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한 해 동안 미국 기업이 직원 교육에 쏟은 돈은 1,028억 달러. 전년 대비 4.9% 늘었다. 그런데 같은 기간 직원 1인당 공식 교육 시간은 17.4시간에서 13.7시간으로 줄었다. 교육비 단가는 시간당 123달러에서 165달러로 34% 치솟았다.
돈은 더 쓰는데 배움은 줄고 있다. 솔직히 이건 꽤 기묘한 숫자다.
더 불안한 건 따로 있다. 엔트리 레벨 채용 공고는 2023년 1월 이후 35% 줄었고, 22~25세 소프트웨어 개발자 고용은 거의 20% 감소했다. 신입이 조직에 들어와 ‘잡일’을 하면서 체득하던 암묵지의 통로 자체가 막히고 있다.
한 줄 요약: AI가 신입의 학습 기회를 흡수하면서 조직의 역량 기반이 침식되고 있다. L&D 예산 증가만으로는 이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스킬 기반 인재 운영 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돈은 늘었는데 역량은 줄었다 — L&D 예산 역설의 실체
Training Industry의 2024~2025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모순이 선명하다. 미국 기업 전체 교육 지출은 980억 달러에서 1,028억 달러로 반등했다. 그러나 대기업(종업원 1만 명 이상)의 평균 L&D 예산은 1,610만 달러에서 1,330만 달러로 줄었고, 이듬해 다시 1,170만 달러까지 떨어졌다. 소규모 기업이 늘어난 총액을 견인했을 뿐, 대기업은 오히려 칼을 댔다.
34%
교육 시간당 비용 상승률 (YoY)
Training Industry, 2024
13.7시간
직원 1인당 연간 공식 교육 시간
Training Industry, 2024
35%
엔트리 레벨 채용 공고 감소율
Revelio Labs, 2023~2025
한국도 비슷한 궤적을 그린다. 고용노동부 사업주 직업능력개발훈련 데이터를 보면, 대기업의 훈련 참여율은 꾸준히 높지만 실질 훈련 시간은 정체 상태다. 300인 이상 사업장의 OJT 비중은 줄고, e러닝 전환이 가속되면서 ‘수료 클릭’과 ‘역량 습득’ 사이의 간극이 벌어지고 있다.
L&D 리더 65%가 예산 부족을 최대 과제로 꼽는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예산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본다. AI가 신입사원이 하던 반복 업무를 가져가면서, 실무를 통해 배우는 경로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AI 디스킬링 — 자동화가 학습 경로를 삼킨다
SHRM은 이 현상을 ‘AI-Fueled Competency Decline’이라 명명했다. AI 사용이 늘면서 비판적 사고, 판단력, 문제 해결 능력 같은 핵심 역량이 약화되는 현상이다.
메커니즘은 단순하다. 신입사원이 데이터 정리를 하면서 패턴을 읽는 눈을 키웠다. 보고서 초안을 쓰면서 논리 구조를 익혔다. 고객 문의에 답하면서 맥락 판단을 훈련했다. 이 세 가지를 AI가 대신한다. 신입은 AI 출력물을 검토하는 역할로 밀린다. 그런데 검토하려면 먼저 직접 해본 경험이 있어야 한다. 해본 적 없는 걸 검토할 수 있을까.
사례 — 국내 대형 회계법인빅4 회계법인 중 한 곳은 2025년부터 감사 보조 업무에 AI 문서 분석 도구를 전면 도입했다. 기존에 주니어 회계사가 3~4일에 걸쳐 수행하던 계정 분류와 이상치 탐지를 AI가 수 시간 만에 처리한다. 결과적으로 주니어의 실무 노출 시간이 60% 이상 줄었다. 파트너급은 “3년 차가 예전 1년 차 수준의 판단력을 보인다”고 우려한다. 교육 시간은 동일한데 ‘체험을 통한 학습’이 빠졌기 때문이다.
SHRM의 2026년 AI in HR 보고서에 따르면, HR 기능에 AI를 도입한 조직 중 채용 분야가 27%로 가장 높고, L&D는 17%에 그친다. 아이러니하게도 AI가 가장 먼저 침투한 채용 영역에서 엔트리 레벨 일자리가 가장 빠르게 줄고 있다. AI가 채용을 효율화하면서 동시에 학습의 입구를 좁히는 셈이다.
CHRO의 92%가 AI 통합 확대를 예상하고, 84%가 AI 관련 업스킬링 증가를 전망한다. 하지만 54%의 조직은 아직 HR에 AI를 도입하지도 않았고 계획도 없다. 이 간극이 위험하다. 선도 기업에서는 신입의 역량이 침식되고, 후발 기업에서는 아예 대비가 없다.
스킬 기반 전환 — 직무 중심에서 역량 중심으로
해법의 한 축은 스킬 기반 인재 운영이다. Deloitte 연구에 따르면 스킬 기반 조직은 인재 배치 효과가 107% 높고, 고성과자 리텐션이 98% 높으며, 변화 예측 능력이 57% 우수하다. LinkedIn 데이터는 스킬 기반 채용이 인재 풀을 미국 기준 15.9배 확장한다고 보여준다.
