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상장 제조업 기업 2015~2023년 9개년 패널 데이터를 전수 분석한 최신 실증 연구에서, ESG 등급이 높은 기업일수록 노동생산성이 오히려 낮다는 결과가 나왔다. ESG 점수와 노동생산성 사이의 부적(−) 관계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했다. 이 발견 자체도 불편하지만, 데이터를 한 겹 더 벗기면 더 날카로운 패턴이 드러난다. 환경(E) 영역의 관리·보고 활동은 생산성을 깎아내리는 반면, 사회(S) 영역의 지역사회 참여 활동은 생산성을 끌어올렸다. 같은 ESG라는 이름표 아래 정반대 방향의 힘이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ESG가 생산성을 갉아먹는 건 ‘착한 경영’의 숙명이 아니라, 관계 자본은 빠뜨린 채 관료적 준수 비용만 쌓는 한국식 ESG 이행 방식의 구조적 결함이다.
한 줄 요약: ESG 등급이 높을수록 생산성이 낮아지는 역설은 ESG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보고서용 ESG’에 매몰된 이행 구조의 실패를 가리킨다.
−(유의)
ES 등급·점수와 노동생산성의 부적 관계
한국은행 BOK 경제연구 제2026-6호
9년
분석 기간 2015~2023 상장 제조업 패널
한국은행 BOK 경제연구 제2026-6호
+(유의)
사회 영역 중 지역사회 참여만 생산성과 정적 관계
한국은행 BOK 경제연구 제2026-6호
2028년
자산 30조 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 ESG 공시 의무화 시점
금융위원회 지속가능성 공시 로드맵
ESG 성적이 좋을수록 노동생산성이 낮다 — 9년치 데이터가 뒤집는 상식
ESG 경영을 도입하면 기업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서사는 거의 공리처럼 통용돼왔다. 채용 브랜딩, 투자 유치, 소비자 신뢰 — 어느 각도에서든 ESG는 ‘해야 이득’인 활동으로 포장되었다. 그런데 한국 상장 제조업 기업의 패널 데이터는 이 서사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다. ES(환경·사회) 등급과 점수 모두 노동생산성과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부적 관계를 보였다. 등급이 올라갈수록, 점수가 높아질수록 노동생산성은 떨어졌다.
이 결과를 단순히 “ESG는 나쁘다”로 읽는 건 섣부르다. 연구 설계를 뜯어보면, 분석 대상은 제조업으로 한정되어 있고 분석 기간은 한국 기업들이 ESG 체계를 본격적으로 구축하기 시작한 시기와 겹친다. 개인적으로는, 이 데이터가 보여주는 건 ESG의 최종 효과가 아니라 이행 초기의 비용 구조다. 문제는 그 초기 비용이 생각보다 훨씬 구조적이라는 점에 있다.
총운영비용 비율이 증거다 — 그런데 비용의 ‘성격’은 말해주지 않는다
연구진은 이 부적 관계를 비용 부담 가설(cost-burden hypothesis)로 설명한다. ES 활동 수준이 높은 기업은 총운영비용 비율(TOCR)이 더 높았고, 이 비용 압박이 노동생산성을 깎아먹는 경로로 작동했다. 메커니즘 자체는 직관적이다. ESG에 투자하면 비용이 늘고, 비용이 늘면 같은 노동 투입 대비 산출이 줄어든다.
솔직히 이 설명은 절반만 맞다. TOCR이 높아졌다는 건 사실이지만, 그 비용이 어디에 쓰였는지는 이 지표만으로 알 수 없다. 신규 설비 투자에 쓰인 비용과 보고서 작성·인증 획득·외부 컨설팅에 쓰인 비용은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이 완전히 다르다. 같은 TOCR 상승이라도 전자는 미래 생산성의 씨앗이 될 수 있고, 후자는 순수한 관리 부담으로 남는다. 연구가 이 구분을 하지 않은 건 데이터의 한계이지만, 바로 이 빈자리에 한국 ESG의 진짜 문제가 숨어 있다.
환경 활동은 깎고, 지역사회 참여는 올리고 — 같은 ESG 안의 갈라진 운명
연구의 세부 분석이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ES를 하위 활동으로 분해했을 때 나타난다. 환경 영역에서 운영·관리 지향적 활동과 커뮤니케이션 지향적 활동은 모두 노동생산성과 부적 관계를 보였다. 환경 매니지먼트 시스템 운영, 탄소 배출 보고, 환경 정보 공시 — 이런 활동은 조정 비용과 관리 오버헤드를 증가시키는 경로로 생산성을 압박했다.
