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예산이 반년 만에 바닥났다
올해 들어 글로벌 기업들 사이에서 이상한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연초에 책정한 AI 예산이 상반기가 끝나기도 전에 소진되는 것이다. 우버(Uber)를 비롯한 다수의 기업이 2026년 AI 예산 전액을 불과 수개월 만에 써버렸다. 한 AI 컨설턴트의 고객사는 직원 라이선스 관리에 실패해 한 달에 5억 달러를 날렸다는 사례까지 보고됐다.
솔직히, 이건 예산 관리 실패라기보다 구조적 함정에 가깝다. AI 벤더들이 초기 채택을 유도하려고 무료 단위(free tier)를 넉넉히 제공하다가, 사용량이 임계점을 넘는 순간 종량제로 전환하는 모델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직원 1만 명 기업 기준으로, AI 도입률이 10%일 때 연간 비용은 3,600달러 수준이지만 50%로 올라가면 27,600달러로 뛴다. 벤더가 단가를 두 배로 올리면 같은 사용량에 비용도 두 배가 된다. 오라클은 프리미엄 모델에 종량제를 붙였고, SAP는 고급 AI 기능에 별도 과금을 시작했다. 워크데이(Workday)는 2027년 1월 31일부터 사용량 기반 과금을 예고하면서, 지금은 “AI 도입 속도를 늦추지 않기 위해” 유예 기간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주요 SaaS 도구들이 글로벌 벤더 기반인 만큼, 원화 환산 비용은 환율 변동까지 겹쳐 더 가파르게 오른다. 개인적으로는, 대부분의 한국 기업이 아직 이 비용 곡선의 초입에 있다는 점이 더 걱정된다. 무료 구간이 끝나는 순간 예산 쇼크가 올 텐데, 준비된 곳이 얼마나 될까.
한 줄 요약: AI 도입 비용이 폭발적으로 치솟는 지금, HR의 진짜 위기는 기술 예산이 아니라 사람의 학습 체계가 AI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데 있다.
돈은 기술에 쏟고, 사람은 멈춰 있다
기술 투자는 빠르게 늘었지만, 정작 그 기술을 쓸 사람들의 상태는 급속히 나빠지고 있다. 머서(Mercer)의 최신 조사에 따르면, 직장에서 “활력을 느끼며 일한다(thriving)”고 답한 직원 비율이 2024년 66%에서 2026년 44%로 급락했다. 머서가 이 지표를 추적하기 시작한 이래 최저치다. 2년 만에 22%포인트가 빠진 것이다.
44%
직장에서 활력을 느끼는 직원 비율 (2024년 66%에서 급락)
Mercer, 2026
57%
C-suite 중 “AI 중심 업무 재설계가 최대 ROI” 응답
Mercer, 2026
32%
인간-기계 협업이 실제로 가능하다고 답한 비율
Mercer, 2026
숫자가 말해주는 구도는 명확하다. C-suite의 57%는 “AI 중심으로 업무를 재설계하는 것이 가장 큰 ROI를 낼 것”이라고 답했지만, 정작 “우리 조직이 인간과 기계의 역량을 효과적으로 결합할 수 있다”고 답한 비율은 32%에 불과했다. 25%포인트의 간극이다. 경영진은 AI가 답이라고 믿지만, 현장은 그걸 실행할 준비가 안 돼 있다는 뜻이다.
이건 좀 아쉽다. 54%의 경영진이 인재 부족을 최대 리스크로 꼽으면서도, 실제 투자는 여전히 기술 인프라에 편중돼 있다. 사람에 대한 투자—특히 학습과 역량 전환—는 ‘하면 좋은 것’ 목록에 머물고 있는 현실이다.
AI 도구 불평등이 이직을 부른다
더 심각한 경고 신호도 있다. 머서 조사에서 직원의 36%가 “AI 도구나 교육 기회에 대한 접근이 불평등하다고 느끼면 이직을 고려하겠다”고 답했다. 이건 단순한 복지 불만이 아니다. AI가 업무 역량과 직결되는 시대에, 도구 접근성의 차이는 곧 커리어 기회의 차이로 번역된다.
