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업체 소속 경비원이 10년째 같은 건물에서 일한다. 출입 시간, 순찰 동선, 복장 규정 모두 원청이 정한다. 그런데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 “우리 직원이 아닙니다”라는 답이 돌아온다. 이 모순적 구조가 바로 노란봉투법이 해결하려는 핵심 쟁점이다.
한 줄 요약: 노조법 제2조 제2호 후단의 한 문장이 판단 기준을 ‘직접 지시’에서 ‘구조적 통제’로 바꿨다. 충남지노위 첫 판정과 중노위 3단계 판단 틀이 결합되면서, 의제별 사용자성이 새로운 실무 표준이 됐다.
2026년 3월 10일 시행된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은 바로 이 지점을 정면으로 건드렸다. 제2조 제2호 후단에 단 한 문장을 추가했을 뿐인데, 노사관계의 지형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개정 조문이 바꾼 것
기존 노조법 제2조 제2호는 사용자를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 또는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동하는 자”로 정의했다. 근로계약 당사자만 사용자로 본 것이다.
개정법은 여기에 후단을 덧붙였다.
“이 경우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그 범위에서 사용자로 본다.”
이 한 문장의 의미는 분명하다. 원청이 하청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사실상 좌우하고 있다면, 근로계약이 없더라도 노조법상 사용자에 해당한다. 즉, 단체교섭에 응해야 하고, 부당노동행위 금지 의무도 진다는 뜻이다.
판례 법리의 명문화
사실 이 규정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대법원은 이미 2010다106436 전원합의체 판결(현대중공업 사건)에서 “근로자를 자기의 업무에 종사시키고, 근로자의 기본적인 노동조건 등에 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노조법상 사용자로 인정한 바 있다.
그러나 이 판결 이후에도 실무에서는 사용자성 인정이 극히 제한적이었다. 원청이 직접적으로 업무지시를 내리는 ‘근로자파견’ 수준의 관여가 입증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개정법은 이 기준을 한 단계 완화한 ‘구조적 통제’ 개념으로 전환했다.
구조적 통제, 무엇이 달라졌나
고용노동부가 2025년 12월 확정·발표한 해석지침은 ‘구조적 통제’를 핵심 판단기준으로 제시했다. 이는 원청이 하청 근로자에게 직접 명령을 내리는지가 아니라, 하청 사용자의 의사결정 재량을 본질적·지속적으로 제한하는 구조가 존재하는지를 본다.
구체적으로 다음 영역에서 구조적 통제가 인정될 수 있다.
- 인력 운용 — 원청이 하청 인원 수, 배치, 교체를 사실상 결정
- 근로시간·작업방식 — 원청의 공정 계획에 따라 하청 근로시간이 종속
- 노동안전 — 원청이 안전 규정, 보호구 착용, 작업 중지를 직접 관리
- 임금·수당 — 용역 단가 구조상 하청이 자체적으로 임금을 결정할 여지가 없음
종전 기준이 ‘직접 지시’라는 행위에 초점을 맞췄다면, 개정법 기준은 ‘재량 제한’이라는 구조를 본다. 이 차이는 실무에서 매우 크다.
실무 포인트 — ‘구조적 통제’ 4영역 자체 점검 인력 운용·근로시간·노동안전·임금 4영역 중 2개 이상에서 하청의 재량이 사실상 없으면 사용자성 인정 가능성이 높다. 매년 한 번 도급계약 구조를 4영역 매트릭스로 점검해 두면, 교섭 요구가 들어왔을 때 즉각 응답 라인을 가동할 수 있다.
충남지노위 첫 판정이 보여준 것
시행 24일 만인 2026년 4월 2일, 충남지방노동위원회가 첫 사용자성 인정 판정을 내렸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연구원,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등 공공기관 4곳이 하청 근로자들의 노조법상 사용자로 인정되었다.
충남지노위는 판정 이유에서 “용역계약서 및 과업내용서 등에서 각 공공기관이 하청 근로자들의 안전 관리 및 인력 배치 등에서 실질적인 사용자의 지위에 있다”고 밝혔다. 용역계약서 자체가 구조적 통제의 증거가 된 셈이다.
이 판정에 따라 4개 기관은 7일간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하고, 본격적인 단체교섭 절차에 들어가야 한다. 정당한 사유 없이 교섭을 거부하면 노조법 제81조 제3호(교섭 거부·해태)에 따른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
중노위가 제시한 3단계 판단 틀
중앙노동위원회는 사용자성 판단을 위해 세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 첫째, 교섭 요구 의제에 대해 원청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지위에 있는지
- 둘째, 하청 근로자들의 노무가 원청 사업 수행에 필수적이고 사업체계에 편입되어 있는지
- 셋째, 하청 근로자들의 노동조건을 원청과의 단체교섭으로 집단적으로 결정해야 할 필요성과 타당성이 있는지
주목할 점은 세 가지 기준이 의제별(agenda-specific)로 적용된다는 것이다. 원청이 모든 근로조건에 대해 사용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하는 특정 사항에 한해서만 교섭 의무를 진다. 임금은 하청이 자율적으로 결정하지만 안전 관리는 원청이 좌우한다면, 안전 사항에 대해서만 교섭 의무가 인정되는 구조다.
