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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가 대표이사라면 — 신고 경로가 막혔을 때 근로자가 할 수 있는 것들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하려는데 사내 신고 창구 책임자가 바로 가해자인 대표이사다. 이 상황에서 근로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2021년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사업주가 직접 가해자인 경우 1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신설됐지만, 실제로 구제받는 경로는 여전히 복잡하고 좁다. 판정례와 법원 판결이 그 답을 어떻게 정리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신고 창구 책임자가 가해자인 역설

근로기준법 제76조의3은 누구든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알게 되면 사용자에게 신고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그리고 신고를 받은 사용자는 지체 없이 객관적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그런데 ‘사용자’가 곧 가해자라면? 신고 대상과 신고 수령자가 같은 사람인 상황이 발생한다.

이 문제는 제도 설계의 구조적 허점으로 일찍부터 지적돼 왔다. 고용노동부 2023년 직장 내 괴롭힘 예방·대응 매뉴얼도 “사업주가 직접 괴롭힘 행위자인 경우 사내 절차를 통한 해결이 어렵다”고 명시하면서, 고용노동부 지방관서(노동청)에 직접 진정하거나 고소·고발하는 방식을 안내하고 있다.

2021년 10월 14일 시행된 개정 근로기준법은 이 공백을 일부 메웠다. 핵심 내용은 두 가지다. 첫째, 사업주가 직접 괴롭힘 행위를 한 경우 1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제116조 제1항). 둘째, 사용자의 4촌 이내 혈족·인척이 괴롭힘 행위를 한 경우도 같은 과태료를 부과한다. 이전에는 사업주가 가해자여도 직접 제재 규정이 없었고, 사업주의 ‘조치의무 위반’에 대한 500만 원 이하 과태료만 존재했다.

사건 1 — 행정기관의 괴롭힘 결정, 법원에서 취소되지 않은 이유

서울행정법원 2024. 2. 2. 선고 2022구합85560 판결은 공직유관단체에서 발생한 괴롭힘 사건을 다룬다. 행정기관이 직장 내 괴롭힘 해당 결정을 내린 뒤 사용자(기관)가 이를 취소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한 사안이다.

법원은 사용자의 청구를 기각했다. 가해자의 행위가 업무상 적정 범위를 벗어났고 피해자에게 실질적인 정신적 고통을 초래했다는 점이 입증되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주목할 부분은 법원이 “행정기관의 사실 인정 및 법률 적용에 위법이 없으므로 결정 취소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명시한 점이다. 노동청(또는 인권위)의 판단을 법원이 그대로 지지한 것이다.

이 판결은 ‘노동청의 인정 → 법원 취소’라는 패턴이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용자(기관)가 괴롭힘 결정에 불복해 소송으로 가도, 법원이 행정기관 판단을 존중하는 경향이 있다는 의미다.

사건 2 — 상급자의 언어폭력, 해고는 무효인데 손해배상은 일부만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2024. 1. 26. 선고 2022가합388 판결은 한층 복잡한 사안을 다룬다. 상급자의 언행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지와 동시에 해고가 정당한지가 쟁점이 됐다.

법원은 해고는 무효로 판단하면서, 괴롭힘 손해배상은 일부만 인용했다. 가해자의 모든 행위가 불법행위로 인정된 것은 아니었고, 일부 행위에 대해서만 사용자의 민법 제756조 사용자책임이 제한적으로 인정됐다.

이 판결에서 주목할 점은 손해배상 인정 범위의 제한성이다. 상급자(가해자)의 행위 중 객관적으로 입증된 부분에 대해서만 불법행위가 인정됐다. 구체적인 증거(목격자 진술, 메시지 기록, 진단서 등)가 없는 행위는 괴롭힘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피해자는 해고는 무효 판정을 받았지만, 괴롭힘으로 인한 위자료는 제한적으로만 인정됐다. 이 사건은 증거 기록이 구제의 범위를 결정한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사건 3 — 공개 질책한 과장, 인권위 결정이 법원까지 살아남다

서울행정법원 2024. 9. 12. 선고 2023구합60391 판결은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의 법적 효력을 정면으로 다룬 사건이다. 가해자인 과장이 피해자를 공문 유출자로 단정하고 범인 색출하듯 추궁하거나, 다른 직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질책한 사안이다.

