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두 번째 급여를 받는 사람들
사무실 퇴근 후 노트북을 다시 여는 직장인이 있다. 주말마다 배달 플랫폼에 로그인하는 40대 과장이 있다. 블로그에 제휴 마케팅 글을 올리는 대리가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회사 취업규칙 어딘가에 ‘겸직금지’라는 조항이 적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조항이 현실에서는 사실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24년 1분기 기준, 한국에서 부업을 가진 취업자는 55만 2천 명. 전년 동기 대비 22.4% 증가했다. 전체 취업자 대비 비중은 2019년 1.34%에서 2023년 약 2%로 5년 사이 1.5배가 됐다. 숫자만 보면 아직 소수처럼 보이지만, 이 통계에는 플랫폼 노동이나 SNS 수익 활동처럼 공식 집계에 잡히지 않는 겸업은 빠져 있다. 한 설문에서는 직장인 응답자의 82.1%가 부업을 하고 있거나 고려 중이라고 답했다. 솔직히, 55만 명이라는 공식 숫자는 빙산의 일각이다.
한 줄 요약: 겸업은 더 이상 예외가 아니라 기본값이 되고 있다. HR은 ‘겸직금지’라는 오래된 통제 수단 대신, 겸업 리스크를 관리하는 체계를 설계해야 한다.
월급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고백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두 번째 일을 찾는 걸까.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돈이 부족하다.
부업을 시작한 이유를 묻는 설문에서 55.1%가 “월급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워서”라고 답했다. 미국도 다르지 않다. Monster의 2026년 조사에서 근로자의 95%가 “임금이 물가 상승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응답했고, 복수 소득을 가진 근로자의 51%는 추가 수입이 기본 생활비 충당에 “절대적으로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건 욕심이 아니라 생존이다.
한국의 부업 근로자 월평균 소득을 보면 그 현실이 더 선명하다. 복수일자리 종사자의 월평균 소득은 295만 7천 원으로, 단독 일자리 종사자보다 21만 원 정도 많다. 하지만 시간당 소득은 오히려 낮다. 1만 3천 원 수준으로, 단독 종사자보다 적다. 더 오래 일해서 겨우 더 버는 구조다. 부업 자체의 평균 월수입은 62만 원. 생존을 위한 62만 원이라는 현실 앞에서 취업규칙의 겸직금지 조항은 공허하게 들린다.
55.2만 명
한국 복수일자리 종사자 (2024 1분기)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 2024
82.1%
부업 중이거나 고려 중인 직장인
직장인 설문조사 / 2024
62만원
부업 월평균 수입
goover 리포트 / 2024
겸직금지 조항, 법은 어떻게 보는가
대부분의 한국 기업 취업규칙에는 “회사의 사전 허가 없이 다른 직업에 종사하거나 영업을 할 수 없다”는 겸직금지 조항이 들어 있다. 위반 시 징계 사유로 규정하는 곳도 많다. 그런데 이 조항이 법적으로 절대적인 효력을 갖는 건 아니다.
한국 판례의 기본 입장은 명확하다. 근로자가 다른 사업을 겸직하는 것은 개인 능력에 따른 사생활의 영역이므로, 기업질서나 노무 제공에 지장이 없는 겸직까지 전면적·포괄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핵심 기준은 “본업의 근로 제공에 방해가 되는지 여부”다.
사례 — 미국 리모트 워커의 이중 고용 사건SHRM이 보도한 사례에서, 한 미국 근로자가 9개월 동안 두 전문서비스 기업에서 동시에 급여를 받았다. 재택근무 환경에서 상사가 실시간 업무를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발각 후 즉시 해고됐지만, 이 사건은 리모트 환경에서 겸업 감독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한국에서도 재택·하이브리드 근무가 확산되면서 같은 감독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판례 기준이야말로 HR이 주목해야 할 지점이라고 본다. 법원은 “금지”가 아니라 “방해 여부”를 본다. 그렇다면 HR도 겸직을 막는 데 에너지를 쓸 게 아니라, 겸직이 본업에 방해가 되는 시점을 감지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번아웃이라는 진짜 리스크
겸업의 리스크는 비밀유지 위반이나 경업금지 저촉만이 아니다. 더 조용하고 더 광범위한 위험은 번아웃이다.
