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에는 정규직보다 계약직이 더 많다. 13만 명의 외부 인력이 12만 명의 정식 직원을 넘어선 지 이미 오래다. 페이스북도 비슷한 규모의 계약 인력을 굴린다. 맥킨지는 한술 더 떠서 “조직 가치의 95%를 5%의 직원이 만든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나머지 95%는 대체 뭔가. 이 숫자들을 나란히 놓으면 한 가지 불편한 그림이 그려진다. 기업이 ‘일회용 인력’으로 유연성을 확보하고 AI로 생산성을 끌어올린다는 공식은 정반대로 작동한다 — 안전망이 생산적 이직을 만들고, AI는 판단력 없는 속도를 양산한다.
계약직이 정규직을 넘어선 세계
MIT 슬론의 폴 오스터만은 올해 출간한 연구에서 현대 노동시장의 인력을 세 유형으로 나눈다. 파견 계약직, 프리랜서, 그리고 주변부 직원(marginal employee)이다. 세 번째 범주가 핵심이다. 법적으로는 직원이지만 경력 경로와 단절된 저임금 파트타임 — 높은 이직률이 기능으로 설계된 자리들이다. 이들에게는 세금 원천징수, 건강보험, 고용보험, 차별금지법 적용이라는 전통적 고용의 보호 요새가 적용되지 않거나 형식적으로만 적용된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국가데이터처(구 통계청)가 발표한 2026년 7월 고용동향을 보면 전체 취업자는 2,913.6만 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10.8만 명 늘었고, 15~64세 고용률은 70.3%로 역대급이다. 숫자만 보면 탄탄하다. 그러나 그 안을 뜯으면 풍경이 달라진다. 상용 근로자는 증가했지만, 임시직과 일용직도 각각 4.6만, 4.7만 명씩 늘었다. 30대 이상에서 고용이 견고한 반면, 청년(15~29세) 실업률은 6.8%로 전년보다 1.3%p 급등했다. 전체 평균 실업률 2.6%의 거의 세 배다.
13만 명
구글이 운용하는 외부 계약 인력 — 정규직 12만 명보다 많다
MIT Sloan — Osterman (2026)
6.8%
한국 청년(15~29세) 실업률, 전년 대비 +1.3%p 급등
국가데이터처 — 2026년 7월 고용동향
95%
“조직 가치의 95%를 5%의 직원이 만든다” — 나머지는?
McKinsey 분석 (MIT Sloan 재인용)
두 데이터를 겹쳐보면 구조가 보인다. 기업은 핵심 인력 5%에 투자를 집중하고 나머지는 ‘대체 가능한 부품’으로 관리하려 한다. 한국의 청년 고용 악화는 단순한 경기 문제가 아니라, 이 글로벌 전략이 작동하는 현장에서 진입로가 좁아지고 있다는 신호다.
안전망이 생산성을 높인다는 역설
일회용 인력 전략의 전제는 명확하다. 해고가 쉬우면 기업이 유연해지고, 유연하면 생산성이 올라간다. 그런데 이 전제를 정면으로 뒤집는 연구가 있다.
올해 발표된 NBER 워킹페이퍼 ‘신중한 경력'(Cautious Careers)은 6,000명 이상의 미국 근로자를 대상으로 이직 의사결정을 분석했다. 결론은 반직관적이다. 근로자들은 실업 위험이 1%p 높아질 때마다 1.63%의 임금 프리미엄을 요구한다. 다시 말해, 안전망이 불완전하면 사람들은 더 나은 일자리가 있어도 움직이지 않는다. 위험을 감수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 과잉 신중함의 경제적 비용이 크다. 연구진의 일반균형 모형에 따르면, 고용보험이 완전하게 기능할 경우 직업 이동성은 12% 증가하고 총요소생산성은 1.3% 상승한다. 안전망이 사람을 게으르게 만든다는 통념과 정반대다. 안전망은 사람을 더 생산적인 자리로 옮겨가게 만든다.
충돌 — 유연성의 두 얼굴 기업은 고용 보호를 줄여야 유연해진다고 믿는다(MIT Sloan이 문서화한 전략). 그러나 NBER 연구는 고용 보호가 강화될 때 근로자가 더 생산적으로 이동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연성을 추구하는 기업의 전략이 오히려 노동시장 전체의 유연성을 깎아먹고 있는 셈이다.
솔직히 이 숫자를 처음 봤을 때 꽤 놀라웠다. 고용보험 하나로 생산성이 1.3% 오른다는 건, 많은 기업이 기술 투자에 쏟아붓는 비용 대비 효율이 압도적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기업이 이 반대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AI가 빠르게 만든 건 코드가 아니라 나쁜 결정이다
한국 고용노동부는 올해 293개 기업이 ‘워라밸+4.5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고 발표했다. 연간 목표 220개사를 133% 초과 달성한 수치다. 성공 사례도 인상적이다. 부산도시철도운영은 주 45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이면서 43명을 신규 채용하고 고객만족도를 1.77점 높였다. 에코월드팜은 AI 기반 업무 자동화로 연간 근무시간을 648시간에서 600시간으로 줄이고도 생산성을 유지했다.
