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일자리를 몇 개 없앨 것인가. 지난주 나온 한 국책 연구보고서를 두고 언론이 뽑아낸 건 거의 예외 없이 이 질문에 대한 답 하나, “10년 후 연간 25만 6천 명”이었다. 그런데 같은 보고서 182쪽 표 하나를 열어보면 훨씬 흥미로운 게 들어 있다. 10년 뒤 직종 간 임금격차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0.1550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0.1920으로 치솟기도 한다. 같은 AI, 같은 시점, 같은 모형인데 답이 정반대로 갈린다. 무엇이 방향을 가르는지가 이 글의 주제다.
한 줄 요약: AI가 한국의 임금격차를 좁힐지 벌릴지는 AI 성능이 아니라 기업이 임금으로 조정하느냐 고용으로 조정하느냐가 정한다. 그 선택지를 규정하는 건 기술이 아니라 노동법과 인사제도다.
먼저, 숫자가 층층이 줄어드는 구조를 봐야 한다
분석은 537개 세분류 직업의 수행직무기술서에서 6,824개 단위과업을 뽑아낸 뒤, 결과측정 가능성·데이터 가용성·맥락 의존성·인간 판단 필요성·에이전트화 가능성이라는 다섯 지표로 각 과업의 자동화 가능성을 계량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국내 임금수준과 데이터·컴퓨팅 비용을 반영한 비용모형을 얹어, 기술적으로 가능할 뿐 아니라 돈이 되는 자동화 과업만 걸러낸다.
그렇게 나온 값이 아래다. 넓은 기준에서 좁은 기준으로 한 칸만 옮겨도 숫자가 5분의 1로 쪼그라든다.
11.7%
단순노출·경제성 기준 AI 영향권 임금근로자 비중 (약 142만 명)
KDI / AI의 거시경제 영향 분석 / 2026
2.2%
자동화 가능성까지 좁혀 본 비중 (약 26만 명)
KDI / AI의 거시경제 영향 분석 / 2026
10.5%
같은 기준의 전 산업 매출 비중 (약 916조원)
KDI / 2023년 전 산업 매출 8,696조원 기준
1.8%
자동화 가능성 반영 시 매출 비중 (약 159조원)
KDI / AI의 거시경제 영향 분석 / 2026
보고서는 이 축소를 “보수적인 그림”이라 부르며 안심의 근거로 쓴다. 전면적이고 급작스러운 고용 충격은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다만 이 문장은 142만과 26만 사이에 남은 116만 명을 논의에서 지워버린다.
대체되지 않는 116만 명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116만 명은 노출 판정은 받았지만 좁은 기준의 자동화 대상에는 들어가지 않은 사람들이다. 직업별로 보면 이 격차가 어디에 몰려 있는지 선명하다. 경영 관련 사무원은 단순노출 기준 31만 명이 걸리지만 경제성을 따지면 5.5만 명으로 줄고, 영업 종사자는 14만 명에서 2만 명으로, 돌봄 및 보건 서비스 종사자는 8.5만 명에서 2.5만 명으로 내려간다. 사무·영업·돌봄, 그러니까 한국 사무직과 대인서비스직의 한복판이다.
여기서 흔한 오해가 생긴다. 대체되지 않으면 영향도 없다는 것. 보고서 자신의 다른 분석이 이를 반박한다. 지난 10년(2014~2024년) 직종별 데이터를 보면 정형과업 비중이 높은 직종일수록 고용증감률이 낮고 임금상승률도 낮았다. 실제로 자동화된 양과 무관하게, ‘자동화될 수 있는 일’로 분류되는 것 자체가 이미 그 직종의 임금 경로에 실려 있었다는 뜻이다.
현장에서 — 노출 라벨의 실제 용도 직무기술서에 “정형·반복 업무 비중이 높음”이라고 적히는 순간, 그 문장은 직무평가 등급, 직무급 설계, 임금체계 개편 협상, 신규 결원 충원 여부 판단에 차례로 인용된다. 자동화 도구를 실제로 도입하지 않아도 라벨은 먼저 도착한다. 솔직히 현장에서 AI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건 언제나 이 라벨이었다.
같은 표 안에 정반대 답이 나란히 있다
이제 문제의 표다. 2024년 기준 직종 간 지니계수는 0.1704. 여기에 10년 뒤 시나리오를 얹는데, 보고서는 충격의 경로를 둘로 나눠 각각 계산했다.
