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이 없는 구직자가 한 달 사이 상용직 일자리를 얻을 비율은 1.4%다. 같은 조건에서 경력자는 2.7%. 정확히 절반이다. 이 두 숫자는 한국은행 고용분석팀이 노동시장 이행 자료를 돌려 뽑은 값인데, 발표된 지 1년 반이 지난 지금 오히려 더 굳어졌다.
요즘 청년 고용 이야기는 대부분 AI로 수렴한다. AI가 신입 업무를 걷어가서 입구가 좁아졌다는 설명이다. 그 설명이 틀린 건 아니다. 다만 순서가 뒤집혀 있다. 한국에서 청년의 입직을 먼저 막은 건 알고리즘이 아니라 정기 공채를 접고 수시 경력채용으로 갈아탄 채용 방식 그 자체였고, 그 전환은 생성형 AI가 업무에 들어오기 훨씬 전에 시작됐다.
이 구분이 왜 중요하냐면, 원인이 다르면 처방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AI가 원인이면 HR은 기술 도입 속도를 조절하면 된다. 채용 설계가 원인이면 조절할 대상은 자기 자신이다.
한 줄 요약: 청년 입직이 막힌 원인의 상당 부분은 AI가 아니라 ‘경력직 우선’이라는 채용 관행이며, 그 청구서는 개인의 생애소득 13%와 기업의 승계 실패로 나뉘어 청구된다.
17%p의 격차를 분해하면 보이는 것
20대의 상용직 고용률은 30대보다 17%p 낮다. 이 격차를 ‘어차피 20대는 아직 자리를 못 잡았으니까’로 넘기면 아무것도 안 보인다. 한국은행 분석의 값어치는 이 17%p를 쪼갠 데 있다. 17%p 가운데 7%p가 경력직 채용 확대로 설명된다. 나머지는 학업·군복무·구직 탐색 같은 생애주기 요인이다.
바꿔 말하면 20대와 30대 사이 격차의 40% 남짓은 자연스러운 나이 차이가 아니라 기업이 선택한 채용 방식이 만들어낸 몫이라는 뜻이다. 이건 좀 불편한 숫자다. 채용 담당자 입장에서 수시 경력채용은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검증된 사람을 필요할 때 뽑으니 온보딩 비용도, 실패 비용도 낮다. 그 합리적 선택 수백 개가 합쳐져 시장 전체의 입구를 7%p만큼 좁혔다는 계산서를 지금 받아든 것이다.
1.4%/월
비경력자의 월간 상용직 취업률 — 경력자 2.7%의 절반
한국은행 BOK 이슈노트, 2025
7%p
20대·30대 상용직 고용률 격차 17%p 중 경력직 채용 확대로 설명되는 몫
한국은행 BOK 이슈노트, 2025
2년
첫 취업이 늦어지며 줄어드는 생애 총 취업 기간
한국은행 BOK 이슈노트, 2025
13%
입직 지연으로 하락하는 생애 총소득
한국은행 BOK 이슈노트, 2025
2년 늦은 출발이 평생을 따라온다
가장 무거운 숫자는 마지막 두 개다. 첫 취업이 밀리면 생애 총 취업 기간이 평균 2년 줄고, 그 결과 생애 총소득이 13% 낮아진다. 2년 늦게 시작한 대가가 2년치 임금이 아니라 평생 벌 돈의 8분의 1이라는 얘기다.
왜 손실이 지연 기간보다 커지는가. 임금은 근속과 함께 복리로 붙기 때문이다. 늦게 출발한 사람은 낮은 출발선에서 시작해 그 낮은 기울기를 평생 끌고 간다. 게다가 첫 일자리의 질이 낮으면 다음 이직의 협상력도 낮아진다. 노동경제학에서 흉터 효과(scarring effect)라고 부르는 현상인데, 개인적으로는 이 대목이 이 분석에서 가장 아프게 읽힌다. 기업은 채용 한 건의 실패 비용을 줄였고, 그 비용은 사라진 게 아니라 개인의 40년치 소득으로 옮겨간 것이다.
