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OT 뒤에 숨은 시간, 정부가 꺼내 들었다
8월 21일, 고용노동부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이 대전·청주 일대 IT·R&D 업체를 대상으로 포괄임금제 오남용 5차 릴레이 감독에 착수했다. 올해 들어 다섯 번째다. 2월에 시작된 1차 기획감독부터 판교 테크노밸리, 서울 금융·콜센터, 경남 제조업 현장까지 — 감독의 반경이 넓어질수록 드러나는 건 같은 구조다. 고정OT라는 이름으로 실제 연장근로시간을 기록하지 않고, 초과분은 ‘없는 시간’으로 처리하는 관행.
솔직히, 이 문제가 새롭지는 않다. 다만 달라진 건 속도다. 정부가 ‘공짜노동 근절’이라는 직설적 표현을 정책 전면에 내걸었고, 국회에는 관련 법안 9건이 올라가 있으며, 대통령까지 “노동 대가는 온당하게 지급해야 한다”고 공개 발언한 상황이다. 포괄임금제를 둘러싼 환경이 구조적으로 전환되는 시점에서, HR이 할 일은 분명하다. 근로시간 기록 체계를 지금 재설계하는 것이다.
한 줄 요약: 포괄임금제라는 이름 뒤에 숨어 있던 ‘공짜 야근’이 정부 감독으로 하나씩 드러나고 있고, HR이 근로시간 기록 체계를 지금 재설계하지 않으면 체불 리스크와 인재 이탈을 동시에 맞게 된다.
1차 감독이 보여준 숫자의 무게
2026년 2월부터 약 두 달간 진행된 1차 기획감독 결과는 예상보다 적나라했다. 전국 포괄임금 오남용 의심 사업장 101개소를 조사한 결과, 79개소가 포괄임금을 실제로 활용하고 있었고 그중 34개소에서 연장·휴일·야간 근로수당 미지급이 확인됐다. 연장근로 한도 위반 34개소, 근로시간 기록·관리 위반 27개소가 동시에 적발됐으며, 임금·퇴직금 등 체불까지 포함하면 위반 사업장은 68곳으로 늘어난다.
4억 4,800만원
1차 기획감독 적발 체불액
고용노동부, 2026
34개소
수당 미지급 적발 사업장(101개 중)
고용노동부 1차 감독, 2026
29.7%
10인 이상 사업장 포괄임금제 운영 비율
고용노동부 실태조사, 2020
체불액 4억 4,800만원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이유는 그 자체가 아니다. 이 금액은 101개소만 들여다본 결과다. 2020년 실태조사 기준으로 10인 이상 사업장 2,522곳 중 749곳(29.7%)이 포괄임금제를 운영하고 있었다. 대기업으로 좁히면 비율은 더 높아져서, 2017년 조사에서 대기업 195곳 중 113곳(58%)이 해당 제도를 쓰고 있었다. 감독 범위가 확장될수록 적발 규모도 비례할 수밖에 없다.
왜 IT·R&D가 집중 타깃인가
5차 감독이 대전·청주의 IT·R&D 업체를 겨냥한 건 우연이 아니다. 1차 감독에서 대전 권역의 포괄임금 위반 적발률이 전국 최고치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대전청 관내에서만 6개소가 적발됐는데, 업종별로 보면 소프트웨어 개발업 5개소, 연구개발업 1개소다. 사실상 지식서비스 산업이 전부였다.
적발 사례가 그 구조를 보여준다. A사(소프트웨어)에서는 근로자 14명의 고정OT 초과 연장·휴일·야간 근로수당 합계 2,500만원이 미지급됐다. B사(연구개발)에서는 근로자 1명에 대해 1,300만원이 체불됐다. 공통점은 하나다. 실제 근로시간을 기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임금명세서에 시간외수당의 계산방법조차 기재하지 않은 사업장이 대부분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업종의 특성이 문제를 더 키운다고 본다. 프로젝트 기반으로 일하는 개발자와 연구원에게 “출근 9시, 퇴근 6시”라는 틀이 잘 맞지 않는다는 인식이 포괄임금제를 ‘합리적 대안’으로 포장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판례는 명확하다. 근로시간 산정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경우에만 포괄임금이 예외적으로 인정된다. 사무실에서 코드를 짜는 개발자의 근로시간은 충분히 측정 가능하다.
감독이 아니라 시스템이 드러난 것
5차까지 이어진 릴레이 감독에서 반복적으로 적발된 위반 유형을 보면, 개별 사업장의 ‘실수’가 아니라 산업 전체의 시스템 문제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사례 — 경남 제조업 현장한 경남 창원의 제조업체는 계약상 월 48시간 고정 연장근로수당만 지급하고, 그 이상의 야근에 대해서는 수당을 주지 않았다. 더 문제적인 건, 주 52시간 법정 한도를 초과하면 실근로시간 입력 자체를 시스템에서 차단했다는 점이다. 기록이 없으니 수당도 없고, 위반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구조다.
