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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O가 전략적 파트너가 될 수 없는 구조적 이유 — 이중 구속을 풀어야 할 때

2년 연속 같은 말 — “리더 육성이 최우선”이라는 반복

Gartner가 매년 발표하는 CHRO 우선순위 보고서가 올해도 나왔다. 결론부터 말하면 달라진 게 거의 없다. ‘리더·매니저 개발’이 2025년에 이어 2026년에도 1위를 차지했다. CHRO 75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46%가 이 항목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고, 2위는 ‘HR 테크·AI 전략’, 3위는 ‘변화관리와 조직 회복력’이다. 순서가 살짝 바뀌었을 뿐, 골격은 2025년 판과 거의 동일하다.

솔직히, 이 반복 자체가 하나의 신호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계속 설문 1위에 머무른다. 기업들이 “리더를 키우겠다”고 매년 선언하면서도, 정작 현장의 리더들은 변화를 이끌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느낀다. 실제로 CHRO의 64%가 “현재 리더들은 사람들을 지속적 변화 속에서 이끌 마인드셋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리더를 키우겠다는 의지와 리더가 준비되지 않았다는 현실 — 이 간극이 2년째 좁혀지지 않고 있다.

한 줄 요약: CHRO가 ‘전략적 파트너’로 격상되고 있지만, 직원 옹호와 경영 방어라는 이중 구속(double bind)을 풀지 않는 한 그 타이틀은 빈 껍데기에 머문다.

‘사람을 돌봐라, 회사를 지켜라’ — CHRO의 불가능한 임무

C-suite에서 가장 불가능한 자리가 어디냐고 물으면, 개인적으로는 단연 CHRO라고 답하겠다. 이 자리에는 근본적 모순이 내장되어 있다. 한쪽에서는 조직의 ‘감정적 인프라’ 역할을 요구받는다. 직원의 성장을 지원하고, 문화를 직조하고, 신뢰를 쌓아야 한다. 다른 쪽에서는 ‘컴플라이언스 방패’로 기능해야 한다. 조사를 진행하고, 해고를 실행하며, 법적 리스크를 차단해야 한다.

“직원을 돌봐라, 그러면서 동시에 회사를 보호해라(Nurture the people; protect the business).” 이것은 교과서적인 이중 구속이다. 두 가지를 모두 잘하라는 지시가 주어지지만, 한쪽을 성실히 수행하면 다른 쪽의 기대를 배신하게 되는 구조다. 직원 편에 서면 경영진에게 “너무 무르다”는 평가를 받고, 경영진 편에 서면 현장에서 “HR은 결국 회사 편”이라는 냉소가 돌아온다.

이건 좀 안타까운 구조인데, HR 종사자의 80% 이상이 여성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이중 구속은 젠더 역학까지 겹친다. ‘돌봄’의 기대는 과도하게 부과되고, ‘방어’의 권한은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 비대칭이 발생한다. 이 구조적 모순을 개인의 역량 문제로 치환하는 순간, 해법은 영영 나오지 않는다.

숫자가 보여주는 CHRO의 현재 좌표

46%

리더·매니저 개발을 최우선으로 꼽은 CHRO 비율 (2년 연속 1위)

Gartner / 2026

34%

조직 문화를 일상 업무에 녹였을 때 개선되는 직원 성과

Gartner / 2026

30%

변화를 효과적으로 이끌 준비가 된 리더가 있다고 답한 CHRO

Gartner / 2026

65%

맞춤형 복리후생을 원하지만, 실제 제공받는 비율은 14%에 불과

Wellhub / 2025

이 숫자들을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CHRO의 절반 가까이가 리더 개발을 외치지만, 정작 그 리더들이 준비됐다고 보는 CHRO는 10명 중 3명뿐이다. 문화를 현장에 심으면 성과가 34% 오른다는 데이터가 있지만, 직원들이 실제로 원하는 맞춤형 복지를 제공하는 기업은 7곳 중 1곳에 불과하다. 선언과 실행 사이의 간극이 데이터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한국 현장에서 이 문제가 더 날카로운 이유

