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간 한국에서 청년(15~29세) 일자리 21만 1천 개가 사라졌다. 같은 기간 50대 일자리는 20만 9천 개 늘었다. 숫자의 대칭이 기묘하다. 청년이 잃은 만큼 중장년이 얻었고, 그 이동의 98.6%가 AI 고노출 업종에서 벌어졌다. 이건 단순한 세대 교체가 아니다. 올해 4월 시카고대·컬럼비아대 연구진이 발표한 일반균형 모델은 이 현상에 정확히 들어맞는 메커니즘을 제시한다. 자동화 비용이 내려갈수록 생산성이 올라간다는 통념은 절반만 맞다 — 조직이 이미 ‘저학습 균형’에 빠져 있다면, AI가 저렴해질수록 인적자본 함정은 오히려 깊어진다.
한 줄 요약: AI 도입 비용을 낮추는 정책은 ‘고학습 균형’ 조직에만 유효하다. 한국 노동시장 데이터는 이미 ‘저학습 균형’으로의 전환을 가리키고 있으며, 지금의 보조금 방향은 인적자본 함정을 심화시킨다.
같은 기술이 정반대 결과를 만드는 구조
시카고대 에릭 허스트를 포함한 4인의 연구진은 자동화·학습·경력 역학을 하나의 일반균형 모델로 결합했다. 핵심은 간단하다. 노동자는 업무를 수행하면서 역량을 쌓는다(learning-by-doing). AI가 특정 업무를 대체하면 그 업무를 통해 축적되던 역량도 함께 사라진다. 이 모델은 동일한 경제에 두 가지 안정 균형이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고학습 균형에서는 자동화 비용 하락이 생산성과 복지를 끌어올린다. 관리자가 ‘프런티어 유지’에 투자하고, 주니어에게 새로운 업무를 열어주기 때문이다. 저학습 균형에서는 정반대다. 자동화 비용이 내려갈수록 기업은 주니어 업무를 더 빠르게 AI로 돌리고, 학습 기회가 줄어든 주니어는 성장하지 못하며, 관리자 후보가 고갈되면서 경제 전체가 인적자본 함정에 빠진다.
개인적으로는 이 모델의 가장 불편한 함의가 여기 있다고 본다. 고학습이냐 저학습이냐는 기술 자체의 속성이 아니라 조직이 주니어를 어떻게 배치하느냐의 문제다. 같은 AI를 도입해도, 신입에게 새 업무를 설계해주는 조직과 신입 채용을 줄이는 조직은 완전히 다른 균형으로 향한다.
21만 대 21만 — 대칭이 드러내는 균형의 정체
-21.1만 개
청년(15~29세) 일자리 감소 3년 누적
한국은행 이슈노트 제2025-30호
+20.9만 개
50대 일자리 증가 같은 기간
한국은행 이슈노트 제2025-30호
98.6%
감소 일자리 중 AI 고노출 업종 비중
파이낸셜뉴스 (2026.6)
한국은행이 ‘연공편향적 기술변화(seniority-biased technological change)’라고 명명한 이 현상의 메커니즘은 명확하다. AI는 경력이 짧은 청년이 주로 수행하는 정형화된 업무를 상대적으로 쉽게 대체한다. 반면 경험에 기반한 암묵적 지식이나 관계적 판단이 필요한 업무에서는 보완 도구로 쓰인다. 결과적으로 주니어는 밀려나고 시니어의 가치는 올라간다.
이 대칭은 NBER 모델이 그리는 저학습 균형과 정확히 겹친다. 고학습 균형이었다면 주니어 일자리가 줄더라도 새로운 형태의 업무 — AI 운용, 프롬프트 설계, 결과 검증 — 가 대체 경로로 열렸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 데이터는 대체 없는 소멸을 보여준다. 정보서비스업 청년 고용 23.8% 감소, 출판업 20.4%, 프로그래밍·시스템통합 11.2% — 어디에도 주니어를 위한 새 경로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빈자리를 채우지 않습니다” — 소리없는 함정
사례 — 국내 SW 53개사 국민연금 기준 인력 변동을 추적한 결과, 인력 감소 기업 수가 2024년 14개 → 2025년 20개 → 2026년 26개로 매년 늘었다. 반면 인력 증가 기업은 37개 → 30개 → 25개로 줄었다. 한 기업 관계자의 말: “인위적 구조조정은 하지 않지만, 퇴사자가 나도 빈자리를 채우지 않고 있다.”
