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업체 소속 근로자가 원청에 단체교섭을 요구했는데, 원청이 “우리는 직접 고용한 적 없으니 교섭 의무가 없다”고 거부한다면? 2026년 3월 10일 이전까지는 이 논리가 상당 부분 통했습니다. 그런데 개정 노동조합법(이하 ‘노조법’) 시행 24일 만인 4월 2일, 충남지방노동위원회가 공공기관 4곳에 대해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첫 판정을 내렸습니다. 이 판정이 왜 중요한지, 법은 어떻게 바뀌었고, 실무에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짚어봅니다.
한 줄 요약: 개정 노조법 제2조 제2호 후단 한 문장으로 “고용관계 없음 = 교섭 의무 없음”이라는 공식이 무너졌다. 충남지노위 첫 판정과 함께, 원청의 응답 매뉴얼은 ‘거부’가 아니라 ‘의제별 분리 응답’으로 바뀌어야 한다.
개정 노조법 제2조 제2호, 무엇이 달라졌나
기존 노조법 제2조 제2호는 ‘사용자’를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 또는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동하는 자”로 정의했습니다. 직접 근로계약을 맺은 당사자만 사용자로 보는 구조였습니다.
개정법은 여기에 결정적인 단서를 추가했습니다.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그 범위에 있어서는 사용자로 본다.”
—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 제2호 후단
핵심은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배·결정’입니다. 근로계약이라는 형식이 아니라, 실제로 누가 근로조건을 좌우하느냐는 실질에 따라 사용자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원청이 하청 근로자의 임금 수준, 근무시간, 안전관리, 인력배치 등에 관여해왔다면 단체교섭 의무와 부당노동행위 금지 의무를 동시에 부담하게 됩니다.
충남지노위 판정 — 법 조문이 현실이 되다
2026년 4월 2일, 충남지방노동위원회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등 공공기관 4곳에 대해 하청 노동조합의 교섭 상대방으로서의 사용자 지위를 인정했습니다.
판단의 근거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 용역계약서·과업내용서를 통해 원청이 하청 근로자의 안전관리와 인력배치에 직접 관여해온 사실 확인
- 하청 근로자의 근무 장소, 업무 방식, 작업 환경이 사실상 원청의 결정에 좌우되는 구조
- 이러한 관여가 노조법 제2조 제2호 후단의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배·결정’에 해당
이 판정에 따라 해당 기관들은 7일간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해야 하며, 정당한 이유 없이 교섭을 거부하면 노조법 제81조 제3호(정당한 이유 없는 교섭 거부·해태)에 따라 부당노동행위로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실무 포인트 — 도급 표준계약서 점검 1순위 안전관리·인력배치·근무장소·작업방식 4개 항목이 도급계약서나 과업지시서에 명시돼 있다면 그 자체가 사용자성 증거가 된다. 신규 발주 전 표준 계약 문안에서 ‘실질적 지배’ 표현을 정리하고, 권한 분배를 명확히 하는 것이 1차 리스크 점검이다.
판례는 이미 길을 닦아 놓았다
사실 원청의 사용자성 문제는 개정법 이전에도 대법원에서 다뤄져 왔습니다. 다만, 개정 전에는 명문 규정 없이 판례 법리에만 의존해야 했기에 결론이 사안마다 갈렸습니다.
대법원 2010. 3. 25. 선고 2007두8881 판결 (현대중공업 사건)
대법원은 현대중공업이 사내하청 노조 설립 직후 하청업체를 폐업시키는 방식으로 조합원을 사업장에서 배제한 행위에 대해, 원청인 현대중공업의 부당노동행위(지배·개입, 노조법 제81조 제4호)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근로자의 기본적인 노동조건 등에 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는 부당노동행위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법리를 처음 명확히 한 판결입니다.
대법원 2015. 2. 26. 선고 2010다106436 판결 (현대자동차 사건)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근로자들의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대법원은 원청이 하청 근로자의 업무수행에 대해 상당한 지휘·감독을 행사했다면 실질적으로 근로자파견 관계가 성립한다고 보았습니다. 파견근로자보호법(이하 ‘파견법’) 제6조의2에 따라 2년 초과 사용 시 직접고용 의무가 발생한다는 점도 확인했습니다.
개정 노조법 제2조 제2호는 이러한 판례 법리를 입법으로 명문화한 것입니다. 더 이상 판례의 축적을 기다릴 필요 없이, 법 조문 자체가 원청의 사용자 지위를 인정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실무에서 주목할 포인트
첫째, 교섭 요구에 대한 초기 대응이 중요합니다. 하청 노조로부터 교섭 요구를 받았을 때, 과거처럼 “고용관계 없음”만으로 거부하면 부당노동행위(노조법 제81조 제3호) 성립 위험이 큽니다. 교섭 요구를 받으면 즉시 법률 검토에 착수해야 합니다.
