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사내 공지로 ‘우리 회사가 A사에 합병됩니다’라는 안내문이 올라왔다. 입사 때 서명한 근로계약서는 어떻게 되는 건지, 연봉은 그대로인지, 심지어 퇴직금 기산일은 리셋되는 건지 — 아무도 명확하게 설명해 주지 않는다. 기업변동 상황에서 근로자가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딱 하나다. 내 근로관계가 어느 회사에 어떤 형태로 이전되는가.
기업변동의 세 가지 유형과 각각의 법적 출발점
법이 기업변동을 다루는 방식은 유형에 따라 다르다. 크게 합병·영업양도·회사분할로 나뉜다.
합병 — 법률상 가장 명확한 포괄승계
합병은 두 개 이상의 기업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다. 모든 회사가 해산하고 새 회사가 탄생하는 ‘신설합병’, 한 회사가 다른 회사를 흡수하는 ‘흡수합병’ 두 가지다. 상법 제235조는 이렇게 규정한다.
“합병 후 존속한 회사 또는 합병으로 인하여 설립되는 회사는 합병으로 인하여 소멸된 회사의 권리·의무를 승계한다.”
여기서 ‘권리·의무’에는 근로관계도 포함된다. 대법원은 “소멸회사 소속 근로자의 근로관계는 신설회사(신설합병) 또는 존속회사(흡수합병)에 포괄적으로 승계된다”고 판시했다(대법원 2001.4.24, 99다9370). 이 포괄승계의 의미는 명확하다. 근로자 개인의 동의 없이도 근로관계 전체가 새로운 사용자에게 그대로 이전된다. 합병 자체를 이유로 근로자를 해고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으며, 당사자 간에 ‘소멸회사 근로자를 승계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해도 그 합의는 무효다.
영업양도 — ‘조직적 일체’로 넘어갈 때만 승계
영업양도는 합병과 달리 상법이 권리·의무의 포괄승계를 명문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대신 판례가 승계 여부의 기준을 제시한다. 핵심은 넘어가는 것이 단순한 자산(기계, 부동산)인지, 아니면 인적·물적 조직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사업 자체’인지다. 근로자가 일하던 사업 단위가 조직적 일체로서 이전된다면 근로관계도 함께 따라간다는 것이 판례의 일관된 입장이다. 반대로 기계 몇 대, 부동산만 팔았다면 근로관계는 자동으로 이전되지 않는다.
주의할 점이 있다. 근로기준법 제24조제1항은 “경영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사업의 양도·인수·합병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본다”고 규정한다. 즉, 영업양도를 통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경영상 해고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으며, 이때는 경영상 해고의 요건(긴박한 경영상 필요, 해고 회피 노력, 합리적 기준, 근로자 대표 협의)을 모두 갖춰야 한다.
회사분할 — 절차를 지켜야 승계가 유효하다
상법상 회사분할은 1998년 IMF 위기 이후 도입된 제도로, 하나의 주식회사가 특정 사업부문을 신설회사 또는 기존 회사에 분할·이전하는 방식이다. 상법 제530조의10은 분할계획서에 기재된 근로관계를 신설회사가 포괄승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근로자가 원하지 않는데 신설회사로 보내도 되는가’였다. 대법원은 2013년 판결(대법원 2013.12.12, 2011두4282)로 이 질문에 답했다. 핵심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실체적 요건: 분할되는 사업부문이 실질적으로 신설회사에 승계될 것
- 절차적 요건: 주주총회 승인 전에 노동조합 및 근로자에게 설명하고 이해와 협력을 구할 것
- 위 두 요건을 충족하면 근로자 개인의 동의가 없어도 근로관계는 신설회사에 승계된다.
- 다만, 회사분할이 근로기준법상 해고 제한을 회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근로자에게 거부권이 인정된다.
행정해석과 판례가 짚어준 실무 쟁점들
신규채용 형식을 빌려도 실질이 포괄승계라면 승계다
합병하면서 기존 근로자들에게 사직서를 받고 ‘신규입사’ 처리하는 사례가 있다. 행정해석은 이에 대해 명확히 선을 그었다. 형식적으로 신규채용 형태를 취했더라도, 인적·물적 변동 없이 기업합병이 이루어졌다면 근로관계는 포괄적으로 승계해야 한다(임금근로시간정책팀-1193, 2006.5.29). 다만 근로자 스스로 자유로운 의사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퇴직금을 수령한 뒤 새로 입사하는 방법을 선택한 경우라면, 기존 근로관계는 유효하게 단절된 것으로 본다(근기 01254-226, 1993.2.12).
