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한 중견 제조업체의 인사팀장이 말했다. “우리 팀장님은 정말 좋은 분이에요. 근데 팀원이 실수해도 항상 ‘다음에 잘하자’로 넘어가요. 문제는 나머지 팀원들이 점점 의욕을 잃는다는 거죠.”
비슷한 시기, 다른 대기업에서는 C레벨 3명이 각자 ‘전략 과제’를 내려보냈다. 현장 관리자 한 명이 동시에 떠안은 이니셔티브는 11개. 그는 6개월 뒤 사직했다.
이 두 이야기의 공통점이 있다. 리더의 의도는 선했다. 하나는 공감, 다른 하나는 열정.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로 흘렀다.
한 줄 요약: 리더의 공감이 징계 회피로 이어지면 공정성이 무너지고, 리더의 열정이 과제 과적으로 이어지면 핵심 인재가 떠난다 — 선의는 시스템으로 통제하지 않으면 독이 된다.
공감이 무기력해지는 지점: 징계 앞에서 흔들리는 리더
공감 능력이 높은 리더가 더 좋은 성과를 낸다는 건 상식이다. 6,731명의 관리자를 대상으로 한 38개국 연구에서, 공감도가 높은 리더는 상사에게도 더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기까지는 교과서적이다.
문제는 징계 상황이다.
최근 학술 연구들이 흥미로운 역설을 발견했다. 공감이 강한 리더일수록 부하의 비위 행위에 관대해진다. 구성원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이 처벌 수위를 낮추는 쪽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솔직히 이건 현장에서 매일 목격되는 장면이다. “이번만 봐줄게”라는 말이 3번 반복되면, 나머지 팀원은 “규칙이 없구나”라고 읽는다.
더 심각한 건 ‘능력 있는 직원’에 대한 편향이다. 동일한 비위 행위라도 성과가 좋은 직원에게는 처벌이 가벼워진다. 성과가 관계(LMX)를 매개로 일종의 ‘면죄부’처럼 작동하는 구조다. 개인적으로는 여기가 한국 조직에서 가장 위험한 지점이라고 본다. “에이스니까 한 번 봐주자”는 관행이 결국 조직의 신뢰 자본을 갉아먹는다.
2026년 1월 발표된 연구는 이 문제를 ‘현명한 공감(wise empathy)’이라는 프레임으로 풀었다. 리더가 상대의 감정에 빠져드는 ‘공유(sharing)’ 모드와, 거리를 유지하며 돕는 ‘돌봄(caring)’ 모드를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징계 상황에서 필요한 건 후자다. 감정은 이해하되, 기준은 지킨다.
사례 — 국내 IT기업 D사2023년 팀 내 성과 우수자가 반복적으로 보고서를 허위 작성한 사실이 드러났다. 팀장은 “실력이 아까워서” 구두 주의로 마무리했다. 6개월 뒤, 같은 팀에서 3명이 동시에 퇴사하며 ‘공정하지 않다’는 사유를 공통으로 적었다. 결국 회사는 해당 팀 전체를 재편해야 했다.
이니셔티브 과적: 리더 한 명의 열정이 현장을 마비시킨다
단 하나의 지시가 현장을 바꾸는 건 아니다. 문제는 누적이다.
각 C레벨이 자기 영역에서 2~3개씩 전략 과제를 내려보낸다. 개별적으로는 합리적이다. 그런데 이 과제들이 현장의 특정 관리자에게 수렴하면, 이른바 ‘확대기 효과(magnifier effect)’가 발생한다. 매장 점장, 공장 파트장, 영업팀 리더 같은 조직의 중간 허리가 과부하의 교차로가 된다.
83%
화이트칼라 근로자 중 번아웃 경험 비율
Metaintro / 2026
48%
번아웃 원인 1위: 과도한 업무량
Hubstaff Burnout Survey / 2026
43%p
리더 자기평가 vs 직원 체감 공감도 격차
HBR Wise Empathy / 2026
왜 일반적인 해결책이 안 먹힐까. 부서별로 각자 우선순위를 정하기 때문이다. 마케팅은 마케팅 과제가 1순위이고, 재무는 재무 과제가 1순위다. 서로의 과제를 줄여주지 않는다. 결국 현장 관리자만 모든 1순위를 동시에 안게 된다.
이 구조에서 가장 먼저 떠나는 건 대체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선택지가 있는 고성과자는 “이건 아닌데”라는 판단을 가장 빨리 내린다. 남은 사람들은 11개 이니셔티브 중 5개를 흉내만 내며, 나머지 6개는 ‘좀비 프로젝트’로 떠돈다.
선의의 실패가 공유하는 한 가지 구조
공감의 함정과 과적의 함정. 표면적으로는 다른 문제다. 하나는 사람에 대한 관대함이고, 다른 하나는 사업에 대한 과욕이다.
그런데 뿌리는 같다. 리더 개인의 선의를 조직 시스템이 교정하지 못하는 구조.