0.1550
임금 충격만 반영 — 격차 축소
KDI 표 5-11 / 포괄적 영향·기술발전 시나리오
0.1920
고용 충격만 반영 — 격차 확대
KDI 표 5-11 / 포괄적 영향·기술발전 시나리오
0.1744
임금+고용 동시 반영 — 확대 쪽 우세
KDI 표 5-11 / 포괄적 영향·기술발전 시나리오
임금으로 조정하면 격차가 좁아진다. AI 노출이 고임금·중고숙련 직종에 집중돼 있어서, 임금상승률 둔화도 위쪽부터 걸리기 때문이다. 반면 고용으로 조정하면 격차가 벌어진다. 고임금 직종에서 자리 자체가 더 많이 사라지는 재배치 효과가 분포를 뒤틀어놓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을 함께 넣으면 0.1744, 즉 고용조정이 만드는 불평등 심화가 임금압축 효과를 이긴다. 보고서 본문도 이 점을 명시한다.
결론 장의 문장은 이렇다. “임금압축 현상이 나타나 직종 간 임금불평등은 지니계수 기준 소폭 하락하거나 현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보수적으로 잡은 제한적 영향 시나리오의 값(0.1705와 0.1675)을 그대로 옮긴 문장이고, 같은 장에서 나란히 계산된 포괄적 영향 시나리오의 0.1744 — 본문이 “고용조정이 가져오는 불평등 심화 효과가 우세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쓴 그 숫자 — 는 결론에 오르지 않았다. 어느 쪽을 표제로 삼을지는 저자의 판단이고, 보수적으로 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건 좀 다른 얘긴데, 정작 중요한 건 그 선택이 아니다. 두 시나리오 어느 쪽을 골라도 결과는 같은 모양이다. 임금으로 조정하면 격차가 좁아지고(포괄 0.1550, 제한 0.1607), 고용으로 조정하면 벌어진다(포괄 0.1920, 제한 0.1778). 시나리오를 바꿔도 부호가 뒤집히지 않는다. 방향을 정한 건 AI 성능도, 시나리오 선택도 아니었다.
-0.033과 -0.0058, 한국 기업은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 있다
어느 쪽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지는 추상적인 질문이 아니다. 보고서가 실증에서 뽑아 시뮬레이션에 넣은 준탄력계수가 힌트를 준다. 고용은 -0.033, 임금은 -0.0058. 직종의 정형과업 비중이 같은 폭으로 오를 때 고용이 임금보다 약 5.7배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뜻이다. 짚어둘 게 있다. 이 계수는 생성형 AI 상용화 이전인 2014~2024년 자동화 압력에 한국 노동시장이 실제로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추정한 값이고, 시뮬레이션은 그 반응계수를 미래 AI 노출도에 곱한다. 그러니까 이 모형이 예측하는 미래에는 한국 기업이 지난 10년간 조정해온 습관이 이미 들어가 있다.
한국 노동시장의 제도적 조건을 얹으면 이 비대칭은 더 뚜렷해진다. 기존 근로자의 임금을 내리는 일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동의, 단체협약, 개별 근로계약이라는 세 겹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반면 자리를 줄이는 쪽은 정리해고까지 가지 않고도 방법이 있다. 퇴사자 자리를 채우지 않고, 신규 채용 규모를 조용히 줄이고, 결원을 외주와 계약직으로 메우면 된다. 절차적 비용이 압도적으로 싼 쪽으로 조정이 흐르는 건 자연스러운 결과다.
flowchart TD
A[AI 노출 직무 142만 명] --> B{조정 수단}
B -->|임금으로 조정| C[상위 직종 임금상승률 둔화]
B -->|고용으로 조정| D[신규채용 축소·결원 미충원]
C --> E[지니 0.1550 — 격차 축소]
D --> F[지니 0.1920 — 격차 확대]
E --> G[사람은 남고 상승분이 깎임]
F --> H[남은 사람은 무사, 못 들어온 사람이 부담]
두 경로는 부담을 지는 사람이 다르다. 임금조정은 이미 안에 있는 사람들이 나눠 진다. 고용조정은 아직 들어오지 못한 사람, 즉 신규 진입자와 경력 단절자가 혼자 진다. 지니계수라는 한 개의 숫자로는 이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핵심이다.
생산성 이득과 조정 부담은 애초에 다른 곳에 쌓인다
분배 문제는 직종 안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기업 쪽 분석을 보면 AI를 도입한 기업은 상용근로자 1인당 매출이 약 20%, 총매출이 약 10% 유의하게 늘었다. 고용 감소는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 문제는 이 효과를 누리는 모집단이 좁다는 것이다. AI를 활용하는 기업 비중은 2017년 1%대에서 2023년 6% 수준으로 올라오는 데 그쳤고, 그마저 250인 이상 대기업과 정보통신·금융에 몰려 있다.
