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몇 분의 공정 중단이 수백억짜리 배양조를 통째로 폐기로 만든다. 이것이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현장의 냉혹한 현실이다. 2026년 5월 1일, 삼성바이오로직스 노동조합이 창사 15년 만에 처음으로 전면 파업에 돌입했다. 추정 손실액만 6,400억 원 — 1분기 매출의 절반이 공중에 뜬 셈이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생지부(삼성기업 초기업 노동조합 산하)는 2026년 5월 1일부터 5일까지 5일간의 전면 파업을 선언했다. 전체 임직원 약 3,900명 중 2,000명 이상이 파업 참가 의사를 밝혔다. 4월 28일부터 60여 명이 참가한 부분 파업이 먼저 시작됐고, 노동절을 기점으로 규모가 대폭 확대됐다.
노사 양측의 입장 차이는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 노조 요구사항: 임금 14% 인상, 위로금 1인당 3,000만 원, 영업이익의 20% 성과급 지급
- 사측 최종 제안: 임금 6.2% 인상
- 교섭 횟수: 13차 교섭까지 진행했으나 최종 결렬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26년 1분기 매출이 1조 2,500억 원에 달하는 국내 최대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 기업이다. 이 회사가 멈추면 전 세계 주요 제약사에 공급하는 항체의약품과 바이오시밀러 납품 일정에 도미노 지연이 발생한다. 인천 공장 일대가 사실상 글로벌 의약품 공급망의 핵심 노드다.
왜 이번 파업이 특별한가 — CDMO 공정의 법적 쟁점
일반 제조업과 달리 바이오의약품 제조에는 ‘연속공정’의 특수성이 있다. 살아있는 세포를 배양조(bioreactor)에 넣어 단백질을 생산하는데, 온도·습도·영양분 공급이 잠깐이라도 중단되면 세포가 죽고 단백질이 변성된다. 업계 전문가들은 “수십 분의 공정 이탈만으로도 해당 배치(batch) 전체를 폐기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측은 이 점을 근거로 법원에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결과는 ‘일부 인용’이었다.
인천지방법원 민사합의21부(유아람 부장판사)는 회사가 파업 금지를 요청한 9개 작업 공정 중 다음 3개에 대해서만 쟁의행위를 제한했다.
- 농축 및 버퍼 교환 공정
- 원액 충전 공정
- 관련 버퍼 제조·공급 공정
법원의 논리는 이렇다. 세포 배양 이후 의약품 물질을 유지·보관 가능한 형태로 전환하는 마무리 단계는, 파업 참가 시 ‘회복 불가능한 손해(irreparable harm)’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반면 나머지 6개 공정은 제한 없이 파업이 허용됐다. 노조는 법원 결정에도 예정대로 파업을 강행했고, 사측은 나머지 6개 공정에 대해 즉시 항고에 나섰다.
법원이 ‘공정별 선별’을 택한 이유
가처분에서 법원이 사용한 기준은 피보전권리(재산권 침해)와 보전의 필요성(회복불가 손해)이다. 이번 판결은 공정 전체가 아닌 개별 공정별로 회복불가 손해 여부를 심사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법원 판단의 핵심은 “해당 공정의 중단이 세포 사멸·단백질 변성으로 이어져 금전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의약품 안전성 문제를 일으키는가”였다.
필수유지업무 협정의 공백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42조의2는 ‘필수공익사업’ 사업장에 대해 파업 중에도 최소한의 업무를 유지하도록 ‘필수유지업무 협정’을 체결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법령상 필수공익사업은 철도·항공·병원·통신·수도·전력 등이다.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은 현행 법상 필수공익사업에 포함되지 않는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법원의 가처분 제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사건은 K-바이오산업의 성장과 함께 CDMO 업종의 필수유지업무 지정 여부가 향후 입법 과제로 떠오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실무에서 주목할 포인트
1. 연속공정 사업장의 쟁의행위 제한 전략
반도체, 정유, 화학, 바이오 등 공정 중단이 물리적으로 큰 손해를 초래하는 업종에서 사측이 선택할 수 있는 법적 수단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피보전권리·보전의 필요성 소명 필수). 둘째, 단체협약에 ‘쟁의행위 사전 통보 및 필수유지업무 합의’ 조항을 미리 삽입하는 예방적 접근이다. 이번 판결은 공정별 손해 자료를 사전에 준비한 기업만이 가처분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2. 노동절 파업의 전략적 의미와 법적 취급
2026년 5월 1일 근로자의 날(노동절)은 올해 법정공휴일로 63년 만에 처음 지정됐다. 노조는 이날을 파업 개시일로 선택했다. 법정공휴일에 파업하는 경우에도 쟁의행위의 정당성 판단 기준은 동일하다. 다만 파업 개시일이 법정공휴일이라면 해당 날은 원래 근무 의무가 없으므로 파업에 따른 임금 공제(무노동 무임금 원칙)의 적용 범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해야 한다.
