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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사다리를 치우고 있다 — 생산성 숫자 뒤에서 벌어지는 성장 경로의 소멸

AI 에이전트를 도입한 기업의 생산성이 30% 올랐다는 보고서가 쏟아진다. 연구 부서의 에이전트 사용량은 반년 만에 56배, 고객지원은 32배 뛰었다. 숫자만 보면 축제 분위기다. 그런데 같은 시기 한국 취업자 수는 6개월 만에 첫 감소 전환했고, 제조업 일자리는 한 달에 14만 개가 사라졌다. MIT·하버드 경제학자 아세모글루 팀은 에이전틱 AI가 인간의 집단 지식을 소멸시키는 ‘지식 붕괴(knowledge collapse)’ 경로를 경고하는 논문을 냈다. 이 세 갈래 데이터를 나란히 놓으면 AI 시대의 진짜 위기가 드러난다. AI는 일자리를 없애는 게 아니라, 주니어가 시니어로 올라가는 ‘성장 사다리’를 없애고 있다.

한 줄 요약: AI가 생산성 숫자를 끌어올리는 동안, 조직 안에서 사람이 성장하는 경로는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HR이 지금 설계해야 할 것은 AI 도입이 아니라 AI 시대의 커리어 경로다.

생산성은 올랐는데 왜 불안한가

AI 에이전트의 업무 침투 속도는 놀랍다. 2025년 11월 대비 2026년 6월까지, 한 글로벌 AI 기업 내부에서 연구 부서의 에이전트 채택량은 56배, 엔지니어링은 27배, 법무팀조차 13배 증가했다. 비개발 직군의 개인 사용자 수는 137배 뛰었다. 기업 전체로 보면 에이전트 도입 기업의 기대 생산성 향상은 약 30%, 개인 단위로는 하루 40~60분 절약 효과가 보고된다.

그런데 같은 2026년 5월, 한국 통계청 고용동향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취업자 2,912만 명, 전년동월 대비 4만 명 감소. 2025년 12월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전환이다. 15~64세 고용률은 70.2%0.3%p 떨어졌다. 제조업에서만 14만 개 일자리가 빠졌다. 생산성은 올라가는데 고용은 줄어드는 이 괴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56

연구 부서 AI 에이전트 채택량 증가 (7개월)

OpenAI 내부 데이터 (2025.11→2026.06)

-14

한국 제조업 일자리 전년동월 대비 감소

통계청 — 2026년 5월 고용동향

30%

AI 에이전트 도입 기업의 기대 생산성 향상

TechRT — 2026 AI Agent Productivity Statistics

솔직히, 이 숫자들을 따로 읽으면 각각 의미가 있지만 결론이 반대다. 한쪽은 “AI가 생산성을 폭발시킨다”, 다른 쪽은 “고용이 줄고 있다.” 둘 다 사실이라면, 생산성 향상의 과실이 고용으로 흘러가지 않는 구조적 단절이 있다는 뜻이다. 그 단절 지점이 바로 ‘성장 사다리’다.

에이전틱 AI가 만드는 ‘지식 붕괴’

MIT 경제학자 대런 아세모글루와 공저자들이 2026년 발표한 NBER 워킹페이퍼(w34910)는 이 단절의 메커니즘을 정교하게 모델링했다. 핵심 주장은 직관에 반한다. AI의 추천 정확도가 올라갈수록, 인간의 학습 동기는 내려간다.

논문의 논리는 이렇다. 인간이 업무를 수행하면 두 가지 산출물이 생긴다. 하나는 ‘사적 신호(private signal)’ — 개인이 문제를 풀면서 쌓는 경험이다. 다른 하나는 ‘공적 신호(thin public signal)’ — 동료와 조직이 공유할 수 있는 일반 지식이다. 에이전틱 AI가 개인별 맞춤 추천을 제공하면 사적 신호를 직접 쌓을 이유가 줄어든다. AI가 답을 주니까 굳이 배울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공적 신호의 축적도 함께 멈춘다는 점이다.

논문 핵심 — Acemoglu et al. (NBER w34910) “인간의 노력이 충분히 탄력적이고, 에이전틱 추천이 일정 정확도 임계값을 넘으면, 경제는 일반 지식이 소멸하는 지식 붕괴 정상상태(knowledge-collapse steady state)로 전환될 수 있다.” 복지 수준은 AI 정확도와 비단조적(non-monotonic) 관계를 보인다 — 어느 수준까지는 올라가다가, 그 이후에는 오히려 떨어진다.

