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명이 사망한 사건에서 대표이사에게 징역 4년이 선고됐다. 수원고등법원은 2026년 4월 아리셀 화재 사건 항소심에서 박순관 대표의 형량을 1심 징역 15년에서 4년으로 낮췄다. 유족들은 법정에서 오열했고 한국노총은 “면책 기준만 남겼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런데 법원이 인과관계를 부정한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이 판결의 파장도 제대로 읽을 수 없다.
한 줄 요약: 23명이 숨진 아리셀 참사 2심에서 징역 4년이 선고됐다. 양형의 무게보다 더 중요한 건 법원이 중대재해처벌법상 “인과관계”의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했는가 — 이번 판결은 안전관리 시스템 부재와 사망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 입증 기준을 한층 명확히 했다.
23명
아리셀 화재 사망자 수
2024년 6월 화성 리튬전지 공장 화재
4년
2심 대표이사 징역형 —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2026년 4월 항소심 선고
무슨 일이 일어났나
2024년 6월, 경기 화성시 아리셀 리튬배터리 제조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2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사망자 대부분이 중국 국적의 이주노동자였고, 화재 직후 ‘이주노동자 안전 사각지대’라는 사회적 공분이 폭발했다.
1심(수원지방법원, 2025년 9월)은 박순관 대표에게 중대재해처벌법·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아들 박중언 총괄본부장도 동일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기업 대표에 대한 사실상 가장 높은 형량이었다.
그러나 항소심(수원고등법원 제1형사부, 2026년 4월)의 판단은 완전히 달랐다.
- 박순관 대표: 징역 15년 → 징역 4년
- 박중언 총괄본부장: 징역 15년 → 징역 7년 + 벌금 100만 원
주의 — “인과관계 단절” 항변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아리셀 2심은 안전 관리 시스템 부재와 사망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폭넓게 인정했다. “다른 원인이 끼어들었다”, “예측 불가능했다”는 항변은 시스템이 부재한 사실 자체로 깨지는 흐름이다.
법원이 인과관계를 부정한 논리
2심 재판부가 꺼낸 핵심 논리는 하나다. “안전보건 경영방침 설정 의무는 추상적인 목표와 경영방침을 설정하는 것에 불과해, 그 위반이 이번 인명 피해와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
중대재해처벌법 제4조는 사업주와 경영책임자(CEO)가 이행해야 할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규정한다. 그 중 하나가 ‘안전보건에 관한 목표와 경영방침 수립’이다. 1심은 박 대표가 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고, 그것이 화재와 인명 피해로 이어졌다고 판단했다.
2심은 이 판단을 뒤집었다. 경영방침 수립 의무는 본질적으로 추상적 성격이어서, 그 위반만으로 구체적 사망 결과와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에는 연결고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법원은 여기에 덧붙여 기술적 한계도 언급했다.
“리튬 1차 전지에 대한 국내외 연구결과와 현재 기술 수준에 비춰볼 때, 재해 발생을 완벽히 막는 것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또한 박 대표가 피해자 유족 전원에게 배상하고 상해 피해자와 모두 합의한 점도 감형 사유로 반영됐다.
왜 이 판결이 중요한가
중대재해처벌법은 2022년 1월 시행 이후 수십 건의 사건에 적용됐지만, 대법원에서 경영책임자에게 실형이 확정된 사례는 아직 많지 않다. 아리셀 사건은 사망자 규모, 사회적 파급력, 이주노동자 문제까지 결합해 중처법 시행 후 가장 주목받는 사건이었다.
2심이 인과관계를 좁게 해석하면서 생긴 실무적 파장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① 중처법 의무의 층위가 갈린다
중대재해처벌법 제4조의 경영책임자 의무는 성격상 두 범주로 나뉜다.
- 추상적 의무: 안전보건 목표 설정, 경영방침 수립, 조직·인력 구성 → 2심이 “직접 인과관계 인정 어렵다”고 본 영역
- 구체적 의무: 안전관리자 선임, 위험 기계·설비 점검 체계 구축, 작업 중지 권한 현장 부여 등 → 인과관계 인정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영역
이번 판결은 경영방침 미수립이라는 추상적 의무 위반만으로는 인과관계가 부족하다는 시그널이다. 향후 검찰이 경영책임자를 기소할 때 어떤 의무 위반을 공소사실의 중심에 두느냐가 결과를 좌우하게 됐다.
