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명의 글로벌 경영진에게 물었다. “당신의 조직은 고성과 문화를 만들고 있습니까?” 4명 중 3명이 고개를 저었다. 성과관리 시스템을 바꾸고, 목표를 재설정하고, 리더십 교육에 수억 원을 쏟아부었는데도 결과가 안 나온다. 왜?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사람에 대한 투자와 성과에 대한 투자를 동시에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쪽만 밀어붙이면 나머지가 무너진다. 그리고 이 동시 투자를 설계할 수 있는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바로 CHRO다. 그런데 대부분의 CHRO는 아직도 ‘인사 행정 총괄’이라는 오래된 의자에 앉아 있다.
한 줄 요약: 조직 성과의 병목은 전략도 기술도 아니다 — CHRO가 전략적 파트너로 진화하지 못한 인사 조직의 구조적 한계가 핵심이다.
75%의 실패, 숫자가 말하는 불편한 진실
맥킨지가 15개국, 16개 산업, 1만 명 이상의 경영진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는 충격적이다. 지속적인 성과 향상을 달성하는 조직은 전체의 25%에 불과했다. 나머지 75%는 성과 문화를 ‘시도’하지만 ‘정착’시키지 못한다.
75%
고성과 문화 구축에 실패하는 조직 비율
McKinsey State of Organizations 2026
4.3배
사람+성과 동시 투자 기업의 재무 성과 유지 가능성
McKinsey State of Organizations 2026
47%
경력 성장 제한을 최대 장벽으로 꼽은 임원 비율
McKinsey 10,000 executive survey
문제는 뭔가. 경영진의 47%가 ‘제한된 경력 성장 기회’를 고성과 문화의 가장 큰 장벽으로 꼽았다. 이어서 목표 연동형 인센티브 부재(43%), 직원 이탈(38%), 경직된 성과관리 시스템(38%)이 뒤를 이었다. 솔직히 이 네 가지는 서로 다른 문제가 아니다. 하나의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가지들이다. 그 뿌리가 바로 ‘인사 전략의 부재’다.
한국 기업도 다르지 않다. 제조·생산 분야 정규직 신입 채용이 33% 축소되는 상황에서, 기존 인력의 몰입과 성장에 투자하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다. 그런데 정작 그 투자를 설계해야 할 CHRO 자리는 여전히 ‘채용과 급여’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CHRO의 의자가 달라져야 조직의 궤도가 바뀐다
맥킨지는 CHRO의 역할 변화를 추적하면서 흥미로운 표현을 썼다. “CHRO에서 ‘H(Human)’를 되살려야 한다.” 역설적이다. 인사 책임자가 ‘인간’을 잃어버렸다니.
현실을 보면 이해가 된다. 대부분의 CHRO는 세 가지 함정에 빠져 있다.
하나는 운영 과부하다. 급여, 복리후생, 노무 이슈 처리에 시간의 대부분을 쓴다. 전략적 의제를 논의할 여유가 없다. 다른 하나는 데이터 인프라의 부재다. 맥킨지가 제시한 5가지 HR 운영 모델은 공통적으로 ‘일관된 데이터 백본’과 ‘신뢰할 수 있는 서비스 인프라’를 전제 조건으로 요구한다. 대부분의 한국 중견기업은 이 기반 자체가 없다. 마지막은 CEO의 인식 격차다. CHRO를 경영 전략 테이블에 앉히는 CEO가 아직 소수다.
개인적으로는 여기가 핵심이다. CHRO가 전략 파트너가 되려면, CHRO 본인의 역량만으로는 부족하다. CEO가 인사를 ‘비용 센터’가 아닌 ‘성과 엔진’으로 인식하는 전환이 먼저 일어나야 한다.
사례 — 글로벌 제조기업 A사이 회사는 CHRO를 COO와 동급의 전략 의사결정 라인에 배치했다. 결과는 뚜렷했다. 사람과 성과에 동시 투자한 조직은 9년간 10번 중 9번 최상위 재무 성과를 유지했다는 맥킨지 분석과 정확히 일치하는 궤적을 보였다. 핵심은 단순했다 — CHRO에게 예산 편성 권한과 사업부 성과 데이터 접근 권한을 동시에 부여한 것.
현장이 끊어져 있다 — 80%가 ‘연결 기회가 없다’
전략이 아무리 좋아도 현장까지 내려가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맥킨지의 현장직 조사 결과는 이 단절의 깊이를 보여준다.
현장직 직원의 80%가 “회사가 업무 중 연결 기회를 거의 제공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66%는 2022년 이후 네트워킹을 월 1회 미만 또는 아예 하지 않았다. 사내 커뮤니케이션(타운홀 등)에 월 1회 이상 참여하는 비율도 절반이 안 된다(45%).
반면 정보를 구하는 채널은 극도로 제한적이다. 57%가 직속 상사에게, 83%가 같은 팀 동료에게 주 1회 이상 업무 정보를 구한다. 경력 조언이나 사회적 활동은? 절반 이상이 월 1회 미만이다.
