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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일자리를 뺏는 건 서막이다 — ‘이중 압착’이라는 진짜 함정

AI가 일자리를 빼앗을 것인가. 이 질문은 2024년부터 거의 매주 뉴스 헤드라인에 올랐고, 이제 사람들은 질문 자체에 피로감을 느낀다. 그런데 이 피로감이 위험하다. 모두가 ‘대체’라는 1차 충격에 집중하는 동안, 2차 충격은 조용히 구조를 완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탠퍼드·예일 경제학자들이 설계한 일반균형 모델이 보여주는 건 단순한 일자리 감소가 아니다. AI가 일자리를 대체하는 건 서막에 불과하고, 진짜 함정은 AI 시장의 독점 구조가 만드는 ‘이중 압착(double harm)’ — 값싼 AI로 임금이 하락한 노동자가, 이후 AI 가격 인상의 소비자 피해까지 동시에 떠안는 구조적 덫이다.

한 줄 요약: AI 일자리 대체보다 위험한 건 AI 독점이 만드는 이중 압착 — 임금 하락과 AI 가격 인상이 같은 노동자에게 동시에 작동하는 구조적 함정을, 한국 노동정책은 아직 의제로조차 올리지 못하고 있다.

58.1%

글로벌 생성형 AI 시장 상위 5개 기업 점유율

GM Insights 생성형 AI 시장 보고서 (2025)

68%

ChatGPT 단독 챗봇 시장 점유율 — 주간 활성 사용자 8억 명

Similarweb / OpenAI 공시 (2025)

85%

2026년 한국 기업 생성형 AI 도입 전망

국내 기업 AI 활용 현황 조사 (2025)

40~50%

AI 에이전트 운영비 중 LLM API 비용 비중

Windyflo AI 에이전트 비용 분석 (2026)

−6.3%

AI 도입 기업 주니어 초임 임금 하락폭

한국IT산업뉴스 / 글로벌 AI 노동시장 연구 (2026)

값싼 AI라는 선물의 이면

AI를 도입하면 비용이 줄어든다. 이건 사실이다. 문서를 요약하고, 코드를 생성하고, 고객 문의를 처리하는 데 드는 시간과 인력이 줄어든다. 기업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이고, 실제로 한국 기업의 74%가 2025년에 전년 대비 AI 투자를 늘렸다. 2026년에는 79%가 추가 확대를 계획하고 있다. AI 가격이 저렴할수록 도입 속도는 빨라지고, 도입이 확산될수록 더 많은 업무가 자동화되며, 자동화될수록 해당 업무를 하던 노동자의 교섭력은 떨어진다.

경제학에서 이 과정을 ‘채택 프론티어(adoption frontier)’라고 부른다. AI 사용료(usage fee)가 낮아지면 기업의 도입 임계점이 넓어지고, 임계점이 넓어지면 대체되는 노동자의 범위가 확대되며, 대체된 노동자가 남은 일자리로 이동하면서 해당 영역의 임금이 수확체감으로 하락한다. 여기까지는 기술 진보의 자연스러운 부작용이라고 할 수도 있다. 기술이 발전하면 일부 직종이 사라지고, 새로운 직종이 생기며, 임금 구조가 재편된다. 산업혁명부터 반복된 패턴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가 다르다. AI는 수입되는 생산요소다.

수입되는 생산요소가 만드는 함정

전기, 인터넷, 자동차 — 이전의 범용 기술들은 국내에서 생산하거나, 최소한 국내 기업이 공급 체인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AI는 다르다. 한국 기업이 사용하는 생성형 AI의 핵심 인프라는 거의 전부 해외에 있다. OpenAI, Google, Anthropic, Meta가 만든 파운데이션 모델 위에서 돌아간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자체 모델을 개발하고 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의 점유율은 미미하다. 이 말은 AI 도입으로 절약된 인건비의 상당 부분이 API 사용료와 클라우드 비용이라는 형태로 해외로 빠져나간다는 뜻이다.