글로벌 CHRO 담론을 한국에 그대로 대입하기엔 맥락이 다르다. 한국 기업의 인사 조직은 오랫동안 ‘관리 기능’에 머물러 왔다. 채용·급여·퇴직 처리라는 행정 업무가 HR의 정체성이었고, 전략적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비즈니스 파트너’라는 개념은 외국계 기업이나 일부 IT기업에서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2~3년 사이 풍경이 달라졌다. 크래프톤, 카카오, 쿠팡 같은 기업들이 HRBP(HR Business Partner) 직무를 본격 채용하기 시작했고, 대기업과 중견기업까지 확산되는 추세다. 하지만 핵심은 여기에 있다 — HRBP라는 직함을 도입했다고 해서 이중 구속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략적 파트너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기존의 노무관리·징계·해고 업무도 계속 맡아라”는 식으로 업무가 얹혀지는 경우가 많다.

사례 — 국내 제조업 A사HRBP 제도를 도입한 국내 제조 대기업에서, HRBP 담당자가 사업부 리더와 조직 설계를 논의하던 중 같은 사업부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조사를 동시에 맡게 된 사례가 있다. 전략 파트너로서 신뢰를 쌓아야 하는 리더에게, 다음 날 조사관으로 질문을 던져야 하는 상황. 이 모순은 담당자 개인의 번아웃으로 귀결됐고, 6개월 만에 해당 포지션에서 이탈했다. ‘역할 분리’ 없이 타이틀만 바꾼 전형적 실패 사례다.

한국은행의 2026년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 따르면, 2026년 취업자 수 증가규모는 17만 명으로 전망되며, 서비스업이 고용을 주도하는 반면 제조업·건설업은 감소세가 지속되고 있다. 산업 구조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HR에 요구되는 역할은 더 복잡해지고 있지만, 이를 감당할 구조적 권한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서, 이 이중 구속은 풀리긴 하는 걸까

매년 같은 보고서, 같은 순위, 같은 결론. “리더를 키워야 한다”는 말은 맞지만, 정작 리더를 키울 사람인 CHRO 자신이 구조적 모순에 갇혀 있다면 무엇부터 풀어야 할까.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돌봄’과 ‘방어’를 한 사람에게 동시에 맡기지 않는 것. 글로벌 선도 기업들은 이미 Employee Relations(직원관계)와 HR Business Partner 기능을 물리적으로 분리하기 시작했다. 조사와 징계는 독립된 ER 조직이, 전략과 조직개발은 HRBP가 담당하는 구조다. 역할이 분리되면 신뢰의 충돌도 줄어든다.

한국 기업에게 이건 아직 낯선 접근이다. 하지만 HRBP를 도입하면서 기존 업무를 빼지 않는 현재의 방식은, CHRO의 전략적 전환을 선언하면서 실행은 2년째 제자리인 글로벌 상황의 축소판이다. CEO의 60%가 CHRO를 ‘효과적인 비즈니스 파트너’라 평가하지만, 그 평가가 진짜 전략적 권한 이양을 수반하는지는 다른 문제다.

이중 구속을 푸는 열쇠는 개인의 역량 강화가 아니라 조직 설계에 있다. “더 잘하라”가 아니라 “다르게 나눠라”가 먼저다.

💡 실무 시사점: HRBP 제도를 도입했거나 도입을 검토 중인 기업이라면, 가장 먼저 점검해야 할 것은 역할 분리다. 전략 파트너와 조사·징계 기능이 같은 사람에게 얹혀 있다면, 이중 구속은 해소되지 않는다. Employee Relations 기능을 별도 라인으로 분리하는 것이 구조적 해법의 출발점이다.

#CHRO #이중구속 #HRBP #역할분리 #조직설계 #HR전략

참고 링크

작성: 서재홍 | N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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