이 말은 언뜻 합리적으로 들린다. AI가 생산성을 높였으니 인원이 줄어도 되지 않나? 하지만 NBER 모델의 렌즈로 보면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빈자리를 채우지 않는다는 건 학습 기회를 폐쇄한다는 뜻이다. 신입이 들어와서 업무를 배우고, 실수하고, 교정받으면서 쌓이는 역량의 축적 경로 자체가 없어진다. 53개 SW기업의 전체 인력 증가율이 2.8% → 1.9% → 0.1%로 급락한 것은 채용 사이클의 일시 정지가 아니라 학습 파이프라인의 구조적 폐쇄다.
솔직히, 이 0.1%라는 숫자를 보고 많은 사람이 “증가하긴 했으니 괜찮지 않냐”고 넘길 수 있다. 하지만 14명이라는 절대 숫자를 생각해보자. 53개 기업 합산 1만 2천 명 중 순증 14명. 누군가 퇴사하면 AI가 그 자리를 메우고, 새 사람은 뽑지 않는 패턴이 정착되고 있다.
AI 보조금의 역설 — 비용을 낮추는 게 왜 위험한가
한국 정부의 AI 정책 방향은 분명하다. 고용노동부는 ‘노동시장의 모두를 위한 AI+역량 Up 프로젝트’를 통해 5년간 100만 명에게 AI 직업훈련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KDI는 중소기업 AI 기술 도입 지원과 AI 문해력 배양을 정책 방향으로 제시한다. 공통 전제는 하나다 — AI 도입 비용을 낮추면 생산성이 올라간다.
NBER 모델은 이 전제가 절반만 맞다고 말한다. 고학습 균형에 있는 경제에서는 맞다. 자동화 비용이 내려가면 복지가 올라간다. 그런데 저학습 균형에서는? 자동화 비용이 내려갈수록 기업은 더 많은 주니어 업무를 AI로 돌리고, 학습 기회는 더 빨리 사라지며, 인적자본 함정은 더 깊어진다. 논문이 제시하는 최적 정책은 자동화 이윤에 과세하고, 그 재원으로 프런티어 유지 비용을 보조하는 것이다.
‘프런티어 유지(frontier maintenance)’란 관리자가 새로운 업무 영역을 개척하고 주니어에게 학습 기회를 배분하는 활동이다. 이건 AI를 도입하면 자동으로 생기는 게 아니다. 의식적인 투자와 설계가 필요하다. 현재 한국의 정책 프레임에서 이 비용을 명시적으로 다루는 프로그램은 보이지 않는다.
100만 명
AI 직업훈련 수혜 목표 5년
고용노동부 AI+역량Up 프로젝트
2.7%
10인 이상 기업 AI 도입률 2021 기준
KDI 연구보고서
0건
‘프런티어 유지’ 명시 정책 현행
NODE 자체 분석
신입이 사라지면 시니어도 만료된다
저학습 균형의 가장 교활한 특성은 시차다. 지금 당장은 시니어가 더 생산적이 되고, 기업 실적은 오르고, AI 투자 수익률은 높아 보인다. 문제는 5년 뒤, 10년 뒤에 나타난다. 지금 채용하지 않은 주니어가 없으면 미래의 시니어도 없다. NBER 모델에서 노동자가 관리자로 전환되는 경로(worker-to-manager career transition)가 끊기면, 결국 프런티어를 유지할 관리자 자체가 고갈된다.
경고 — 파이프라인 시차 효과 오늘 신입 채용을 중단한 기업이 5~7년 뒤 겪을 문제는 시니어 부족이 아니라 시니어가 가진 지식을 전수할 대상의 부재다. 암묵적 지식은 문서화되지 않는다. AI가 코드를 짤 수는 있지만, 왜 그 설계 결정이 내려졌는지를 조직 문화로 체화시키는 건 사람 사이에서만 가능하다.
한국은행의 데이터가 보여주는 청년 -21만/50대 +21만의 대칭은, 이런 맥락에서 보면 지금 시니어의 생산성이 올라간 것이 아니라 미래의 시니어를 소비하고 있는 것에 가깝다. 현재의 50대가 은퇴하는 시점에 그 자리를 채울 30~40대는 ‘학습 기회를 박탈당한 세대’가 된다. 이건 아쉽다고 넘길 수준이 아니라, 경제 전체의 인적자본 스톡이 줄어드는 구조적 전환이다.
