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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은 늘었는데 일자리 설계는 그대로 — 기업이 직면한 ‘장수 리스크’의 실체

2050년, 전 세계 65세 이상 인구가 15억 명을 돌파한다. 지금은 11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이지만, 불과 25년 뒤에는 6명 중 1명꼴이 된다. 한국은 이미 2025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60세 이상 경제활동참가율은 해마다 역대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그런데 솔직히, 대부분의 기업은 아직도 ’60세 정년 후 퇴장’이라는 20세기 모델을 그대로 쓰고 있다.

수명이 20~30년 늘어난 세상에서, 일의 구조는 왜 바뀌지 않는 걸까. 글로벌 인사 컨설팅 기관의 최근 조사들은 이 질문에 대해 날카로운 숫자를 내놓았다. 퇴직 후 저축이 바닥나는 시점, 일을 계속하고 싶지만 벽에 부딪히는 비율, 고령 인력을 ‘비용’이 아니라 ‘자산’으로 보는 기업의 성과 차이까지. 이 데이터를 따라가다 보면, 장수 시대의 HR은 지금과 완전히 다른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한 줄 요약: 수명 연장은 복지 이슈가 아니라 인력 설계 이슈다 — 퇴직 모델·재정 안전망·연령 다양성을 동시에 재설계하지 않으면, 기업과 근로자 모두 ‘장수 리스크’에 노출된다.

84%가 은퇴 후에도 일하겠다고 답했다

“정년이 되면 완전히 일을 그만두겠다”고 답한 근로자 비율이 3년 만에 25%에서 16%로 떨어졌다. 반대로, 84%는 어떤 형태로든 계속 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파트타임, 프로젝트 기반, 단계적 은퇴 — 형태는 다양하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은퇴는 더 이상 ‘일의 끝’이 아니라 ‘일의 전환’이 됐다.

이건 좀 주목할 부분인데, 계속 일하려는 이유의 38%가 순수한 재정적 불안이다. 자아실현이나 사회적 연결이 아니라, 돈이 부족해서 일을 놓을 수 없다는 뜻이다. OECD 기준으로 은퇴 전 소득의 65~80%를 연금으로 확보해야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데, 이 기준을 충족하는 근로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84%

정년 후에도 계속 일할 계획이라고 답한 근로자

Mercer Global Survey, 2026

16%

완전 은퇴 의향 (3년 전 25%에서 하락)

Mercer, 2026

15억 명

2050년 전 세계 65세 이상 예상 인구

UN World Population Prospects

38%

재정적 불안이 계속 일하려는 주된 이유

Mercer, 2026

퇴직 저축, 여성은 최대 19년 먼저 바닥난다

장수 리스크의 핵심은 결국 돈이다. 선진국 기준으로 남성은 퇴직 후 약 10년 만에 저축이 고갈되고, 여성은 12~19년 먼저 바닥난다. 여성이 평균 6~7년 더 오래 사는데 연금 수령액은 OECD 평균 26% 적다는 구조적 격차가 겹치기 때문이다.

2050년까지 전 세계 퇴직 저축 부족분은 400조 파운드(약 7경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개인적으로는, 이 숫자가 무섭다기보다 이미 현실이라는 점이 더 문제라고 본다. 전 세계 성인의 3분의 1만이 금융 문해력을 갖추고 있고, 절반에 가까운 사람이 소득이 끊기면 한 달 안에 저축을 소진한다. 예고 없는 경력 중단(건강 문제, 돌봄, 구조조정)을 겪으면 약 40%가 재정적 불안정 상태에 빠진다.

이 문제가 기업 HR과 무슨 상관이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재정적으로 불안한 직원은 업무 몰입도가 낮고, 건강 관련 비용이 높으며,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는 이미 충분하다. HR 리더 3명 중 1명도 “우리 직원들은 재정적 충격에 대비되어 있지 않다”고 인정했다.

고령 인력을 품은 기업이 실적도 좋다

여기서 반전이 있다. “나이 든 직원은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통념은 데이터로 뒷받침되지 않는다. 연구에 따르면 근로자의 연령은 재무 지표, 운영 효율성, 고객 유지율 어디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오히려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된 팀이 동일 연령대 팀과 동등하거나 더 나은 성과를 보였다.