AI가 무관하다는 말은 아니다. 한국은행이 그해 10월 내놓은 후속 분석은 지난 3년간 청년 일자리가 21.1만 개 줄었고 그중 20.8만 개가 AI 고노출 업종에서 나왔다고 집계했다. 같은 기간 50대 일자리는 20.9만 개 늘었고 그중 14.6만 개가 역시 AI 고노출 업종이었다. 주니어는 줄고 시니어는 느는 ‘연공편향 기술변화’다. 정형화된 업무는 대체되고, 경력에서 나오는 암묵지와 사회적 기술은 오히려 보완재가 된 결과다.
두 분석을 겹쳐 읽으면 그림이 선명해진다. 채용 관행이 먼저 문을 좁혀 놓았고, AI가 그 좁아진 문틈에서 남아 있던 정형 업무마저 걷어갔다. 순서가 이렇다는 게 핵심이다. AI 도입을 늦춘다고 7%p가 돌아오지는 않는다.
flowchart TD
A[정기공채 축소·수시 경력채용 확대] -->|선별 비용 절감| B[비경력자 입직 지연]
B --> C[업무경험·암묵지 축적 지연]
C --> D[사내 승진 후보군 축소]
D -->|내부 후보 부족| E[외부 경력직 영입 의존]
E --> A
E -->|정당성 검증 공백| F[승계 실패 리스크]
그렇게 뽑은 경력직은 왜 꼭대기에서 멈추는가
여기까지는 사회적 비용 이야기다. 그런데 경력직 편중은 그 선택을 한 기업 자신에게도 청구서를 보낸다. 청구 시점이 5년, 10년 뒤라서 잘 안 보일 뿐이다.
이사회가 내부 승계 후보가 부족하다고 판단하면 대개 같은 처방을 쓴다. CEO 한두 단계 아래 자리에 외부에서 검증된 임원을 데려오는 것이다. 사업부 사장, 지역 대표, CFO 같은 자리에 실적이 확실한 사람을 앉히면 승계 벤치가 두꺼워진다고 믿는다. 그런데 실제로 그 자리에서 CEO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사례 — 이사회의 착시리더십 자문사 Future Proven의 창업자이자 골드만삭스에서 Pine Street 리더십 개발 프로그램을 총괄했던 Anand Joshi는 그 이유를 평가 축의 개수로 설명한다. 내부 승계 후보는 ‘이 사람이 회사를 이끌 수 있는가’라는 하나의 축으로 평가받는다. 반면 외부 영입 인사는 두 개의 축으로 평가받는다. 회사를 이끌 역량이 있는가, 그리고 이 회사를 대표할 정당성을 획득했는가. 문제는 대부분의 승계 시스템이 첫 번째 축만 엄밀하게 검증하고 두 번째 축은 사실상 운에 맡긴다는 점이다. 조직이 누구를 신뢰할지에 대한 판단은 승계 논의가 시작되기 한참 전에 이미 굳어져 있다.
정당성은 채용 공고로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위기를 같이 넘긴 기억, 누가 어떤 결정을 했는지에 대한 조직의 집단 기억에서 자라난다. 외부 영입은 역량을 즉시 조달하지만 그 기억만은 조달하지 못한다. 그래서 경력직 영입으로 벤치를 채운 조직은 벤치가 두꺼워 보이는 순간에도 정작 최상단 승계에서는 다시 밖을 쳐다보게 된다. 앞의 도식에서 화살표가 원점으로 돌아오는 이유가 이것이다.
솔직히 이 지점이 채용 담당자에게 가장 설득력 있는 논거라고 본다. 청년 고용은 사회적 책임의 언어로 이야기되는 순간 예산 심의에서 밀린다. 반면 ‘우리 회사 승계 벤치가 비어간다’는 경영 리스크의 언어다. 같은 현상인데 후자만 이사회 안건이 된다는 게 좀 아쉽다.
