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사직서를 쓰면서 손이 떨렸다고 했다. 팀장의 반복적인 폭언이 2년 넘게 이어졌고, 카카오톡에는 ‘너 같은 사람은 여기서 버티지 못해’라는 메시지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결국 A씨는 사직서를 냈다. 그리고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를 했다. 법원의 판단은? 1,200만 원 배상 인정.
반면 B씨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대표이사가 사직을 압박했고, B씨는 ‘이럴 거면 그만두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후 사직서를 제출했다.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다. 결론은 기각. 이유는 단 하나 — 증거가 없었다.
같은 ‘자진퇴사’, 전혀 다른 결과.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한 자진퇴사가 법적으로 인정받으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실제 판정례 4건을 통해 분석한다.
자진퇴사인가, 강요된 퇴사인가 — 법이 보는 기준
근로기준법 제76조의2(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는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를 금지한다. 그러나 이 조항 자체만으로는 자진퇴사가 ‘해고’로 전환되지 않는다. 법원과 노동위원회는 다음 두 가지를 핵심으로 판단한다.
- 사직의 의사표시가 진의(眞意)인가 — 근로자가 진심으로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가졌는지, 아니면 강박·협박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서명했는지
- 퇴사와 괴롭힘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는가 — 괴롭힘 행위가 퇴사의 직접 원인임을 입증할 수 있는지
두 가지 모두 ‘증거’가 결정한다. 피해를 당한 것과 그것을 법적으로 인정받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판정례 비교 — 이긴 사건 vs 진 사건
| 구분 | 인정된 사건 ① | 인정된 사건 ② | 기각된 사건 ① | 기각된 사건 ② |
|---|---|---|---|---|
| 사건번호 | 2020가단68472 | 2022가단32494 | 2022부해OOO (10-14) | 2019가단248504 |
| 판정 결과 | 손해배상 인정 (1,200만원) | 손해배상 인정 (5,300만원) | 부당해고 구제신청 기각 | 손해배상 전부 기각 |
| 괴롭힘 유형 | 반복적 폭언·욕설 (이사의 직접 행위) | 지속적 성희롱 + 괴롭힘 (팀장, 2년+) | 대표이사 압박·사직 종용 주장 | 7년간 폭언·욕설·따돌림 주장 |
| 핵심 증거 | 2년간 카카오톡 기록 + 상사 증언 | 피해 사실 상세 기록 + 지속성 입증 | 증빙자료 없음 | 개별 발언의 불법행위성 입증 실패 |
| 인과관계 | 괴롭힘 → 퇴사 연결 인정 | 지속적 괴롭힘 → 퇴사 불가피성 인정 | 사직 의사표시 유효로 판단 | 업무상 범위 내 발언으로 판단 |
| 사용자 책임 | 보호의무 위반 (근기법 제76조의3) | 공동불법행위 (회사 + 가해자) | 불인정 | 불인정 |
승패를 가른 핵심 — 세 가지 차이
① 증거의 ‘양’이 아니라 ‘구체성’이 결정한다
2020가단68472 사건에서 A씨가 이긴 이유는 단순히 많은 증거를 모아서가 아니다. 카카오톡 대화 기록에는 날짜·발언 내용·반응이 그대로 담겼다. 이사 D가 어떤 날, 어떤 말을, 어떤 상황에서 했는지 특정할 수 있었다. 법원은 이를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은 폭언’으로 인정했다. 2년간 상사 C와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가 결정적이었다 — 그 안에는 단순한 불만 토로가 아니라, 구체적 날짜와 발언이 기록돼 있었다.
반면 2019가단248504 사건에서 7년간 시달렸다는 주장은 개별 발언별 날짜·맥락이 불분명했다. 법원은 ‘일부 발언이 불쾌했다고 해서 모두 직장내 괴롭힘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피해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기록되지 않았던 것이다.
