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나서야 노동자가 됐다. 2026년 4월 21일 경남 진주 CU 물류센터 앞에서 교섭을 요구하던 화물연대 조합원 1명이 회사 측 대체 차량에 치여 숨졌다. 그 이후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형식이 자영업자라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종속되어 일한다면 노동자로 봐야 한다.” 정부의 언어가 바뀌었다. 이 발언이 단순한 위로의 말일까, 아니면 수십만 명 특수고용 노동자의 법적 지위를 흔들 해석 전환의 출발점일까.
한 줄 요약: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형식이 자영업자라도 실질 종속이면 노동자”라고 발언하면서, 근기법의 인적 종속 기준을 넘어 경제적·실질적 종속까지 근로자성으로 인정하는 해석 전환이 시작됐다. 일터기본법 제정 방향과 맞물려 화물·라이더·학습지 교사 등 특수고용 직군 전반의 법적 지위가 흔들릴 전망이다.
7번의 교섭 거부 끝에 일어난 일
BGF리테일의 물류 구조는 전형적인 다단계다. BGF리테일(원청) → BGF로지스(자회사) → 지역별 협력업체 → 화물기사. 화물기사들은 맨 끝에서 실제 배송을 담당하지만 법적으로는 BGF리테일과 아무런 계약 관계가 없다. 그래서 원청은 교섭 의무가 없다고 버텼다. 사망자가 나오기 전까지 총 7차례 교섭 요청이 모두 거절됐다.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이 2026년 3월 10일 시행됐다. 이 법은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 원청’도 사용자로 보고 교섭 의무를 부담하게 한다. 7차례의 교섭 거부는 법 시행 이후에도 이어진 일이다. 김 장관이 이 사건을 두고 “노란봉투법의 취지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결과”라고 명시한 이유다.
7회
BGF리테일 교섭 거부 횟수 — 사망 사고 이전까지
CU 물류센터 사건 보도 종합 (2026.4)
6개
대법원 노조법상 근로자성 판단 요소 (2018두44361)
대법원 2018두44361 등 종합
3.10
노란봉투법 시행일 — 원청 사용자성 명문화
개정 노조법 (2026.3.10. 시행)
왜 화물기사는 오랫동안 ‘노동자’가 아니었나
문제의 핵심은 법이 두 개의 근로자 개념을 사용한다는 데 있다.
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 제1호는 근로자를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2007년 전부개정 현행법 기준). 법원은 이 조항을 해석하면서 사용자의 구체적·직접적 지휘·감독을 받는 인적 종속성을 핵심 기준으로 삼는다.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관계인지가 판단의 출발점이다.
반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조 제1호는 훨씬 넓다.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를 근로자로 규정한다. 대법원(2018두44361 등)은 이 조항을 해석하면서 경제적 종속성에 주목해 다음 6가지를 종합 고려한다.
- 특정 사업자에게 주로 소득을 의존하는지
- 보수와 계약 내용이 사업자 측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는지
- 그 사업의 수행에 필수적인 노무를 제공하는지
- 법률관계가 지속적·전속적인지
- 어느 정도 지휘·감독 관계가 존재하는지
- 받는 수입이 노무 제공의 대가인지
화물기사는 이 기준에서 번번이 미끄러졌다. 자기 트럭을 소유하고, 여러 사업자와 계약하거나 계약을 거부할 수도 있으며, 개인사업자 등록을 한 경우도 많다. 그래서 근기법상 근로자는 아니라는 것이 오랜 통설이었다. 반면 노조법상 근로자로는 인정될 수 있어서 노동조합을 만들 권리는 있지만, 근기법상 근로자가 아니라서 해고제한·최저임금·퇴직금 등의 보호는 받지 못하는 ‘반쪽 노동자’ 상태에 놓여왔다. 이 두 기준의 간극이 문제다.
장관이 꺼낸 단어: ‘실질 종속’과 ‘일터기본법’
CU 참사 이후 김 장관의 발언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다. 노동부는 초기에 화물기사를 “소상공인, 개인사업자”로 규정하며 노란봉투법 적용을 피하려 했다. 그러나 사망자가 나오자 장관 스스로 “형식이 자영업자라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종속되어 일한다면 노동자로 봐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는 근기법의 ‘인적 종속’을 넘어 경제적·실질적 종속 관계를 근로자성 인정의 근거로 삼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동시에 정부는 일터기본법 제정으로 이 문제를 풀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고용형태나 계약 방식과 관계없이 ‘일하는 사람’ 전반에 노동 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등 기본권을 명시하고, 국가의 보호·지원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다. 노동계는 이에 반발한다. 근로기준법 직접 개정이 아닌 별도 기본법은 보호 수준을 분절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일터기본법이 최저임금·퇴직금·해고제한 같은 실질적 권리까지 포함할 것인지가 앞으로 최대 쟁점이 될 전망이다.
실무 포인트 — 계약 형식보다 ‘실질’ 법원과 노동위는 계약서 표지에 ‘개인사업자’라고 적혀 있어도 실질 지휘·감독, 전속성, 수입 의존도를 종합 검토한다. 위탁·도급 계약 갱신 전에 실질 관계부터 점검하는 것이 분쟁 예방의 첫 단추다.