사례 — 글로벌 기업의 AI 비용 폭주한 글로벌 기업은 AI 라이선스를 전사적으로 배포했으나 사용량 관리 체계를 갖추지 못해 한 달 만에 5억 달러(약 6,700억 원)가 청구됐다. 문제는 비용만이 아니었다. 일부 부서는 AI를 적극 활용한 반면, 교육을 받지 못한 부서는 라이선스만 놀리는 양극화가 동시에 발생했다. 기술을 도입하되 학습을 설계하지 않으면 비용은 두 배로, 효과는 절반으로 떨어지는 전형적 사례다.
한국 기업에서도 이 패턴은 반복된다. 본사 기획팀은 ChatGPT Enterprise를 쓰지만 현장 매장 관리자는 접근조차 못 하는 상황, IT 부서는 AI 자동화를 도입했지만 HR팀은 여전히 수작업으로 급여 대장을 검토하는 상황. AI 도입이 빨라질수록 조직 내 “학습 격차”는 커지고, 그 격차가 이직 의향으로 직결된다.
학습을 업무 바깥에 두면 실패한다
맥킨지는 최근 보고서에서 AI가 주니어 인력이 담당하던 업무를 자동화하면서, 기존의 교육 체계—신입사원이 반복 업무를 통해 역량을 쌓는 구조—가 붕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과거에는 3년차 직원이 엑셀로 데이터를 정리하면서 비즈니스 감각을 익혔다면, 이제 그 작업은 AI가 30초 만에 끝낸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사람이 배울 기회도 함께 사라진다는 점이다.
해법은 학습을 별도의 프로그램으로 분리하는 게 아니라, 일상 업무 흐름 안에 내장하는 것이다. “교육 프로그램 참석”이 아니라 “업무 중 5분 코칭”, “AI 산출물을 검토하며 판단력을 키우는 루틴”처럼 일과 학습의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 머서의 표현을 빌리면, AI를 “인간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 역량을 증폭하는 도구”로 위치시키는 조직 설계가 필요하다.
한국 맥락에서의 시사점
한국 기업의 L&D(학습과 개발) 예산은 대부분 집합교육, 이러닝 수강 완료율, 자격증 취득 지원에 집중돼 있다. 이 모델은 AI 시대에 작동하지 않는다. 필요한 건 “올해 몇 시간 교육을 이수했는가”가 아니라 “이번 주 업무에서 AI를 활용해 어떤 의사결정을 개선했는가”를 측정하는 체계다. HR이 학습 체계를 업무 프로세스 안에 재설계하지 않으면, AI 투자는 일부 파워유저만 수혜를 받고 나머지는 소외되는 구조를 고착시킬 뿐이다.
기술이 앞서갈수록 HR은 사람 쪽을 봐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불편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AI 예산이 폭증하는 조직에서, HR 부서는 그 의사결정에 얼마나 관여하고 있는가? 대부분의 경우 AI 도입은 IT나 경영전략 부서가 주도하고, HR은 “도입된 도구에 맞춰 교육을 짜라”는 후속 요청을 받는 구조다. 그러나 머서의 데이터가 보여주듯, 기술 도입의 ROI는 결국 사람이 그 기술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HR이 기술 도입 의사결정의 뒤가 아니라 안에 있어야 하는 이유다.
개인적으로는, 지금이 HR에게는 역설적인 기회라고 본다. AI 비용 쇼크가 가시화되면서, 경영진도 “기술만으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체감하기 시작했다. HR이 “사람 중심 AI 전환” 전략을 선제적으로 제시할 수 있다면, 이건 비용 통제와 인재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포지셔닝이 된다.
💡 실무 시사점: AI 도입 비용 관리는 IT가 아니라 HR의 영역이기도 하다. 사용량 기반 과금 시대에, “누가 어떤 AI 도구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쓰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곧 인력 전략이다. 학습 체계를 업무 프로세스 안에 내장하고, AI 도구 접근성의 형평성을 점검하는 것부터 시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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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링크
- HBR, “How to Respond to the Coming AI Cost Shock” (2026)
- Mercer, “Why Exponential Performance Is Now a Leadership Survival Test” (2026)
- McKinsey, “Reimagined: Learning and Development in the Future of Work” (2026)
작성: 서재홍 | N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