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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I 간판이 내려가는 시대, ERG는 왜 살아남는가

S&P 100 기업의 53%가 2025년 공시에서 DEI 문구를 수정했고, 포춘 100 커뮤니케이션에서 ‘DEI’라는 약어 사용은 전년 대비 98% 급감했다. 아마존은 ERG 지원 예산을 삭감했고, 타깃은 3개년 다양성 목표를 전면 철회했으며, 메타는 채용·교육·공급업체 다양성 프로그램을 일괄 종료했다. 그런데 같은 기간, ERG(직원자원그룹) 참여율은 2020년 대비 45% 증가했다. 간판은 내려갔지만, 현장에서는 오히려 정반대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괴리가 DEI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기업이 ‘DEI’라는 단어를 쓰느냐 마느냐보다, 실제로 구성원이 소속감을 느끼는 구조가 작동하느냐가 핵심이다.

한 줄 요약: DEI 정책이 후퇴하는 시기에도 ERG는 이직률·몰입도·혁신에서 측정 가능한 성과를 내고 있으며, 한국 대기업도 본격 도입에 나서고 있다.

ERG가 만들어내는 숫자의 무게

ERG를 단순한 ‘친목 모임’으로 보는 시선이 아직 남아 있다. 하지만 글로벌 데이터는 그 인식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22%

ERG 운영 기업의 이직률 감소폭

Gitnux ERG Statistics Report / 2026

2.3

ERG 프로그램 투자 대비 수익률(ROI)

Gitnux ERG Statistics Report / 2026

72%

Z세대가 입사 전 ERG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비율

Gitnux ERG Statistics Report / 2026

이직률 22% 감소만 놓고 봐도, 직원 1,000명 기업이 연간 절약할 수 있는 채용·온보딩 비용은 수억 원에 달한다. 솔직히, 이 정도 ROI를 보여주는 HR 프로그램이 흔하지 않다. ERG 참여자의 92%가 직무 만족도가 높아졌다고 응답했고, 70%는 자기 회사를 타인에게 추천하겠다고 답했다. 소속감 체감 지수 역시 40% 상승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신규 입사자 데이터다. 입사 90일 이내에 ERG에 참여한 신입 직원은 그렇지 않은 직원보다 잔류 가능성이 2.5배 높았다. 채용 브랜딩과 온보딩, 리텐션이 하나의 파이프라인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조용한 DEI’라는 역설

흥미로운 건, 실제로 DEI 예산을 삭감한 기업은 전체의 19%에 불과하다는 점이다(Resume.org, 2025년 5월 조사). 대다수 기업은 예산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늘렸다. 다만, 조용히 하고 있을 뿐이다.

S&P 500 기업 중 임원 보상에 DEI 지표를 반영하는 비율은 2024년 68%에서 2025년 35%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여성 관리직 데이터 공개 비율은 16% 하락, 이사회 인종 다양성 공시는 31% 감소했다. 이건 좀 아쉬운 대목이다. 정책은 유지하면서 투명성만 후퇴하는 구조는, 결국 외부 검증을 어렵게 만든다.

이 맥락에서 ERG의 가치가 더 부각된다. ERG는 경영진의 공식 발표나 공시 문서에 의존하지 않는다.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현장에서 소속감을 체감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DEI라는 단어가 기업 보고서에서 사라져도, ERG 활동은 현장에서 계속된다.

하버드가 밝힌 ERG 생존의 4축: FAIR 모델

하버드 경영대학원 루뭄바 시거스(Lumumba B. Seegars) 교수는 ERG가 불확실한 시기에 지속되려면 4가지 긴장 축을 관리해야 한다는 ‘FAIR 모델’을 제시했다.

형식성(Formality) — 비공식 안전망과 공식 변화 동력의 균형

ERG의 출발점은 대개 비공식 모임이다. 커피챗, 점심 네트워킹처럼 심리적 안전감을 주는 활동이 기반이 된다. 하지만 조직 차원의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공식 구조—예산, 경영진 스폰서십, 성과 측정—가 필요하다. 시거스 교수는 양쪽을 동시에 유지하되, 상황에 따라 비중을 조절하라고 권고한다.