사례 — 덴마크의 성인교육 투자덴마크는 2023년 기준 전체 노동력의 20% 이상이 성인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50대 후반 근로자도 디지털 역량 재교육을 받으며 ‘경력 2막’을 설계한다. 고성과 기업의 85%가 경험 많은 직원을 적극적으로 유지하고, 74%가 핵심 직무에서 연령 구성이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고 있으며, 63%가 의도적으로 다세대 팀을 구성한다는 조사 결과와 맥락이 통한다.

반면, 기업의 거의 5분의 2(약 40%)는 여전히 DEI 전략에 ‘연령’을 포함하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는 55세 이상 근로자의 80%가 연령 차별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일하고 싶지만 장벽에 부딪히는 55세 이상 인구가 5명 중 1명에 달한다. 아쉽다 — 고령 인력의 역량을 인정하면서도 조직 차원의 제도 설계는 여전히 ‘청년 중심’에 머물러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단계적 은퇴, 이미 작동하고 있는 모델

그렇다면 실제로 대응에 나선 기업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가장 많이 채택하는 방식 세 가지가 있다. 39%의 기업이 직원 개인 상황에 맞게 퇴직 급여를 조정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38%가 고령 근로자에게 프로젝트 기반·긱 워크 등 다양한 고용 형태를 선제적으로 제안하며, 36%가 파트타임·유연근무·단계적 은퇴를 공식 옵션으로 제공한다.

개인적으로 핵심이다 싶은 지점은 이것이다: 활력 있는 조직을 만들겠다고 답한 기업은 단계적 은퇴 옵션을 제공할 가능성이 2배 높았다. 단순히 ‘오래된 직원을 위한 복지’가 아니라, 조직 전체의 에너지와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2022년 기준으로 ‘리빙 펜션(생활 연금)’을 제공하거나 제공 계획이 있는 기업은 25%에 불과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이 비율이 얼마나 올랐을까. 속도가 문제다.

한국 HR이 직면한 구조적 전환점

한국의 상황은 글로벌 평균보다 더 급박하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 정년 60세와 실제 퇴직 연령 사이의 괴리,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65세)과 정년 사이 소득 공백 —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2025년부터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20%)에 진입한 한국에서, “65세까지 일할 수 있는 제도”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2024년부터 정년 연장과 계속고용 논의가 본격화됐고, 임금피크제·직무급 전환과 맞물려 HR의 역할이 급변하고 있다. 단순히 “정년을 65세로 올리자”가 아니라, 직무 재설계·역할 전환·보상 체계 재구축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사례 — 칠레의 성별 차등 연금 기여기간칠레는 여성의 연금 수급 자격 기여기간을 남성(20년)의 절반인 10년으로 설정했다. 출산·돌봄으로 인한 경력 단절을 제도적으로 보정하려는 시도다. 전 세계 6,300만 명 이상의 돌봄 제공자(그 대부분이 여성)가 커리어 중단을 겪는 현실에서, 이런 제도 설계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장수 시대, 일의 문법이 바뀐다

지금까지의 데이터가 가리키는 방향은 하나다. 수명 연장은 단순한 고령화 이슈가 아니라, 일의 설계 자체를 바꿔야 하는 구조적 전환이라는 것. 정년이라는 칸막이 하나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경력의 시간축을 늘리고, 재정적 안전망을 보강하며, 연령이 아니라 역량 중심으로 인력을 배치하는 것 —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

한 가지 질문을 던지며 마무리한다. 당신 조직의 인력 계획은 ‘직원이 85세까지 산다’는 전제 위에 설계되어 있는가? 만약 아니라면, 지금 운영하고 있는 퇴직 모델은 이미 유효기간이 지난 것이다.

💡 실무 시사점: 단계적 은퇴 옵션 도입, 연령 포함 DEI 전략 수립, 재정 웰빙 프로그램 확대는 복지가 아니라 인력 전략이다. 고령 인력의 경험을 핵심 직무와 연결하는 다세대 팀 구성부터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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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링크

작성: 서재홍 | N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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