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퇴직연금을 DB형에서 DC형으로 바꾸려 하는데, 직원 동의를 꼭 받아야 하나요?’ 임금피크제 도입이나 인건비 구조 개편을 앞둔 사업장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답부터 말하면, 근로자대표의 동의는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어떤 법에 근거한 동의인지, 어느 범위까지 받아야 하는지에 따라 실무 대응이 달라진다.
한 줄 요약: DB→DC 전환은 퇴직급여법 제4조 제3항 종류 변경 동의와, 취업규칙에 반영된 경우 근기법 제94조 불이익변경 동의를 함께 거쳐야 한다. 2023년 대법원 전합 이후 ‘합리성’으로 동의를 우회할 수 없다.
퇴직급여법은 ‘제도 종류 변경’과 ‘내용 변경’을 구분한다
퇴직연금 전환의 법적 근거는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이하 ‘퇴직급여법’) 제4조에 있다. 이 조문은 두 가지 상황을 명확히 나누어 규정한다.
제도의 ‘종류’ 자체를 바꾸는 경우 (제4조 제3항)
DB형(확정급여형)에서 DC형(확정기여형)으로 전환하는 것은 퇴직급여제도의 종류 변경에 해당한다. 이 경우 퇴직급여법 제4조 제3항에 따라 근로자의 과반수가 가입한 노동조합(그러한 노동조합이 없으면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핵심은 이것이다. 종류 변경은 그 변경이 근로자에게 유리하든 불리하든 무조건 동의가 필요하다. ‘불이익변경이 아니니 의견청취만 하면 되지 않나’라는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제도의 ‘내용’을 바꾸는 경우 (제4조 제4항)
이미 설정된 퇴직급여제도의 세부 내용(부담금 산정방식, 급여 지급 조건 등)을 변경할 때는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
- 근로자에게 유리한 변경: 근로자대표의 의견 청취만 필요
- 근로자에게 불리한 변경: 근로자대표의 동의 필요
정리하면, DB에서 DC로의 ‘전환’은 제4조 제3항의 종류 변경이므로 유불리와 관계없이 동의가 필수다.
근기법 제94조와의 이중 구조 — 취업규칙도 함께 바꿔야 한다
퇴직연금 제도 유형이 취업규칙에 명시되어 있다면(대부분의 사업장이 그렇다), 퇴직급여법상 동의와 별도로 근로기준법 제94조 제1항에 따른 취업규칙 변경 절차도 거쳐야 한다.
근기법 제94조 제1항 단서는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한다. 여기서 문제가 된다. DB형에서 DC형으로의 전환이 과연 ‘불이익변경’인가?
DB에서 DC 전환은 불이익변경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하지 않다. 고용노동부와 학계의 주류적 시각은 다음과 같다.
- DB형: 퇴직 시점의 평균임금 기준으로 급여가 산정된다. 근속연수가 길고 임금이 꾸준히 오르는 근로자에게 유리하다.
- DC형: 매년 연간 임금총액의 12분의 1 이상을 사용자가 부담금으로 납입한다. 운용 성과에 따라 퇴직급여가 달라진다.
임금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구조에서는 DB형이 근로자에게 유리하므로, DC형 전환은 불이익변경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임금피크제가 적용되어 퇴직 전 임금이 하락하는 구조라면, DC형이 오히려 유리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는 퇴직연금 제도 전환과 관련하여 여러 행정해석을 내놓은 바 있다. 퇴직연금복지과-3596(2017.8.29.)은 본래 DC형에서 DB형으로의 전환에 관한 해석이지만, 제도 종류를 변경할 때는 근로자대표의 동의를 받아야 하며 전환 이후의 근무기간에 대해서만 새 제도가 적용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이 원칙은 DB에서 DC로의 전환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즉, 과거 DB형 기간의 적립금은 그대로 유지하고 전환 이후분만 DC형으로 운영하는 것이 기본 구조다.
실무 포인트 — ‘전환 이후분만 적용’이 원칙 행정해석상 종류 변경 시점 이전의 근무기간은 기존 제도(DB)로 정산하고, 전환 이후만 새 제도(DC)로 운영하는 것이 표준이다. 과거 DB 적립금을 DC 계정으로 이전할지 여부는 퇴직연금규약에 명확히 적어 두어야 분쟁이 줄어든다.
202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바꾼 판도
DB에서 DC 전환이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해당한다면, 2023년 5월 11일 선고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17다35588, 2017다35595 병합)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이 판결의 핵심은 명확하다. 종전에는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이라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으면 근로자 동의 없이 유효하다는 법리가 존재했다. 대법원은 이를 정면으로 폐기했다.
판결 요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권은 헌법상 근로조건 대등결정 원칙을 실현하는 핵심 절차다
- 변경 내용의 타당성이나 합리성만으로 동의 절차를 대체할 수 없다
- 근로기준법 제94조 제1항 단서의 명문 규정에 반하는 해석은 허용되지 않는다
- 동의 없는 불이익변경은 원칙적으로 무효다
이 판결 이후, ‘경영상 필요에 의한 합리적 변경’이라는 논리로 근로자 동의를 우회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퇴직연금 DB에서 DC로의 전환도 마찬가지다.
2025년 대법원 판결이 보강한 원칙
대법원은 2025년 9월 26일 선고 2023다209106 판결에서 급여체계를 호봉제에서 연봉제로 변경한 사건을 다루면서, 불이익변경 후 사후적으로 집단 동의를 받은 경우의 효력 범위를 판단했다. 이 판결에서는 사전 동의 없이 제도를 변경한 뒤 사후적으로 집단 동의를 받은 경우, 그 동의의 효력이 어디까지 소급하는지가 핵심 쟁점이었다. 대법원은 원심의 제한적 해석(동의 시점 이후에만 유효)을 파기환송하면서, 사후 동의의 소급 효력 범위를 재검토하도록 지시했다.