법원은 두 가지를 모두 인정했다. 첫째, 인권위 결정이 항고소송(행정처분에 불복하는 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에 해당한다. 둘째, 가해자의 행위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므로 인권위 결정은 적법하다.

처분성 인정 근거가 중요하다. 법원은 “인권위의 결정은 직접적 강제력은 없더라도 조사 내용·권고 내용·처리 결과를 공표함으로써 사회적 압박을 통해 사실상 의무이행을 강제할 수 있다”고 봤다. 강제력이 없어도 공표(公表) 효과 자체가 법적 효력을 갖는다는 논리다. 인권위 진정이 단순한 민원 제기가 아님을 확인한 판결이다.

사건 4 — 노동청 시정지시는 행정처분이 아니다

대전지방법원 2023. 11. 9. 선고 2023구단200941 판결은 노동청 시정지시의 법적 성격을 명확히 했다. 사용자가 노동청의 직장 내 괴롭힘 시정지시를 취소하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한 사안이다.

법원은 소를 각하했다. 노동청의 시정지시는 행정지도적 성격이지, 법적 구속력 있는 행정처분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사용자의 권리·의무에 직접적인 법률적 효과를 발생시키지 않으므로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 판결의 실무적 함의는 이렇다. 사용자가 노동청 시정지시를 이행하지 않더라도, 그것 자체만으로 직접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다만 시정지시 불이행 시 과태료 부과는 가능하고, 이 과태료 처분에 대해서는 행정소송이 가능하다. 광주지방법원 2023. 4. 13. 선고 2022구합12579 판결도 같은 취지로 직장 내 괴롭힘 개선지도가 행정소송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봤다.

대표이사가 가해자일 때, 실제로 쓸 수 있는 경로

판정례를 종합하면, 가해자가 대표이사인 경우 근로자가 선택할 수 있는 구제 경로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첫 번째 경로: 고용노동부(노동청) 진정

가장 먼저 고려할 경로다. 관할 지방고용노동관서에 직장 내 괴롭힘 진정서를 제출한다. 노동청은 사실 조사를 거쳐 괴롭힘이 인정되면 시정 지시를 한다. 사업주가 직접 가해자인 경우, 근로기준법 제116조에 따라 1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단, 2023구단200941 판결에서 확인됐듯이 시정지시 자체는 행정처분이 아니므로, 이행 강제는 과태료 부과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두 번째 경로: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인권위 진정은 노동청 진정과 병행할 수 있다. 2023구합60391 판결이 인권위 결정에 처분성을 인정했다는 점은 실무적으로 중요하다. 인권위의 권고·결정이 사실상의 강제력을 갖기 때문에, 사용자가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해도 법원이 인권위 판단을 지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세 번째 경로: 민사 손해배상 청구

2022가합388 판결에서 보듯, 괴롭힘 행위가 불법행위로 인정되면 민법 제750조에 따른 손해배상(위자료) 청구가 가능하다. 가해자가 대표이사인 경우 법인도 함께 사용자책임(민법 제756조)을 진다. 다만 청구가 인용되려면 구체적인 증거가 핵심이다. 일시·장소·행위·목격자·이후 건강 상태 변화 등을 빠짐없이 기록해둬야 한다. 소멸시효는 불법행위 사실을 안 날로부터 3년이다(민법 제766조).

네 번째 경로: 노동위원회 구제신청 (해고·불이익 조치가 있는 경우)

괴롭힘 신고 이후 해고·전보·징계 등 불이익 조치가 발생했다면, 근로기준법 제76조의3 제6항의 불이익 처우 금지 위반을 이유로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할 수 있다. 신청 기간은 불이익 조치가 있은 날로부터 3개월 이내다. 이 경로는 해고·전보 자체의 취소를 구하는 것이므로, 금전 배상보다 원직 복직이 목표라면 우선 검토해야 한다.

