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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 33%, 만족도 38% — 사내 인재시장이 HR에 던지는 진짜 질문

같은 연구에서 두 개의 숫자가 나왔다. 회사가 역할을 지정하면 생산성이 33% 올라간다. 대신 직원이 역할을 고르면 만족도가 38% 올라가고, 이직 의향은 절반 가까이 줄어든다. 생산성과 만족도가 이렇게 정반대로 갈라지는 숫자는 드물다. 그리고 이 두 숫자 사이 어딘가에, 2026년 인사 설계의 진짜 과제가 있다.

한국 기업에선 아직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지만, 글로벌 인사 담론에서 ‘사내 인재시장(Internal Talent Market)’이라는 프레임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팀장이 공석을 채우고 HR이 배치하는 전통 방식 대신, 사내 프로젝트·역할·이동 기회를 공개해 직원이 직접 지원·응모하게 만드는 구조다. 문제는 그 운영 방식이다. 완전히 직원 선택에 맡기면 만족도는 올라가지만 조직이 필요로 하는 어려운 자리, 덜 매력적인 자리는 비게 된다. 완전히 회사 배치에 맡기면 생산성은 나오지만 핵심 인재가 떠난다. 33 대 38은 이 딜레마를 수치로 보여주는 기준점이다.

직무 배치에서 스킬 시장으로 —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한국 기업 인사는 ‘직무분석(Job Analysis) → 직무기술서 → 배치 → 평가’ 라는 산업화 시대의 뼈대 위에 서 있었다. 그런데 최근 HR 담론은 이 뼈대 자체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고 본다. 직무분석은 역할을 고정된 박스로 묘사하는데, 실제 일은 프로젝트·과제·협업의 묶음으로 빠르게 재편된다. 그래서 제안되는 대안이 3A 접근이다. 역할(Role)이 아닌 과제(Activity), 자리(Assignment)가 아닌 권한(Authority), 경력(Career)이 아닌 역량(Ability). 이 세 축으로 다시 보면, 인사 설계의 중심은 ‘누구를 어디에 앉히느냐’가 아니라 ‘어떤 역량이 어떤 과제를 얼마나 빠르게 수행할 수 있느냐’가 된다.

글로벌 컨설팅들이 7,000명 이상의 인사·경영 리더를 조사해 내놓은 2026년 보고서에서도 비슷한 방향이 읽힌다. 경영진의 65%는 HR을 핵심 비즈니스 동력으로 인식한다고 답했다. 그런데 51%는 ‘행정 과부하’가 HR의 전략적 기여를 막는 최대 장벽이라고 답했다. 결국 HR이 인재시장의 운영자로 자리 잡으려면, 그 에너지를 만들 공간부터 확보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 사업장에 번역하면 더 매섭다. 채용공고·근로계약·4대보험 신고·취업규칙·임금대장·연차 관리 같은 행정이 HR 시간의 7~8할을 잡아먹고 있는 곳이 여전히 다수다.

첫 번째 숫자: ‘회사가 배치하면 생산성 33% 상승’의 함정

‘배치 권한을 회사가 쥐면 생산성이 높다’는 결과는 얼핏 당연해 보인다. 비어 있는 어려운 자리, 실적 압박이 큰 팀에도 사람을 밀어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데이터 안에 숨어 있는 장면은 따로 있다. 회사 배치 방식에서 이직 의도는 유의미하게 올라간다. 다시 말해, 단기 생산성은 챙기지만 장기적으로 핵심 인재를 잃는 패턴이 반복된다는 뜻이다. 한국 기업의 전통적 전보·순환근무 제도가 딱 이 구조 위에 서 있다. 공장·본사·지사를 강제로 돌리며 ‘경험 자산’을 만든다고 말하지만, 같은 구조가 왜 MZ 세대의 초기 이탈률을 높이는 요인이 되는지 설명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한국 맥락에서 한 가지를 더 짚어야 한다. 전보처분은 근로계약의 ‘주된 내용’을 벗어나면 법적으로 다툼의 여지가 있다. 판정례는 전보의 업무상 필요성과 근로자에게 주는 생활상 불이익을 비교해 정당성을 판단해 왔다. ‘회사가 배치하면 생산성이 오른다’는 데이터는 맞지만, 한국에서는 그 배치가 근로계약·취업규칙·단체협약 테두리 안에 있어야 한다는 제약이 함께 따라붙는다. 사내 인재시장을 공식화하려면 취업규칙의 ‘인사이동’ 조항을 같이 손질해야 하는 이유다.

두 번째 숫자: ‘직원이 고르면 만족도 38% 상승’이 놓치는 것

반대편 숫자는 훨씬 더 유혹적이다. 직원이 스스로 역할을 고르면 만족도가 38% 오른다. 이직 의도도 줄고, 몰입도와 자발성도 같이 움직인다. 리텐션 전쟁의 한가운데 있는 2026년 한국 HR에게 이 숫자는 거의 답안지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모델의 진짜 리스크는 ‘매력도가 낮은 자리’에 있다. 신사업팀·해외지사·제조 현장·콜센터 같은 덜 매력적인 자리는 공모에서 계속 비게 되고, 결국 공모에 내놓지 않은 채 ‘비공식 배치’로 채우게 된다. 그러면 사내 인재시장 자체가 ‘좋은 자리만 공모하고 나쁜 자리는 지명하는’ 이중 구조로 변형된다. 공정성 지각이 무너지는 전형적 경로다.