미국의 한 조사에서 밀레니얼 세대 겸업자의 42%가 과도한 근로시간과 잦은 업무 전환으로 인한 번아웃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26%는 장기적 겸업이 정신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인정했다. 한국의 상황이 이보다 나을 거라고 보기는 어렵다. 본업 주 40시간에 부업을 더하면 주 50~60시간 노동이 일상화된다. 연령대별 N잡 증가율을 보면 29세 이하 청년층이 30.9%, 40대가 27.7%로 가장 가파르다. 커리어 초입의 청년과 가정 부양의 40대가 가장 빠르게 겸업으로 밀려들고 있다는 뜻이다.
이건 좀 불편한 진실인데, 많은 기업이 겸업을 ‘충성도 부족’의 신호로 해석한다. 하지만 데이터가 말하는 건 정반대다. 겸업자 대부분은 본업을 그만두고 싶어서가 아니라, 본업의 급여만으로는 생활이 안 되기 때문에 두 번째 일을 잡는다. 38%는 장기적으로도 복수 직업을 유지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이들에게 겸업은 선택이 아니라 생활 설계의 일부다.
금지 너머의 질문
겸업 시대에 HR이 마주한 진짜 과제는 “겸직을 허용할 것인가, 금지할 것인가”가 아니다. 이미 55만 명이 겸업 중이고, 82%가 고려 중인 상황에서 금지는 답이 아니다. 질문을 바꿔야 한다.
하나는 경업 리스크 관리다. 포괄적 겸직금지 대신, 동종 업계 경쟁사 취업이나 영업비밀 유출 가능성이 있는 겸업만 구체적으로 제한하는 방식으로 취업규칙을 재설계하는 것. 미국의 고용법 전문가 조너선 시걸(Duane Morris LLP)은 “경쟁적 성격의 겸업이라면 사전 공개가 필수”라고 강조하면서도, “HR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먼저 꺼내지 말고 대화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다른 하나는 성과 기반 감지 체계다. 겸업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 본업 성과의 저하 — 마감 지연, 응답 속도 하락, 집중력 분산의 징후 — 를 조기에 포착하는 피드백 루프를 갖추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겸업이 본업에 방해가 되는 순간을 감지하는 체계는, 겸업을 하지 않는 직원의 성과 관리에도 똑같이 유효하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질문. 우리 회사의 급여 수준이 직원들에게 두 번째 일을 찾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55.1%가 “월급만으로는 부족해서” 겸업을 시작했다는 데이터 앞에서, 겸직금지 조항의 실효성을 따지기 전에 보상 체계부터 점검하는 게 순서일 수 있다. 겸업은 직원의 불충이 아니라 보상 시스템이 보내는 경고 신호다.
💡 실무 시사점: 겸직금지 조항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포괄적 금지 대신 경업·비밀유지에 한정한 구체적 제한으로 전환하고, 성과 기반 모니터링을 겸업 관리의 중심축으로 삼아야 한다. 직원이 부업을 찾는다면, 그건 충성도의 문제가 아니라 보상 설계의 문제일 수 있다.
#겸업관리#N잡시대#겸직금지#폴리워킹#HR운영#보상설계
참고 링크
- SHRM, “2026 Trends: Polyworking – Double the Paychecks, Double the Risk” (2026)
- MBC 뉴스, “부업 뛰는 ‘N잡러’ 50만 돌파…청년층·40대 급증” (2024)
- NBER, “Platform Work: Evidence from Drivers in India, Indonesia, and Kenya” (2026)
- goover, “2024년 대한민국의 N잡 트렌드 분석 및 현황” (2024)
- The HR Digest, “Polyworking: The Rise of Multiple Jobs in Today’s Workforce” (2025)
작성: 서재홍 | N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