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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P 9%의 빈자리 — 사회이동성이 인재 전략의 다음 키워드가 되는 이유

유럽 GDP를 9%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열쇠가 기술 혁신이 아니라 ‘사람의 이동’이라면 믿겠는가. 맥킨지가 EU 27개국 노동력 데이터를 뒤집어 내놓은 결론이다. 낮은 사회경제적 배경 출신 근로자의 실업률은 9.4%, 같은 나이대 고소득 가정 출신은 5.3%. 차이는 4.1%포인트에 불과해 보이지만, 이 간극이 누적되면 1조 3,000억 유로가 증발한다. 개인적으로는 여기가 핵심이다. 기업이 인재를 ‘발굴’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인재가 올라올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었다는 뜻이니까.

한 줄 요약: 사회이동성(Social Mobility)은 ESG 보고서에 넣을 장식이 아니라, 숙련 인력 부족 시대에 HR이 건드려야 할 가장 현실적인 채용·육성 레버다.

1,300만 명의 잠자는 역량 — 숫자가 말하는 기회비용

맥킨지는 영국·독일·이탈리아 3,000명 이상의 근로자를 조사한 뒤, 유럽 전역으로 확장 분석했다. 결론은 단순하다. 사회경제적 배경이 낮은 근로자들의 고용률을 상위 집단 수준으로 올리기만 해도 210만 명이 노동시장에 추가된다. 한 사람당 평균 74,692유로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한다고 보면, 그것만으로 1,600억 유로다.

그런데 진짜 임팩트는 그 다음이다. 스킬 구성을 재배치하면 5,900억 유로, 경력 승진 속도를 균등화하면 5,700억 유로가 추가된다. 고숙련 직무에서의 가치 창출 상승폭은 44%에 달한다. 솔직히 이건 좀 놀라운 수치다. 다양성 캠페인 100번보다 승진 파이프라인 한 번 뜯어고치는 게 임팩트가 크다는 얘기다.

9%

사회이동성 개선 시 유럽 GDP 상승 잠재력

McKinsey, 2025

1,300만 명

고숙련 역할로 이동 가능한 근로자 수

McKinsey, 2025

8%

비학력 배경 직원을 구조적으로 지원하는 기업 비율

BCG, 2026

70%

다양성 높은 조직에서 ‘완전히 기여한다’고 응답한 비율

BCG DACH, 2026

92%의 기업이 외면하는 구조적 사다리

BCG가 2026년 발표한 보고서는 더 냉정하다. 기업의 대다수가 다양성을 표방하지만, 비학력 배경(non-academic background) 출신 직원을 구조적으로 지원하는 곳은 고작 8%다. 나머지 92%는 ‘다양성’을 채용 공고에 써넣되, 실제 경력 개발·멘토링·승진 경로에서는 암묵적 학력 장벽을 유지한다.

이 간극의 이름이 바로 ‘퍼스트 제너레이션 프로페셔널(First-Generation Professional)’ 문제다. 가족 중 처음으로 대학을 나오거나 전문직에 진입한 사람들. 이들은 면접에서 ‘문화적 적합성(culture fit)’이라는 모호한 기준에 걸려 탈락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업이 가장 원한다는 ‘다양한 시각’을 가진 사람이 ‘우리 문화와 안 맞는다’는 이유로 걸러지는 것이다.

사례 — BCG의 FirstGen 프로그램BCG는 자사 내부에서 퍼스트 제너레이션 직원 네트워크를 공식 운영한다. 비학력 가정 출신 컨설턴트가 시니어 파트너의 멘토링을 받고, 클라이언트 프로젝트에서 의도적으로 리드 역할을 부여받는 구조다. 단순한 ERG(Employee Resource Group)를 넘어 승진 경로 자체를 재설계한 점이 다르다. 이 프로그램 이후 해당 그룹의 2년 차 이탈률이 유의미하게 감소했다.

‘소속감’이 성과를 만든다 — DACH 1,000명이 증명한 것

BCG가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DACH) 지역 전문가·관리자 1,000명 이상을 조사한 결과는 직관을 뒤집는다. 문화적·민족적 다양성이 높은 조직에서 ‘완전히 기여하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70%였다. 다양성이 낮은 조직에서는 59%. 11%포인트 차이가 왜 중요한가. DACH 출신이 아닌 직원만 따로 보면 격차가 더 벌어진다. 다양성 높은 환경에서 웰빙 지수가 42%에서 63%로 뛴다.

직원들이 다양성의 가장 큰 이점으로 꼽은 항목도 흥미롭다. ‘창의성과 혁신’, ‘우수 인재 유치력’, ‘직원 몰입도’ 순이다. 그리고 ‘시장 이해도’와 ‘고객 인사이트 심화’까지. 아쉽다. 한국에서는 아직 이런 수준의 대규모 실증 데이터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방향은 같다.

