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CK

실무 문서 가이드

0 / 0 섹션 완료

원청은 하청 노조와 교섭해야 할까 — 대법원 전합이 그은 사용자성의 경계

2024년 말, HD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조합은 원청 본사에 단체교섭을 공식 요청했다. 하청 근로자들의 작업 배치, 안전 기준, 임금 체계를 실질적으로 좌우하는 쪽이 원청이라는 논리였다. 노조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 제29조 제1항이 보장하는 교섭 요구권을 근거로 삼았다. 원청이 노조법 제2조 제2호가 정의하는 ‘사용자’에 해당한다면, 교섭 거부 자체가 부당노동행위가 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26년 5월 원청의 손을 들어주었다. 핵심 판시는 간명했다. “원청이 하청 근로자들의 기본적인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배·결정 권한을 보유하거나 행사한다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았다.” 이 판결은 동시에 노란봉투법(노조법 개정, 2026.3.10. 시행) 이전에 발생한 쟁의행위에는 개정법이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도 확인했다. 수년간 쌓인 하급심 판례와 충돌하면서 노동법 실무에 새로운 기준선이 그어진 것이다.

같은 ‘사내하청’이라도 원청이 노조와 교섭해야 할 때가 있고, 거부할 수 있을 때가 있다. 그 경계를 가르는 기준이 무엇인지, 인정 사례와 부정 사례를 나란히 놓고 살펴본다.

단체교섭 의무의 법적 근거 — 노조법 제29조·제30조

단체교섭 의무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9조 제1항(교섭 및 체결 권한)과 노조법 제30조(성실교섭 의무)에 규정돼 있다. 근로기준법이 아니다. 근로기준법 제30조는 ‘해고 등의 제한’을 다루는 조항으로, 단체교섭과는 전혀 무관하다. 이 혼동은 이의신청이나 소송에서 조항 하나만 틀려도 주장 전체가 흔들리기 때문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노조법 제2조 제2호는 사용자를 정의하면서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 또는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동하는 자”라고 규정한다. 대법원은 오래전부터 이 정의를 확장 해석해, 원청이 하청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한다면 노조법상 사용자로 볼 수 있다는 법리를 발전시켜 왔다. 문제는 ‘실질적 지배’의 기준이 업종·도급 구조·작업지시 방식에 따라 사건마다 달리 적용된다는 점이다.

인정 사례 vs 부정 사례 — 대법원·행정법원 판정례 비교

사건번호 원청 업종·구조 사용자성 판단 핵심 판단 근거
대법원 2008두8881 자동차 완성차(사내하청) 인정 원청 관리자가 하청 근로자에게 직접 작업 공정·속도·배치를 지시, 실질적 사용·지시 관계 성립
대법원 2016다37937 택배(허브터미널 도급) 인정 원청 시스템·설비·기준으로만 작업 가능, 하청 근로자의 업무 배치·관리를 원청이 사실상 결정
대법원 전합 (2026.5., HD현대중공업) 조선·해양 사내하청 부정 하청이 독자적 채용·임금결정·징계 권한 보유, 하청 현장관리자 통한 간접 지시 구조 — 원청의 실질적 지배 미입증
서울행정법원 2023구합72914 물류·창고 도급 조건부 인정 안전·보건 관리 사항에 한해 원청 지배·결정 인정; 임금·인사 사항은 하청 사업주 권한으로 부정

HD현대중 판결, 무엇이 결정적으로 달랐나

① 하청의 독자적 인사·노무 관리 체계

HD현대중공업 사내하청 업체들은 독자적으로 채용 공고를 내고, 임금 단가를 직접 설정하며, 징계와 해고도 독립적으로 처리했다. 대법원은 “하청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주체가 하청 사업주임이 명확하다”고 보았다. 원청이 작업 표준이나 안전 지침을 전달한 사실만으로는 노조법 제2조 제2호의 ‘지배’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② 작업지시와 근로조건 결정의 구조적 분리

자동차 완성차 공장(대법원 2008두8881)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조선소에서는 공정별 작업 지시가 하청 현장관리자(십장)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원청이 “어느 블록을 어디에 설치하라”고 지시해도, 하청 근로자를 ‘몇 명이서, 어떻게, 얼마를 받고’ 수행하는지는 하청이 결정했다. 이 간접 지시 구조가 사용자성 부정의 결정적 근거가 됐다. 지시 경로의 직접성이 인정과 부정을 가르는 핵심이다.

③ 노란봉투법 소급 적용 불가 — 시행 전 사건은 구법 적용

대법원은 이 판결에서 노란봉투법(노조법 개정, 2026.3.10. 시행) 이전에 발생한 쟁의행위와 손해배상 청구에는 개정 규정이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즉, 시행 전 사내하청 쟁의행위에 대해 원청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는 종전 법률에 따라 그대로 유지될 수 있다. 노란봉투법의 손해배상 면책 규정은 2026.3.10. 이후 발생한 행위부터 적용된다.

승패를 가른 핵심 — 원청 사용자성 3대 판단 기준

판례가 원청 사용자성을 판단할 때 반복적으로 살피는 세 가지 기준이 있다. 이 기준들은 노조법 제29조·제30조의 교섭의무가 원청에 미치는지를 결정하는 실질적 잣대다.