솔직히, 이 구조가 한국 경제에 주는 충격은 과소평가되고 있다. AI 에이전트의 운영비 중 LLM API 비용이 40~50%를 차지한다는 분석이 나오는데, 이 비용의 수취인은 실리콘밸리다. 한국 기업이 인건비를 줄여서 아낀 돈의 절반이 미국 AI 기업에 이전되는 셈이다. 채택 프론티어가 확대되면 국내 노동자의 임금은 떨어지고, 그 떨어진 임금의 일부가 해외 AI 기업의 수익으로 전환되는 소득 유출(income leakage)이 발생한다. 이건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라, 국부의 재분배 경로가 바뀌는 문제다.

구조 — 소득 유출 경로 한국 기업이 AI를 도입하면: ① 자동화로 인건비 절감 → ② 절감된 비용의 40~50%가 LLM API 사용료로 해외 이전 → ③ 대체된 노동자는 국내 임금 하락 압력에 노출 → ④ AI 기업은 독점적 지위를 활용해 사용료 인상 가능. 노동자는 ③과 ④를 동시에 맞는다.

독점 가격이 올라가는 시점 — 이중 압착의 타이밍

이중 압착의 핵심은 타이밍에 있다. 처음에 AI는 싸다. 시장 점유율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몰려든다. 도입이 확산된다. 노동자가 대체된다. 임금이 떨어진다. 여기까지가 1단계다. 그런데 시장이 충분히 잠기면 — 기업들이 AI 없이는 운영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면 — 2단계가 시작된다. 가격이 올라간다.

이건 가설이 아니다. 생성형 AI 챗봇 시장에서 ChatGPT 단독 점유율이 68%에 달하고, 상위 5개 기업이 58.1%를 장악한 시장에서 가격 결정력은 공급자에게 있다. 독점 기업은 두 가지 도구를 갖고 있다. 사용량 기반 수수료(usage fee)와 접근 자체에 부과하는 이용료(access fee)다. 하나를 규제하면 다른 쪽으로 수익을 옮긴다. 경제학에서 이걸 “한 도구를 막으면 다른 도구로 지대(rent)가 이전된다”고 표현한다.

결과적으로, AI 도입 초기에 임금이 하락한 노동자는 AI 가격 인상기에 소비자로서도 피해를 입는다. 실질 임금이 두 번 깎이는 것이다. 한 번은 생산자로서(일자리를 잃거나 임금이 줄어서), 한 번은 소비자로서(AI 기반 서비스 가격이 올라서). 이걸 ‘이중 압착(double harm)’이라고 한다. 이 메커니즘의 불쾌한 점은, AI가 비쌀 때가 아니라 AI가 쌀 때 함정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9만 2천 개의 일자리가 증명하는 것

2026년 5월 현재, 글로벌 테크 기업에서 AI 관련 구조조정으로 사라진 일자리는 9만 2천 개를 넘었다. 메타, 시스코, 코인베이스 등이 주요 감원 기업이다. 동시에 일어나는 일이 있다. AI 도입 기업에서 주니어 인력은 7~12% 줄었고, 시니어는 6% 늘었다. 주니어 초임은 6.3% 하락한 반면, 시니어 임금은 소폭 상승했다. AI 기술을 보유한 노동자는 그렇지 않은 동료보다 25% 더 높은 임금을 받는다.

이 데이터가 보여주는 건 단순한 일자리 감소가 아니다. 노동시장의 양극화다. AI를 다루는 소수에게 보상이 집중되고, AI에 대체되는 다수의 교섭력은 약화된다. 아쉬운 건, 이 양극화가 이중 압착의 전제 조건이라는 점을 아직 정책 논의에서 연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AI로 임금이 하락한 집단은 정확히, AI 가격 인상의 부담을 가장 덜 감당할 수 있는 집단이기도 하다. 해고된 고객센터 상담원이 AI 기반 상담 서비스의 소비자가 되는 역설. 이중 압착은 이런 구체적 얼굴을 갖고 있다.

사례 — 채용 없는 성장 AI 시대의 노동시장 충격은 해고가 아니라 채용 감소를 통해 작동한다. 기업은 기존 직원을 내보내기보다, 신규 채용을 줄이는 방식을 선택한다. 피해는 아직 취직하지 못한 청년에게 집중된다. 한국 15~29세 취업자는 전년 대비 감소세이고, 미국에서도 20~24세 남성 실업률이 경기침체 수준인 8.3%에 달한다. 눈에 보이는 해고보다, 눈에 안 보이는 ‘채용하지 않음’이 더 넓은 피해를 만든다.