한국 맥락 — 블라인드 채용 이후, 다음 단계는

한국의 사회이동성 논의는 ‘블라인드 채용’에서 멈춰 있다. 2017년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 의무화 이후, 민간에서도 출신 학교를 가리는 관행이 확산됐다. 그런데 채용 입구만 바꿨을 뿐, 입사 이후의 경력 경로는 그대로다. 대기업 정기 공채가 급감하고 경력직 수시 채용 비율이 27.5%포인트 올라간 지금, 오히려 ‘경력’이라는 새로운 장벽이 생겼다.

고용노동부의 2025년 기업 채용동향 조사에 따르면 인사 업무에 AI를 활용하는 기업이 86.7%에 달했다. 채용 과정 자체에 AI를 쓰는 곳도 21.7%. 스킬 기반 채용(Skill-Based Hiring)이라는 말은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기업의 51%가 여전히 경력직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신입만 뽑겠다는 곳은 2.6%에 그쳤다. 스킬을 본다면서 경력을 요구하는 모순. 이게 한국형 사회이동성 정체의 실체다.

유럽 29개국이 심각한 인재 부족을 호소하고, 2020년 이후 구인 공석률이 50%까지 치솟았듯 한국도 구조는 같다. 건설, 제조, IT 분야에서 사람이 없다고 외치면서, 정작 비전통적 경로 출신 인재에게 문을 열 구조적 장치는 부재하다.

사다리를 다시 놓는 HR의 역할

그렇다면 HR 실무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유럽 데이터가 보여주는 핵심은, 채용 단계의 ‘열린 문’보다 입사 후 ‘경력 가속’이 훨씬 큰 경제적 가치를 만든다는 점이다. 고숙련 직무에서의 가치 창출 상승폭 44%, 중숙련 직무에서 13%. 승진 파이프라인을 점검하는 일이 채용 공고를 수정하는 것보다 ROI가 높다.

BCG DACH 연구가 시사하는 포인트는 ‘소속감(belonging)’의 측정 가능성이다. 다양성이 높은 조직과 낮은 조직의 몰입도 차이 11%포인트. 이건 측정할 수 있고, 개입할 수 있고, 개선 여부를 추적할 수 있는 수치다. HR이 ‘문화’라는 추상적 개념에 기대지 않고, 소속감 지수를 분기별 KPI로 잡아야 하는 근거가 여기 있다.

그리고 ‘퍼스트 제너레이션’ 인재 식별과 지원이다. 한국에서는 아직 이 개념 자체가 HR 용어로 자리잡지 못했다. 그러나 지방대 출신, 비전공 전환자, 특성화고 직무 전환자 등 동일한 구조적 불리함을 안고 있는 집단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들에 대한 의도적인 멘토링과 승진 트랙 설계가 다양성을 ‘구호’에서 ‘구조’로 바꾸는 출발점이다.

답은 ‘제도’가 아니라 ‘경로’에 있다

사회이동성을 HR 전략의 키워드로 올려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인재 풀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졸 신입 공채는 전년 대비 43% 급감했고, 62.8%의 기업이 하반기 채용 계획조차 세우지 못했다. 인재가 부족한 게 아니다. 인재를 볼 수 있는 눈이 좁아진 거다.

맥킨지의 1조 3,000억 유로, BCG의 8%, DACH의 11%포인트. 숫자는 충분히 나와 있다. 문제는 이 숫자를 자사의 승진 데이터, 이탈률 데이터, 성과 데이터와 겹쳐볼 의지가 있느냐다. 채용 공고에 ‘학력 무관’이라고 쓰는 건 2017년에 끝난 숙제다. 지금 필요한 건 입사 3년 차, 5년 차 경력 경로에서 출신 배경에 따른 격차가 벌어지지 않는지 추적하는 일이다. 누가 올라오고 누가 멈추는지. 그 데이터가 사회이동성의 실체이고, HR이 진짜 개입해야 할 지점이다.

실무 시사점: 채용 단계의 블라인드 정책만으로는 사회이동성이 개선되지 않는다. 입사 후 3~5년 차 승진 전환율을 출신 배경별로 분리 추적하고, 멘토링·프로젝트 리드 기회를 의도적으로 배분하는 것이 ‘진짜 다양성’의 시작이다. 소속감 지수를 분기 KPI로 설정하면 문화 개선이 측정 가능한 HR 성과가 된다.

#사회이동성 #다양성 #소속감 #스킬기반채용 #HR트렌드

참고 링크

작성: 서재홍 | N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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