퇴직연금 전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후 동의의 효력 범위가 여전히 불확실한 만큼, 먼저 전환하고 나중에 동의를 받으면 된다는 접근은 법적 리스크가 높다.
주의 — ‘먼저 전환, 나중에 동의’는 위험 2023년 전합 판결로 합리성 항변이 막혔고, 2025년 판결은 사후 동의의 소급 효력을 재검토하라고 했다. 사전 동의 없이 진행한 전환은 전체 무효로 다툴 수 있고, 근로자가 변경 전 DB 기준으로 퇴직급여를 청구할 수 있다. 절차를 먼저, 제도 설계는 그 다음.
실무에서 주목할 포인트
1. 동의의 이중 구조를 놓치지 말 것
DB에서 DC로의 전환은 두 가지 법률에 의한 동의를 모두 충족해야 한다.
- 퇴직급여법 제4조 제3항: 제도 종류 변경에 대한 근로자대표 동의 (유불리 무관, 무조건 필요)
- 근기법 제94조 제1항 단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대한 근로자 과반수 동의 (불이익에 해당하는 경우)
동의 주체는 동일하지만(과반수 노조 또는 근로자 과반수), 법적 근거가 다르므로 각각의 동의 절차를 문서로 남겨야 한다.
2. ‘전체 전환’과 ‘선택적 전환’은 절차가 다르다
사업장 전체를 DB에서 DC로 일괄 전환하는 경우와, 퇴직연금 규약에 DB형과 DC형을 모두 규정하고 근로자가 개별적으로 선택하여 전환하는 경우는 구별해야 한다.
- 일괄 전환: 근로자대표의 집단적 동의 필수 + 퇴직연금규약 변경 신고
- 선택적 전환: 이미 양 제도가 규약에 설정되어 있다면, 개별 근로자의 전환 신청에 의해 가능. 다만 최초에 양 제도를 모두 설정할 때 근로자대표 동의를 받았어야 한다.
3. 전환 시점 이전 기간의 처리
고용노동부 행정해석 근로복지과-3292(2012.9.24.)는 DC형에서 DB형으로의 전환 시 적립금 처리 원칙을 다룬 것이지만, 제도 전환 시 과거 기간과 전환 이후 기간의 적립금을 구분하여 관리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확인했다. DB에서 DC로 전환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전환 이후의 근무기간에 대해서만 DC형이 적용되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과거 DB형 적립금의 DC 계정 이전 여부는 퇴직연금규약의 정함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규약 변경 시 이 부분을 명확히 정해두어야 한다.
4. 위반 시 제재
퇴직급여법 제46조에 따라 근로자대표의 동의 없이 퇴직급여제도를 변경하면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또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동의 없이 진행했다면 해당 변경은 무효이므로, 근로자는 변경 전 DB형 기준의 퇴직급여를 청구할 수 있다.
5. 10인 미만 사업장의 특례
상시 10명 미만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은 퇴직급여법 제25조에 따라 개별 근로자의 동의를 받거나 근로자의 요구에 따라 개인형퇴직연금(IRP)을 설정할 수 있다. 이 경우 집단적 동의 대신 개별 동의로 갈음할 수 있으나, 이는 IRP 설정에 한정된 특례이므로 DB에서 DC로의 전환과는 구별해야 한다.
자주 묻는 질문 (Q&A)
Q. DB형에서 DC형으로 전환할 때 직원 전체 동의가 필요한가요?
퇴직급여법 제4조 제3항에 따라 근로자의 과반수가 가입한 노동조합(과반수 노조가 없으면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개별 근로자 전체 동의가 아니라 과반수 대표 동의 방식이므로, 절차를 정확히 거쳐야 합니다.
Q. 근로자대표 동의 없이 전환하면 어떻게 되나요?
퇴직급여법 제46조에 따라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으며,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도 밟지 않았다면 해당 변경 자체가 무효가 됩니다. 근로자는 변경 전 DB형 기준으로 퇴직급여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Q. 10인 미만 사업장도 DB형에서 DC형 전환 시 동의가 필요한가요?
네. 퇴직급여법 제25조는 10인 미만 사업장에서 IRP를 설정하는 특례를 규정한 것이지, DB에서 DC로 전환할 때 동의 요건을 면제하는 규정이 아닙니다. 전환 시에는 규모에 관계없이 근로자대표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 시사점:
① 동의는 두 갈래. 퇴직급여법 제4조 제3항(종류 변경)과 근기법 제94조(불이익변경) 동의를 별도 문서로 남겨야 한다. 한쪽만 받고 진행하면 다른 쪽이 무효 사유.
② 합리성 항변은 더 이상 불가. 2023년 전합 폐기 이후 ‘경영상 필요’만으로는 동의 절차를 대체할 수 없다. 절차적 정당성이 제도 설계보다 우선이다.
③ 사후 동의 우회 전략은 위험. 2025년 판결 이후 사후 동의의 소급 효력 범위가 흔들린다. 사전에 절차를 끝내고 그 다음 시행으로 일정을 짜야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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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정리
퇴직연금 DB형에서 DC형으로의 전환은 단순한 제도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퇴직급여법 제4조 제3항에 따른 제도 종류 변경 동의, 그리고 취업규칙에 반영된 경우 근기법 제94조에 따른 불이익변경 동의까지, 이중의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202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를 폐기한 이후, 동의 없는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은 어떤 경영상 합리적 사유가 있어도 원칙적으로 무효다. 임금피크제 도입이나 인건비 구조 개편을 이유로 퇴직연금 전환을 검토하는 사업장이라면, 절차적 정당성 확보가 제도 설계보다 먼저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작성: 서재홍 | N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