  • 인사·채용·해고권의 소재 — 원청이 하청 근로자의 채용·해고에 실질적으로 개입하거나 결정권을 보유하는가. 원청이 특정 근로자의 현장 출입을 금지하거나 명단 등재를 거부한 사례가 있으면 사용자성 인정의 강력한 근거가 된다.
  • 임금·근로시간 결정 구조 — 하청 근로자의 시급·연장수당·교대제를 원청이 직접 또는 단가계약을 통해 사실상 결정하는가. 단가를 원청이 일방적으로 통보해 하청이 임금을 자율적으로 정할 여지가 없다면 지배 관계가 성립할 수 있다.
  • 작업지시의 직접성 — 원청 관리자가 하청 근로자에게 구체적인 작업 지시를 직접 내리는가, 아니면 하청 현장관리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이루어지는가. 지시 경로가 직접적일수록 사용자성 인정 가능성이 높고, 간접 경로라면 부정될 가능성이 크다.
💼 위너스 인사이트
현장에서 가장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원청에 교섭 요구서를 바로 보내도 되는지”입니다. HD현대중 판결 이후 원청은 “우리는 노조법상 사용자가 아니다”라는 방패를 더 자신 있게 꺼내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조선업종이라도 원청 관리자가 하청 근로자에게 직접 출퇴근 시간을 통제하거나 작업 배치를 결정했다면 판단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교섭 요구 전에 원청의 지배·개입 증거를 먼저 모으는 것이 순서입니다.

실무 체크리스트 — 원청 교섭 요구 전 반드시 준비할 것

  • 원청의 직접 작업지시 증거 확보 — 원청 관리자가 하청 근로자에게 직접 보낸 메시지·이메일·작업지시서를 수집할 것. 하청 현장관리자를 통한 간접 전달 구조라면 사용자성 입증이 어렵다.
  • 임금 결정 구조 파악 — 단가계약서·도급계약서를 통해 원청이 하청 임금을 사실상 결정하는지 확인. 단가를 원청이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구조라면 노조법 제2조 제2호의 사용자성 주장 근거가 된다.
  • 채용·해고 개입 여부 확인 — 원청이 특정 근로자의 현장 출입을 금지하거나 명단에서 제외한 사례가 있는지 확인할 것. 블랙리스트 형태의 개입이 있으면 사용자성 주장의 핵심 증거다.
  • 법령 조항 정확 인용 필수 — 교섭 요구서·구제신청서에는 반드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9조 제1항(교섭권), 제30조(성실교섭)를 인용할 것. 근로기준법 제30조는 해고 제한 규정으로, 단체교섭과 무관하다.
  • 노란봉투법 시행일(2026.3.10.) 전후 구분 — 쟁의행위 발생 시점이 시행 전이라면 구법이 적용된다. 손해배상 면책 범위가 달라지므로 발생 시점 확인이 필수다.
  • 노동위원회 사용자성 확인 절차 우선 검토 — 원청 사용자성이 불확실하다면 교섭 요구보다 먼저 노동위원회 구제신청으로 사용자성 확인을 받는 절차를 고려할 것. 확인 없이 교섭 요구→거부→구제신청으로 이어지면 절차가 길어진다.

자주 묻는 질문

Q. 사내하청 노조가 원청에 단체교섭을 요구하려면 어떤 요건이 필요한가요?

노조법 제29조 제1항에 따른 교섭 요구가 가능하려면, 원청이 노조법 제2조 제2호의 ‘사용자’에 해당해야 합니다. 대법원은 원청이 하청 근로자의 임금·근로시간·인사 등 핵심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한다는 점이 입증될 때 사용자성을 인정합니다.

Q. 원청이 교섭 요구를 거부하면 부당노동행위가 되나요?

원청이 노조법상 사용자에 해당할 경우, 정당한 이유 없는 교섭 거부는 노조법 제81조 제1항 제3호의 부당노동행위(단체교섭 거부)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원청의 사용자성이 먼저 인정돼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HD현대중 사건처럼 사용자성이 부정되면 교섭 거부도 부당노동행위가 되지 않습니다.

Q. HD현대중 판결 이후 사내하청 노조의 교섭 전략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요?

원청의 직접 지배·결정 증거를 먼저 축적해야 합니다. 작업지시의 직접성, 임금 결정 구조, 인사 개입 여부를 입증하는 자료를 사전에 모은 뒤, 노동위원회 구제신청 또는 행정소송을 통해 사용자성 확인을 먼저 받는 절차를 고려해야 합니다.

Q. 노란봉투법은 사내하청 교섭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노란봉투법(2026.3.10. 시행)은 원청의 노조법상 사용자 범위를 확대하고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합니다. 다만 대법원은 시행 이전 사건에는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고 확인했습니다. 시행 이후 발생한 쟁의행위부터 새 기준이 적용됩니다.

Q. 원청 사용자성이 ‘조건부 인정’되면 교섭 범위는 어떻게 되나요?

일부 사항(예: 안전·보건 관리)에만 사용자성이 인정되면, 해당 사항에 한해서만 원청과 교섭이 가능합니다. 임금·인사 사항은 하청 사업주와 별도로 교섭해야 합니다. 교섭 요구서 작성 시 사항별로 구분해 기재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한 줄 정리 — 원청이 하청 노조의 단체교섭 상대방이 되려면 노조법 제2조 제2호의 실질적 지배가 입증돼야 한다. 판결문의 결론이 아닌 사실관계 디테일 — 지시 경로, 임금 결정 주체, 인사 개입 여부 — 에 승패가 달렸다.

작성: 서재홍 | NODE

ON THIS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