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AI 예산을 10.1조 원으로 전년 대비 300% 이상 늘렸다. 대통령은 “AI 3대 강국”을 선언했고, 국민 10명 중 7명은 AI 혁신이 규제보다 우선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정작 이 나라에서 AI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임금 프리미엄은 6%다. 같은 기술을 가진 미국 엔지니어가 받는 25%의 4분의 1. 5.7만 AI 전문인력 중 1.1만 명은 이미 해외에서 일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AI에 가장 열광하는 나라이면서, AI 인재에게는 가장 인색한 나라다. 이 ‘열광-인색 역설’의 원인은 연봉 부족이 아니라, 비임금 편익을 보상 체계에 통합하지 못한 HR 인프라의 구조적 결함에 있다.
6%
한국 AI 인재 임금 프리미엄 (2024)
한국은행 이슈노트 2025-36호
25%
미국 AI 인재 임금 프리미엄 (2024)
한국은행 이슈노트 — 미국 비교치
10.1조 원
한국 정부 2026 AI 예산 (전년比 300%↑)
MIT Technology Review (2026.6)
1.1만 명
해외 근무 중인 한국 AI 인력 (전체의 16%)
한국은행 이슈노트 2025-36호
열광은 수요를 만들었지만, 공급에는 관심이 없다
2026 스탠퍼드 AI 인덱스에 따르면 한국인의 70%가 “AI 혁신 추진이 산업 보호를 위한 규제보다 우선”이라고 답했다. 같은 조사에서 미국인의 50%가 AI에 우려를 표한 것과 극명한 대조다. 한국전쟁 이후 철강-반도체-스마트폰으로 이어진 기술 주도 성장의 기억이 국민적 낙관으로 치환된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낙관은 정부 예산으로 직결됐다. AI 직접 투자가 전년 대비 300% 이상 증가한 10.1조 원에 이르렀고, 삼성·LG 등 대기업의 도입 속도도 글로벌 상위권이다. 문제는 이 열광이 ‘만드는 쪽’에서 ‘쓰는 쪽’으로만 흘렀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이 분석한 국내 AI 전문인력 5.7만 명의 프로필을 보면, 석박사 58%, 공학 전공 64%로 인력의 질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이 받는 임금 프리미엄은 고작 6%다.
대기업의 69%, 중견기업의 69%가 AI 인력 채용 확대를 계획한다고 답했지만, 그 “확대”의 실체는 같은 보상 구조 위에 더 많은 사람을 태우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ILO가 제114차 국제노동회의에서 “AI의 노동시장 영향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정책 선택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 맥락과 정확히 맞닿는다. 한국은 AI를 도입하는 정책에는 역대급 예산을 쏟으면서, AI 인재를 유지하는 정책에는 아무 선택도 하지 않고 있다.
6% vs 25% — 숫자 하나가 드러내는 시스템 오류
임금 프리미엄 6%라는 수치의 무게를 제대로 가늠하려면 비교가 필요하다. 미국에서 AI 기술을 보유한 인력이 받는 프리미엄은 25%다. 단순히 “미국이 돈을 더 준다”는 게 아니다. 이 격차는 시장이 AI 기술에 부여하는 가치 자체가 다르다는 뜻이다.
솔직히, 이 격차의 일부는 설명 가능하다. 한국 노동시장의 전반적 임금 압축, 연공서열 관행, 대기업 내부의 직군 간 형평성 논리가 프리미엄 확대를 구조적으로 억제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4배 차이를 설명할 수 없다. 미국의 HR 보상 시장은 이미 다른 방향으로 진화했다. 2026년 미국 HR 전반의 임금 인상률이 1.6%로 둔화됐음에도, HRIS(인사정보시스템)와 보상/복리후생 전문직은 3.2~3.4% 인상을 기록했다. 기술 전문성에 대해 시장이 명시적으로 차등 보상하는 구조가 이미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은 이 차등 보상 논리를 갖고 있지 않다. AI 엔지니어든 일반 개발자든 같은 직급이면 비슷한 밴드 안에 묶인다. 기술의 희소성이 보상에 반영되지 않는 시스템에서, 가장 희소한 기술을 가진 사람이 가장 먼저 떠나는 건 당연하다. 해외 취업 가능성이 일반 인력 대비 27%p나 높은 AI 인력에게, 6% 프리미엄은 떠나지 않을 이유가 아니라 떠나야 할 이유를 확인시켜 주는 숫자다.
실무 체감 대기업 AI 연구소 입사 3년 차와 동기 입사한 영업직 사원의 연봉 차이는 직급 내 평가등급 1~2단계 범위 안에서만 움직인다. 실리콘밸리에서 같은 경력의 ML 엔지니어가 받는 총 보상과 비교하면, 격차는 연봉이 아니라 RSU(양도제한조건부주식)와 사이닝 보너스에서 벌어진다. 한국 기업이 “연봉은 경쟁력 있다”고 말할 때, 비교 대상이 총 보상이 아니라 기본급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돈만으로 풀 수 없는 방정식 — 비임금 편익이라는 숨은 변수
여기서 흥미로운 연구가 끼어든다. NBER의 최신 워킹페이퍼가 직업 선택에서 비임금 편익(nonwage amenities)의 영향력을 정량화했는데, 결과가 꽤 충격적이다. 유연근무, 원격근무, 근무 자율성 같은 비금전적 요소가 임금 격차의 약 40%를 설명한다는 것이다.
