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후 2시. 사무실 절반이 비어 있다. 주 4.5일제를 도입한 회사의 일상이다. 그런데 근태관리 시스템 화면을 열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조기퇴근’으로 찍힌 로그, 연장근로 자동 정산에서 빠진 금요일 오후 시간, 탄력근무제와 충돌하는 연차 계산. 제도는 바뀌었는데 시스템은 아직 월~금 9시~6시에 멈춰 있다.
개인적으로는 여기가 핵심이다. 주 4.5일제의 진짜 병목은 노사 합의가 아니라 그 합의를 실행하는 인프라에 있다.
한 줄 요약: 주 4.5일제 도입 기업이 224개사를 넘었지만, 근태·급여·평가 시스템이 새 근무 형태를 따라가지 못하면 제도는 ‘혜택’이 아니라 ‘혼란’이 된다.
224개사가 증명한 것, 그리고 증명하지 못한 것
고용노동부의 ‘워라밸+4.5 프로젝트’는 2026년 상반기에 이미 연간 목표(220개사)를 넘겼다. 참여 기업의 67.9%가 50인 미만 중소기업이다. 대기업의 유연근무 실험이 아니라, 10~30인 규모 사업장에서 실제로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성과 수치도 인상적이다. 핀테크 기업 와이어바알리는 전년 대비 이직자가 75% 줄고 신규 채용이 200% 늘었다. 네트워크 장비 설계사 포어링크는 연장근로가 월 38.4시간에서 19.5시간으로 49% 감소했고, 연차사용률은 29%에서 85%로 뛰었다. 전자부품 제조사 디에이치글로벌의 이직률은 5.05%에서 2.1%로 떨어졌다.
224개사
2026 상반기 주 4.5일제 도입 기업
고용노동부, 2026
49%
포어링크 연장근로 감소율
헤럴드경제, 2026
1,872시간
한국 연간 근로시간 (OECD 6위)
OECD, 2023
솔직히 이건 좀 놀랍다. 중소기업에서도 가능하다는 게 입증된 셈이니까. 하지만 이 숫자들이 보여주지 못하는 게 있다. 근태 데이터가 정확했는지, 급여 정산에서 오류가 없었는지, 인사담당자가 엑셀로 몇 시간을 더 쓴 건 아닌지.
금요일 오후가 사라지면 시스템에서 벌어지는 5가지 균열
제도 전환 현장에서 실무자들이 실제로 마주치는 문제다.
근로시간 산정 충돌. 주 40시간 기준으로 설계된 시스템에서 주 36시간(주 4.5일제)은 ‘비정상’으로 잡힌다. 탄력근무제와 결합하면 월~목 8.5시간+금 4시간 같은 변칙 패턴이 생기는데, 대부분의 레거시 근태 시스템은 일별 고정 근무시간만 처리한다.
연장근로 자동 정산 오류. 금요일 오후에 긴급 업무가 생겨 2시간을 더 일했다. 이게 연장근로인가? 원래 근무일이니 소정근로시간 내인가? 시스템이 ‘금요일 오후 = 비근무시간’을 인식하지 못하면 수당이 빠진다. 근로기준법 제56조 위반 리스크가 여기서 생긴다.
연차 산정 혼란. 주 4.5일제에서 금요일 오후에 연차를 쓰면 0.5일인가, 1일인가. 반일 단위 연차가 제도적으로 정비되지 않은 사업장에서는 인사담당자가 수작업으로 조정한다. 연차촉진 시스템도 새 패턴에 맞게 재설정해야 한다.
평가 데이터 왜곡. 금요일 오후 근무를 선택한 팀원과 쉬는 팀원 사이에 로그인 시간 차이가 생긴다. 이걸 성과 지표로 쓰는 조직이라면, ‘더 오래 있는 사람 = 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는 편향이 데이터에 박히게 된다.
부서별 변형 운영의 관리 부담. 유니정보 사례처럼 부서마다 다른 방식을 적용하면(일괄 단축, 순번제, 요일 선택), 하나의 근태 정책으로 커버할 수 없다. 정책 엔진이 없는 시스템에서는 부서별 엑셀 관리로 회귀한다.
사례 — 유니정보기계장비 도매업체 유니정보는 부서 특성에 따라 세 가지 방식을 병행했다. 매주 금요일 2시간 일괄 단축, 순번제 자율 선택, 월요일 제외 요일 단축. 다면평가 체계(상사·동료·부하·본인)를 함께 개편했더니, 이직률이 1년 만에 58.4% 감소했다. 제도와 평가를 동시에 건드린 게 성공 요인이다.
시스템이 해결해야 할 진짜 문제: ‘유연함’의 코드화
한국의 연간 근로시간은 1,872시간으로 OECD 평균(1,742시간)보다 130시간 길다. 주 50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자 비율은 17.7%로 OECD 평균(12.9%)을 웃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이슈페이퍼는 ‘2030년 OECD 평균 달성’을 목표로 제시했다. 이 목표가 현실이 되려면, 유연근무를 ‘예외’가 아니라 ‘기본’으로 처리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현재 시장에 나와 있는 근태 솔루션들 — 시프티, 샤플, flex, 에버타임 — 은 GPS/Wi-Fi 기반 자동 출퇴근 기록, 다중 근무지 설정, 연장·야간·휴일근무 자동 집계를 지원한다. 시프티는 30개국 15만 사업장에 도입됐고, 모바일 앱에서 외근 자동 기록까지 가능하다.