주의 — 의제별 분리 대응 실패 시 부당노동행위 사용자로 인정된 의제만 교섭하고 나머지는 명확히 구분해서 회신해야 한다. 전면 거부도 전면 수용도 위험하다. 응답 자체를 미루거나 모든 의제를 묶어 거부하면 노조법 제81조 제3호 부당노동행위 → 형사처벌 트랙으로 직행한다.
실무에서 주목할 포인트
1. 용역계약서가 핵심 증거다. 충남지노위 판정에서 보듯, 용역계약서·과업내용서의 문구가 사용자성 판단의 1차 자료가 된다. “인력 배치를 원청과 협의한다”, “안전 규정은 원청 기준을 따른다” 같은 조항이 있다면 구조적 통제의 근거가 될 수 있다.
2. ‘의제별 사용자’에 대비해야 한다. 하청 노조가 교섭을 요구할 때, 어떤 의제에 대해 원청이 사용자인지를 구분해서 대응해야 한다. 모든 의제를 일괄 거부하면 부당노동행위 리스크가 커진다.
3. 이의신청 기한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노동위원회의 사용자성 인정 결정에 불복할 경우, 노조법 제69조에 따라 결정서를 송달받은 날부터 10일 이내에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할 수 있다. 기한 도과 시 판정이 확정된다.
4. 공공부문이 먼저, 민간은 그 다음이다. 첫 판정이 공공기관에서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공공부문은 용역계약이 표준화되어 있고, 과업지시서에 통제 조항이 명시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건설업, 제조업 등 민간 부문으로의 확산은 시간문제다. 이미 100여 개 건설사를 상대로 한 일괄 이의신청이 접수된 상황이다.
핵심 정리
노란봉투법 제2조 제2호 후단은 단 한 문장이지만, 원·하청 관계의 법적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핵심은 ‘직접 지시’에서 ‘구조적 통제’로의 판단기준 전환이다. 충남지노위의 첫 판정은 이 기준이 실제로 작동한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용역계약서 점검, 의제별 교섭 대응 준비, 이의신청 기한 관리 — 이 세 가지가 당장 챙겨야 할 과제다.
💡 시사점:
① ‘직접 지시 → 구조적 통제’로 무게중심 이동. 행위가 아니라 재량 제한이라는 구조가 판단 기준이 됐다. 도급계약 자체를 다시 설계하지 않으면 빠져나갈 수 없다.
② 의제별 사용자성이 새로운 실무 표준. 임금·인력·안전을 의제별로 분리해 응답하지 않으면 전면 부당노동행위 리스크가 발생한다. 응답 매뉴얼의 표 단위가 바뀌어야 한다.
③ 10일 재심 기한이 마지막 방어선. 노동위 결정 송달 후 10일 이내 중노위 재심을 놓치면 그대로 확정. 일정 자체가 위기 대응의 핵심 KPI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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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 개정 조문이 바꾼 것, 어떻게 되나요?
기존 노조법 제2조 제2호는 사용자를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 또는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동하는 자”로 정의했다.. 근로계약 당사자만 사용자로 본 것이다.
Q. 판례 법리의 명문화, 어떻게 되나요?
사실 이 규정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대법원은 이미 2010다106436 전원합의체 판결(현대중공업 사건)에서 “근로자를 자기의 업무에 종사시키고, 근로자의 기본적인 노동조건 등에 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노조법상 사용자로 인정한 바 있다.
Q. 구조적 통제, 무엇이 달라졌나?
고용노동부가 2025년 12월 확정·발표한 해석지침은 ‘구조적 통제’를 핵심 판단기준으로 제시했다.. 이는 원청이 하청 근로자에게 직접 명령을 내리는지가 아니라, 하청 사용자의 의사결정 재량을 본질적·지속적으로 제한하는 구조가 존재하는지를 본다.
Q. 충남지노위 첫 판정이 보여준 것, 어떻게 되나요?
시행 24일 만인 2026년 4월 2일, 충남지방노동위원회가 첫 사용자성 인정 판정을 내렸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연구원,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등 공공기관 4곳이 하청 근로자들의 노조법상 사용자로 인정되었다.
Q. 중노위가 제시한 3단계 판단 틀, 어떻게 되나요?
중앙노동위원회는 사용자성 판단을 위해 세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첫째, 교섭 요구 의제에 대해 원청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지위에 있는지
둘째, 하청 근로자들의 노무가 원청 사업 수행에 필수적이고 사업체계에 편입되어 있는지
셋째, 하청 근로자들의 노동조건을 원청과의 단체교섭으로 집단적으로 결정해야 할 필요성과 타당성이 있는지
주목할 점
작성: 서재홍 | N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