Workday는 2,300명의 비즈니스 리더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55%가 이미 스킬 기반 모델로 전환을 시작했고, 23%가 12개월 내 시작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내부 충원율은 여전히 낮다. 조직의 75%가 빈 자리의 절반 이상을 외부 채용으로 채운다.
한국 상황은 더 뒤처져 있다. 직무급제 도입 기업은 대기업 중심으로 늘고 있지만, 실제로 ‘스킬 택소노미(역량 분류 체계)’를 구축한 곳은 손에 꼽힌다. 대부분의 한국 기업은 여전히 직급-연차 기반으로 인재를 관리한다. 직무기술서(JD)조차 형식적으로 작성하는 곳이 많다.
이건 좀 아쉬운 부분인데, 스킬 기반 전환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어떤 스킬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대부분의 조직이 갖고 있지 않다. 직무 분석을 AI로 자동화하는 도구(Workday Skills Cloud, Lightcast, Eightfold)가 있지만, 한국어 직무 데이터에 최적화된 솔루션은 아직 부족하다.
flowchart TD
A[기존 모델: 직급·연차 기반] -->|AI 도입| B[신입 실무 노출 감소]
B --> C[암묵지 전수 단절]
C --> D[역량 침식]
D -->|해법| E[스킬 기반 전환]
E --> F[스킬 택소노미 구축]
F --> G[내부 이동·업스킬링]
G --> H[역량 기반 성장 경로]
A -->|L&D 예산 투입| I[e러닝 수료율 ↑]
I -->|but| J[실질 역량 변화 미미]
J --> D
L&D를 재설계하는 세 가지 축
SHRM 보고서와 현장 사례를 종합하면, L&D 재설계의 방향은 세 축으로 수렴한다.
의도적 실무 노출 설계. AI가 대체한 업무라도 신입에게 일정 기간 ‘수동 모드’를 경험시키는 구조가 필요하다. 의료계의 레지던트 제도처럼, 신입 개발자에게 3개월간 AI 코드 리뷰 도구 없이 직접 코드를 작성하게 하는 식이다. 이를 ‘역량 레지던시(Competency Residency)’라 부르는 기업도 등장하고 있다.
내부 전문가 활용. SHRM이 강조하는 전략 중 하나다. 외부 교육 벤더에 의존하는 대신, 조직 내 시니어 실무자를 마이크로 코칭 멘토로 활용한다. 예산 절감과 맥락 있는 학습을 동시에 잡는다. 다만 시니어에게 코칭 시간을 KPI로 인정하지 않으면 형식에 그친다. 한국 기업에서 ‘멘토링 제도’가 유명무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킬 갭 실시간 측정. 연 1회 역량 평가로는 AI 시대의 역량 침식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분기 또는 월 단위로 스킬 프로파일을 업데이트하고, 갭이 감지되면 자동으로 학습 콘텐츠를 추천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AI·도구로 측정/자동화 가능한 부분
- 스킬 택소노미 자동 구축: Workday Skills Cloud, Lightcast가 직무기술서에서 스킬을 자동 추출·분류한다. 한국어 JD는 Claude나 GPT로 전처리 후 매핑하는 하이브리드 접근이 현실적이다.
- 역량 갭 대시보드: Degreed, Cornerstone의 스킬 인텔리전스 모듈은 직원별 스킬 프로파일과 목표 직무 간 갭을 시각화한다. 한국에서는 FLEX(플렉스), Shiftee 등이 부분적으로 지원한다.
- 학습 효과 측정 자동화: 단순 수료율 대신, 업무 산출물 품질 변화를 추적하는 방식. Lattice의 성과 데이터와 LMS 데이터를 연동하면 ‘교육 → 성과’ 상관관계를 정량화할 수 있다.
- AI 디스킬링 조기 경보: 신입의 독립 의사결정 빈도, 에스컬레이션 비율, AI 도구 의존도를 추적해 역량 침식 징후를 조기 감지하는 대시보드 구축이 가능하다.
- 내부 이동 매칭 엔진: Eightfold, Gloat 같은 인터널 마켓플레이스 플랫폼이 스킬 데이터 기반으로 내부 이동 기회를 자동 추천한다. 외부 채용 비용 대비 40~60% 절감 효과가 보고된다.
실무 시사점: AI 도입이 빨라질수록 신입의 역량 기반이 약해지는 역설에 직면한다. L&D 예산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의도적 실무 노출’을 설계하고, 스킬 기반 인재 운영 체계를 구축하며, 역량 변화를 실시간으로 측정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우리 조직에서 AI가 대체한 업무 목록을 만들고, 그중 신입의 학습에 필수적이었던 것이 무엇인지 식별하는 것이다.
#AI디스킬링#L&D#스킬기반채용#역량관리#HR트렌드
참고 링크
- SHRM, “HR Can Lead the Charge Against AI-Fueled Competency Decline” (2026)
- SHRM, “L&D Teams Are Doing More With Less in 2026” (2026)
- SHRM, “The State of AI in HR 2026” (2026)
- Workday, “How a Skills-Based Approach Unlocks Talent Mobility and Agility” (2026)
- Deloitte, “Rethinking Skills-Based Talent Models” (2026)
작성: 서재홍 | N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