단체협약도 함께 승계된다
합병 시 단체협약의 운명에 대해 대법원은 “피합병회사의 단체협약은 합병회사와 새로운 합의가 있을 때까지 피합병회사 근로자들에게 그대로 승계된다”고 판시했다(대법원 2004.5.14, 2002다23185, 23192). 행정해석도 같은 입장이다. 단체협약이 자동으로 합병회사의 노동조합 조합원 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근로조건에 관한 규범적 효력은 유지된다(노조 01254-396, 1998.6.30).
실무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포인트 세 가지
① 취업규칙 통일 절차 — 불이익변경이면 동의가 필요하다
합병 후 두 회사 직원들의 근로조건이 다른 상태가 이어지면, 사용자는 취업규칙을 통일하고 싶어한다. 대법원은 이 상황을 명확히 규율했다. 합병 후 불이익한 취업규칙을 적용하려면, 그 불이익을 받는 근로자 집단의 집단적 의사결정방법(과반수 동의)에 의한 동의가 있어야 한다(대법원 2010.1.28, 2009다32522, 32539).
동의 없이는 어떻게 되는가? 합병 전 각 회사에 적용되던 취업규칙이 그대로 유지된다. 행정해석은 이를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근기 68207-390, 1999.10.20).
- 통합 취업규칙이 양사 전체 근로자에게 불이익하다면 → 양사 각각 과반수 동의 필요
- 한쪽 회사 근로자에게만 불이익하다면 → 그 회사 근로자 과반수 동의 + 다른 쪽 회사 과반수 의견 청취
② 퇴직금 — 포괄승계면 구회사 기간도 통산된다
합병이나 실질적 영업양도로 포괄승계가 인정되는 경우, 퇴직금 산정 시 구회사 근속기간도 포함해 계산해야 한다. 대법원은 “기업합병·양도·양수 시 근로자의 동의 없이 근속기간을 산입하지 않기로 한 조항은 무효”라고 판시했다(대법원 1991.11.12, 91다12806). 퇴직 시 근속기간이 리셋된다는 주장이 있다면 포괄승계 여부를 먼저 따져야 한다.
③ 고용승계 거부와 해고의 경계
영업양도 시 양수인이 특정 근로자를 받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가 있다. 사업이 조직적 일체로 이전되는 영업양도라면 고용승계는 원칙이고, 이를 이유 없이 배제하면 부당해고 문제로 이어진다. 반대로 회사분할 시 근로자가 분할계획서상 승계 대상에서 빠진다면, 그 자체가 해고에 해당하는지 또는 분할회사에 잔류하는지가 쟁점이 된다.
핵심 정리
- 합병 — 근로관계 포괄승계, 근로자 동의 불필요, 해고 금지
- 영업양도 — 조직적 일체 이전 시에만 근로관계 승계, 단순 자산 매매는 승계 아님
- 회사분할 — 실체적·절차적 요건 충족 시 근로자 동의 없이도 승계, 해고 회피 방편이면 예외적 거부권
- 취업규칙 통일 — 불이익변경이면 해당 근로자 집단 과반수 동의 필요
- 퇴직금 — 포괄승계 시 구회사 근속기간 통산, 미산입 합의는 무효
- 단체협약 — 새로운 합의 전까지 피합병회사 근로자에게 그대로 적용
자주 묻는 질문
Q. 합병되면서 ‘신규입사’로 처리됐는데, 퇴직금 기산일이 새로 시작되나요?
근로자 자유의사가 아닌 이상 포괄승계가 인정되며, 구회사 근속기간도 퇴직금 산정에 포함됩니다. 미산입 합의는 무효입니다.
Q. 영업양도됐는데 양수 회사가 저를 안 받겠다고 합니다. 어떻게 되나요?
사업이 조직적 일체로 이전되는 영업양도라면 고용승계는 원칙입니다.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면 부당해고에 해당합니다.
Q. 회사분할로 신설 자회사로 가게 됐는데 거부할 수 있나요?
원칙적으로는 절차적 요건을 갖춘 분할이라면 거부가 어렵습니다. 다만 분할이 해고 회피 방편으로 이용된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거부권이 인정됩니다.
Q. 합병 후 연봉이 낮은 회사 기준으로 통일된다고 하는데, 적법한가요?
불이익변경에 해당하며, 해당 근로자 집단의 과반수 동의 없이는 종전 근로조건이 그대로 유지됩니다.
Q. 합병 후 노동조합이 자동으로 사라지나요?
아닙니다. 단체협약도 승계되며, 피합병회사 근로자는 합병회사 노동조합에 자동 편입되지 않습니다. 새로운 합의 전까지 기존 단체협약이 적용됩니다.
작성: 서재홍 | N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