판교의 한 IT·게임업체는 두 달간 매일 밤 10시까지 야근을 시키면서도 구두 지시를 이유로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 화장품 제조업체에서는 근로자 310명의 연장수당 1억 2,300만원이, 세탁업체에서는 연장근로 한도 위반 412차례와 연차휴가 미사용수당 4,200만원이 적발됐다. 업종과 규모를 막론하고 패턴이 같다는 점이 이건 좀 심각하다.
도입 이유 60%가 이미 위법 소지
포괄임금제를 왜 도입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문제의 본질을 보여준다. 고용노동부 실태조사에서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워서”라는 응답이 60.2%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임금 계산의 편의”(43.4%)와 “기업 관행”(25.7%)이라는 응답도 합치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여기서 결정적 괴리가 발생한다. 판례가 인정하는 포괄임금의 유효 요건은 “근로시간 산정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경우”인데, 도입 기업의 절반 가까이가 편의나 관행을 이유로 쓰고 있다는 뜻이다. 2018년 한국노동연구원 보고서는 이미 포괄임금제를 운영하는 상당수 사업장이 “위법 또는 불법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 바 있다. 여론도 규제 강화 쪽으로 기울었다. 2026년 1월 전국지표조사에서 규제 강화 찬성 52%, 반대 33%로 19%포인트 차이가 났다.
4월 지침, 국회 법안, 그리고 시스템 전환
4월 9일부터 시행된 고용노동부의 ‘공짜노동 근절을 위한 포괄임금 오남용 방지 지도 지침’은 세 가지를 명확히 했다. 임금대장에 기본급과 수당을 구분하여 기재할 것, 실제 근로시간에 상응하는 수당을 산정·지급할 것, 정액수당으로 기본급·수당을 미구분 지급하는 방식을 허용하지 않을 것. 이 지침만으로도 기존의 “월 200만원 고정 지급, 연장·야간 포함”이라는 관행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국회에서는 더 강도 높은 입법이 진행 중이다. 현재 포괄임금제 관련 법안이 9건 상정돼 있다. 전현희·김태선 의원안은 근로자 동의·근로자대표 협의·고용노동부 인가를 받아야만 제한적으로 허용하되, 위반 시 2년 이하 징역 등 형벌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태선 의원안은 더 나아가 예외 없는 전면 금지를 추진한다.
경영계의 반론도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서 포괄임금제 도입 기업의 74.7%가 현행 유지를 희망했고, 경총 조사에서는 포괄임금·고정OT 도입 사업장의 79.3%가 실제 근로시간이 약정시간보다 적다고 응답했다. 대기업의 52.5%는 “실근로시간 측정에 따른 노사 갈등 심화”를 반대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이건 아쉽다 — ‘측정하면 갈등이 생긴다’는 논리는, 뒤집으면 ‘측정하지 않으면 갈등이 안 보인다’는 의미에 불과하다.
기록하지 않는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다
이 모든 흐름이 가리키는 방향은 하나다. 포괄임금제의 존폐 여부와 관계없이, 근로시간을 실제로 기록하고 관리하는 체계를 갖추지 않은 사업장은 리스크 위에 서 있다.
HR이 당장 확인해야 할 것은 단순하다. 우리 회사의 임금명세서에 시간외수당 계산방법이 기재돼 있는가? 고정OT를 초과하는 실근로시간을 기록하는 시스템이 있는가? 그 기록을 기반으로 초과분 수당을 정산하는 프로세스가 작동하고 있는가?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아니오”라면, 그건 감독 이전에 이미 체불이 발생하고 있다는 뜻이다.
포괄임금이라는 이름은 편리했다. 계산도 간단하고, 갈등도 안 보이고, 야근도 자연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기록하지 않은 시간이 사라지는 건 장부에서뿐이다. 일한 사람의 몸과 일상에서 그 시간은 고스란히 남는다. 정부가 그 시간을 꺼내 들기 시작한 지금, HR이 먼저 꺼내 드는 편이 낫다.
💡 실무 시사점: 포괄임금·고정OT를 사용하는 사업장은 (1) 임금명세서에 시간외수당 계산방법을 기재하고, (2) 실근로시간 기록 시스템을 즉시 가동하며, (3) 고정OT 초과분 수당 정산 프로세스를 구축해야 한다. 4월 지침 시행과 5차 감독 확대는 ‘권고’가 아니라 ‘예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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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링크
- 고용노동부, “대전·청주지역 지식서비스업체 대상 포괄임금 오남용 5차 릴레이 감독 실시” (2026)
- 아시아경제, “야근시키고 수당 ‘0원’…’포괄임금 금지법’ 속도” (2026)
- 이로운넷, “‘공짜노동’ 구조 드러난 포괄임금제…통계에서 법·제재까지, 전환의 문턱” (2026)
- 고용노동부, “공짜노동 근절을 위한 포괄임금 오남용 방지 지도 지침 시행” (2026)
작성: 서재홍 | N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