이건 좋은 뉴스다. 그러나 여기서 한 발 떨어져서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AI가 정말로 ‘생산성’을 올린 건가, 아니면 ‘속도’를 올린 건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현장의 관찰 보고가 이 구분을 날카롭게 찌른다. AI 코드 생성 도구가 보급되면서 한 명의 엔지니어가 오전 중에 25,000줄의 코드를 생성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그 코드를 이해하는 데는 여전히 사람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한 명이 하루에 10개의 풀 리퀘스트를 올리면 10배 생산성처럼 보이지만, 세 명의 동료가 이틀을 리뷰와 수정에 쓰면 팀 전체 생산성은 오히려 떨어진다.
한 줄 요약: “구현은 싸졌다. 당신이 받는 보수는 좋은 결정을 내리는 데 대한 것이다.”(Implementation is cheap. You are paid to make good decisions.)
핵심은 이것이다. AI가 데이터베이스 테이블 하나를 추가하는 데는 10분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그 결정이 잘못됐을 때 되돌리는 데는 — 마이그레이션 계획, 장애 방지, 데이터 정합성 검증 — 몇 달이 걸린다. 나쁜 결정이 좋은 결정보다 빠르게 쌓인다. 에코월드팜의 성공 사례가 진짜인지 아닌지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다만, AI 도입이 곧 생산성이라는 등식은 너무 쉬운 결론이다.
293개사
한국 ‘워라밸+4.5 프로젝트’ 참여 기업 — 목표 대비 133% 초과
고용노동부 —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 (2026.8)
25,000줄
AI 에이전트로 오전 중 생성 가능한 코드량 — 리뷰에는 여전히 사람의 시간 필요
Herrengt — AI Engineering 현장 관찰 (2026)
1.3%
고용보험 완비 시 총요소생산성 상승 — 기술 투자 대비 높은 효율
NBER — Cautious Careers (2026)
진입로가 사라진 세대
다시 한국 청년 고용으로 돌아오자. 실업률 6.8%라는 숫자보다 더 무거운 건 그 이면의 구조다. 7월 기준 15~29세 경제활동참가율은 47.1%에 불과하다. 절반이 넘는 청년이 아예 노동시장 밖에 있다. 비경제활동인구 — 학생, 구직 포기자, ‘그냥 쉬고 있는’ 사람들 — 이 해마다 늘고 있다.
ILO가 올해 발표한 보고서 ‘AI 시대의 스킬 지형 변화’는 이 현상의 구조적 뿌리를 짚는다. AI가 요구하는 역량은 상위 인지 능력과 사회정서적 역량이다. 좁은 전문 기술이 아니라 복잡한 상황에서 판단하고 협업하는 능력 — 이른바 AI 리터러시까지 포함하는 광의의 역량이다. 문제는 이런 역량이 현장에서만 길러진다는 점이다.
여기서 세 가지 흐름이 하나로 합류한다. 기업은 핵심 5%에만 투자하고 나머지를 대체 가능하게 만든다(일회용 인력 전략). AI는 구현 작업을 값싸게 만들어 중간 수준 일자리를 소거한다(“구현은 싸다, 판단력에 보수를 받는다”). 그리고 ILO가 말하는 ‘상위 역량’은 바로 그 중간 수준 일자리에서의 경험을 통해 축적된다.
사례 — 소프트웨어 업계의 경고 AI 이전에는 중급 엔지니어가 코드를 짜면서 시스템 설계를 배웠다. 지금은 AI가 코드를 짜고, 선임이 판단을 내린다. 그 사이에서 배울 자리가 사라졌다. 한 엔지니어의 관찰: “왜 이렇게 구현했느냐고 물으면, 동료가 Claude 대화 링크를 보내준다. 그 대화 어딘가에 설계 결정이 묻혀 있다.” 시스템에 대한 지식이 사람이 아니라 AI 대화 로그에 남는 세계다.
개인적으로는 이 대목이 가장 걱정스럽다. 청년 고용 문제를 ‘일자리 수’ 문제로만 보면 해법은 단순해진다 — 더 많이 뽑으면 된다. 그러나 진짜 문제가 ‘판단력을 키울 진입로의 소멸’이라면, 뽑아도 성장하지 못하는 구조를 고치지 않는 한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5%가 95%를 만든다”는 믿음의 대가
맥킨지의 저 유명한 분석을 다시 꺼내보자. 조직 가치의 95%를 5%가 만든다면, 합리적 경영자의 선택은 명확하다. 5%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최소 비용으로 운영한다. 일회용 인력 전략의 이론적 기반이다.
