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상반기, 고용노동부 회의실에서는 두 가지 숫자가 동시에 논쟁 중이다. 하나는 내년 최저임금 — 노동계가 요구하는 1만2000원과 경영계가 주장하는 1만320원(동결) 사이 1680원의 간극. 다른 하나는 임금근로자 5명 중 1명이 퇴직급여를 받지 못한다는 471만 명의 사각지대 숫자다. 언뜻 무관해 보이는 두 이슈는 사실 같은 뿌리에서 자란다. 저임금·단기고용 구조가 최저임금 제도도, 퇴직급여 제도도 동시에 무력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핵심이다. HR이 이 두 제도 논쟁을 정책 뉴스로만 소비하는 동안, 회사 안 직원들은 두 가지 보호망을 동시에 벗어난 상태로 일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것도 합법적으로.
한 줄 요약: 퇴직급여 사각지대와 최저임금 논쟁은 저임금·단기고용 구조라는 단일 원인의 두 증상이며, HR은 법 개정을 기다리는 대신 지금 내부 설계로 이 공백을 메워야 한다.
두 제도가 동시에 뚫리는 구조
퇴직급여 사각지대는 생각보다 넓고, 생각보다 선명한 패턴이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임금근로자 2214만 3000명 중 471만 4000명(21.3%)이 퇴직급여를 받지 못하는 위치에 있다. 연령대별로는 60세 이상 고령층이 37.1%로 가장 높고, 15~29세 청년층도 23.9%에 달한다. 업종별로는 보건·사회복지서비스업, 숙박·음식점업, 도매·소매업에 집중된다.
이 숫자가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단순히 ‘법을 지키지 않는 사업주’가 문제가 아니다. 주 15시간 미만 근무, 계속근로기간 1년 미만 — 이 두 조건은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이 아예 보호 대상으로 삼지 않는 법적 공백이다. 문제는 이 공백 안에 일하는 사람들이 471만 명이라는 점이다. 제도가 작동하지 않는 게 아니라, 제도가 설계된 대로 정확하게 작동한 결과가 21.3%다.
471만 명
퇴직급여 수령 불가 임금근로자 (2024년)
한국노동연구원 / 2026
37.1%
60세 이상 고령 임금근로자 중 사각지대 비율
KLI 노동리뷰 2026.5
1,680원
2027년 최저임금 노사 최초 요구안 격차 (1만2000원 vs 1만320원)
최저임금위원회 / 2026.6
250만 명+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근로자 (2024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
통계청 경활부가조사 / 2025
최저임금 심의 테이블에서도 같은 구조가 반복된다. 2026년 6월 최저임금위원회는 다섯 차례 전원회의를 거쳐 노사 최초 요구안을 확인했다. 노동계 1680원 인상 요구의 근거는 최근 3년 연속 1~2%대에 머문 인상률이 실질임금을 깎아먹었다는 것. 경영계 동결 주장의 근거는 소상공인·중소기업의 인건비 부담이다. 흥미롭게도 두 진영이 제시하는 ‘취약계층’은 동일하다 — 단시간·계절 근로자, 영세 사업장 종사자. 보호하려는 대상이 같은데 처방이 정반대인 것이다.
HR이 주목해야 할 ‘합법적 사각지대’의 실체
솔직히, 많은 인사담당자들이 이 문제를 ‘법적으로 문제없는 영역’으로 여긴다. 주 15시간 미만 계약서를 쓰면 퇴직급여 의무가 없고, 최저임금을 맞추면 임금 의무는 충족된다. 기술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런데 바로 이 ‘합법적 최소선’을 기업 운영의 기준점으로 삼는 순간, 두 가지 비용이 축적된다.
하나는 이직 비용이다. 단시간·단기 계약 직원들의 평균 재직기간이 짧을수록 채용·교육 비용의 반복 지출이 발생한다. 다른 하나는 평판 비용인데, 이 부분이 점점 현실화되고 있다. 젊은 구직자들이 잡플래닛·블라인드에서 “퇴직금 안 주는 구조로 계약”이라는 후기를 남기는 빈도가 늘었다. 법적으로 문제없는 관행이 채용 브랜드를 침식하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사례 — 보건복지 업종요양보호사,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등 보건·복지 업종은 퇴직급여 사각지대 비중이 전업종 평균보다 유의미하게 높다. 동일 시설에서 일하는 정규직과 단시간 계약직 사이에 퇴직급여 수령 여부가 달라지는 구조가 고착화돼 있다. 2026년 현재도 이 업종에서 ‘합법적 사각지대’ 계약이 일반화돼 있으며, 노동리뷰 2026년 5월호는 이를 “제도적 사각지대와 실질적 사각지대가 중첩되는 대표 영역”으로 분류했다.
