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R 리더 3분의 2가 “우리 부서가 핵심 사업 동력”이라고 자부한다. 그런데 같은 설문에서 직원 만족도는 66%에서 44%로 곤두박질쳤다. 자부심은 치솟는데 현장은 무너지고 있다면, 뭔가 숫자가 어긋나고 있는 거다.
2026년 봄, HR과 AI를 둘러싼 글로벌 리포트 세 편이 거의 동시에 쏟아졌다. 하나는 “HR AI를 제대로 측정할 수 있느냐”를 묻는 학계 벤치마크, 다른 둘은 “HR이 AI 시대 비즈니스의 중심이 될 수 있느냐”를 묻는 컨설팅 서베이다. 따로 읽으면 그냥 트렌드 보고서인데, 나란히 놓으면 꽤 선명한 그림이 나온다.
HR AI, 아직 측정조차 못 하고 있었다
Matthias De Lange 외 18명의 연구자가 공개한 WorkRB 논문이 짚는 문제는 단순하다. HR 영역에서 AI 모델을 평가할 통일된 기준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다. 채용 추천, 스킬 추출, 직무 매칭 — 각 연구마다 데이터셋도 다르고, 직무 분류 체계(온톨로지)도 다르고, 심지어 같은 태스크를 정의하는 방식까지 제각각이었다.
WorkRB는 7개 태스크 그룹에 13개 과제를 배치한 오픈소스 벤치마크다. 직무 추천, 후보자 추천, 스킬 정규화 같은 HR 핵심 기능을 표준화된 파이프라인으로 비교할 수 있게 만들었다. 다국어 온톨로지를 동적으로 로드하는 구조라 한국어 직무 체계에도 확장 가능하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가장 눈에 띄었다. 한국 노동시장에 맞는 직무 분류와 스킬 체계가 국제 벤치마크에 포함될 수 있는 통로가 열린 셈이니까.
솔직히 이건 좀 민망한 현실이다. 기업들은 이미 AI 채용 도구를 쓰고 있는데, 그 도구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평가할 공통 잣대는 이제야 만들어지고 있다. 도구 먼저, 평가는 나중 — 이 순서가 HR AI의 신뢰 문제를 설명하는 핵심이다.
“HR이 사업의 핵심 동력” — 경영진은 정말 그렇게 생각할까
BCG의 글로벌 서베이에 따르면 경영진의 약 67%가 HR을 핵심 비즈니스 드라이버로 인식한다. 숫자만 보면 HR의 위상이 역대 최고다. 그런데 이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엔 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같은 시기 머서(Mercer)의 글로벌 인재 트렌드 보고서가 내놓은 숫자를 보자. C-suite 임원의 54%가 인재 부족을 최대 인사 과제로 꼽았다. HR 리더의 59%는 디지털 역량을 갖춘 인재를 확보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쉽게 말해, HR이 사업의 핵심이 됐다는 건 “중요해졌다”가 아니라 “문제가 심각해졌다”에 가깝다.
된다. HR의 전략적 위상 상승은 곧 HR이 풀어야 할 문제의 난도 상승과 같은 말이다. AI가 채용·배치·평가를 자동화하겠다고 약속하는 만큼, HR에 거는 기대치도 함께 올라간다. 기대와 역량 사이의 간극이 벌어지면, “핵심 동력”이라는 타이틀은 오히려 부담이 된다.
직원의 절반도 안 되는 만족도, AI 불안의 실체
머서 보고서에서 가장 뼈아픈 숫자는 따로 있다. “직장에서 번영하고 있다(thriving)”고 답한 직원 비율이 2024년 66%에서 2026년 44%로 떨어졌다. AI 때문에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불안은 28%에서 40%로 뛰었다. 그렇다. 숫자가 말하고 있다.
더 흥미로운 건 62%의 직원이 “리더십이 AI의 감정적 영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응답한 대목이다. 경영진은 생산성과 효율을 말하고, 직원은 불안과 소외를 느끼고 있다. 이 인식 차이가 좁혀지지 않으면 AI 도입은 기술 문제가 아니라 조직 문화 문제가 된다.
그런데 반전도 있다. 직원의 63%가 “급여 인상보다 역량 개발 기회를 택하겠다”고 답했다. 불안하지만 배우고 싶다는 거다. 개인적으로는 이 숫자에서 희망을 본다. 불안의 반대편에 학습 욕구가 있다면, HR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AI를 도입하면서 동시에 사람에게 투자하는 것. 둘 중 하나를 고르는 게 아니다.
Human + AI, 구호가 아닌 투자 기준이 되려면
머서 보고서가 제시한 또 하나의 핵심 수치가 있다. 투자자의 72%가 “인간과 AI 역량의 통합에 적극적인 기업이 경쟁 우위를 가진다”고 답했고, 77%는 “직원 AI 교육에 투자하는 기업을 더 지지한다”고 했다. 임원의 65%는 향후 2년 내 전체 인력의 11~30%를 재배치하거나 재교육해야 한다고 내다봤다.
여기서 WorkRB 벤치마크의 의미가 다시 연결된다. AI가 HR의 핵심 도구가 되려면, 그 도구의 성능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AI 채용 시스템이 잘 작동합니다”라는 벤더의 주장을 검증할 독립적 기준이 필요하다. WorkRB 같은 표준 벤치마크가 확산되면, HR 담당자가 AI 도구를 도입할 때 “이 모델은 WorkRB 스킬 매칭 태스크에서 몇 점을 받았는가”라고 물을 수 있게 된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 벤치마크 하나 나왔다고 HR AI 시장의 투명성이 하루아침에 확보되진 않는다. 하지만 방향은 맞다. 측정 없는 혁신은 그냥 마케팅이니까.
실무자가 지금 챙겨야 할 한 가지
세 편의 보고서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하나다. AI가 HR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HR의 역할 자체를 재정의하고 있다. 채용 공고 작성, 이력서 스크리닝, 직무 매칭 — 이런 반복 업무는 AI가 가져간다. 대신 HR에게는 새로운 질문이 남는다. “이 AI 도구의 추천을 신뢰해도 되는가?” “직원들의 AI 불안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재교육 투자를 어디에 집중할 것인가?”
AI 시대의 HR 전문성은 기술을 다루는 능력이 아니라 기술과 사람 사이의 간극을 읽는 능력에서 나온다. 당신이 속한 조직은 그 간극을 얼마나 정직하게 들여다보고 있는가?
참고 링크
- Matthias De Lange 외, “WorkRB: A Community-Driven Evaluation Framework for AI in the Work Domain”, “https://arxiv.org/abs/2604.13055”
- BCG, “Two-Thirds of Leaders View HR as Key Business Driver”, “https://www.bcg.com/press/17march2026-two-thirds-leaders-view-hr-key-business-driver” (2026)
- Mercer, “Global Talent Trends 2026: Human+AI Combination”, “https://www.mercer.com/about/newsroom/mercer-s-global-talent-trends-2026-report/”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