그러나 NBER의 연구는 이 논리에 치명적 결함이 있다고 지적한다. 상위 5%의 생산성은 진공 상태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들이 더 나은 자리로 이동할 수 있었던 건 — 더 생산적인 매칭을 찾을 수 있었던 건 — 실패해도 괜찮다는 안전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용보험이 완비된 환경에서 직업 이동성이 12% 높아진다는 것은, 안전망 없이는 상위 5%조차 최적의 자리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ILO 보고서가 강조하는 ‘역량'(capabilities) 개념도 같은 맥락이다. ILO는 좁은 기술(skill)이 아니라 불확실성 속에서의 회복력, 적응력, 판단력을 미래 핵심 역량으로 꼽는다. 이 역량은 안전한 시행착오 환경에서 자란다. 해고가 쉬운 환경, 경력 경로가 없는 계약직 자리, AI가 구현을 대체해버린 현장에서는 자라지 않는다.
AI 시대의 역설 AI가 구현을 대체하면서 ‘판단력’의 시장 가격은 올라갔다. 그러나 판단력을 키울 수 있는 중간 단계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다. 좋은 엔지니어는 더 빨라졌지만, 나쁜 결정을 내리는 엔지니어는 더 비싸졌다 — 그들이 AI의 속도로 나쁜 결정을 쌓기 때문이다. 기업이 원하는 ‘상위 5%’를 키우려면, 역설적으로 나머지 95%를 위한 진입로와 안전망이 필요하다.
속도와 판단력 사이에서
부산도시철도운영의 사례를 다시 보자. 이 회사가 주 45시간을 40시간으로 줄이면서 43명을 신규 채용하고도 고객만족도를 올린 비결은 뭘까. 보도자료를 보면 교대제를 개편하고 업무 프로세스를 최적화했다. 여기서 눈에 띄는 건 AI가 아니라 신규 채용이다. 시간을 줄이되, 사람을 늘렸다.
반면 에코월드팜은 AI 기반 자동화로 18명의 사무직 연간 근무시간을 48시간 줄이면서 3명을 채용했다. 소규모 농업·바이오 기업에서의 성공 사례다. 두 케이스를 나란히 놓으면 한 가지가 분명해진다. 노동시간 단축이 성공하려면 사람에 대한 투자와 기술에 대한 투자가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 둘 중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
NBER 연구의 핵심 발견도 같은 구조다. 고용보험(사람에 대한 안전망 투자)이 있을 때 근로자는 더 생산적인 자리를 찾아 이동한다(기술과 역량의 최적 배분). 안전망 없이 기술만 투자하면 — AI를 도입하되 사람은 일회용으로 관리하면 — 최적 배분이 일어나지 않는다.
한국 HR이 지금 점검해야 할 것
여기까지 정리하면, 한국 기업이 직면한 상황은 이렇다. 전체 고용률은 역대급이지만 청년은 빠지고 있다. AI는 속도를 올렸지만 판단력을 키울 자리를 줄이고 있다. 글로벌 기업은 핵심 인력 외에는 일회용으로 관리하는 전략을 가속하고 있지만, 그 전략이 실제로 생산성을 깎아먹는다는 실증 근거가 쌓이고 있다.
이건 좀 냉정하게 봐야 한다. 주 4.5일제의 확산은 긍정적 신호지만, 그것이 ‘더 적은 시간에 같은 산출’이라는 효율 서사에만 머무르면 불완전하다. 진짜 질문은 효율이 아니라 누구에게 기회가 돌아가는가다.
💡 실무 시사점 — HR이 이번 분기에 점검할 3가지:
① 중간 단계 일자리를 AI가 대체하지 않았는지 점검. 주니어 인력이 판단력을 기를 수 있는 업무가 남아 있는지 확인한다. AI가 구현을 대신하더라도, 리뷰·설계·의사결정 참여 기회를 구조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② 유연 인력 비율과 이직률의 상관관계 재점검. 계약직·파견 비율이 높은 부서에서 핵심 인력의 이직률도 함께 올라가고 있다면, NBER 연구가 말하는 ‘과잉 신중함’이 작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안전망(내부 이동 경로, 재배치 프로그램)이 이탈을 막는 장치가 된다.
③ AI 도입의 성과 지표를 ‘속도’에서 ‘판단 품질’로 전환. 코드 생산량, 처리 건수, 자동화율이 아니라 — 오류율, 재작업 비용, 의사결정 소요시간을 핵심 지표로 삼아야 AI 도입의 진짜 생산성을 측정할 수 있다.
#일회용인력#AI생산성#청년고용#안전망#판단력경제
참고 링크
- MIT Sloan, “Disposable Workers: The Transformation of Employment” (2026)
- NBER, “Cautious Careers: Job Mobility under Incomplete Markets” (2026)
- 국가데이터처, “2026년 7월 고용동향” (2026)
- 고용노동부, “실노동시간 단축, ‘지속·확산’ 안착 방안 모색” (2026)
- ILO, “Changing Landscape of Skills in the Age of AI” (2026)
- Herrengt, “AI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의 중산층을 없애고 있다” (2026)
작성: 서재홍 | N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