공감 높은 리더에게 징계 재량을 100% 맡기면, 그 재량은 예외 없이 관대한 방향으로 쏠린다. 열정 넘치는 임원에게 이니셔티브 개수 제한을 두지 않으면, 그 열정은 현장의 부하 한도를 초과할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한국 기업에서 이 문제가 유독 심각한 데는 이유가 있다. 리더의 재량 범위가 넓다. 징계위원회가 형식적이거나 아예 없는 중소기업이 많고, 이니셔티브 승인 프로세스가 대표이사 한 마디에 좌우되는 조직이 대부분이다. 시스템이 약하니, 리더 개인의 성향이 조직 전체를 흔들 수밖에 없다.
징계 공정성을 설계하는 방법
핵심은 리더의 감정에서 징계 판단을 분리하는 것이다.
징계 기준표를 만들되, ‘행위-결과-전력’의 3축으로 구성한다. 어떤 행위를 했는지, 그 결과가 조직에 얼마나 영향을 줬는지, 과거 유사 전력이 있는지. 이 세 축의 교차점에서 처분 범위가 자동으로 정해지면, 리더의 공감이 개입할 여지가 줄어든다.
동시에, 징계 결과를 익명화해서 분기별로 공개한다. “A직급 직원이 B행위로 C처분을 받았다.” 사안을 특정할 수 없지만, 기준이 일관되게 적용되고 있다는 메시지는 전달된다. 이건 좀 과감한 접근이지만, 실제로 도입한 기업에서 징계 관련 불만이 40% 이상 줄었다는 내부 보고가 있다.
그리고 하나 더. 리더 자신이 느끼는 공감 수준과 직원이 체감하는 공감 수준에는 43%포인트의 격차가 있다. 리더가 “나는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실제로는 직원의 절반 가까이가 “별로”라고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이 격차를 좁히려면 360도 피드백을 징계 프로세스에도 적용해야 한다.
이니셔티브 부하를 통제하는 방법
가장 먼저 필요한 건 전사 차원의 이니셔티브 감사(audit)다. 재무 비용이 아니라 ‘현장 시간 비용’을 기준으로 각 과제가 특정 포지션에 요구하는 시간을 계산한다. 10개 과제가 한 관리자에게 주당 60시간을 요구하고 있다면, 그건 어떤 우선순위 조정으로도 해결 안 된다.
다음은 ‘이니셔티브 사망 확인서’ 제도다. 중단된 프로젝트가 다시 살아나는 ‘좀비 이니셔티브’ 현상을 막기 위해, 한번 중단하기로 한 과제는 공식 문서로 폐기를 선언하고, 부활시키려면 신규 과제와 동일한 승인 절차를 밟게 한다.
마지막으로, C레벨 각자가 보유할 수 있는 활성 이니셔티브 수에 상한을 건다. “임원 1인당 동시 진행 전략 과제 3개”처럼 명시적 숫자로. 이건 단순해 보이지만, 선택의 고통을 경영진에게 되돌려준다는 점에서 가장 효과적이다.
결국, 시스템이 리더의 선의를 보호한다
오해하지 말자. 공감 없는 리더가 낫다는 말이 아니다. 열정 없는 임원이 바람직하다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공감과 열정이라는 연료가 가드레일 없는 도로에서 달릴 때, 그 차는 반드시 도랑에 빠진다. $180억 — 비공감적 조직이 연간 치르는 이직 비용이다. 그런데 공감이 과잉인 조직 역시 이직 비용을 치른다. 방향만 다를 뿐이다. 전자는 “여기는 차갑다”며 떠나고, 후자는 “여기는 불공정하다”며 떠난다.
이번 주 팀장 회의에서 한번 물어보자. “우리 팀에서 지난 1년간 가장 가벼운 징계를 받은 사람은 누구였고, 그 이유는 무엇이었나?” 그리고 “지금 우리 부서가 동시에 진행 중인 전략 과제는 몇 개인가?” 이 두 질문에 즉답할 수 있는 조직이라면, 아마 이 글이 필요 없을 것이다.
💡 실무 시사점: 리더의 공감 역량을 키우는 것만큼, 공감이 징계 회피로 전환되지 않도록 기준표와 공개 프로세스를 설계하라. 이니셔티브는 승인보다 폐기가 어렵다 — ‘이니셔티브 사망 확인서’ 제도로 좀비 프로젝트를 정리하고, 임원 1인당 활성 과제 상한을 공식화하라.
#리더십#조직문화#인사평가#성과관리#HR트렌드
참고 링크
- HBR, “Is Your Company Suffering from Initiative Overload?” (2026)
- HBR, “How Leaders Can Practice Wise Empathy” (2026)
- DBR, “공감 잘하는 리더보다 냉혹한 리더가 구성원 처벌 상황선 ‘유능’ 평가받아” (2026)
- Emerald, “Why Leader Empathy Backfires: Relative LMX and Unethical Pro-organizational Behaviors” (2026)
- Metaintro, “Over 75% of Workers Suffer From Burnout in 2026” (2026)
작성: 서재홍 | N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