대상(Audience) — 내부 결속과 외부 연대

ERG가 회원만을 위한 공간이 될 것인지, 비회원·경영진·외부 이해관계자까지 포괄할 것인지는 늘 긴장이 존재한다. 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ERG 리더는 승진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전문성 개발 프로그램을 기획해, 회원의 커리어 성장과 경영진의 참여를 동시에 끌어냈다.

정체성(Identities) — 교차성과 내부 다양성

‘아시안 ERG’ 안에도 동아시아·동남아시아·남아시아 출신 간의 경험 차이가 존재한다. 단일 정체성으로 뭉뚱그리면 오히려 소외감이 생긴다. 인종, 성별, 세대, 장애 등 교차하는 정체성을 인정하는 설계가 필요하다.

회복력(Resilience) — 번아웃 방지와 갈등 전환

ERG 리더의 번아웃은 가장 흔한 실패 원인이다. 공동 리더십 체제, 명확한 역할 분담, 그리고 배제 경험을 포용의 계기로 전환하는 조직 역량이 생존을 결정한다.

사례 — 삼성전자 국내 ERG 출범2025년 12월, 삼성전자 DX부문은 수원 디지털시티에서 국내 최초의 대기업 ERG 발대식을 열었다. 외국인 임직원, 접근성(장애), 일하는 부모, 여성 리더십, DEI 문화 전파 등 5개 주제로 구성되었고, 자발적으로 참여한 임직원 120여 명과 자문 임원 5명이 초기 멤버로 합류했다. 대내외 네트워킹, 멘토링, 인식 개선 교육, DEI 캠페인 등이 활동 계획으로 발표됐다. 현대자동차의 ‘Women@Hyundai’ 프로그램과 함께, 한국 대기업이 글로벌 ERG 트렌드를 실제로 내재화하기 시작한 신호탄이다.

한국 HR 현장에 던지는 질문

글로벌 기업의 62%에서 직원이 최소 하나의 ERG에 참여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 ERG라는 용어를 인지하는 HR 담당자조차 아직 소수다. 이건 역으로 기회이기도 하다.

솔직히, 한국 기업의 조직문화 프로그램은 대부분 ‘위에서 아래로’ 설계된다. 경영진이 기획하고, 인사팀이 운영하고, 직원은 참여하는 구조다. ERG는 이 방향을 뒤집는다. 구성원이 주도하고, 조직이 지원하는 바텀업(bottom-up) 모델이다. 삼성전자의 사례가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20명의 자발적 참여자와 5명의 자문 임원이라는 구성은, 한국식 톱다운 문화에서 바텀업 실험이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보여준다.

포춘 500 기업의 평균 ERG 예산은 연간 10만 달러(약 1.4억 원)다. 그러나 절반 가량의 ERG는 연 5,000달러(약 700만 원) 미만으로 운영된다. 예산보다 중요한 건 경영진 스폰서십(상위 ERG의 90%가 확보)과 활동 시간 보장(65%의 기업이 유급 활동 시간 제공)이라는 데이터가 이를 뒷받침한다.

DEI라는 글자가 보고서에서 사라지고 있는 지금, 정작 현장에서는 ERG를 통해 소속감과 혁신이 동시에 만들어지고 있다. 결국 HR이 답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우리 조직에서 ‘포용’은 슬로건인가, 아니면 구성원이 매일 경험하는 구조인가?

💡 실무 시사점: ERG는 DEI 정책의 부침과 무관하게 이직률 감소(22%), 몰입도 상승(28p), 혁신 기여(57%)라는 측정 가능한 성과를 만들어낸다. 한국 기업이 ERG를 도입할 때 핵심은 예산 규모가 아니라, 경영진 스폰서십 확보와 자발적 참여 구조 설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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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링크

작성: 서재홍 | N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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