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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을 올려줘도 떠나는 사람들 — 정서적 연봉이라는 보이지 않는 장부

연봉을 올려줘도 사람이 떠나는 이유

채용 시장이 경직될수록 기업의 첫 번째 반응은 대개 같다. 연봉 테이블을 올린다. 사이닝 보너스를 얹는다. 스톡옵션 베스팅 기간을 단축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연봉이 오른 직후에도 핵심 인재의 퇴사 통보는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보상 패키지를 강화한 직후, “이만큼 받으니까 이직 시장에서 몸값이 올랐다”며 떠나는 사람이 생긴다.

한국 상황은 더 극적이다. 2025년 하반기 취업자 증가 규모가 분기당 19~22만 명이었지만, 2026년 1월에는 10.8만 명으로 급감했다. 생산연령인구가 줄면서 인력 공급 자체가 쪼그라들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 ‘뽑기도 어렵고, 뽑아놔도 떠나는’ 이중고에 빠진 셈이다. 솔직히, 이 상황에서 연봉 인상만으로 버티겠다는 전략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다를 바 없다.

한 줄 요약: 연봉 인상만으로 인재를 붙잡는 시대는 끝났다. 자율성, 심리적 안전감, 성장 기회라는 ‘정서적 연봉’이 진짜 리텐션을 결정한다.

정서적 연봉 — 통장에 찍히지 않는 보상의 무게

서울대 경영대학 신재용 교수가 2026년 IGM세계경영연구원 조찬 강연에서 꺼낸 개념이 정확히 이 지점을 찌른다. 정서적 연봉이란, 자율성, 심리적 안전감, 동료 관계, 일의 의미, 성장 기회처럼 통장에 찍히지 않지만 직장인이 체감하는 비금전적 가치를 화폐 단위로 환산한 것이다.

연구 결과가 상당히 도발적이다. 정서적 연봉 점수가 5점 상승하면, 화폐 연봉이 3,000만 원 줄어들어도 이직 의향이 억제된다. 바꿔 말하면, 연봉 3,000만 원의 리텐션 효과를 비금전적 환경 개선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신재용 교수의 표현이 인상적이다. “사람은 미래의 통장 잔고를 보고 입사하지만, 헤어질 결심을 할 때는 감정 잔고가 탈탈 털려서 퇴사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말이 한국 HR 현장의 고질적 맹점을 정확히 짚는다고 본다. 대부분의 기업이 입사 시점의 보상 경쟁력에는 집착하면서, 재직 중에 감정 잔고가 어떻게 변하는지는 측정조차 하지 않는다.

3,000만

정서적 연봉 5점 상승이 상쇄하는 화폐 연봉 감소분

서울대 신재용 교수 연구 / 2026

0.9%

SK하이닉스 2024년 자발적 이직률

한경비즈니스 / 2026

18%

근로자가 실제 초봉을 과소추정하는 평균 오차

arXiv 노동시장 연구 / 2026

보상에 대한 인식은 왜 이렇게 비뚤어져 있을까

흥미로운 점은, 근로자 스스로가 보상의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2026년 발표된 노동시장 실험 연구에 따르면, 구직자들은 초봉을 평균 18%나 낮게 추정한다. 더 놀라운 건 그다음이다. 비금전적 혜택(유연근무, 자율성, 복지 등)이 좋은 일자리가 급여도 높을 것이라고 잘못 믿는 경향이 강하다. 실제로는 그 반대인 경우가 많은데도.

이 연구가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기업이 아무리 좋은 복지와 문화를 제공해도, 구직자가 “어차피 여기 급여도 괜찮겠지”라고 착각하면 그 복지의 진짜 가치를 인식하지 못한다. 반대로, 급여 정보를 명확히 제공하자 급여 인식의 분산이 15%나 줄었다. 이건 좀 아쉬운 대목인데, 결국 보상의 투명성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정서적 연봉 투자도 구성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탁구대와 무제한 간식이 리텐션을 만들지 못하는 이유

그렇다면 정서적 연봉을 높이겠다고 사무실에 안마의자를 들이고 맥주 냉장고를 채우면 될까. 당연히 아니다. 최근 글로벌 직장 만족도 조사들이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사실이 있다. 번아웃은 비효율적이고, 자율성과 안정감을 가진 구성원이 더 오래 일하고 더 높은 성과를 낸다. 전통적인 사무실 특전(perks)은 이 핵심을 비껴간다.