실무에서 지금 당장 점검해야 할 것들
특수고용 인력을 활용하는 사업체라면 아래 세 가지를 즉시 확인해야 한다.
- 실질 지휘·감독 여부 확인: 배송처·배송 시간·근무 장소를 회사가 지정한다면 그 자체로 사용종속 관계가 인정될 수 있다. 계약서에 ‘개인사업자’라고 적혀 있어도 법원은 계약 형식이 아닌 실질로 판단한다. 지시 방식·업무 도구 제공 여부·전속성 정도를 함께 살펴야 한다.
- 교섭 요청 대응 절차 정비: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원청에게도 교섭 의무가 생겼다. 노조가 교섭을 요청하면 7일 이내 공고 의무가 있으며, 고의적 거부는 부당노동행위(노조법 제81조 제1항 제3호)에 해당해 형사처벌까지 이어질 수 있다. BGF리테일 사례가 반면교사다.
- 계약 구조 실질 점검: 일터기본법이 도입되면 용역·위탁 계약서에 명시된 ‘비근로자’ 조항이 법원에서 부인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지금부터 계약 구조의 실질을 파악해 두지 않으면 법 시행 직후 한꺼번에 리스크가 터질 수 있다.
특히 플랫폼 라이더, 학습지 교사, 보험 설계사, 골프장 캐디 등 기존에 특수고용으로 분류되어 온 직종들은 이번 법 해석 전환의 직접 파급 대상이다. 특정 플랫폼이나 사업체에 전속되어 수입의 대부분을 의존하는 구조라면 노조법상 근로자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주의 — 교섭 거부의 형사 리스크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원청에 실질 지배력이 있는데도 교섭 요청을 고의적으로 거부하면 노조법 제81조 제1항 제3호 부당노동행위로 형사처벌까지 이어질 수 있다. 7일 이내 공고 의무를 빠뜨린 사례가 가장 흔한 함정이다.
앞으로의 전망: 화물에서 라이더까지
정부가 ‘실질 종속 = 노동자’라는 언어를 꺼낸 이상, 이 논리는 화물연대에서 멈추지 않는다. 법원이 최근 ‘노동시장 종속성’까지 근로자성 인정 근거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도 같은 흐름이다. 특정 플랫폼 없이는 수입을 올릴 수 없는 라이더, 수십 년간 한 회사 교재만 팔아온 학습지 교사는 이 기준에서 어떻게 판단될까.
일터기본법의 구체적 내용이 아직 공개되지 않은 지금, 사업체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 회사에 특수고용 형태로 일하는 사람이 몇 명이며, 그 실질적 관계는 어떠한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법이 완성되기를 기다렸다가는 이미 늦다. 정부가 먼저 언어를 바꿨고, 법은 언제나 언어를 따라온다.
💡 시사점:
① 언어가 먼저 바뀌었다. 정부가 ‘실질 종속 = 노동자’를 공식 발언으로 꺼낸 이상, 화물·라이더·학습지 교사 등 특수고용 전 직군이 해석 전환의 사정권에 들어왔다.
② 계약 형식이 더 이상 방패가 아니다. ‘개인사업자’ 표지·위탁계약서만으로 근로자성을 부인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실질 지휘·감독·전속성 점검이 선제 과제다.
③ 일터기본법은 변수다. 최저임금·퇴직금·해고제한이 포함될지가 향후 1~2년 최대 쟁점. 법 통과를 기다리지 말고 지금부터 인력 구조를 재설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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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 화물기사는 노조법상 근로자로 인정받나요?
네. 대법원은 경제적 종속성이 인정되면 노조법상 근로자로 봅니다. 특정 사업자에게 전속·의존하는 화물기사는 노동조합 결성 및 단체교섭 권리를 가질 수 있습니다.
Q. 노조법상 근로자와 근기법상 근로자는 무엇이 다른가요?
근기법상 근로자는 인적 종속성(직접적 지휘·감독)이 기준이며, 노조법상 근로자는 경제적 종속성(수입 의존도)이 기준입니다. 노조법 범위가 더 넓어 특수고용직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Q. 일터기본법이 도입되면 특수고용직에게 어떤 권리가 생기나요?
고용형태와 무관하게 노동 3권과 국가 보호·지원 근거가 명시될 예정입니다. 최저임금·퇴직금 포함 여부는 추후 입법 과정에서 결정됩니다.
Q. 특수고용 인력 활용 기업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나요?
실질 지휘·감독 여부와 전속성 정도를 점검하고, 노조의 교섭 요청 시 7일 이내 공고 의무를 이행해야 합니다. 고의적 거부는 부당노동행위(노조법 제81조 제1항 제3호)로 형사처벌 대상입니다.
Q. 원청도 하청 노동자 교섭 의무를 지나요?
노란봉투법(2026.3.10. 시행) 이후 원청에 실질적 지배력이 있으면 사용자로 인정되어 교섭 의무가 생깁니다. 형식상 계약 관계가 없어도 실질 지배력이 있으면 적용됩니다.
작성: 서재홍 | N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