 모호한 목표는 해당 부문 임원에게 에스컬레이션했다.
사례 — 메디어널리틱스 HR팀리사 킹 최고인사책임자는 한 가지 경고도 덧붙였다. “HR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이 AI 결과를 보고 ‘맞는 것 같으니 그냥 넘어가자’고 할 수 있다.” AI가 판단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전문가의 판단을 가속하는 도구일 때만 안전하다는 뜻이다. 또한 민감한 직원 데이터와 건강 정보가 포함되므로, 무료 AI 계정이 아닌 엔터프라이즈 라이선스(ChatGPT Enterprise, Microsoft Copilot)만 사용했다.
경영진은 80%, 직원은 29% — 인식 격차가 진짜 장벽이다
왜 어떤 기업은 AI 성과관리에 성공하고 다른 기업은 실패하는가? 원디지털(OneDigital)의 공동창업자 마이크 설리반과 최고제품책임자 비나이 기드와니가 미국 1,400명의 직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답이 있다.
경영진의 80%는 “직원들이 우리 AI 전략을 잘 알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실무자 중 같은 응답을 한 비율은 29%에 그쳤다. 경영진의 76%는 “직원들이 AI에 열정적”이라고 봤지만, 정작 실무자의 31%만 그렇게 느꼈다. 이건 좀 아찔한 수치다. 거의 3배에 가까운 인식 격차는, AI가 기술 문제가 아니라 사람 문제임을 정확히 보여준다.
설리반과 기드와니는 이를 바탕으로 ‘워크포스 인텔리전스(WI) 스코어’라는 새로운 측정 프레임을 제안했다. 핵심은 AI ‘사용량’이 아니라 AI와의 ‘상호작용 깊이’를 측정하는 것이다. 단순 질의응답(가중치 0.25)에서 다단계 문제해결(0.65), 그리고 AI를 팀원처럼 협업에 투입하는 단계(1.0)까지, 조직이 실제로 AI를 통해 ‘똑똑해지고 있는지’ 아니면 ‘바빠지기만 하는지’를 구분한다.
“바쁜 것과 나아진 것은 사용량 리포트에서는 똑같아 보인다.” 기드와니의 이 한마디가, AI를 KPI에 넣으려는 모든 기업이 자문해야 할 질문을 압축한다. WI 스코어가 오르면 조직 지능이 축적되고 있다는 신호다. AI 지출이 늘어도 WI 스코어가 제자리면, 조직은 비용만 태우고 있는 것이다.
한국 맥락 — ‘도입률 KPI’의 함정
이 글로벌 흐름은 한국 기업에 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국내에서는 AI 도입률 자체를 경영평가 지표로 삼는 공공기관이 늘고 있고, 대기업 상당수도 “2026년까지 전 직원 AI 도구 사용”을 선언했다. 하지만 듀오링고와 액센츄어의 전철은 명확하다 — 사용 강제는 비용 폭발이나 직원 이탈로 귀결된다.
한국 특유의 맥락도 있다. 연공서열 기반 평가 문화에서 AI 활용도를 지표로 추가하면, 직원들은 ‘진짜 업무 개선’보다 ‘상사에게 보여줄 AI 사용 로그’를 만드는 데 에너지를 쓸 가능성이 높다. 이건 성과관리의 본질을 왜곡한다. 메디어널리틱스처럼 HR 전문가의 기존 업무를 가속하는 방식과, 듀오링고처럼 전 직원에게 사용을 강제하는 방식은 같은 ‘AI 도입’이라는 이름 아래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낳는다.
인사 관리에서 AI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핵심은 측정 대상의 전환이다. ‘몇 명이 AI를 썼는가’에서 ‘어떤 업무에서 어떤 수준의 협업이 일어나고 있는가’로. 원디지털의 프레임워크를 빌리자면, 인간 중심 접근을 우선하는 조직이 AI 도입에 성공할 가능성은 그렇지 않은 조직보다 7배 높다.
결국 묻게 되는 건 이것이다
당신의 조직에서 AI는 ‘보고서에 올릴 숫자’인가, ‘전문가가 더 깊이 판단할 여유를 주는 장치’인가? 듀오링고의 루이스 폰 안도, 메디어널리틱스의 리사 킹도, 결국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AI가 할 수 있는 일을 AI에게 맡기되, 그 결과를 해석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건 사람의 몫이다.
이건 단순한 기술 도입 전략이 아니라 조직 설계의 문제다. AI를 성과 평가의 잣대로 세우는 순간 직원들은 방어적으로 변한다. AI를 전문가의 렌즈로 위치시키는 순간 조직은 더 빠르게 배운다. 측정해야 할 건 ‘사용 횟수’가 아니라 ‘배움의 속도’다.
💡 실무 시사점: AI 도입을 성과 지표(KPI)로 강제하기 전에, 먼저 어떤 업무에서 AI가 전문가의 판단을 가속하는지 파일럿하라. ‘사용 빈도’가 아니라 ‘업무 품질 변화’와 ‘시간 절감’을 측정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경영진과 실무자 사이 AI 인식 격차(80% vs 29%)를 먼저 진단하는 것이 모든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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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링크
- SHRM, “Should AI Usage Be a Standalone Employee Performance Metric?” (2026)
- SHRM, “How One HR Team Put AI to Work to Improve Performance Management” (2026)
- Inc., “AI Transformation Experts Say Companies Are Really Facing a Talent Management Problem” (2026)
작성: 서재홍 | N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