프런티어 유지비용 — 한국이 지금 설계해야 할 변수
NBER 논문의 정책 처방은 놀라울 만큼 구체적이다. 자동화 이윤에 과세 + 프런티어 유지 지출에 보조, 두 가지를 같은 세율로 결합하는 것이 사회적 최적이라는 결론이다. 여기서 ‘프런티어 유지 지출’이란 관리자가 새로운 업무를 발굴하고 주니어에게 배분하는 데 쓰는 비용이다.
이걸 한국 맥락으로 번역하면 어떻게 되나. 먼저, AI 도입으로 인건비를 줄인 기업에 일정 비율의 ‘인적자본 유지 부담금’을 부과하는 메커니즘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 재원으로 신입 직무 재설계(주니어가 AI와 협업하는 새로운 역할 창출)를 지원한다. 현행 청년고용장려금이 단순 ‘머릿수 채우기’에 가깝다면, 이 접근은 ‘학습 기회의 질’에 보조금을 연동하는 구조다.
KDI 보고서는 2030년 이후 국내 일자리의 90%에서 90% 이상 업무 자동화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 예측이 맞다면, 프런티어 유지의 중요성은 시간이 갈수록 커진다. AI가 기존 업무를 대체하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새로운 학습 기회를 의식적으로 만들어내지 않는 한 저학습 균형에서 탈출할 방법은 없다.
균형의 선택지는 아직 열려 있다
이 글의 핵심 주장을 다시 정리한다. 한국 노동시장의 청년 고용 데이터는 단순한 경기 사이클이 아니라 저학습 균형으로의 구조적 전환 신호다. 같은 AI 기술이 어떤 조직에서는 생산성 도구가 되고 어떤 조직에서는 인적자본 파괴 장치가 되는 이유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둘러싼 학습 기회의 배분 구조에 있다. 현행 정책이 자동화 비용 인하에만 집중하는 한, 저학습 균형에 빠진 조직이 받는 보조금은 함정을 더 깊게 파는 삽이 된다.
반론도 있다. 한국은행조차 “AI 확산 초기의 청년 고용 감소가 지속될지는 불확실하다”고 단서를 달았다. 기업이 미래 인재 파이프라인 약화를 인지하고 자발적으로 조정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NBER 모델이 경고하는 것은, 저학습 균형이 자기강화적(self-reinforcing)이라는 점이다. 학습 기회가 줄면 → 유능한 주니어가 줄고 → 관리자 후보가 줄며 → 프런티어 유지 역량이 떨어지고 → 더 많은 업무가 AI로 넘어간다. 이 순환 고리에 한번 진입하면, 시장 자율에 맡겨서는 빠져나오기 어렵다.
💡 실무 시사점 — HR이 이번 분기에 점검할 3가지:
① 주니어 학습 경로 감사. 지난 1년간 AI 도입으로 신입이 더 이상 수행하지 않게 된 업무 목록을 만들고, 그 업무가 제공하던 학습 기회를 대체할 새 과업이 설계되었는지 확인한다. 설계되지 않았다면 지금 ‘저학습 균형’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② 빈자리 불보충 현황 정량화. 퇴사 후 미보충 포지션 수를 트래킹한다. “빈자리를 채우지 않는” 관행이 비용 절감처럼 보이지만, NBER 모델이 말하는 ‘학습 파이프라인 폐쇄’와 정확히 같은 메커니즘이다.
③ 프런티어 유지 예산 확보. AI 도입 예산의 일정 비율(10~15%)을 주니어 직무 재설계에 명시적으로 배정한다. 관리자가 새로운 업무를 발굴하고 배분하는 활동에 비용을 쓰지 않으면, 자동화의 수익은 단기에 그친다.
#인적자본함정#저학습균형#AI자동화#주니어고용#프런티어유지
참고 링크
- NBER, “Automation, Learning, and Career Dynamics” (2026)
- 한국은행, “AI 확산과 청년고용 위축: 연공편향 기술변화를 중심으로” (2025)
- 데이터뉴스, “AI가 바꾼 SW업계 채용…고용 증가 멈췄다” (2026)
- 파이낸셜뉴스, “사람 뛰어넘는 AI에 ‘고용 감축’ 공포…韓 일자리는 무사한가” (2026)
- KDI, “인공지능으로 인한 노동시장의 변화와 정책방향” (2025)
작성: 서재홍 | N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