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우위가 3년을 못 버티는 시대다. 한때 10년짜리 전략이 통하던 시장이 이제 18개월 만에 뒤집힌다. 그런데 HR 팀은 여전히 ‘3개년 인재 로드맵’을 짜고 있다. 이 간극이 바로 지금 한국 기업들이 체감하는 인재 전략의 피로감이다.
전략학자 리타 맥그래스(Rita McGrath)는 이 현상을 ‘일시적 우위(Transient Advantage)’라고 부른다. 기존 경쟁 전략의 교과서—매력적인 시장을 찾고, 진입장벽을 쌓고, 포지션을 방어하는 방식—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HR 관점에서 번역하면 이렇다. ‘이 직무를 잘 수행하는 사람을 뽑아서 오래 붙잡아두는’ 전략이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다.
한 줄 요약: 경쟁우위가 빠르게 소멸하는 시대에 한국 HR은 ‘사람을 붙잡는 구조’에서 ‘스킬이 흐르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설계는 AI·데이터 없이는 불가능하다.
우위가 사라지는 속도, HR은 얼마나 쫓아가고 있나
2026년 한국 기업들이 직면한 공통 과제는 단순하다. 지금 잘 팔리는 제품, 지금 운영하는 서비스, 지금 배치된 인력이 2년 뒤에도 유효한가라는 질문이다. 솔직히,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하는 CHO는 거의 없다.
문제는 HR 시스템이 이 속도에 맞춰 설계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연 1회 성과평가, 3년 단위 CDP(경력개발계획), 5년 주기 직무체계 개편. 이런 구조는 우위가 10년 이상 지속되던 시대의 산물이다. 지금은 아니다.
73%
AI 기반 채용 솔루션 도입 또는 검토 중인 국내 상위 100대 기업 비율
class101 HR 트렌드 리포트, 2026
53%
AI 기술 도입에 따른 업무 프로세스 재설계가 핵심 과제라고 답한 기업 비율
KPC 2026 HRD Trend Report
230%
AI 역량 보유 인재 수요 전년 대비 증가율
class101 HR 채용 트렌드, 2026
이 수치들이 말하는 건 도구를 샀다는 것이지, 전략을 바꿨다는 게 아니다. 채용 AI를 도입했는데 직무 기술서는 5년 전 것을 쓰고, 리스킬링 예산은 교육비 항목 한 줄에 묻혀 있고, 성과평가는 여전히 팀장 주관으로 돌아간다. 이건 핵심이다—도구가 전략을 대체하지 못한다.
‘전략적 중심(Strategic Center)’이 없는 HR의 위험
맥그래스가 제시하는 해법은 ‘전략적 중심(Strategic Center)’이다. 조직이 근본적으로 무엇을 달성하려 하는지를 명확히 정의하면, 리더는 무엇에 집중하고 무엇을 거절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팀원들은 매번 허락을 구하지 않아도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다.
HR 언어로 옮기면 이렇다. 우리 조직이 어떤 역량으로 경쟁하는지를 명확히 해야, 어떤 사람을 뽑고, 어떤 스킬을 키우고, 어떤 직무를 없앨지 결정할 수 있다. 이게 없으면 인재 전략은 부서별 요청에 끌려다니는 운영 업무로 전락한다.
한국 HR 현장에서 이건 좀 뼈아픈 지점이다. 많은 조직에서 HR은 여전히 ‘제도를 유지하는 팀’으로 운영된다. 평가제도 운영, 연봉 협상 지원, 채용 공고 관리. 이런 업무가 나쁜 게 아니라, 전략이 없는 운영은 조직이 방향을 잃었을 때 브레이크 역할밖에 못 한다는 게 문제다.
사례 — 전략 중심 재설계국내 한 중견 제조사는 2025년 사업 포트폴리오를 스마트팩토리 솔루션으로 전환하면서 HR 전략도 함께 바꿨다. ‘생산 전문가 확보’에서 ‘데이터 해석+설비 이해 복합 스킬 보유자’로 채용 기준을 재정의했고, 기존 생산직 2,300명 중 560명을 대상으로 디지털 리스킬링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18개월 뒤 외부 채용 비용은 23% 줄었고, 내부 이동으로 충원된 직무 비율은 41%로 올라갔다. 변화의 출발점은 ‘우리가 어떤 역량 회사인가’라는 질문이었다.
