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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실사가 HR 실무로 내려온다 — ESG팀 너머, 채용에서 공급망까지

145만 명. 태국 자동차·전자 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 수다. 지난달 이 산업의 공급망 한가운데에서 인권 실사 훈련이 시작됐다. 참가자 40여 명, OEM부터 3차 협력사 관리자, 노동조합 대표까지 한자리에 모였다. 풍경이 낯설다고? 한국 기업 입장에서도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독일 공급망실사법(LkSG)은 이미 1,000인 이상 기업에 법적 의무를 부과하고 있고, EU 공급망 실사 지침(CSDDD)은 2027년부터 단계적으로 적용된다. 한국 수출 기업이 EU 역내에서 4억 5,000만 유로 이상 매출을 올리면, 유럽 기업과 동일한 실사 의무가 걸린다. 솔직히, 이 숫자를 보고도 “우리는 해당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는 제조사가 얼마나 될까.

한 줄 요약: 인권실사는 ESG팀 전용 업무가 아니다. 채용, 평가, 협력사 관리를 아우르는 HR 실무 의제로 지금 전환해야 한다.

인권실사가 뭔데, 왜 갑자기 HR한테 오는가

인권실사(Human Rights Due Diligence, HRDD)는 기업이 자사 활동과 공급망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권 리스크를 식별하고, 예방하고, 시정하는 절차를 말한다. 핵심은 “선언”이 아니라 “절차의 작동”이다. 인권헌장을 작성해서 홈페이지에 올려두는 수준으로는 어떤 글로벌 규제도 통과하지 못한다.

문제는 이 절차 대부분이 HR이 이미 하고 있는 업무와 겹친다는 점이다. 채용 과정의 차별 여부, 근로조건과 안전, 고충처리 채널, 협력사 노동환경 모니터링. 국제 규범이 요구하는 실사 항목을 펼쳐보면, ESG팀이 아니라 HR팀이 실질적 데이터를 쥐고 있다.

4.5억 유로

EU 역내 매출 기준 — 이 이상이면 비EU 기업도 CSDDD 적용

EU CSDDD Omnibus I 개정안

1,000인+

독일 LkSG 적용 대상 기업 규모 기준

독일 공급망실사법

50개사+

태국 자동차·전자 업종 HRDD 훈련 참여 기업

ILO RSC 프로젝트

글로벌 규제 타임라인, HR이 모르면 안 되는 이유

규제가 쏟아지고 있다.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빠르게.

2027년 7월부터 EU CSDDD 1단계가 시작된다. 직원 5,000명 이상, 매출 15억 유로 이상 기업이 대상이다. 2028년에는 3,000명·9억 유로, 2029년에는 1,000명·4.5억 유로까지 내려온다. 캐나다는 이미 2024년부터 강제노동·아동노동 공급망법을 시행 중이고, 미국의 위구르강제노동방지법(UFLPA)은 신장 지역 연계 제품의 수입을 원천 차단한다.

한국은 어떤가. 국회에 발의된 ‘기업인권환경보호법안’이 계류 중이지만, 별도의 기업인권실사법은 아직 없다. 개인적으로는 이 공백이 오히려 더 위험하다고 본다. 법이 없으니 준비도 안 하고, 준비가 안 됐으니 글로벌 바이어의 실사 요청에 갑자기 당한다. 이미 현대자동차는 인권헌장에 정기 인권 리스크 평가를 명시했고, 2·3차 협력사까지 관리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대기업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머지가 문제다.

HR 실무자가 지금 점검해야 할 것들

인권실사를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기존 HR 프로세스 위에 “인권 렌즈”를 하나 얹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

채용 단계에서는 공고문의 차별 표현, 면접 질문의 편향, 파견·위탁 노동자의 근로조건 점검이 핵심이다. 특히 외국인 근로자를 다수 고용하는 제조 현장이라면, 여권 보관 여부나 기숙사 환경까지 실사 범위에 들어온다.

근로조건 관리에서는 초과근무 실태, 안전장비 지급, 임금 지급의 투명성이 점검 항목이다. “우리 회사는 당연히 법 지키고 있다”고 말하기 전에, 2·3차 협력사도 같은 수준인지 확인한 적 있는가.

고충처리는 가장 취약한 영역이다. 고충처리 채널이 존재하는 것과 실제로 작동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태국 HRDD 훈련에서 가장 강조된 것도 바로 이 부분이었다. 경영진과 노동자 사이의 양방향 대화 없이는 리스크를 식별할 수 없다는 것이 핵심 메시지였다.

사례 — 태국 자동차 부품사미쓰비시전기 태국 부품 자회사의 한 관리자는 HRDD 훈련 후 이렇게 말했다. “인권 실사는 경영진의 선의가 아니라, 관리자와 현장 노동자 간의 구조적 대화에서 시작된다.” 이 회사는 훈련 이후 기업별 개선 계획을 수립하고, 멘토링 기반의 후속 지원 프로그램에 들어갔다. 일회성 교육이 아니라, 절차를 내재화하는 방식이다.

ESG 보고서 안에 숨은 HR의 빈칸

2028년부터 한국에서도 ESG 공시가 의무화될 예정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 지표의 포함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기후 공시가 먼저 도입되더라도, 사회 분야 — 특히 노동·인권 관련 공시의 의무화 일정이 함께 명시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건 곧 HR의 데이터가 공시 항목이 된다는 뜻이다. 이직률, 산업재해율, 고충처리 건수, 교육 투자 시간, 다양성 지표. 이 숫자들을 매년 감사 가능한 형태로 관리하고 있는 HR팀이 얼마나 될까. 솔직히 이건 좀 아쉬운 대목이다. 대부분의 HR팀이 이 데이터를 “갖고 있다”고 말하지만, 외부 감사를 견딜 수 있는 수준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곳은 드물다.

태국 사례가 시사하는 건 명확하다. 인권실사는 한 번의 체크리스트가 아니라, 지속적인 절차의 내재화다. 그리고 그 절차의 중심에는 HR이 있다.

선언 말고 절차, 절차 말고 증거

국내 기업의 인권경영 대응은 아직 “인권헌장 작성 후 홈페이지 게시”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가 많다. 글로벌 규범이 요구하는 건 그 다음이다. 위험 식별, 고충처리 메커니즘, 구제 조치, 협력사 개선, 이사회 감독. 이 다섯 가지가 실제로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를 내야 한다.

증거는 HR 시스템에서 나온다. 고충처리 접수·해결 건수, 안전교육 이수율, 협력사 현장 점검 기록, 채용 과정의 다양성 데이터. ESG팀이 보고서를 쓰더라도, 원 데이터를 생산하고 품질을 보증하는 건 HR의 역할이다.

태국에서 시작된 훈련이 한국 HR에 던지는 질문은 하나다. 우리 회사의 인권실사 절차는 “선언”에서 멈춰 있는가, “증거”를 만들고 있는가. 답이 후자가 아니라면, 2027년 CSDDD 1단계 적용 전까지 남은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

실무 시사점: 인권실사는 ESG팀의 보고서 작업이 아니라 HR의 일상 프로세스 점검이다. 채용-근로조건-고충처리-협력사 관리 전 영역에서 “절차가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를 남기는 것이 핵심이다. 2027년 CSDDD 1단계 적용 전, 기존 HR 시스템 위에 인권 렌즈를 추가하는 것부터 시작하라.

#인권실사 #CSDDD #ESG #공급망관리 #HR트렌드

참고 링크

작성: 서재홍 | N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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