교섭 테이블에 AI 가격은 없다

한국 노동법의 단체교섭 의무 사항에는 임금, 근로시간, 복리후생이 있다. AI 도입 여부나 AI 사용료 구조는 없다. 경영권의 영역이라고 본다. 그런데 이중 압착이 현실이라면, AI 도입 결정은 순수한 경영 판단이 아니라 노동 조건을 직접 변경하는 행위다. AI를 도입해서 10명을 3명으로 줄이고, 그 3명이 AI API 비용이 올라도 대안이 없는 상태에 놓이는 건 — 형식적으로는 기술 투자지만 실질적으로는 임금·고용 조건의 재편이다.

2026년 3월 시행된 개정 노동조합법은 원하청 상생교섭과 단체교섭 판단지원 위원회를 새로 도입했다. 진전이다. 그러나 교섭 의제의 확장 — 예컨대 AI 도입에 따른 고용 영향 평가를 교섭 사항에 포함시키는 것 — 은 아직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았다. 유럽연합의 AI법(AI Act)이 고위험 AI 시스템의 노동자 대표 협의를 의무화한 것과 대비된다.

개인적으로는 이 간극이 가장 위험하다고 본다. AI 도입 속도는 기하급수적인데, 노동법의 교섭 프레임은 산업화 시대의 것이다. 공장에 새 기계를 들이는 건 교섭 대상이 아니었다. 기계는 한번 사면 끝이니까. 그런데 AI는 매달 사용료를 내는 구독 모델이고, 공급자가 독점적이며, 가격 결정력이 노동자에게 없다. 이런 조건에서 AI 도입을 순수한 경영 판단 영역에 두는 건, 20세기 프레임으로 21세기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다.

이중 압착에서 빠져나오려면

이중 압착이 시장 구조에서 발생하는 문제라면, 해법도 시장 구조에 개입해야 한다. 개별 노동자의 재교육이나 직업전환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세 가지 방향이 필요하다.

첫째, AI 사용료의 투명성 확보다. 기업이 AI에 얼마를 지불하는지, 그 비용이 총 운영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가 공시되어야 한다. 공급자의 가격 인상이 하청 노동자의 임금에 전가되는 경로가 투명해지면, 교섭의 근거가 생긴다.

둘째, AI 도입 영향 평가를 단체교섭 또는 노사협의회의 의제로 포함시켜야 한다. AI 도입 자체를 막자는 게 아니다. 도입의 고용 효과와 비용 구조를 노동자 대표와 공유하고, 대체된 인력의 재배치 계획을 협의하자는 것이다. 유럽이 이미 시작한 방향이다.

셋째, 국내 AI 생태계의 다변화다. 공급자가 다양해지면 독점 가격의 작동 공간이 줄어든다. 이건 단순한 산업 정책이 아니라 노동 정책이기도 하다. AI 공급의 독점도가 높을수록 이중 압착의 강도가 세지기 때문이다.

💡 실무 시사점 — HR이 이번 분기에 점검할 3가지:

① AI 비용 구조 파악. 현재 사용 중인 AI 서비스의 월간 API 비용, 전체 운영비 대비 비중, 최근 가격 변동 추이를 산출한다. 비용이 인건비 절감액의 50%를 넘으면 이중 압착의 전조 신호다.

② AI 도입 고용 영향 보고서 작성. AI 도입 전후 해당 직무의 인원 변동, 업무량 재배분, 신규 채용 계획을 문서화한다. 노사협의회 보고 의제로 올릴 수 있는 형태로 정리하면 선제적 리스크 관리가 된다.

③ 공급자 다변화 검토. 단일 AI 공급사 의존도가 70%를 넘는다면, 대안 모델 테스트를 시작한다. 오픈소스 모델과 국내 모델의 성능 비교를 분기 단위로 실시하면, 가격 인상 시 전환 비용을 낮출 수 있다.

#AI독점 #이중압착 #노동법 #단체교섭 #HR전략

참고 링크

작성: 서재홍 | N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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