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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I 간판은 내렸는데, 다양성 성과는 올랐다 — 성과관리 중심 포용 전략의 역설

포춘 500대 기업의 DEI 공시가 1년 만에 65% 줄었다. 메타는 공급망 다양성 프로그램을 없앴고, 아마존은 포용 교육을 단계적으로 폐지했다. 맥도날드, 타겟, 보잉까지 줄줄이 DEI 조직을 해체하거나 축소했다. 103개 대기업이 DEI를 후퇴시켰다는 집계도 나온다.

그런데 이상한 숫자가 하나 있다. 월마트에서 유색인종 관리자 비율이 8년 만에 31%에서 43%로 올랐다. 갭(Gap)에서는 유색인종 매장 관리자가 29%에서 49%로 뛰었다. 두 회사 모두 DEI 프로그램이 아니라 성과관리 혁신으로 이 결과를 만들었다.

한 줄 요약: DEI라는 이름을 떼고도 다양성을 높이는 길이 있다. 핵심은 성과관리·스킬 개발·유연근무 같은 고성과 경영기법이 포용을 부산물로 만들어내는 구조다.

DEI 간판 철거의 진짜 규모

2025년 1월, 트럼프 행정부의 행정명령이 방아쇠를 당겼다. 연방 계약업체에 DEI 준수 의무를 부과하는 조항이 삭제되면서, 정치적 리스크를 의식한 기업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S&P 500 기업 중 ‘DEI’라는 단어 사용 빈도가 전년 대비 68% 감소했다. 여성 임원 비율을 공시하는 기업은 90.5%에서 60.4%로, 여성 관리자 데이터 공시는 71.2%에서 55.1%로 떨어졌다.

솔직히, 이 수치를 보면 다양성의 시대가 끝났다고 결론 내리기 쉽다. 하지만 데이터를 한 겹만 더 벗기면 풍경이 달라진다.

65%

포춘 500 DEI 공시 감소율

Ongig, 2026

103

DEI 축소·폐지 대기업 수

BuildRemote, 2026

68%

S&P 500 ‘DEI’ 단어 사용 감소

ESG Dive, 2025

84%

직원이 원하는 DEI 확대

Ongig Survey, 2025

간판 없이 다양성을 만드는 다섯 가지 경영기법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실린 800개 기업 분석이 보여주는 결론은 명쾌하다. “모든 직원을 가치 있게 대하고, 성장을 지원하면, 다양성은 부산물로 따라온다.” 개인적으로는 이 문장이 이 글의 핵심이다. DEI 전담 조직을 만드는 것보다 기본 인사관리를 제대로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 다섯 가지를 살펴보자.

추천 채용 시스템 재설계. 오라클은 HCM Fusion 플랫폼으로 소셜 소싱 보너스를 도입했다. 모든 직급의 직원이 추천에 참여할 수 있게 열어둔 결과, 흑인·히스패닉·아시안 관리자가 약 5% 증가했다. 직원자원그룹(ERG)과 결합하면 7% 이상으로 올라간다. 기존 추천 채용은 ‘같은 사람이 같은 사람을 데려오는 구조’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전 직급 개방이 그 함정을 깨뜨린 것이다.

보편적 스킬 훈련. 월마트 아카데미는 6개월짜리 파트타임 경영 기초 과정을 운영한다. 160만 미국 직원 중 절반이 이 과정을 이수했다. 결과는 놀랍다. 유색인종 관리자가 31%에서 43%로, 여성 임원이 32%에서 39%로 올랐다. 핵심은 ‘고성과자’만 골라 교육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 직원 대상으로 열어두니, 비공식적 멘토링 기회가 모든 인구 집단에게 균등하게 돌아갔다.

사례 — 갭(Gap)의 유연근무 실험갭은 35주간 시프트 교환 앱, 최소 근무시간 보장, 표준 교대시간을 실험했다. 도입 비용 대비 100배에 달하는 290만 달러 이익을 창출했다. 유색인종 매장 관리자는 29%(2017)에서 49%(2023)로, 여성 매장 관리자는 76%까지 상승했다. 유연근무가 이중소득 가구와 육아를 병행하는 직원에게 불균형적으로 큰 혜택을 준 결과다.