이걸 조직 맥락에 번역하면 이렇다. AI 에이전트가 주니어의 조사·분석·초안 작성을 대신하면, 주니어는 더 빨리 결과물을 낸다. 생산성 지표는 올라간다. 그러나 그 ‘대신 해줌’이 반복되면, 주니어가 시니어가 되는 과정에서 쌓아야 할 암묵지(tacit knowledge)의 축적이 멈춘다. 조직 전체로는 시니어급 판단력의 재생산이 중단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건 좀 과장이 아니라 이미 관측 가능한 현상이다. 코딩을 AI가 다 해주는 환경에서 3년차 개발자가 디버깅 능력을 못 키우는 것과 같은 패턴이 사무직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스킬갭의 진짜 원인은 채용이 아니다

OECD가 PIAAC 고용주 모듈을 기반으로 5개 유럽 국가(헝가리, 이탈리아, 네덜란드, 포르투갈, 슬로바키아) 기업을 조사한 결과, 기업 3곳 중 1곳 이상이 스킬 미스매치를 보고했다. 격차가 가장 큰 영역은 기술 역량(46%), 다음이 문제해결(34%), 팀워크(33%) 순이다.

이 숫자를 보통 ‘채용이 어렵다’는 맥락으로 읽는다. 하지만 Brookings의 분석을 함께 놓으면 다른 그림이 보인다. Brookings의 Marcela Escobari는 “미국 노동력은 속이 비었다. 중간 숙련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저임금과 고임금 양극단만 남은 경제가 되었고, 그 사이를 잇는 사다리가 거의 없다”고 진단한다.

46%

기업이 보고한 기술 역량 스킬갭

OECD — PIAAC Employer Module (2024)

34%

기업이 보고한 문제해결 스킬갭

OECD — PIAAC Employer Module (2024)

33%

기업이 보고한 팀워크 스킬갭

OECD — PIAAC Employer Module (2024)

스킬갭을 ‘채용’으로 해결하려는 기업이 여전히 다수다. OECD 보고서도 기업의 주된 대응이 훈련·개발이라고 밝혔지만, 실제로 신규 채용이나 업무 방식 변경으로 이어지는 비율은 낮다. 여기서 아세모글루의 ‘지식 붕괴’ 모델과 OECD 데이터가 교차한다. 기업들이 “기술 역량이 부족하다”고 호소하는 46%의 상당 부분은, 사실 중간 단계 업무 경험의 소멸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AI가 주니어의 반복 업무를 대체하면서, 그 반복을 통해 형성되던 문제해결 역량(34%)과 협업 역량(33%)의 성장 경로가 끊긴 것이다.

중간이 사라진 고용 지형도

한국 고용 데이터를 좀 더 뜯어보면 이 패턴이 선명해진다. 2026년 5월, 제조업에서 14만 개 일자리가 빠진 반면, 보건·복지 분야에서는 21.2만 개가 새로 생겼다. 농림어업은 12.1만 개 감소했다. 숫자만 보면 순감소 4만 명이라 충격적이진 않다. 하지만 어디서 빠지고 어디서 생기는지가 핵심이다.

제조업 일자리는 대부분 중간 숙련 — 기계 운전, 품질 관리, 공정 최적화 — 영역이다. 이 영역은 3~5년차가 현장 경험으로 숙련도를 높여가는 전형적인 ‘사다리 구간’이었다. 보건·복지 쪽 신규 일자리는 상당수가 돌봄·요양 서비스로, 진입 장벽이 낮지만 상위 직급으로 이동하는 경로가 명확하지 않다.

한국 고용 구조 변동 (2026.05) 제조업 -14만, 농림어업 -12.1만, 보건복지 +21.2만. 사라지는 일자리는 중간 숙련, 생기는 일자리는 진입 또는 전문 양극단. 청년 고용률은 43.8%로 전년비 2.4%p 하락, 청년 실업률은 7.2%0.6%p 상승.

Brookings의 분석을 이 한국 데이터에 겹치면, 이건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라 글로벌 구조 변동의 국내판이다. Brookings는 1억 5,700만 건의 이력서를 분석해 비학위 자격증의 실질 가치를 검증했는데, 결론은 “엄선된, 엄격한 비학위 자격증은 가치가 있지만, 다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중간 사다리를 대체할 것으로 기대됐던 자격증·인증 경로도 실상은 들쭉날쭉하다는 얘기다.

청년 고용률 43.8%(전년비 -2.4%p)라는 숫자가 특히 무겁다. 청년들이 첫 일자리에 진입하기도 어려운데, 진입한 뒤 성장할 사다리마저 없다면, 이건 고용 ‘양’의 문제가 아니라 고용 ‘질’의 구조적 위기다.

자격증으로는 사다리를 대체할 수 없다

중간 숙련 일자리가 사라지면 자연스러운 반응은 “그럼 교육·자격증으로 사다리를 만들자”가 된다. Brookings의 1억 5,700만 이력서 분석은 이 직관에 찬물을 끼얹는다. 비학위 자격증 가운데 노동시장에서 실질적 프리미엄을 제공하는 것은 일부에 불과하며, 다수는 취업에도 임금에도 유의미한 차이를 만들지 못한다.

OECD도 같은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확인한다. 스킬갭에 대한 기업의 주된 대응이 ‘훈련·개발’이지만, 이 훈련이 실제 업무 방식 변경이나 조직 구조 재설계로 이어지는 비율은 매우 낮다. 교육을 시켰는데 업무 구조를 안 바꾸면, 새로 배운 역량을 적용할 자리가 없다. 아쉽다. 교육 투자의 ROI가 낮다고 불평하는 기업 대부분은, 사실 업무 구조 자체를 재설계할 의지가 없는 것이다.