반면 사회 영역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왔다. 지역사회 참여(community engagement) 활동은 노동생산성과 유의미한 정적 관계를 보였다. 연구진은 이를 신뢰·평판·관계 자본 형성이라는 보완적 경로로 설명한다.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통해 형성된 사회적 자본이 기업 운영의 마찰 비용을 줄이고, 인력 확보와 지역 협력에서 우위를 만들어낸다는 논리다.
패턴 — 환경 vs 사회 활동의 분기 같은 ESG 프레임워크 안에서 환경 활동의 관리·보고 영역은 생산성을 깎고, 사회 활동의 지역사회 참여는 생산성을 높였다. 이 갈림길은 관료적 준수와 관계적 투자라는 두 가지 ESG 이행 경로의 존재를 암시한다.
이건 좀 뼈아픈 발견이다. 한국 기업들이 ESG를 도입할 때 가장 먼저 착수하는 게 환경 관리 시스템 구축과 보고 체계 정비인데, 바로 이 활동들이 생산성에 가장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반면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는 지역사회 참여가 유일하게 생산성에 긍정적이었다는 점은, 한국 ESG의 우선순위가 거꾸로 서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관료적 ESG의 함정 — 보고서는 쌓이는데 현장은 바뀌지 않는 이유
환경 활동이 생산성을 깎는 경로를 더 깊이 들여다보면, 한국 제조업의 ESG 이행이 관료적 준수(bureaucratic compliance) 모드에 갇혀 있다는 구조가 보인다. 환경경영 인증(ISO 14001), 탄소 배출량 산정·보고,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 ESG 평가기관 대응 — 이 활동들의 공통점은 외부 검증을 위한 문서화 작업이라는 점이다.
문서화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문제는 이 문서화가 현장의 업무 방식 변화로 연결되지 않을 때 발생한다. 환경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 전담 인력을 배치하고, 데이터 수집 프로세스를 만들고, 외부 인증 심사에 대응하는 일련의 과정은 그 자체로 상당한 관리 비용을 발생시킨다. 그런데 이 비용이 제조 현장의 공정 개선이나 에너지 효율화로 전환되지 않으면, 순수한 행정적 오버헤드로 남게 된다.
중국 제조업 데이터를 분석한 별도의 실증 연구에서는 흥미로운 대비가 나타난다. 스마트 제조 정책(intelligent manufacturing policy)을 도입한 기업에서는 ESG 성과 개선이 총요소생산성(TFP) 향상과 동반되었다. 차이는 명확하다 — 기술 혁신과 결합된 ESG는 생산성을 높이고, 보고·인증에 머무는 ESG는 생산성을 깎는다. 한국 제조업의 ESG가 후자에 가깝다면, 비용 부담 가설은 원인이 아니라 증상을 설명하고 있는 셈이다.
관계 자본이라는 빠진 고리 — 지역사회 참여가 생산성을 올리는 메커니즘
지역사회 참여만 생산성과 정적 관계를 보인 결과는, ESG의 생산성 효과가 관계 자본(relational capital)이라는 매개 변수에 달려 있음을 시사한다. 지역사회와의 관계 형성은 보고서에 숫자로 잡히기 어려운, 그러나 기업 운영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는 자산을 만들어낸다.
구체적으로, 지역사회 신뢰는 세 가지 경로로 생산성에 기여할 수 있다. 첫째, 채용 풀의 확대 — 지역에서 ‘좋은 기업’으로 인식되면 인력 확보의 마찰 비용이 줄어든다. 제조업에서 숙련 인력 확보가 생산성의 핵심 변수임을 고려하면, 이 효과는 무시할 수 없다. 둘째, 행정적 마찰의 감소 — 지역 사회 및 지방정부와의 관계가 좋으면 인허가, 환경 규제 대응 등에서 불필요한 지연이 줄어든다. 셋째, 공급망 협력 — 지역 기반 협력업체와의 신뢰 관계는 거래 비용을 낮추고 위기 시 유연한 대응을 가능하게 한다.