② ‘사직 의사 철회 요구’를 즉시 해야 한다
2022부해OOO(10-14) 사건의 결정적 약점은 B씨가 사직 메시지를 보낸 후 적극적으로 철회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노동위는 ‘업무 인계를 하고 동료들과 작별 인사를 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사직 의사표시가 진의라고 봤다. 강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직했다면, 이를 즉시 서면으로 이의 제기하거나 사용자에게 철회 의사를 통보했어야 했다. ‘나는 원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썼다’는 사실을 그 즉시 남겨두지 않으면, 나중에 뒤집기 어렵다.
③ 퇴사와 괴롭힘의 ‘인과관계’ 입증 — 가장 높은 장벽
2024나40982 사건은 흥미롭다. 폭언 행위 자체는 인정돼 위자료 70만 원을 받았지만, ‘퇴사로 인해 받지 못한 급여(소극적 손해)’는 기각됐다. 법원은 ‘퇴사가 반드시 괴롭힘 때문이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괴롭힘이 있었어도, 그것이 퇴사의 직접 원인이라는 연결고리를 별도로 증명해야 한다는 의미다. 단순히 ‘괴롭힘 당한 후 퇴사했다’는 시간적 순서만으로는 부족하다. 의사의 진단서, 퇴사 당시 상황 기록, 퇴사일 전후 내부 커뮤니케이션이 인과관계를 연결하는 증거가 된다.
실무 체크리스트 — 피해자가 지금 당장 해야 할 것
- 즉시 기록 시작: 날짜·장소·발언 내용·목격자를 메모 앱이나 노트에 그때그때 저장. 카카오톡 대화는 스크린샷 후 별도 백업.
- 회사 내 신고 절차 활용: 근로기준법 제76조의3에 따라 사용자는 신고 접수 후 조사 의무가 있음. 신고 기록 자체가 증거가 된다.
- 산업재해 적용 검토: 정신건강 손상(적응장애·우울증)이 생겼다면 산재 신청 가능 — 공단의 조사 결과가 법적 증거로 활용됨.
- 사직서 제출 전 이의 기록: 어쩔 수 없이 사직서를 써야 한다면, 이메일이나 문자로 ‘강요에 의해 작성하는 것’임을 명시하고 사직서와 함께 발송.
- 실업급여 이직사유 정당성 확보: 고용보험법 시행규칙 별표 2 ‘정당한 이직 사유’에 직장내 괴롭힘이 포함됨. 회사 신고 접수 기록·진료기록 제출 시 인정 가능성 높아짐.
- 노동위원회 구제신청 기한: 퇴사일로부터 3개월 이내 부당해고 구제신청 가능. 자진퇴사라도 강요에 의한 것이면 신청할 수 있음.
실제 사건에서 가장 자주 보는 패턴은 피해자가 퇴사 후 한참 지나서야 증거를 모으려 한다는 점입니다. 카카오톡 대화는 기기를 바꾸거나 계정을 탈퇴하면 사라지고, 목격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이 흐려집니다. 괴롭힘을 처음 인지한 순간부터 기록하는 습관이, 나중에 법적 다툼에서 승패를 가르는 유일한 변수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직장내 괴롭힘으로 퇴사했으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나요?
고용보험법상 직장내 괴롭힘은 정당한 이직 사유에 해당합니다. 회사 신고 접수 기록이나 진료기록이 있으면 인정 가능성이 높습니다.
Q. 증거가 없어도 노동위에 구제신청할 수 있나요?
신청 자체는 가능하나, 증거 없이는 인용되기 어렵습니다. 목격자 진술·카카오톡 기록·신고 이력이 핵심입니다.
Q. 사직서를 이미 제출했다면 취소할 수 있나요?
사용자가 수리하기 전이면 철회 가능합니다. 수리 후에도 강요에 의한 의사표시임을 즉시 이의 제기하면 다툼 여지가 있습니다.
Q. 퇴사하면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할 수 있나요?
자진퇴사도 강요에 의한 것이면 부당해고로 다툴 수 있습니다. 퇴사일로부터 3개월 이내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해야 합니다.
Q. 손해배상과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동시에 할 수 있나요?
가능합니다. 노동위 구제신청(복직·임금 상당액)과 민사 손해배상 청구(위자료·소극적 손해)는 별개의 절차로 병행할 수 있습니다.
작성: 서재홍 | N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