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권 하나에 이직률 21.7%p 폭증 — 비자가 만드는 ‘보이지 않는 족쇄’
캐나다에서 임시 취업비자로 일하던 외국인 근로자가 영주권을 받는 순간, 이직률이 21.7%포인트 급등한다. 미국국립경제연구소(NBER)가 2004~2014년 캐나다 고용보험 행정데이터를 전수 분석해 내놓은 숫자다. 3년 뒤 소득은 평균 3.2% 올랐고, 상승분의 대부분은 더 나은 회사로 옮긴 덕이었다. 임금 협상력이 아니라 ‘떠날 자유’가 소득을 끌어올린 것이다.
이 연구가 한국 HR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생산가능인구가 매년 30만 명 넘게 줄고 있는 한국은, 외국인 인력 없이는 산업 현장을 유지할 수 없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우리의 고용허가제(E-9)는 사업장 변경을 극도로 제한하는, 전형적인 ‘고용주 종속 비자’다. 솔직히 말하면, 인재를 데려오겠다면서 이동의 자유를 묶어두는 건 모순이다.
한 줄 요약: 비자 제도가 인재의 이동성을 틀어막으면 기업도 국가도 손해 — 글로벌 인재 확보 경쟁에서 HR은 ‘열린 이동성’을 설계해야 한다.
숫자로 보는 글로벌 인재 이동의 현주소
21.7%p
영주권 취득 직후 이직률 급증폭
NBER Working Paper #34630 / 2025
3.2%
영주권 취득 3년 뒤 소득 상승률
NBER Working Paper #34630 / 2025
36십억$
아프리카 디지털 서비스 수출액 (2023)
HBS Working Knowledge / 2025
0.72명
한국 합계출산율 — 세계 최저
통계청 / 2023
고용주 종속 비자의 구조적 함정
NBER 연구의 핵심 발견은 이렇다. 임시 취업비자 소지자는 고용주가 바뀌면 체류 자격 자체가 위태로워진다. 이 구조에서는 외부 기업이 아무리 좋은 조건을 제시해도 이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제학 용어로 ‘매칭 효율’이 떨어지는 것이고, 현장 언어로 바꾸면 ‘맞지 않는 일자리에 묶여 있는 인재’가 양산된다는 뜻이다.
연구진은 두 가지 시나리오를 비교했다. 하나는 고용주가 임시 근로자 채용 시 추가 비용을 부담하는 방식, 다른 하나는 ‘오픈 비자’ — 고용주 변경 없이 자유롭게 이직할 수 있는 방식이다. 오픈 비자 시나리오에서 근로자의 기업 간 매칭 품질이 유의미하게 개선됐다. 개인적으로는, 이 결과가 한국의 E-9 제도 개편 논의에 직접 인용돼야 할 수준이라고 본다.
한국의 고용허가제는 원칙적으로 사업장 변경을 3회까지만 허용하고, 그마저도 사업주 귀책사유가 있어야 가능하다. 근로자 본인의 직무 적합성이나 경력 발전은 변경 사유로 인정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인력 수급이 급한 중소 제조업체에 배치된 고숙련 인재가 수년간 역량과 무관한 단순 업무를 반복하는 일이 벌어진다.
결제 마찰을 낮추면 100만 개의 일자리가 열린다
글로벌 인재 이동의 장벽은 비자만이 아니다. 하버드경영대학원(HBS)의 최신 연구는 ‘결제 비용’이라는 뜻밖의 변수를 조명한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국경을 넘어 돈을 보내려면 거래액의 8.7~12.6%가 수수료로 사라진다. UN의 지속가능발전 목표(SDG)가 제시하는 3%의 세 배가 넘는 수치다.
이 마찰이 실제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극적이다. 거래 비용이 10% 오를 때마다 원격 근무 수출액이 4.7%씩 줄어든다. 뒤집어 말하면, 결제 비용을 절반으로 낮추면 원격 근무 수출액이 30억 달러(24%) 증가하고, 90만~110만 개의 새 원격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계산이다.
사례 — 나이지리아 핀테크 Gigbanc아프리카 원격 근로자 22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2%가 2개 이상의 통화로 급여를 받고 있었다. 핀테크 솔루션을 도입하면 월 결제 수수료를 1인당 319달러 줄일 수 있었다. 나이지리아의 Flutterwave는 2022년 기업가치 30억 달러를 기록하며 아프리카 최고 유니콘에 올랐는데, 이 회사의 핵심 사업이 바로 국경 간 결제 마찰을 줄이는 것이다. 2011년부터 2023년 사이 아프리카의 디지털 서비스 수출은 두 배 이상 늘어 360억 달러에 달했다.