스킬 기반 HR로의 전환 — 한국 노동법과의 충돌 지점
스킬 기반 채용과 내부 이동 유연화는 글로벌 HR 트렌드의 핵심이다. 그런데 한국 노동법 환경에서 이걸 그대로 적용하면 예상치 못한 마찰이 생긴다.
근로기준법 제23조는 정당한 이유 없는 전보·직무 변경을 제한한다. 즉, 조직이 스킬 매트릭스를 기반으로 직원을 유동적으로 재배치하려 해도,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직무나 근무지와 다른 배치는 근로자 동의 없이 강제할 수 없다. 실무에서는 이게 내부 인재 유동성의 가장 큰 장벽이 된다.
해법은 제도 설계 단계에서 찾아야 한다. 취업규칙에 ‘직무 순환 및 역량 개발을 위한 직위·직무 조정 가능’ 조항을 명시하고, 채용 단계에서 ‘직무 유연성 동의’를 근로계약에 포함시키는 방식이다. 이미 일부 IT 기업과 스타트업들은 이런 구조를 쓰고 있다. 문제는 기존 직원에게 소급 적용이 안 된다는 점이다—이 경우는 협의와 인센티브 설계가 병행돼야 한다.
flowchart TD
A[스킬 기반 재배치 필요] --> B{근로계약서 직무 명시?}
B -->|명시됨| C[근로자 동의 필요\n근로기준법 제23조]
B -->|포괄적 기재| D[취업규칙 범위 내\n재배치 가능]
C --> E[동의 획득 or\n인센티브 협상]
D --> F[직무 전환 시행]
E --> F
F --> G[스킬 평가·추적\nHR Analytics]
💡 AI·도구로 측정/자동화 가능한 부분
- 스킬 인벤토리 자동화: Workday Skills Cloud, SAP SuccessFactors 같은 플랫폼은 직원 이력서·프로젝트 이력을 AI로 파싱해 스킬 맵을 자동 생성한다. 한국에서는 클랩(CLAP), 그리팅 등 국내 솔루션이 유사 기능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 직무 소멸 예측: AI가 산업별 직무 변화 데이터를 분석해 2~3년 내 수요가 줄어들 직무를 식별한다. 조기 리스킬링 대상을 선정하는 데 활용 가능하다.
- 내부 이동 매칭: LinkedIn Talent Insights나 국내 HR SaaS들이 제공하는 내부 공모 매칭 알고리즘은 직원 스킬과 공석 직무의 적합도를 자동으로 계산한다.
- 리스킬링 ROI 추적: 교육 이수 후 직무 성과 변화를 자동으로 연결해 교육 투자 대비 효과를 데이터로 보여주는 기능이다. ‘교육 많이 했음’에서 ‘교육 효과를 측정함’으로 전환하는 핵심 도구다.
- 전보 리스크 스크리닝: 근로계약서 조항과 제안 직무 변경 사항을 비교해 노동법 리스크를 사전에 플래깅하는 자동화—이건 아직 국내에서 많이 안 쓰이는데,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구현 가능한 영역이라고 본다.
💡 실무 시사점: 일시적 우위 시대에 HR의 역할은 ‘좋은 사람을 오래 붙잡는 것’에서 ‘조직이 방향을 바꿀 때 스킬이 따라가는 구조를 만드는 것’으로 바뀐다. 스킬 맵, 내부 이동 프로세스, 리스킬링 추적—이 세 가지가 없으면 전략 전환 때마다 외부 채용으로 비용을 쏟아붓는 구조가 반복된다. 그리고 이 구조를 운영하는 데 AI 도구는 선택이 아니라 기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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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링크
- Harvard Business Review, “Competing In a World of Transient Advantage” (2026)
- class101 HR 블로그, “2026 HR 채용 트렌드: 스킬 중심 채용의 시대” (2026)
- 워크로, “인사노무 관리에서의 AI 도입과 대응 전략” (2025)
- KPC, “2026 HRD Trend Report” (2026)
작성: 서재홍 | N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