글로벌 보고서에서 공통적으로 말하는 해법은 ‘역량 기반 하이브리드’다. 역할을 몇 개의 스킬 묶음으로 분해하고, 그 스킬의 수요·공급을 조직 전체에서 가시화한 다음, 자리(position)가 아닌 과제(gig) 단위로 공모 폭을 넓힌다. 국내 기업 사례 중에는 신입 채용 단계부터 직원을 5가지 역량 유형(일을 돌아가게 하는 실행형, 연결형, 달성형, 창조형, 길을 내는 유형)으로 분류해 관리하는 마케팅 기업의 사례가 참고할 만하다. 중요한 건 ‘호봉·직급’이 아닌 ‘역량 프로파일’이 배치·성장 경로의 축이 된다는 점이다.

보상은 따로 놀면 안 된다 — 3.2%와 3.5% 사이

사내 인재시장을 제도화할 때 가장 자주 빠뜨리는 것이 보상이다. 글로벌 보상 컨설팅이 예고한 2026년 평균 성과급 인상률은 3.2%, 총급여 인상률은 3.5% 수준이다. 한국의 임금인상률 전망도 대체로 비슷한 밴드에 있다. 하지만 전체 평균이 곧 개별 전략이 될 수는 없다. 숙련 기술직·현장직은 인력난에 따른 프리미엄이 계속되고, 사무·관리직은 정체된다. 스킬 기반 보상(skills-based pay)으로의 전환이 강하게 권고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 기업이 스킬 기반 보상을 도입할 때 부딪히는 지점은 분명하다. 호봉제의 잔존, 직급과 연봉의 강한 결합, 취업규칙상 ‘불이익 변경’ 절차. 직급·연차 대신 역량 프레임으로 인상률을 차등화하려면, 취업규칙 개정의 절차적 요건(과반수 동의·의견청취)이 따라붙는다. 제도 설계 한 번이 잘못되면, 이후 통상임금·퇴직금·평균임금 산정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이 간다. 이 점이 해외 리포트가 한국 사업장에 그대로 이식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다.

그래서 HR은 무엇을 먼저 해야 하나

결론은 단순하다. ‘직원 선택이냐 회사 배치냐’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둘의 비율을 설계 변수로 다루는 능력이 핵심 역량이 된다. 1차적으로는 열려 있는 역할의 70% 이상을 공모형으로 개방하되, 전략적 핵심 자리와 매력도 낮은 자리에 대해서는 ‘지명 + 보상 프리미엄 + 성장 약속’을 결합한 구조를 공식화해야 한다. 2차적으로는 행정 과부하를 잘라낼 수 있는 항목부터 자동화·외주화해서 HR 시간의 축을 옮긴다. 3차적으로는 보상 체계를 역량·스킬 기반으로 옮기되, 취업규칙·단체협약의 절차 요건을 미리 설계에 끼워 넣는다.

한국 사업장의 2026년 인사 과제를 요약하면 이렇다. 글로벌 리포트의 숫자를 그대로 옮겨 심지 말 것. 근로계약·취업규칙·단체협약이라는 법적 지반 위에서, 사내 인재시장이라는 새로운 운영 방식을 어느 정도 비중으로 섞을지 결정할 것. 그리고 그 비율이 ‘직원 선택 비중’이라는 하나의 숫자로 매년 보드에 올라오게 할 것. 이 숫자가 보이기 시작하면, HR은 더 이상 행정 기능이 아니라 인재 배분의 포트폴리오 운영자로 바뀐다.

실무 체크리스트 — 사내 인재시장을 파일럿할 때

  1. 공모 대상 역할·프로젝트 카탈로그를 만들고 ‘공모 비중(%)’ 지표를 KPI로 올린다.
  2. 취업규칙 ‘인사이동’ 조항에 공모 절차·지원 자격·합격 후 전보 절차를 명시한다.
  3. 매력도 낮은 자리에는 ‘역할 프리미엄(수당·보직수당·성장 약속)’을 공식 설계한다.
  4. 역량 프로파일을 5~7개 유형으로 정의하고, 평가·배치·보상 축을 이 프로파일 위에 올린다.
  5. 스킬 기반 인상률 차등이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해당하는지 법률 리뷰를 먼저 돌린다.
  6. 전보·직무이동 판정례 3~5건을 사내 HR 가이드로 정리해, 이동 결정 시 리스크 체크 루틴으로 돌린다.
  7. 행정 과부하 항목(4대보험·연차·임금대장)을 리스트업해 자동화·외주화 로드맵을 붙인다.

사내 인재시장은 유행어가 아니라 인사의 운영 방식 자체를 바꾸는 전환이다. 33과 38 사이의 숫자를 ‘누구 편이냐’의 문제로 보지 말고, HR이 매년 설계해야 하는 비율로 보는 순간, 한국 사업장에서도 이 개념은 현실 도구가 된다.


참고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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