이건 좀 과소평가되는 논점인데, 한국 기업이 베트남·인도네시아·필리핀 인력을 활용할 때도 급여 송금 비용은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해외 현지법인 없이 프리랜서나 원격 근로자를 고용하려는 중소기업이라면, 결제 인프라의 품질이 곧 채용 경쟁력이다.
피크 코리아 — 생산가능인구 절벽 앞에 선 HR
한국의 15~64세 생산가능인구는 2020년 3,738만 명을 정점으로 매년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통계청 추계에 따르면 2040년에는 2,852만 명, 2060년에는 2,066만 명까지 줄어든다. 불과 한 세대 만에 노동력의 45%가 사라지는 셈이다. 합계출산율 0.72명은 OECD 38개국 중 압도적 꼴찌로, 반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외국인 근로자 의존도는 필연적으로 높아진다. 2025년 기준 E-9(비전문취업) 비자 쿼터는 16만 5천 명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그러나 HR인사이트의 분석처럼, 단순히 숫자를 늘리는 것과 ‘글로벌 HR 전략’을 갖추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인력 수입은 물량 게임이 아니라 제도 설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인재가 있는 곳으로 일자리를 보내는 ‘원격 우선(Remote-first)’ 모델, 비자 스폰서십을 경쟁 무기로 활용하는 채용 전략, 현지 적응을 돕는 온보딩 프로그램까지 — HR의 역할이 ‘채용 공고를 올리는 것’에서 ‘국경을 넘는 고용 생태계를 설계하는 것’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동의 자유가 곧 생산성이다 — 열린 제도가 만드는 선순환
NBER 연구가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통찰은, 영주권 취득 후 소득 상승이 ‘같은 회사에서 연봉 협상을 잘해서’가 아니라 ‘더 적합한 회사로 옮겨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이는 노동 경제학의 핵심 가설 — 이동성이 매칭 효율을 높이고, 매칭 효율이 생산성을 높인다 — 을 실증한 것이다.
한국 맥락에서 이를 번역하면, E-9 근로자의 사업장 변경 제한을 완화하는 것이 단순한 ‘근로자 복지’가 아니라 ‘산업 생산성 향상 정책’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적합하지 않은 사업장에 묶인 근로자는 생산성이 낮고, 이탈 동기는 높으며, 결국 불법체류로 이어지는 가능성이 커진다.
HBS 연구 역시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결제 마찰이 줄어들면 기업은 물리적 이민 없이도 글로벌 인재풀에 접근할 수 있다. 한국 기업에 이건 핵심이다 — 비자 발급 없이, 현지법인 설립 없이, 해외 인재를 프로젝트 단위로 활용할 수 있는 인프라가 깔리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제도와 인프라 사이에서 HR이 서야 할 자리
인구 절벽은 거시적 위기지만, 대응은 미시적 실행에서 시작된다. 거래 비용 10% 상승이 원격 고용을 4.7%씩 갉아먹는다는 HBS의 발견을 떠올려보자. 글로벌 인재를 쓰겠다면서 해외 송금에 건당 5만 원씩 지불하고 있다면, 그건 전략이 아니라 관성이다.
동시에, 비자 제도의 변화를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 고용허가제가 당장 바뀌지 않더라도, 기업 차원에서 외국인 근로자의 직무 전환 기회를 넓히고, 한국어 교육과 자격증 취득을 지원하며, 숙련도에 따른 내부 경력 경로를 설계하는 것은 지금 당장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아쉽다고 말해야 할 것은, 이런 수준의 투자를 하는 중소기업이 아직 극소수라는 현실이다.
결국 질문은 하나로 수렴한다. 우리는 외국인 근로자를 ‘부족한 손’으로 볼 것인가, ‘확보해야 할 인재’로 볼 것인가. NBER의 21.7%포인트가 증명하듯, 이동의 자유를 준 순간 이들은 스스로 더 생산적인 자리를 찾아간다. HR의 역할은 그 이동을 막는 것이 아니라, 이동의 방향이 조직과 개인 모두에게 이로운 쪽이 되도록 경로를 설계하는 것이다.
💡 실무 시사점: 외국인 인력 제도가 바뀌기를 기다리지 말고, 기업 내부에서 먼저 ‘열린 이동성’을 설계하라. 직무 전환 경로, 숙련도 기반 승급, 결제 인프라 점검이 글로벌 채용 경쟁력의 출발점이다.
#글로벌HR#인재이동성#피크코리아#고용허가제#원격근무#인구절벽
참고 링크
- NBER, “The Labor Market Return to Permanent Residency” (2025)
- HBS Working Knowledge, “How Fintech Could Bring Africa’s Digital Talent to the World” (2025)
- HR인사이트, “피크 코리아 시대의 글로벌 HR” (2025)
작성: 서재홍 | N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