신입을 뽑는 게 아니라 경험을 설계하는 문제
한국은행 분석이 내놓은 처방은 두 갈래다. 하나는 학교·기업·정부가 산학협력 프로그램과 체험형 인턴 같은 통로로 청년에게 충분한 업무 경험을 쌓게 하자는 것. 다른 하나는 임금 격차와 고용 안정성에서 비롯된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완화해, 대기업 정규직이 아니어도 경력 개발을 시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자는 것이다.
기업 HR이 당장 손댈 수 있는 건 첫 번째 갈래다. 다만 여기서 흔한 오해가 하나 있다. 신입 채용 인원을 늘리는 게 답이라고 읽는 것이다. 수시 경력채용으로 옮겨간 이유가 선별 비용과 실패 비용이었는데, 그 비용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인원만 늘리면 몇 분기 안에 되돌아간다.
실제로 손댈 지점은 비경력자를 검증 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통로다. 체험형 인턴, 프로젝트 단위 계약, 산학 트랙 같은 장치의 본질은 값싼 인력 조달이 아니라 채용 결정에 쓸 증거를 미리 확보하는 것이다. 3개월간 실제 과제를 시킨 기록이 있으면 그 사람은 더 이상 ‘비경력자’가 아니다. 1.4% 대 2.7%의 벽은 능력의 벽이 아니라 증거의 벽이었다.
동시에 점검할 게 하나 더 있다. AI 후속 분석은 AI 노출도가 높아도 보완도가 높은 업종에서는 청년 고용 감소 폭이 작았다고 보고했다. 초급 직무를 ‘AI가 대신할 일’과 ‘사람이 AI를 써서 판단하는 일’ 중 어느 쪽으로 재설계했는지에 따라 결과가 갈렸다는 뜻이다. 신입 자리를 없애는 대신 신입이 AI를 도구로 쓰면서 판단을 배우는 자리로 다시 그린 조직은 같은 기술 파도에서 다른 결과를 얻었다.
되돌릴 수 없다면, 무엇을 설계할 것인가
수시 경력채용은 되돌아가지 않는다. 평생직장 개념이 약해졌고 기업이 필요로 하는 역량은 계속 고도화되고 있다. 정기 공채를 부활시키자는 이야기는 향수일 뿐 전략이 아니다.
남는 질문은 그래서 다르다. 모두가 검증된 경력자만 사려 한다면, 그 경력자는 대체 어디서 만들어지는가. 지금 시장은 아무도 신입을 키우지 않으면서 모두가 3년 차를 찾는 구조로 돌아가고 있다. 개별 기업에게는 여전히 합리적인 선택이고, 시장 전체로는 재고가 바닥나는 중이다. 재고가 바닥났다는 신호는 채용 실패율이 아니라 5년 뒤 승계 위원회의 침묵으로 먼저 온다.
💡 실무 시사점: 청년 고용을 사회적 책임이 아니라 승계 리스크의 언어로 번역해 이사회에 올릴 것. 신입 채용 인원을 늘리기 전에 비경력자의 증거를 확보하는 통로(체험형 인턴·프로젝트 계약·산학 트랙)부터 설계해야 몇 분기 만에 되돌아가지 않는다. 초급 직무를 없앨지 AI 보완형으로 재설계할지가 5년 뒤 승진 후보군의 두께를 가른다.
#경력직채용#청년고용#수시채용#리더십파이프라인#승계관리
참고 링크
- 한국은행, “BOK 이슈노트 제2025-1호 — 경력직 채용 증가와 청년 고용” (2025)
- Harvard Business Review, “Why Lateral Hires Rarely Become CEO” (2026)
- 한국은행, “BOK 이슈노트 제2025-30호 — AI 확산과 청년고용 위축” (2025)
작성: 서재홍 | N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