구조화된 멘토링. IBM은 가이드, 팟캐스트, 가상 카페, 실시간 채팅 앱을 결합한 멘토링 플랫폼을 만들었다. 관리자 평가에 멘토링 활동을 반영했더니, 다양한 배경의 관리자가 15% 이상 늘었다. 팬데믹 기간 테크 업계 전반에서 여성 비율이 줄었지만, IBM은 오히려 늘었다.

성과 기반 구조조정. 아마존은 2022~2023년 대규모 감원 과정에서 연공서열이 아닌 성과 등급으로 잔류자를 결정했다. 최근 채용된 다양한 배경의 직원이 연공서열 기준이면 먼저 잘렸을 텐데, 성과 기준 덕분에 오히려 다양성 지표가 올라갔다.

한국 맥락에서 이 역설이 왜 중요한가

한국은 이코노미스트 유리천장 지수에서 12년 연속 29개국 중 꼴찌다. 100인 이상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1.2%에 불과하다. 장애인 의무고용률 3.1%도 실제 이행률과는 차이가 크다.

그런데 한국 기업에는 역설적 이점이 하나 있다. 미국처럼 대규모 DEI 조직을 세운 적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없앨 것도 없는 대신, 처음부터 성과관리 중심으로 포용을 설계할 수 있다. 이건 좀 과한 해석일 수도 있지만, 한국 HR이 지금 서 있는 위치가 오히려 유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구체적으로 세 가지 실행 경로가 보인다.

내부 추천 채용의 전 직급 개방. 한국 기업의 추천 채용은 대부분 경력직 중심이다. 사원급·계약직까지 추천권을 열면, 기존 네트워크 밖에 있던 인재풀이 자연스럽게 넓어진다. 오라클 사례처럼 5~7%의 다양성 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

스킬 훈련의 보편화. 한국 기업 교육은 ‘핵심인재’에 집중되는 경향이 강하다. 월마트처럼 전 직원 대상으로 확대하면, 암묵적으로 배제됐던 여성·중장년·비정규직에게도 승진 경로가 열린다.

유연근무 표준화. 2025년 육아휴직 제도 개편과 맞물려, 교대근무·최소시간 보장 등을 체계화하면 갭의 사례처럼 다양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잡을 수 있다.

간판이 아니라 배관이 문제다

미국에서 DEI 후퇴를 겪은 조직의 직원 54.2%가 지난 1년간 편견이나 낙인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DEI를 유지한 조직에서는 24.9%였다. 간판을 내린 것과 실질적 포용을 포기한 것은 다른 문제인데, 많은 기업이 둘을 혼동하고 있다.

코스트코는 정치적 압력에도 DEI 정책을 유지했다. 시스코 CEO는 “다양성에는 비즈니스 가치가 너무 크다”고 공개 발언했다. 애플 주주들은 반DEI 제안을 압도적으로 부결시켰다. 이 기업들의 공통점은 DEI를 ‘정치적 올바름’이 아니라 ‘성과 동인’으로 프레이밍했다는 것이다.

러쉬코리아가 2026년 DEI 보고서를 공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DEI가 조직 운영의 핵심”이라고 선언하면서, 다양성을 비용이 아니라 경쟁력으로 재정의했다.

결국 남는 질문 하나

800개 기업 데이터가 말하는 바는 단순하다. 좋은 인사관리를 하면 다양성은 따라온다. 나쁜 인사관리를 하면 아무리 DEI 예산을 쏟아도 소용없다.

한국 기업의 HR 담당자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DEI 프로그램을 만들 것인가”가 아니다. “지금 우리의 추천 채용·교육·유연근무·구조조정 기준은 모든 직원에게 공정한가”다. 그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조직이 몇이나 될까. 답은 각자의 인사 데이터 안에 이미 들어 있다.

💡 실무 시사점: DEI 전담 조직 없이도 추천 채용 전 직급 개방, 보편적 스킬 훈련, 유연근무 표준화, 성과 기반 구조조정 같은 고성과 경영기법이 다양성을 부산물로 만든다. 한국 기업은 ‘간판 없는 포용’을 처음부터 설계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DEI #다양성 #조직문화 #채용 #HR트렌드 #인재관리

참고 링크

작성: 서재홍 | N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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