이건 성별 임금격차 연구에서 나온 수치지만, 함의는 AI 인재 시장에 곧바로 적용된다. 사람들이 직장을 선택할 때 연봉만 보는 게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안다. 그런데 40%라는 숫자는 “연봉 외 요소도 중요하다”는 수준이 아니라, “연봉과 거의 동등한 비중으로 작용한다”는 수준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연구가 한국 AI 인재 유출의 숨은 열쇠라고 본다.
미국 HR 시장은 이미 이 방정식을 풀고 있다. 59%의 HR 매니저가 인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미국 기업들은 기본급 외에 유연근무 일정, 학습·개발 기회, 성장 경로, 맞춤형 인정 프로그램을 보상 패키지에 통합했다. “재채용(re-recruitment)”이라는 개념까지 등장했다. 이미 다니고 있는 직원을 다시 채용하듯 관리한다는 뜻이다.
한국의 AI 인재 확보 전략은 여전히 “연봉 올려주겠다”에 멈춰 있다. 유연근무는 코로나 시기 잠깐 도입됐다가 다시 사무실로 회귀하는 추세이고, 학습·개발 예산은 전사 교육 프로그램에 묶여 있지 AI 엔지니어가 원하는 컨퍼런스 참석이나 오픈소스 기여 시간으로 전환되지 않는다. NBER 연구가 보여주는 40%의 세계에서, 한국 기업은 60%만 가지고 100%를 이기려 하고 있다.
~40%
비임금 편익이 직업 선택에 미치는 영향 비중
NBER Working Paper w34877 (2026)
3.2–3.4%
미국 HRIS·보상 전문직 임금 인상률 (2026)
SHRM HR Compensation Report (2026)
59%
인재 확보 어려움을 보고한 미국 HR 매니저
SHRM HR Compensation Report (2026)
세율은 낮은데 인재는 떠난다 — OECD 데이터가 보여주는 아이러니
반론이 나올 수 있다. “한국은 세금 부담이 낮으니까 실수령액은 경쟁력이 있지 않나?” OECD Taxing Wages 2026 보고서를 보면 실제로 한국의 노동 세율(tax wedge)은 24.8%로, OECD 평균 35.1%보다 10%p 이상 낮다. 38개 회원국 중 6위 저세율이고, 평균 단독 근로자의 순평균세율은 16.5%로 실수령 비율이 83.5%에 달한다. OECD 평균(74.9%)을 크게 상회한다.
그런데 이 “세율 이점”이 실제로 AI 인재 유지에 기여하고 있는가? 한국 고용 현실을 보자. 2026년 4월 기준 취업자 수는 전년 대비 7.4만 명 증가에 그쳤다. 제조업은 5.5만 명 감소했고, 서비스업 고용 증가폭도 31.6만에서 20.8만으로 축소됐다. 전체 고용률은 63.0%로 전년 대비 0.2%p 하락했다. 경제 전반이 고용 둔화 국면인 상황에서, AI 인재만 “세금 적으니까 괜찮다”고 느낄 리 없다.
이건 좀 아이러니하다. OECD에서 손꼽히는 저세율 국가가, 그 세율 여력을 인재 리텐션 인프라에 투자하지 않고 있다. ILO가 “AI 혜택이 더 나은 임금과 포용적 성장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을 때, 그 전제 중 하나는 국가가 가용 자원을 재분배하는 정책 의지를 갖추는 것이다. 한국은 저세율이라는 수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AI 인재 생태계 구축이라는 목적에 연결하지 못하고 있다. 세금을 적게 걷는 것 자체는 전략이 아니다. 그 여력으로 무엇을 하느냐가 전략이다.
흐름 OECD 38개국에서 노동소득에 대한 실효세율은 4년 연속 상승 중이다. 대다수 국가가 사회보장 비용 확충을 위해 노동 과세를 강화하는 가운데, 한국의 저세율은 상대적 이점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이 이점을 의식적으로 활용하는 정책 설계가 부재하다는 것이다.
1.1만 명의 메시지 — 떠난 인재가 돌아오지 않는 구조
한국은행 분석에서 가장 섬뜩한 수치는 해외 취업 확률 격차다. AI 기술 보유자의 해외 취업 가능성은 일반 인력 대비 27%p 높다. 이미 1.1만 명(16%)이 해외에서 근무 중이다. 이 수치를 ILO의 프레임과 겹쳐 보면 구조가 선명해진다.