문제의 본질은 이렇다. 탁구대는 ‘쉬는 시간’을 제공하지만, 구성원이 정말 원하는 것은 ‘일하는 시간’의 질이다. 유연한 근무 시간, 불필요한 보고 라인의 축소, 실패해도 비난받지 않는 문화, 자기 업무에 대한 결정권. 이런 것들은 예산이 아니라 리더십의 의지로 만들어진다.

사례 — SK하이닉스반도체 업계의 극심한 인재 경쟁 속에서 SK하이닉스는 2024년 자발적 이직률 0.9%를 기록했다. 업계 평균을 크게 밑도는 수치다. 신재용 교수는 이 결과의 배경으로 높은 동료 관계 만족도, 기술적 몰입 환경, 심리적 안전감을 꼽았다. 연봉이 업계 최고가 아니어도 사람이 머무는 조직이 존재한다는 실증이다.

한국 기업이 정서적 연봉을 설계하려면

그렇다면 실무적으로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신재용 교수가 제시한 정서적 연봉의 구성 요소를 한국 맥락에서 재구성하면 핵심은 세 가지로 수렴한다.

첫째, 대인관계 스트레스의 구조적 감소다. 한국 직장의 가장 큰 정서적 비용은 ‘사람 피로’에서 온다. 불필요한 회의, 과도한 보고, 감정노동적 상하 관계가 정서적 연봉을 갉아먹는 주범이다. 이건 복지 예산이 아니라 업무 프로세스 재설계의 문제다.

또 하나는 일의 의미를 가시화하는 것이다. “왜 이 일을 하는가”에 대한 답을 구성원이 스스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OKR이든 분기 회고든, 자기 업무가 조직의 어떤 성과와 연결되는지 눈에 보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실패에 대한 수용적 태도가 조직 차원에서 제도화되어야 한다. 실패 보고서를 쓰게 하되 불이익은 주지 않는 것, 파일럿 프로젝트에 ‘실패 예산’을 배정하는 것. 이런 장치가 심리적 안전감의 실체다.

보상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빠진 퍼즐

앞서 언급한 보상 인식 연구가 던지는 또 하나의 메시지가 있다. 기업이 제공하는 비금전적 가치를 구성원이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면, 그 투자는 리텐션으로 전환되지 않는다. 급여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했을 때 인식 분산이 15% 줄었다는 결과는, 보상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HR의 독립적 역량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 기업 대부분은 연봉 협상 테이블에서 숫자만 던지고 끝낸다. 정작 “우리 회사에서 일하면 이런 비금전적 가치를 누릴 수 있다”는 걸 정량적으로 설명하는 곳은 드물다. 정서적 연봉을 측정하고, 그 결과를 구성원에게 주기적으로 피드백하는 것 자체가 정서적 연봉을 높이는 행위가 된다. 측정하지 않으면 관리할 수 없고, 소통하지 않으면 체감할 수 없다.

flowchart TD
    A[채용 시점] -->|화폐 연봉 중심| B[입사 결정]
    B -->|재직 기간| C{정서적 연봉 축적}
    C -->|높음| D[잔류 & 몰입]
    C -->|낮음| E[감정 잔고 고갈]
    E --> F[이직 결심]
    D -->|보상 커뮤니케이션| C

감정 잔고가 바닥난 조직에서 연봉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

결국 이 글이 말하고 싶은 건 단순하다. 연봉은 입사의 문턱을 낮추지만, 퇴사의 문턱을 높이는 건 다른 종류의 보상이다. 한국 기업이 직면한 인재 절벽은 인구 구조가 만든 것이지만, 그 절벽 앞에서 누가 먼저 떨어지느냐는 정서적 연봉의 크기가 결정한다.

신재용 교수의 말을 다시 빌리자면, 사람은 통장 잔고를 보고 입사하지만 감정 잔고가 바닥나서 퇴사한다. 그렇다면 HR이 관리해야 할 장부는 급여 명세서만이 아니다. 매일 쌓이고 매일 깎이는, 보이지 않는 감정의 장부. 그 장부의 잔액을 들여다보는 것에서 리텐션 전략의 진짜 출발점이 시작된다.

💡 실무 시사점: 연봉 테이블만 올리는 리텐션 전략은 구조적으로 한계가 있다. 자율성, 심리적 안전감, 일의 의미 같은 정서적 연봉 요소를 측정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 비용 대비 가장 효과적인 인재 유지 전략이다. 특히 중소·중견기업은 대기업과 연봉 경쟁을 하는 대신, 정서적 연봉에서 차별화 포인트를 만들 수 있다.

#정서적연봉 #인재유지 #리텐션전략 #HR운영 #비금전적보상 #조직문화

참고 링크

작성: 서재홍 | N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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