한국의 상황은 더 심각할 수 있다. 생산·현장직 인력 확보 어려움을 호소하는 기업이 전체의 15.9%에 달하고, 유통·서비스·제조업의 이직률은 빠르게 상승 중이다. 현장 인력이 빠져나가는데, 남아 있는 인력에게 ‘연결’과 ‘성장’의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면 이탈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압박이 커질수록 헌신은 줄어드는 역설
이건 좀 놀라운 데이터다. 고압적 환경의 조직에서 리더들이 보고한 ‘직원의 추가 요구 수용 의향’은 43%에 불과했다. 압박이 덜한 조직에서는 50%였다. 고압적 환경에서 직원 헌신도는 23%까지 떨어졌고, 저압 환경에서는 14%만이 헌신도 저하를 보고했다.
이 숫자가 말하는 건 명확하다. 성과를 더 짜내려고 압박을 높이면, 성과는 오히려 떨어진다. 악순환이다. 그리고 이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유일한 기능이 인사 조직이다.
한국 기업에서 이 현상은 ‘성과급 차등 강화’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상위 10%에 보상을 몰아주면 나머지 90%의 의욕이 꺾인다. 성과급 설계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직원이 ‘성장하고 있다’는 감각을 갖게 하는 경력 경로 설계, 현장 관리자의 코칭 역량 강화, 그리고 비재무적 인정 체계가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
그런데 누가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설계하고 실행할 수 있나? CEO가 직접? 사업부장이? 아니다. 이것이 CHRO의 일이다. 전략적 CHRO의 일.
현장 관리자가 마지막 1마일이다
맥킨지가 제안한 현장 인력 몰입 향상의 세 가지 액션은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너무 기본적이어서 간과되기 쉽다.
현재 현장 직원의 참여 채널과 활동 수준을 점검하는 것이 첫 단계다. 현장 직원에게 직접 선호도를 물어보는 것이 그다음이다. 그리고 현장 관리자와 동료 네트워크에 투자하는 것이 마지막이다.
여기서 핵심은 세 번째다. 현장 직원의 83%가 같은 팀 동료에게, 57%가 직속 상사에게 정보를 구한다. 회사 차원의 대규모 프로그램보다 현장 관리자 한 명의 역량이 몰입도를 좌우한다는 뜻이다.
한국 기업에서 ‘현장 관리자’는 대부분 기술직 선임이나 팀장이다. 이들에게 코칭 교육을 한 번 시키고 끝내는 기업이 대다수다. 그러나 실제로 필요한 건 지속적인 관리자 역량 개발과, 관리자가 사용할 수 있는 구체적 도구(1:1 면담 템플릿, 경력 대화 가이드, 인정 체계)의 제공이다. 이것 역시 CHRO가 설계해야 할 시스템이다.
61%가 생산성 압박을 느끼는데, 86%는 AI 준비가 안 됐다
경영진의 43%가 생산성을 2026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61%는 생산성 향상 압박을 강하게 체감하고 있다. 그런데 86%는 AI를 일상 업무에 내재화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답했다.
이 세 숫자의 조합이 그려내는 풍경은 이렇다. 생산성을 높여야 하는데, 가장 유력한 수단(AI)을 쓸 준비는 안 됐고, 사람을 더 쥐어짜면 헌신도가 떨어진다. 막다른 골목이다.
탈출구는 하나다. AI를 도입하되 사람의 역할을 재설계하는 것. Gen AI가 온보딩 매칭, 스킬 기반 채용, 행정 업무 자동화를 지원할 수 있다는 맥킨지의 제안은 기술론이 아니라 인사 전략론이다. 기술은 도구일 뿐이고, 그 도구를 어디에 어떻게 배치할지 결정하는 건 결국 CHRO의 판단이다.
한국 중견기업 실무자 입장에서 솔직히 말하면, AI 도입 이전에 데이터 정리가 먼저다. 직원 데이터가 엑셀 파일 10개에 흩어져 있는 상태에서 AI를 논하는 건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
전략적 CHRO가 없으면, 이 글도 의미가 없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하나만 짚겠다. 사람과 성과에 동시 투자하는 조직이 9년간 최상위 재무 성과를 유지할 가능성이 4.3배 높다는 데이터는, 뒤집어 읽으면 이런 뜻이다. 사람 투자 없이 성과만 추구하는 조직은 2~3년 안에 성과 자체가 무너진다.
그리고 이 ‘사람 투자’를 전략적으로 설계하고, CEO와 이사회를 설득하고, 현장 관리자까지 실행력을 전달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포지션은 CHRO뿐이다. CHRO가 여전히 채용 공고 승인과 징계 위원회 운영에 매몰되어 있다면, 조직은 75% 실패 그룹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당신의 조직에서 CHRO는 경영 전략 회의에 참석하고 있는가? 아니면 경영지원실 한 켠에서 급여 명세서를 검토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당신의 조직이 25%에 들어갈지 75%에 머무를지를 결정한다.
💡 실무 시사점: CHRO의 역할을 ‘인사 행정 총괄’에서 ‘성과 전략 설계자’로 전환하라. 현장 관리자 역량 투자, 데이터 인프라 구축, 비재무적 인정 체계 설계를 동시에 추진하되, CEO의 인식 전환이 선행되어야 한다. 사람 투자와 성과 투자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동시 실행의 문제다.
#CHRO#성과관리#조직문화#리더십#현장인력#HR전략
참고 링크
- McKinsey, “The State of Organizations 2026” (2026)
- McKinsey, “The changing roles and responsibilities of a CHRO” (2024)
- McKinsey, “Three actions to boost frontline engagement and retention” (2024)
작성: 서재홍 | N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