② 민사 합의가 형사 양형에 영향을 미친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 유족 전원 배상 및 상해 피해자와의 합의를 감형 사유 중 하나로 들었다. 중대 산업재해에서도 민사 합의가 형사 양형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선례가 다시 확인됐다. 사고 이후 피해자 지원과 민사 합의를 신속하게 진행하는 것이 형사 리스크 관리의 일부가 된다는 의미다.
③ 대법원 판단이 중처법의 미래를 결정한다
한국노총, 민주노총, 민변, 유족 측은 일제히 대법원 상고를 촉구하고 있다. 검찰도 상고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이 인과관계 판단 기준을 어떻게 정리하느냐에 따라 2022년 이후 수십 건의 중처법 사건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 이 사건은 이미 단순한 ‘1개 기업의 형사사건’을 넘어 중처법 해석 선례 전쟁이 됐다.
실무자가 지금 당장 점검해야 할 것
이번 판결이 역설적으로 확인한 것이 있다. 중처법 책임을 피하려면 ‘추상적 방침 수립’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법원이 추상적 의무를 인과관계 희박의 이유로 삼았다면, 반대로 구체적·실질적 의무 이행이 있었을 때 방어 논리가 강해진다는 뜻이다.
- 경영방침만 수립하지 말고, 위험 요인별 구체적 감소 목표와 이행 일정을 문서화할 것
- 안전관리자·보건관리자에게 실질적 권한 부여 — 위임만 해놓고 예산·권한이 없으면 의미 없다
- 위험성 평가 기록 유지 — “예상 가능한 위험을 인식했느냐”가 인과관계 판단의 핵심 변수
- 현장 작업 중지 권한 실질화 — 위험 감지 시 즉각 중단 지시 가능한 현장 체계 구축
- 외국인 근로자 안전교육 이중 언어 실시 — 아리셀 사건에서 이주노동자 비중이 컸다는 점을 반면교사로
- 화재 대피 훈련 정기 실시 및 기록 보존 — 훈련 실시 여부가 재해 예방 의지 입증에 핵심 증거
실무 포인트 — 경영책임자가 직접 점검할 4가지 ① 위험성 평가 절차의 실제 작동 여부 ② 안전보건 예산·인력의 적정성 ③ 도급·하청 작업의 안전관리 책임 분담 명확성 ④ 중대재해 대응 매뉴얼·훈련 기록. 서류만 갖추는 게 아니라 “실제 작동했다”는 증거가 핵심이다.
앞으로의 전망
이 판결이 “중처법 무력화”인지, “무죄가 아닌 감형”인지를 두고 시각이 엇갈린다. 분명한 것은 두 가지다. 법원이 아직 중처법 인과관계 판단 기준을 최종적으로 정립하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그 기준이 정립될 때까지는 ‘구체적이고 증거로 남는 안전 조치’가 경영책임자를 보호하는 유일한 방어선이라는 것이다.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아리셀 2심은 산업현장에 하나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형사 책임의 무게를 결정하는 것은 방침이 아니라, 현장에서 작동하는 구체적 증거다.
자주 묻는 질문
Q. 아리셀 2심에서 감형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법원은 경영방침 설정 의무가 추상적 성격이라 인명 피해와 직접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피해자 전원 배상·합의도 감형 사유로 반영됐습니다.
Q. 중대재해처벌법 제4조에서 경영책임자 의무는 무엇인가요?
안전보건 목표·경영방침 수립, 안전관리자 선임, 위험 기계 점검 체계 구축, 작업 중지 권한 부여 등이 포함됩니다. 이번 판결은 추상적 의무와 구체적 의무를 구분하는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Q. 대법원 상고가 이루어지면 판결이 바뀔 수 있나요?
검찰과 유족 측 모두 상고를 검토·촉구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이 인과관계 판단 기준을 어떻게 정리하느냐에 따라 중처법 전체 해석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Q. 이번 판결이 다른 중처법 사건에도 영향을 미치나요?
항소심 판결이라 직접적 구속력은 없지만, 추상적 경영방침 의무만으로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논리는 향후 기소 전략과 1심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Q. 기업은 중처법 대응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요?
경영방침 수립에 그치지 말고 위험 요인별 구체적 감소 조치를 문서화하고, 위험성 평가 기록과 안전교육 이수 증거를 체계적으로 보존해야 합니다.
💡 시사점:
① 중대재해처벌법의 인과관계는 “직접 원인”보다 “시스템 부재”로 입증된다.
② 도급·하청 구조라도 원청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확보 의무는 면제되지 않는다.
③ 사고 전 위험성평가·예산·매뉴얼 작동 기록이 가장 강력한 면책 자료다.
#중대재해처벌법#아리셀#인과관계
작성: 서재홍 | N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