아세모글루 팀의 모델은 이 문제에 대해 구조적 해법을 시사한다. 논문에 따르면, “일반 지식의 집계 역량(aggregation capacity)을 높이면 복지가 무조건적으로 향상되고, 지식 붕괴에 대한 회복력도 증가한다.” 번역하면 이렇다 — AI가 개인별 맞춤 추천을 할수록, 조직이 의도적으로 지식을 공유·축적하는 인프라를 강화해야 한다. 자격증이라는 개인 단위 솔루션으로는 부족하고, 조직 수준의 지식 집계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사다리를 다시 놓는 현장

추상적 경고만으로는 부족하다. 실제로 성장 경로를 재설계한 사례가 있다. 한국 고용노동부와 노사발전재단이 2026년 6월 공유한 중소 IT 기업 일터혁신 사례는, 규모가 작아도 구조를 바꾸면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례 — 티엔에이치(헬스케어 IT) 정기 연봉협상 운영기준 수립, 직급별 임금 기준 마련, 직군별(개발·영업·고객지원) 역량 반영 평가체계와 리더십 평가를 도입했다. 결과: 매출 13.2% 증가(81.2억→92억), 1분기 이직률 감소.

사례 — 데키스트(산업용 IoT 계측기) 직무프로파일·KPI Pool 구축, MBO 기반 성과관리체계 도입, 선택적 근로시간제·시차출퇴근제 실시. 결과: 사원급 이직률 50% 감소, 인사평가 만족도 13.6% 상승(3.31→3.76점).

이 사례들의 공통점은 ‘AI 도입’이 아니라 ‘성장 경로의 가시화’다. 직군별 역량 기준을 명시하고, 다음 단계로 올라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투명하게 만들었다. OECD가 스킬갭 대응으로 ‘훈련·개발’을 언급하지만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지적한 것과 대비된다. 훈련만으로는 안 되고, 훈련 후에 적용할 수 있는 역할 경로(role pathway)가 있어야 한다.

Brookings가 미국의 “경력 발전 경로 인프라가 선진국 대비 뒤처져 있다”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 중소 IT 기업 두 곳이 보여준 것은 거창한 AI 전략이 아니라, 직무 프로파일과 역량 기준이라는 기본기가 성장 사다리의 핵심 인프라라는 사실이다.

생산성 숫자에 속지 않으려면

정리하면 이렇다. AI 에이전트 시대에 생산성은 확실히 오른다. 하루 40~60분을 벌고, 비개발 직군에서도 채택이 137배 뛰었다. 이 숫자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아세모글루 팀이 경고한 것처럼, 이 생산성 향상은 비단조적(non-monotonic) 곡선을 그린다. 어느 시점까지는 조직에 이롭지만, 그 너머에서는 집단 지식의 재생산이 멈추면서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한국 고용 데이터는 이미 그 변곡점의 징후를 보여준다. 제조업 -14만의 이면에는 중간 숙련 경험을 쌓을 자리가 사라지는 구조가 있고, 청년 고용률 -2.4%p의 이면에는 첫 사다리에 올라탈 기회조차 줄어드는 현실이 있다. OECD가 포착한 기업의 스킬갭 46%는 채용 시장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근본 원인은 조직 내부에서 역량이 자라나는 경로가 끊긴 데 있다.

핵심이다 — AI 도입의 ROI를 생산성 숫자로만 측정하는 기업은, 3~5년 뒤 시니어급 인력 풀이 말라붙는 시점에서 훨씬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된다. AI 에이전트가 주니어의 조사·분석·초안을 대신할수록, HR은 그 주니어가 판단력·맥락 이해·의사결정 역량을 쌓을 수 있는 의도적 성장 경로를 설계해야 한다.

실무 시사점 — HR이 이번 분기에 점검할 3가지:

① AI가 대체한 업무 목록을 ‘성장 경험 목록’으로 재분류하라. AI 에이전트에 넘긴 업무 중 주니어의 역량 성장에 기여하던 것이 무엇인지 식별하고, 대안적 학습 경험을 설계해야 한다. 아세모글루 팀이 강조한 ‘집계 역량(aggregation capacity)’ 확보의 실무 번역이다.

② 직무 프로파일에 ‘다음 단계 요건’을 명시하라. 티엔에이치·데키스트 사례처럼 직군별 역량 기준과 역할 경로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만으로 이직률이 50% 줄고 매출이 13% 는다. 스킬갭을 채용으로 메우기 전에 내부 성장 경로부터 점검해야 한다.

③ ‘비학위 자격증’에 대한 투자는 선별적으로. 1억 5,700만 이력서 분석이 증명했듯, 자격증의 시장 가치는 들쭉날쭉하다. 교육 투자의 방향을 ‘자격증 취득’에서 ‘역할 전환 경험(job rotation, stretch assignment)’으로 옮기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AI성장경로 #스킬갭 #지식붕괴 #커리어사다리 #HR전략

참고 링크

작성: 서재홍 | N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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