이 메커니즘이 중요한 이유는, 관계 자본이 보고서 한 줄로 환원되지 않는 자산이기 때문이다. ESG 평가기관의 체크리스트에는 지역사회 참여가 하나의 항목으로 들어가지만, 그 항목이 만들어내는 효과는 기업의 일상적 운영 전반에 스며든다. 아이러니하게도, ESG 평가에서 가장 낮은 가중치를 받는 영역이 실제로는 가장 높은 생산성 기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린워싱이 생산성을 한 번 더 깎는다 — 이중 비용의 악순환
관료적 ESG 이행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함정이 있다. 보고서와 등급에 집중하는 이행 방식은 그린워싱(greenwashing)의 유혹을 구조적으로 키운다. 2026년 발표된 중국 상장기업 705개사 종단 연구에서, ESG 그린워싱은 녹색 총요소생산성(Green TFP)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린워싱은 기업 평판을 훼손하고, 수익성을 약화시키며, 자금 조달 제약을 심화하고, 혁신 활동을 저해하는 네 가지 경로로 생산성을 깎았다.
경고 — 그린워싱의 이중 비용 관료적 ESG 이행 → 보고서·등급 중심 투자 → 실질 변화 부재 → 외부 기대와 실체 사이 괴리 → 그린워싱 리스크 증가 → 신뢰 훼손으로 생산성 재하락. 비용을 들여 ESG를 했는데 그 방식이 그린워싱 리스크까지 키우는 이중 비용의 악순환이 형성된다.
더 날카로운 발견은 별도 연구에서 나왔다. 온실가스 배출 집약도가 높은 기업일수록 ESG 점수도 높은 역설적 패턴이 확인된 것이다. 제도적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고배출 기업이 전략적으로 ESG 점수를 높이는 행위 — 이건 ESG 등급 시스템 자체가 실질과 괴리된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의미다. 등급이 높다고 진짜 지속가능한 게 아니고, 등급이 높은 기업의 생산성이 낮은 데는 이런 구조적 왜곡이 한 겹 더 얹혀 있다.
2028년 공시 의무화 전에 HR이 손대야 할 것
한국은 2028 사업연도부터 자산총액 30조 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를 시작으로 ESG 공시 의무화를 단계적으로 시행한다. 2029년에는 10조 원 이상, 2033년에는 코스피 전체 상장사로 확대된다. 이 일정표 앞에서, 지금까지 살펴본 데이터는 한 가지 명확한 메시지를 던진다. 공시 체계를 갖추는 것과 생산성을 지키는 것은 자동으로 양립하지 않는다.
관료적 이행 모드를 그대로 유지한 채 공시 의무화를 맞이하면, 기업들은 보고서 작성 비용만 한 층 더 올려쌓게 된다. 반면 관계 자본 구축을 ESG 이행의 중심에 놓는 기업은 공시 요건도 충족하면서 생산성 하방 압력을 줄일 수 있다. 이건 ESG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다. 9년치 패널 데이터는 그 ‘어떻게’에 대해 이미 답을 내놓았다. 관료적 준수에 매몰된 ESG는 비용이고, 관계 자본을 형성하는 ESG는 투자다.
💡 실무 시사점 — HR이 이번 분기에 점검할 3가지:
① ESG 예산의 용도 분해. 현재 ESG 관련 비용 중 보고·인증·외부 대응에 쓰이는 비율과 현장 개선·지역사회 관계 구축에 쓰이는 비율을 산출한다. 전자가 80%를 넘으면 관료적 이행 모드에 갇혀 있을 가능성이 높다.
② 지역사회 참여를 HR 전략에 편입. 지역 채용 프로그램, 협력업체 역량 강화, 지역 교육기관 연계를 CSR팀이 아닌 HR 전략의 일부로 재배치한다. 이 활동이 채용 풀 확대와 이직률 감소로 연결되는 경로를 측정한다.
③ 공시 의무화 대응 로드맵에 ‘생산성 영향 평가’를 추가. 2028년 공시 준비 과정에서 신설되는 프로세스마다 예상 관리 비용과 현장 업무 방식 변화 여부를 함께 평가한다. 보고만을 위한 프로세스는 자동화 우선 대상으로 분류한다.
#ESG#노동생산성#관계자본#공시의무화#HR전략
참고 링크
- 한국은행, “ESG 활동이 제조업 기업의 노동생산성에 미치는 영향” (2026)
- 금융위원회·김앤장, “금융위원회, 지속가능성(ESG) 공시 로드맵 발표” (2025)
- Wiley Online Library, “The ESG Emissions Paradox” (2026)
- ScienceDirect, “The consequences of hypocrisy: how ESG greenwashing undermines green total factor productivity” (2026)
작성: 서재홍 | N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