승패를 가른 핵심 — 증거와 신고 시점

복수의 판정례와 판결을 비교할 때, 구제 여부를 가른 변수는 일관되게 두 가지였다.

  • 증거의 구체성: 피해 행위의 일시, 장소, 내용을 기록한 메모, 메신저·이메일 캡처, 목격자 진술, 정신과 진단서 등이 갖춰진 경우 인정 범위가 넓었다. 2022가합388 판결에서 일부 행위만 인정된 것도 나머지 행위에 대한 증거가 불충분했기 때문이다.
  • 신고의 타이밍: 불이익 조치(전보·해고)가 발생하기 전에 신고 기록을 남겨두는 것이 중요하다. 사후에 “괴롭힘 신고에 대한 보복이었다”고 주장하려면, 신고가 먼저 이뤄졌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 신고 경로의 선택: 사업주가 가해자인 경우 사내 신고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노동청·인권위로 직접 가되, 두 경로를 동시에 활용하면 각 기관의 조사 결과가 상호 보강 증거가 된다.

실무에서 주목할 체크리스트

  • 피해 내용을 날짜·장소·구체적 언행 단위로 즉시 기록한다 (스마트폰 메모, 이메일 자기 자신에게 발송 등)
  • 목격자가 있다면 연락처를 확보해둔다
  • 심리적·신체적 피해가 있으면 정신건강의학과 또는 내과 진료를 받고 기록을 보존한다
  • 사내 신고 창구가 막혀있으면 고용노동부 고객상담센터로 먼저 상담한다
  • 불이익 조치가 발생하면 3개월 내에 노동위원회 구제신청을 제출한다
  • 노동청 진정과 인권위 진정을 병행하면 증거가 보강된다
  • 민사 손해배상 소멸시효는 불법행위 사실을 안 날로부터 3년이다(민법 제766조)

한 줄 정리

가해자가 대표이사여도 신고할 수 없다는 말은 틀렸다. 경로가 좁을 뿐이지, 고용노동부 진정·인권위 진정·민사 손해배상·노동위원회 구제신청의 네 가지 경로가 있다. 그 중 어느 경로를 선택하든, 증거의 구체성과 신고 타이밍이 결과를 가른다.

자주 묻는 질문

Q. 가해자가 대표이사인데, 사내 신고를 하지 않으면 노동청 진정이 가능한가요?

가능합니다. 근로기준법은 사내 신고 절차를 먼저 거쳐야 한다는 요건을 두지 않습니다. 사업주가 직접 가해자인 경우 고용노동부 지방관서에 바로 진정할 수 있습니다.

Q. 노동청이 괴롭힘을 인정하면 사용자는 어떤 제재를 받나요?

2021년 10월 개정 이후 사업주가 직접 괴롭힘 행위를 한 경우 1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근로기준법 제116조 제1항). 조사 미실시, 피해자 보호조치 위반 등 절차 위반에 대해서는 별도로 500만 원 이하 과태료가 추가될 수 있습니다.

Q. 괴롭힘 신고 후 전보를 당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근로기준법 제76조의3 제6항에 따라 괴롭힘 신고를 이유로 한 불이익 처우는 금지됩니다. 불이익 조치가 있은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제출해야 합니다.

Q. 민사 손해배상 청구도 가능한가요?

네. 괴롭힘 행위가 불법행위(민법 제750조)로 인정되면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가해자가 대표이사인 경우 법인도 사용자책임(민법 제756조)을 집니다. 다만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2024. 1. 26. 선고 2022가합388 판결처럼 증거가 없는 행위는 인정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Q. 국가인권위원회 진정과 노동청 진정을 동시에 할 수 있나요?

동시 진행이 가능합니다. 서울행정법원 2024. 9. 12. 선고 2023구합60391 판결에서 인권위 결정도 행정처분성이 인정되었습니다. 두 기관의 판단이 병행될 수 있으며, 각 기관의 조사 결과가 상호 보강 증거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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