영향받는 인원과 영향받는 매출이 서로 다른 산업에 있다는 사실도 그냥 지나칠 게 아니다. 종사자 수 기준 상위는 교육 서비스업(약 22만 명), 육상운송(약 16만 명), 사업지원 서비스업(약 14만 명), 보건·사회복지다. 매출 기준 상위는 보험 및 연금업(1.2%), 금융업(1.1%), 전자부품·컴퓨터·통신장비 제조업(0.7%)이다. 사람이 걸리는 곳과 돈이 걸리는 곳이 겹치지 않는다.
읽을 때 주의 — 1인당 매출이라는 지표 보고서는 생산성 지표로 1인당 부가가치 대신 1인당 매출액을 썼고, 그 이유를 각주에서 상세히 밝힌다. 다만 같은 각주가 이렇게도 적는다. 1인당 매출액은 “생산성, 수요, 품질, 가격 전략의 변화를 함께 포착하는 포괄적 성과지표”다. 시장점유율과 가격 인상이 섞여 들어간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계수가 거시모형에서 비용절감률의 핵심 모수로 쓰인다. 도입 기업이 6%뿐이고 그 6%가 대기업에 몰려 있다면, 미도입 경쟁사에서 옮겨온 몫이 얼마간 ‘창출’로 계상됐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거시 결과가 미시 결과에 비해 소박한 것도 이 맥락에서 읽힌다. 10년간 총요소생산성 증가폭은 기준 시나리오 2.3%, 연간으로는 0.23%p다. 민감도를 넓혀도 1.5~3.5%(연 0.15~0.35%p) 범위다. 개별 기업에서 20%씩 오른다는 생산성이 경제 전체로는 이 정도로 수렴한다.
기술이 아니라 제도가 시나리오를 고른다
정리하면 이렇다. 지금 시점(2025년)에 경제성 있는 대체 규모는 1,462명, 근로자의 0.01%다. 10년 뒤에도 영향권 63만 7,600명 중 경제성 있는 대체는 25만 5,703명이다. 언론이 받아쓴 그 숫자는 사실 가장 좁게 잡은 값이다. 반면 라벨이 붙은 채 대체되지는 않는 116만 명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임금 경로와 채용 경로에서 조용히 처리되고 있다.
그리고 그 처리 방식은 AI가 정하지 않는다.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의 문턱 높이, 정리해고 요건, 통상임금 판례의 흐름, 직무급 전환 속도, 파견·도급 규율이 정한다. 0.1550과 0.1920을 가르는 스위치는 GPU가 아니라 인사제도와 노동법 쪽에 달려 있다.
💡 실무 시사점 — HR이 이번 분기에 점검할 3가지:
① 직무기술서의 ‘정형·반복’ 서술을 감사하라. 자동화 도입 계획이 없는 직무에까지 관행적으로 붙은 노출 표현이 직무평가 등급과 임금테이블 조정 근거로 인용되고 있는지 확인한다. 라벨은 도구보다 먼저 도착하고, 한 번 붙으면 협상 테이블에서 되돌리기 어렵다.
② 조정 수단의 기본값이 무엇인지 문서로 확인하라. 최근 2년간 결원 미충원과 신규채용 축소로 흡수한 인원, 임금체계 개편으로 흡수한 금액을 각각 집계해본다. 대부분의 조직은 자기도 모르게 고용조정 쪽으로 기울어 있고, 그 부담은 재직자가 아니라 신규 진입자에게 몰린다.
③ 생산성 지표를 매출에서 분리하라. AI 도입 효과를 1인당 매출로만 보고하면 경쟁사에서 옮겨온 몫과 실제 절감분이 섞인다. 도입 직무의 처리건수·소요시간·재작업률을 별도로 남겨야 투자 판단과 인력 재배치 판단이 갈라진다.
#AI노동시장#임금격차#직무급#고용조정#HR전략
AI가 노동시장에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이제 예측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에 가깝다. 같은 모형, 같은 계수, 같은 10년으로도 정반대 분포가 나온다는 걸 이 보고서가 스스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어느 칸을 고를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그 결정은 기술부서가 아니라 인사와 법무가 앉은 자리에서 내려진다.
참고 링크
- KDI, “AI의 거시경제 영향 분석” (2026)
- 헤럴드경제, “KDI ‘AI 확산에 10년 뒤 연간 일자리 25만개 감소’…기업 생산성 20%↑” (2026)
- 시사저널, “KDI ’10년 후 AI로 연간 일자리 25만6000개 사라진다’” (2026)
- 이투데이, “KDI ‘AI 확산으로 10년 후 연간 일자리 25만개 감소…기업 생산성은 향상’” (2026)
- 청년일보, “KDI ‘AI 확산에 10년 후 일자리 연 25만6천개 감소 전망…생산성은 최대 3.5%↑’” (2026)
작성: 서재홍 | N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