제도 논쟁이 끝나기 전에 HR이 할 수 있는 것
최저임금 고시는 매년 8월, 퇴직급여법 개정은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다. 그 사이에도 조직은 돌아간다. 아쉽다는 말이 나오는 지점이 여기다 — 법 개정 논의가 수년째 이어지는 동안 기업 내부 설계는 제자리인 경우가 많다.
당장 실행 가능한 방향은 세 가지 층위에서 생각할 수 있다.
계약 설계 재검토가 첫 번째다. 주 15시간 미만 계약이 정말 필요한 업무 특성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퇴직급여 회피를 위한 편의적 설계인지 구분해야 한다. 전자라면 현행 계약이 합리적이다. 후자라면 이미 리스크가 축적되고 있다. 법원이 ‘쪼개기 계약’이라고 판단할 여지가 있는 구조, 즉 실질적으로 동일 업무를 하는 단시간 계약자를 복수로 운영하는 방식은 실질적 계속근로로 재해석될 가능성이 있다.
최저임금 적용 범위 자체 점검이 두 번째다. 2027년 적용 최저임금은 아직 미정이지만, 2026년 현재 시급 1만320원이 모든 수당 구조에 반영되어 있는지 — 특히 포괄임금제로 운영하는 직군에서 최저임금 위반 리스크가 없는지 — 지금 점검하는 것이 연말 소급 리스크를 줄이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사각지대 직원에 대한 자발적 처우 보완이 세 번째다. 법 의무가 없더라도, 퇴직 시점에 일정 금액의 위로금이나 재취업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업들이 있다. 비용 부담 없이 당장 실행 가능한 것은 복지 포인트, 경조사비, 건강검진 지원 등 금전 외 처우의 비정규 직원 확대 적용이다. 이런 내부 설계가 결과적으로 이직률을 낮추고, 채용 브랜드를 지킨다.
flowchart TD
A[단시간·단기 계약 직원] -->|주15h미만 or 근속1년미만| B[퇴직급여 사각지대]
A -->|최저임금 이상 지급| C[임금 의무 충족]
B --> D{HR 대응 방향}
C --> D
D -->|계약 재설계| E[실질 계속근로 리스크 제거]
D -->|자발적 처우 보완| F[이직률 감소 · 채용 브랜드 보호]
D -->|최저임금 사전 점검| G[포괄임금 위반 리스크 차단]
정책 논쟁 너머, 조직 안을 보는 시선
최저임금위원회가 노사 간 간극을 좁히는 데에는 수개월이 걸린다. 퇴직급여 사각지대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데는 그보다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이 대기 시간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기간’으로 인식하는 것 자체가 리스크라고 생각한다.
두 제도가 동시에 닿지 않는 영역에 있는 직원이 조직 안에 몇 명인지, 그 사람들이 언제부터 그 위치에 있었는지 — 이 두 가지를 지금 파악할 수 있다면, 법이 바뀌기 전에 조직이 먼저 움직일 수 있다. 정책이 뒤따라오는 구조가 가장 좋은 그림이다. 반대로 정책이 바뀐 뒤에야 부랴부랴 계약서를 다시 쓰는 조직은 그때 가서야 비용을 치른다.
지금 당신 회사의 초단시간 계약 직원 명단을 꺼내볼 이유가 충분하다.
💡 실무 시사점: 퇴직급여 사각지대(21.3%)와 최저임금 논쟁은 모두 단기·단시간 고용 구조에서 발생한다. HR은 법 개정을 기다리는 대신, 내부 계약 설계 재검토와 자발적 처우 보완으로 지금 당장 대응할 수 있다. 쪼개기 계약 리스크 점검과 포괄임금 최저임금 위반 사전 확인이 핵심 액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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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링크
- 한국노동연구원, 노동리뷰 2026년 5월호 — 퇴직급여제도 사각지대와 정책과제 (2026)
- 고용노동부, 최저임금위원회 2026년 제2차 전원회의 개최 결과 (2026)
- 고용노동부, 최저임금위원회 2026년 제5차 전원회의 개최 결과 (2026)
- 아주경제, 임금근로자 5명 중 1명은 퇴직급여 사각지대…여성·청년·고령층 집중 (2026)
- 머니투데이, 최저임금 1만2000원 던진 노동계…3년 연속 저율 인상률 (2026)
작성: 서재홍 | N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