ILO 패널에서 노동법 전문가 Valerio De Stefano가 강조한 핵심은 “AI 설계 과정에 노동자가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부 규제만으로는 부족하고, 단체교섭을 통한 공정한 이익 분배가 필수라는 논지다. 이를 한국 맥락에 대입하면, AI 인재가 자신이 만드는 가치의 분배에 참여할 수 있는 채널이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바뀐다. 대부분의 한국 기업에서 AI 엔지니어는 R&D 부서에 배치되어 기술을 만들지만, 그 기술이 창출하는 비즈니스 가치가 자신의 보상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투명하게 알지 못한다.
스탠퍼드 HAI의 Arvind Narayanan이 지적한 바도 같은 방향이다. AI가 지식노동을 변혁하면서 “인간 고유의 역량과 AI 보조 역량의 재정립”이 핵심 과제가 됐다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AI가 발전할수록 AI를 잘 쓰는 인간의 가치는 올라간다. 비판적 사고, 시스템 설계, 연구 방향 설정 — 이런 역량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는데, 한국의 보상 체계는 이 역량을 “시니어 개발자” 직급의 호봉표 안에서만 인정한다.
떠난 1.1만 명은 단순히 돈을 따라간 게 아니다. 자신의 기술이 정당하게 가치 평가되고, 성장 경로가 보이고, 일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따라간 것이다. 그리고 한 번 떠난 고급 인력이 돌아오는 비율은 극히 낮다. 해외에서 경험한 비임금 편익의 수준을 한국 기업이 매칭할 수 없기 때문이다.
채용 공고가 아니라 리텐션 아키텍처를 설계하라
여러 소스를 교차하면 하나의 패턴이 드러난다. 한국 기업은 AI 인재를 “확보”하려 하지만, “유지”하는 시스템은 설계하지 않았다. 이건 채용 예산의 문제가 아니라 HR 아키텍처의 문제다.
NBER가 보여준 비임금 편익 40%의 영향력, 미국 HR 시장이 실행 중인 차등 보상과 재채용 전략, ILO가 촉구하는 가치 분배 참여 메커니즘 — 이 세 가지를 통합하면 한국 기업이 당장 착수해야 할 리텐션 아키텍처의 골격이 보인다.
핵심이다 — AI 인재 유출은 “연봉이 낮아서”가 아니라 “보상 체계가 2010년대에 머물러 있어서” 발생한다. 기본급, 성과급, 복리후생이라는 3단 구조 위에 유연근무 자율권, 기술 성장 투자, 가치 기여 가시성이라는 비임금 레이어를 얹지 않는 한, 10.1조 원의 정부 투자는 해외 기업이 한국에서 인재를 스카우트하는 보조금으로 전락한다.
한 줄 요약: 한국의 AI 열광은 ‘만드는 환경’이 아니라 ‘쓰는 환경’에만 투자했고, 그 비대칭이 매년 1.1만 명의 인재를 해외로 밀어내고 있다.
실무 시사점 — HR이 이번 분기에 점검할 3가지:
1. AI 직군 보상 벤치마크를 ‘기본급’이 아니라 ‘총 보상(TC)’으로 전환하라. RSU, 사이닝 보너스, 컨퍼런스 예산, 오픈소스 기여 시간을 포함한 총 보상 패키지를 설계하고, 글로벌 경쟁사와 비교 가능한 형태로 공개하라. 6% 프리미엄이 25%와 실질적으로 얼마나 차이 나는지, TC 기준으로 재계산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2. 비임금 편익을 ‘복지’가 아니라 ‘보상 전략’으로 격상하라. 유연근무 일정, 원격근무 옵션, 자기주도 학습 시간(예: 주 4시간 자유 연구)은 복지 항목이 아니라 채용 경쟁력의 핵심 구성요소다. NBER 연구가 증명한 40%의 무게를 HR 의사결정에 반영하라.
3. AI 인재의 가치 기여를 가시화하는 피드백 루프를 만들라. AI 엔지니어가 만든 모델이 매출·비용에 미친 영향을 분기별로 공유하고, 그 성과가 보상 리뷰에 직접 연결되는 경로를 투명하게 설계하라. ILO가 말하는 “가치 분배 참여”는 거창한 제도가 아니라, 이런 기초적 피드백에서 시작된다.
#AI인재전략#비임금편익#리텐션아키텍처#HR보상혁신#열광인색역설
참고 링크
- 한국은행, “AI 전문인력 현황과 수급 불균형: 규모, 임금, 이동성 분석” (2025)
- MIT Technology Review, “Why do South Koreans love AI so much?” (2026)
- NBER, “Job Search, Job Amenities and the Gender Pay Gap” (2026)
- SHRM, “The State of HR Compensation in 2026” (2026)
- ILO, “AI and decent work: A moment of choice” (2026)
- OECD, “Taxing Wages 2026” (2026)
- 통계청, “2026년 4월 고용동향” (2026)
작성: 서재홍 | N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