둘째, 용역·도급 계약 구조를 점검해야 합니다. 충남지노위 판정에서 보듯, 용역계약서와 과업내용서가 사용자성 판단의 핵심 증거가 됩니다. 원청이 하청 근로자의 인력배치, 근무시간, 안전관리, 업무지시에 관여하는 내용이 계약서에 포함되어 있다면, 사용자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셋째, ‘그 범위에 있어서는’이라는 단서에 주목해야 합니다. 개정법은 원청을 모든 사항에 대한 전면적 사용자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하는 그 범위 내에서만 사용자 책임을 부담합니다. 예를 들어 원청이 안전관리에만 관여했다면, 교섭 의무도 안전 관련 사항에 한정될 수 있습니다. 교섭 범위를 둘러싼 다툼이 향후 주요 쟁점이 될 것입니다.
넷째, 대기 중인 67건의 추가 판정을 주시해야 합니다. 충남지노위 판정 이후, 전국 노동위원회에 원청 사용자성 관련 질의 67건이 대기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후속 판정이 업종별·사안별로 어떤 기준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실무 기준이 구체화될 전망입니다.
주의 — ‘고용관계 없음’ 한 마디가 형사처벌로 과거 표준 응답이던 “우리 직원 아니라 교섭 의무 없음”은 이제 그대로 노조법 제81조 제3호 부당노동행위 → 형사처벌 트랙. 응답 라인을 표준화하지 않은 회사가 가장 먼저 사고를 낸다. 즉시 응답 매뉴얼 갱신이 필요하다.
핵심 정리
- 개정 노조법 제2조 제2호 후단은 근로계약 없이도 근로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자를 사용자로 봄
- 2026. 4. 2. 충남지노위가 공공기관 4곳에 대해 최초로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 — 개정법의 실효성을 확인한 첫 사례
- 대법원 2007두8881(현대중공업), 2010다106436(현대자동차) 판결이 이미 실질적 지배·결정 기준을 확립, 개정법은 이를 명문화
- 원청은 용역·도급 계약 구조 점검, 교섭 요구 시 즉각 법률 검토, 교섭 범위 특정에 착수해야 함
- 정당한 이유 없는 교섭 거부 시 노조법 제81조 제3호 위반(부당노동행위)으로 구제명령 및 형사처벌 가능
💡 시사점:
① “고용관계 없음” 응답은 폐기. 표준 거부 멘트가 곧 부당노동행위 자술서가 됐다. 하청 노조 교섭 요구 응답 매뉴얼을 즉시 새로 써야 한다.
② ‘그 범위에 있어서는’ 단서가 무기다. 전면 사용자가 아니라 의제별 사용자. 안전·인력·임금을 분리해 응답하는 것이 합법 영역과 협상 카드를 동시에 확보하는 길.
③ 대기 중인 67건이 다음 분기점. 충남지노위 판정만 보고 안심하면 안 된다. 후속 판정에서 업종별 기준이 굳어지기 전에 자체 점검을 끝내야 한다.
#노조법제2조#실질적지배#원청사용자성#충남지노위#의제별교섭
자주 묻는 질문
Q. 개정 노조법 제2조 제2호, 무엇이 달라졌나?
기존 노조법 제2조 제2호는 ‘사용자’를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 또는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동하는 자”로 정의했습니다.. 직접 근로계약을 맺은 당사자만 사용자로 보는 구조였습니다.
Q. 충남지노위 판정 — 법 조문이 현실이 되다, 어떻게 되나요?
2026년 4월 2일, 충남지방노동위원회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등 공공기관 4곳에 대해 하청 노동조합의 교섭 상대방으로서의 사용자 지위를 인정했습니다..
판단의 근거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Q. 판례는 이미 길을 닦아 놓았다, 어떻게 되나요?
사실 원청의 사용자성 문제는 개정법 이전에도 대법원에서 다뤄져 왔습니다.. 다만, 개정 전에는 명문 규정 없이 판례 법리에만 의존해야 했기에 결론이 사안마다 갈렸습니다.
Q. 실무에서 주목할 포인트, 어떻게 되나요?
첫째, 교섭 요구에 대한 초기 대응이 중요합니다.. 하청 노조로부터 교섭 요구를 받았을 때, 과거처럼 “고용관계 없음”만으로 거부하면 부당노동행위(노조법 제81조 제3호) 성립 위험이 큽니다.
Q. 핵심 정리, 어떻게 되나요?
개정 노조법 제2조 제2호 후단은 근로계약 없이도 근로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자를 사용자로 봄
2026.. 4.
작성: 서재홍 | N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