하지만 이건 ‘기록’의 자동화다. 진짜 필요한 건 ‘정책’의 자동화다. 부서별로 다른 근무 패턴을 정책 엔진에 입력하면, 연장근로 판단·연차 산정·급여 정산이 자동으로 분기되는 구조. 아직 이 수준까지 도달한 국내 솔루션은 드물다.
flowchart TD
A[근무정책 입력] -->|부서별 분기| B{근무 유형}
B -->|일괄 단축| C[금 오후 비근무 설정]
B -->|순번제| D[개인별 단축일 배정]
B -->|요일 선택| E[선택 요일 시간 차감]
C --> F[연장근로 자동 판단]
D --> F
E --> F
F --> G[급여 정산 엔진]
G --> H[급여명세서 자동 생성]
에코월드팜은 업무 공백을 AI로 메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어떤 AI인지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방향은 맞다. 근무시간이 줄면 업무 밀도가 올라가야 하고, 밀도를 높이려면 반복 업무를 자동화해야 한다. 근태 기록 → 급여 정산 → 세무 신고의 파이프라인이 끊기지 않는 구조가 전제다.
노동법이 시스템에 요구하는 것
실무자 입장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건 법적 리스크다. 근로기준법은 주 40시간·일 8시간을 소정근로시간 상한으로 정하고 있다. 주 4.5일제는 주 40시간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지만, 일별 근로시간이 8시간을 초과하면 연장근로수당이 발생한다.
탄력근무제(2주/3개월/6개월)를 결합하면 더 복잡해진다. 2주 단위 탄력근무제에서는 특정일 근로시간이 일 8시간·주 48시간을 초과하지 않으면 연장근로로 보지 않는다. 3개월 단위에서는 일 12시간·주 52시간이 상한이다. 이 기준을 근태 시스템이 자동으로 적용하지 못하면, 인사담당자가 매주 수작업으로 확인해야 한다.
이건 좀 아쉽다. 324억 원 규모의 정부 시범사업이 제도 설계에는 집중하면서, 그 제도를 실행할 시스템 인프라 지원은 빠져 있다는 점. 50인 미만 기업이 67.9%인데, 이들이 쓸 수 있는 클라우드 근태 솔루션 도입 비용은 기업당 월 10~50만 원 수준이다. 시범사업 예산에 시스템 전환 보조금이 포함됐다면 효과가 배로 커졌을 것이다.
AI·도구로 측정/자동화 가능한 부분
- 정책 기반 근태 엔진 — 부서별 근무 패턴(일괄 단축/순번제/요일 선택)을 룰 엔진에 입력하면, 연장근로·연차·급여가 자동 분기. 시프티·flex 등이 부분 지원 중이나, 탄력근무제 단위기간별 상한 자동 적용은 아직 미흡
- 연장근로 예측 알림 — 주간 누적 근로시간을 실시간 트래킹해서, 주 52시간 상한 도달 전 관리자·본인에게 자동 알림. Workday Advanced Scheduling이 유사 기능을 제공하며, 국내 솔루션에서는 샤플이 리포트 자동 생성으로 대응
- 업무 밀도 대시보드 — 줄어든 근무시간 대비 산출물 변화를 측정. Jira·Notion·Slack 로그를 연동해 업무 처리 건수·평균 소요시간을 자동 집계하면, ‘시간 단축 = 생산성 저하’라는 반론에 데이터로 대응 가능
- 다면평가 편향 보정 — 로그인 시간·메신저 접속 시간을 성과 지표에서 제외하고, 결과물 기반 지표로 전환. Lattice의 AI 리뷰 초안 기능과 결합하면 평가자 편향을 사전 탐지
- 연차촉진 자동화 — 새 근무 패턴에 맞춘 연차 잔여일수 알림·사용 촉진 메시지 자동 발송. 근로기준법 제61조 요건(10일/6개월 전 촉진 통보)을 시스템이 일정 기반으로 자동 실행
실무 시사점: 주 4.5일제는 ‘쉬는 날 하나 더’가 아니라 근태·급여·평가 인프라 전체의 재설계를 요구한다. 제도 도입 전에 현재 사용 중인 근태 시스템이 변형 근무 패턴, 탄력근무제 단위기간별 연장근로 산정, 부서별 정책 분기를 지원하는지부터 점검해야 한다. 시스템이 안 되면 제도는 인사담당자의 야근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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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링크
- 헤럴드경제, “주 4.5일제·유연근무로 생산성 높인다…오래보다 밀도 있게 일해야” (2026)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주 4.5일제 등 노동시간 단축하니…워라밸·생산성 향상” (2026)
- 고용노동부, “제5차 일터혁신 사례공유 포럼” (2026)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한국의 노동시간 실태와 단축 방안 — 2030년 OECD 평균 달성을 향하여” (2025)
- 한국노동연구원, “임금정보브리프 2026년 제2호” (2026)
작성: 서재홍 | N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