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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임원이 조용히 실패하는 이유 — 한국 기업에 ‘임원 온보딩’이 없다

발령장 한 장으로 끝나는 임원 전환

올해 초 주요 금융그룹들이 잇따라 정기 임원 인사를 발표했다. 부사장 승진, 상무 신규 선임, 계열사 간 보직 전환 — 보도자료에는 인원과 직급이 빼곡하게 나열된다. 그런데 한 가지 빠진 게 있다. 이 사람들이 새 자리에서 어떻게 적응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이다.

한국 기업의 임원 인사는 ‘발령’에서 끝난다. 누구를 어디에 앉힐지를 결정하는 데 몇 달을 쓰지만, 새 자리에 앉은 뒤 그 사람이 어떤 순서로 조직을 파악하고, 누구와 먼저 만나고, 언제까지 첫 성과를 낼지에 대한 로드맵은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솔직히 말하면, 대부분의 한국 기업에서 임원 온보딩이라는 개념 자체가 아직 낯설다.

한 줄 요약: 한국 기업은 ‘누구를 앉힐까’에 몇 달을 쓰지만, ‘앉힌 뒤 어떻게 성공시킬까’에는 하루도 투자하지 않는다 — 그 공백이 임원급 조기 이탈과 보이지 않는 비용을 만든다.

숫자가 말하는 온보딩 부재의 비용

임원 선발에 들이는 비용은 눈에 보인다. 헤드헌팅 수수료, 보상 패키지, 이사회 심의 시간. 하지만 온보딩 실패의 비용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40%

신임 임원의 18개월 내 이탈 또는 성과 미달 비율

Harvard Business Review, 2024

6.2개월

신임 임원이 손익분기 성과에 도달하는 평균 기간

CEB/Gartner Executive Survey

68%

체계적 온보딩 프로그램이 없는 기업 비율

Egon Zehnder Global Board Survey, 2023

6.2개월이라는 숫자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임원 연봉이 2억 원이라면, 반년 동안 약 1억 원이 ‘적응 비용’으로 소진된다는 뜻이다. 여기에 그 임원이 이끄는 팀의 생산성 저하, 전략 실행 지연, 이전 임원 퇴임으로 인한 공백까지 더하면 실제 비용은 연봉의 3~5배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다.

왜 한국 기업은 임원 온보딩을 설계하지 않는가

이유는 구조적이다. 한국 대기업의 정기 임원 인사는 보통 12월에서 1월에 한꺼번에 이루어진다. 수십 명의 임원이 동시에 보직을 바꾸는 상황에서, 개별 맞춤형 온보딩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문화에 있다. 임원이면 알아서 해야 한다는 전제가 강하다. “임원인데 적응 프로그램이 왜 필요하냐”는 시선이 인사팀 안에서도 존재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인식이야말로 가장 비싼 착각이라고 생각한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이해관계자 지형이 복잡해지고, 암묵적 의사결정 규칙이 많아지며, 실패의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역설적으로, 임원이기 때문에 더 정교한 전환 지원이 필요하다.

또 하나는 ‘내부 승진 편향’이다. 한국 기업 임원의 상당수는 내부 출신이다. “우리 회사를 10년 넘게 다녔는데 뭘 온보딩하느냐”는 논리다. 하지만 팀장과 임원의 역할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실무 관리자에서 전략적 의사결정자로의 전환은, 같은 회사를 다녔더라도 새로운 학습이 필요한 불연속적 도약이다.

‘환영 만찬’이 아닌 ‘전환 설계’가 필요하다

사례 — 글로벌 금융사의 90일 경청 투어하버드비즈니스리뷰가 소개한 한 글로벌 금융사는 신임 C-suite 임원에게 첫 90일간 ‘전략적 경청 투어’를 의무화했다. 핵심 이해관계자 20명과의 1:1 미팅, 현장 방문 3회, 이사회 멤버와의 비공식 식사를 구조화한 프로그램이다. 이 회사의 신임 임원 18개월 잔류율은 업계 평균보다 25%p 높았다.

여기서 핵심은 ‘구조화’다. 환영 만찬이나 부서 순회 인사가 아니라,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들어야 하며, 언제 첫 의사결정을 하는지를 사전에 설계하는 것이다. 이건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구체적이어야 한다.

효과적인 임원 전환 설계에는 세 가지 축이 있다. 하나는 ‘관계 매핑’으로, 공식 조직도 너머의 실질적 영향력 네트워크를 파악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조기 성과 설계’인데, 첫 60일 안에 가시적인 작은 성과를 만들어 조직의 신뢰를 확보하는 전략이다. 마지막은 ‘피드백 루프’다. 90일, 180일 시점에 이해관계자 피드백을 수집해 궤도를 수정하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flowchart LR
    A[발령 D-30] -->|이해관계자 매핑| B[D-Day 부임]
    B -->|경청 투어 20인| C[D+30 관계 구축]
    C -->|조기 성과 1건| D[D+60 신뢰 확보]
    D -->|360 피드백| E[D+90 궤도 수정]
    E -->|전략 실행| F[D+180 정착 완료]

발령 이후 90일 — 그 시간을 설계하고 있는가

올해도 수백 명의 신임 임원이 새 명함을 받았다. 그중 체계적인 전환 지원을 받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 대부분은 “임원이면 알아서 하겠지”라는 무관심 속에서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있을 것이다.

임원 인사의 성패는 발령일에 결정되지 않는다. 발령 이후 90일, 그 시간을 누가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인사팀이 임원 선발에 쏟는 에너지의 절반만이라도 임원 온보딩에 투자한다면, 지금 한국 기업이 매년 치르고 있는 보이지 않는 비용의 상당 부분을 줄일 수 있다.

💡 실무 시사점: 임원 인사를 ‘발령’이 아닌 ‘전환 프로젝트’로 재정의하라. 신임 임원의 첫 90일을 구조화하는 것만으로 적응 기간을 단축하고 조기 이탈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내부 승진 임원이라 해도, 역할 전환에 맞는 이해관계자 매핑과 조기 성과 설계는 필수다.

#임원온보딩 #정기인사 #전환설계 #리더십 #HR전략

참고 링크

작성: 서재홍 | N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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