3. 노란봉투법 이후 손해배상 청구 가능성
2026년 노란봉투법(노조법 개정) 시행 이후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요건이 엄격해졌다.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해당 쟁의행위가 △목적의 불법성 △폭력·파괴 행위 △절차 위반 등 위법 요소를 명확히 입증해야 한다. 법원이 이미 6개 공정에서 쟁의행위를 ‘적법’하다고 허용한 만큼, 그 공정에 참가한 근로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체크리스트 — 연속공정 사업장이 지금 확인해야 할 것
- ☑ 단체협약에 쟁의행위 사전 통보 조항이 있는가?
- ☑ 필수유지업무 협정 체결 대상 사업인지 확인했는가?
- ☑ 파업 개시 전 가처분 신청을 위한 공정별 손해 산출 자료가 준비되어 있는가?
- ☑ 파업 중 대체 인력 투입 계획(파견·도급 제한 조항 확인)이 수립되어 있는가?
- ☑ 노조법상 파업 기간 임금 공제(무노동 무임금) 적용 근거가 취업규칙·단협에 명시되어 있는가?
- ☑ 법정공휴일 파업 시 임금 공제 범위를 별도로 검토했는가?
앞으로의 전망
삼성바이오로직스 파업은 단순히 한 회사의 임금협상 결렬이 아니다. 국내 바이오산업이 글로벌 CDMO 시장에서 빠르게 비중을 높여가는 시점에 처음으로 발생한 대규모 쟁의행위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로슈·화이자·머크 등 주요 제약사들이 삼성바이오에 의존하는 의약품 납기 일정과 품질 관리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업계 전반이 주시하고 있다.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쟁의행위의 범위와 책임 요건이 재정립되는 국면에서, CDMO처럼 ‘연속성’이 핵심인 업종에서 파업권과 사업 계속성 사이의 균형을 어디서 그을 것인지 — 이 질문에 대한 입법적·사법적 답변이 조금씩 쌓이고 있다. 이번 가처분 결정은 그 첫 번째 중요한 판단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자주 묻는 질문
Q. 법원은 왜 9개 공정 중 3개만 파업을 금지했나요?
법원은 공정 중단이 ‘회복 불가능한 손해’를 초래한다고 입증된 3개 공정에만 가처분을 인용했습니다. 나머지 공정은 중단 시 손해가 있어도 금전으로 보전 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Q. 바이오의약품 제조사는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되어 있나요?
현행 노조법상 필수공익사업 대상에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병원은 해당되지만 CDMO 기업은 별도 규정이 없어 이번처럼 가처분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Q. 파업 기간 중 대체 인력을 투입할 수 있나요?
노조법 제43조에 따라 쟁의행위 중 파업으로 중단된 업무를 대체하기 위한 신규 채용이나 하도급은 금지됩니다. 다만 법원이 파업을 금지한 3개 공정에는 기존 인력 배치 전환을 통한 운영이 가능합니다.
Q. 이번 파업이 의약품 공급에 실제로 영향을 주나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글로벌 제약사의 항체의약품·바이오시밀러를 수탁생산합니다. 파업이 장기화되면 배치 전량 폐기 가능성과 납기 지연이 현실화되어 실제 환자용 의약품 공급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Q.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파업 손해배상 청구가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노란봉투법은 합법적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사실상 차단했습니다. 손해배상이 인정되려면 폭력·파괴·절차 위반 등 위법 요소가 명확히 입증되어야 하며, 법원이 적법하다고 인정한 공정 파업 참가자에 대한 청구는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작성: 서재홍 | N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