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상반기, 월스트리트저널은 두 편의 기사를 거의 동시에 내보냈다. 하나는 알파벳·CSX·부즈앨런해밀턴 같은 대기업이 1년간의 채용 동결을 풀고 다시 사람을 뽑기 시작했다는 소식이고, 다른 하나는 55세 이상 엔지니어들이 AI 전환을 견디지 못하고 짐을 싸고 있다는 기사였다. 같은 매체, 같은 시기에 나온 두 기사를 나란히 놓으면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AI는 일자리를 없애는 게 아니라, 누가 일하고 누가 밀려나는지를 재편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여기에 ILO가 올해 공개한 보고서를 겹쳐 보면 그림은 더 선명해진다. AI는 일자리 총량이 아니라 ‘보이는 노동’과 ‘보이지 않는 노동’ 사이의 단층선을 만들고 있으며, 그 단층선 아래에서 시간당 2달러의 유령 노동자들이 자동화의 환상을 떠받치고 있다.
대기업은 사람을 뽑는데, 고용률은 왜 떨어지나
부즈앨런해밀턴의 COO 크리스틴 마틴 앤더슨은 올해 중반 “채용을 가속해야 한다, 지금 좀 뒤처져 있다”고 인정했다. 이 회사의 인력은 전년 대비 7.5% 줄었지만, AI만으로는 빈자리를 채울 수 없다는 판단에 다시 채용에 나선 것이다. 알파벳도, CSX도 비슷한 행보를 밟고 있다. 미국 주간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1969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런데 이 숫자를 OECD 고용전망 2026과 겹쳐 보면 풍경이 달라진다. OECD 회원국 평균 고용률은 72.1%로 사상 최고 수준이지만, 3분의 2 국가에서 실업률이 소폭 상승하고 있다. 실질임금 상승률은 2025년 1분기 2.7%에서 2026년 1분기 2.2%로 꺾였다. 일자리 총량은 유지되는데 임금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72.1%
OECD 평균 고용률 — 사상 최고치이나 2/3 국가 실업률 상승 중
OECD Employment Outlook (2026)
2.2%
OECD 실질임금 상승률 — 전년 2.7%에서 둔화
OECD Employment Outlook (2026)
-0.2%p
한국 고용률 전년 대비 — 취업자 수 증가에도 비율은 하락
통계청 고용동향 (2026.6)
한국도 이 패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2026년 6월 취업자 수는 2,915만 4천 명으로 전년 대비 6만 3천 명 늘었지만, 고용률은 63.4%로 오히려 0.2%p 하락했다. 솔직히, 이 숫자 조합이 말하는 건 분명하다. 대기업의 채용 회복이 전체 고용 시장의 체력을 대변하지 못한다. 큰 회사는 사람을 뽑고, 그 바깥에서는 일자리의 질이 조용히 무너지고 있다.
55세 엔지니어가 AI 앞에서 짐을 싸는 이유
마이크로소프트가 올해 전 직원의 7%를 대상으로 자발적 퇴직 프로그램을 가동한 건 회사 역사상 처음이었다. 깃허브에서 20년 넘게 일한 제니퍼 컨스(60세)는 3월에 퇴직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AI를 믿지 않는다. 곧 터질 거품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말에서 기술 부정이 아니라 일종의 존재론적 피로가 읽힌다.
수치를 보면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에서 42%가 계획보다 일찍 퇴직하고 있고, 50~64세 근로자 중 생성형 AI를 쓰는 비율은 18%에 불과하다. 반면 하버드경영대학원 연구에 따르면 AI 에이전트를 가장 적극 활용하는 집단은 디지털 기술직(28%)이며, 이들은 에이전트를 “제2의 뇌이자 손”이라 부른다. 같은 기술이 한쪽에서는 퇴장의 신호이고 다른 쪽에서는 생산성의 도약이다.
사례 — 실리콘밸리의 세대 분열 AI 노출도가 높은 직종(컴퓨터 프로그래머 등)에서 챗GPT 등장 이후 이직·퇴직 전환이 25% 증가했다. 반면 AI 노출이 낮은 직종(도장공 등)은 전환율이 2%에 그쳤다. 흥미로운 건 챗GPT 이전에는 AI 고노출 직종 종사자들이 오히려 덜 이직했다는 점이다 — 기술 변화가 이들의 행동 패턴 자체를 뒤집었다.
NBER의 최신 연구가 이 현상의 구조를 설명한다.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그 일자리는 초기에 높은 임금 프리미엄을 준다. 하지만 이 프리미엄은 시간이 지나면 소멸한다. 2000~2018년에 등장한 직무는 4.7 로그포인트의 프리미엄을 누리지만, 1970년대 등장 직무는 오히려 마이너스다. 젊은 세대가 새 기술을 빠르게 습득하면서 대졸 임금 프리미엄 격차의 절반이 연령 차이에서 발생한다. 55세 엔지니어가 떠나는 건 기술을 몰라서가 아니다. 자신이 쌓아온 전문성의 프리미엄이 사라지는 속도를 체감하기 때문이다.
시간당 2달러 — 자동화라는 이름의 환상
AI 에이전트 시장은 2025년 80억 달러에서 2034년 1,990억 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PwC는 AI가 2030년까지 연간 4조 4천억 달러의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낼 것으로 예측한다. 이 숫자들은 매혹적이지만, ILO의 올해 보고서 제목은 이 매혹에 찬물을 끼얹는다. ‘인공지능의 환상: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이 자동화된 경제를 떠받치는 법.’
ILO에 따르면, 전 세계 수천만 명의 노동자가 AI 시스템의 데이터 라벨링, 어노테이션, 검증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유급·무급 시간을 합산하면 이들의 평균 시급은 약 2달러. 중위 연령은 26세, 다수가 여성이며, 64%가 이 일을 주 수입원으로 의존한다. 상당수가 대학 이상의 학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에 걸맞은 대우는 받지 못한다.
~$2/hr
AI 데이터 라벨링 노동자 평균 시급 — 최저임금 이하
ILO (2026)
64%
크라우드워커 중 마이크로태스킹이 주 수입원인 비율
ILO (2026)
$80억→1,990억
AI 에이전트 시장 규모 — 2025→2034 전망
Precedence Research (2025)
이건 좀 불편한 대비다. 하버드 연구에서 지식노동자가 AI 에이전트를 “제2의 뇌”라 부르며 생산성을 36% 높이는 용도로 쓰는 동안, 그 에이전트의 학습 데이터를 만든 사람은 시간당 2달러를 받고 플랫폼에서 아무 예고 없이 퇴출당할 수 있다. 인도에서만 2028년까지 100만 명의 데이터 어노테이터가 활동할 것으로 추산된다. 글로벌 데이터 어노테이션 시장은 80억 달러를 넘어설 전망이지만, 이 시장의 노동자들에게는 사회보험도, 노동법 보호도, 해고 통지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 줄 요약: AI가 만드는 효율은 보이는 곳에 쌓이고, 그 비용은 보이지 않는 곳에 숨는다. ‘자동화’라는 단어가 가리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다.
‘새로운 일자리’는 누구에게 열리는가
NBER 연구는 한 가지 희망적인 발견을 제시한다. 새로운 기술은 기존 일자리를 파괴하지만, 동시에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직무를 창출한다. 이 ‘새로운 일(new work)’은 평균 1.8 로그포인트의 임금 프리미엄을 제공하며, 기술 관련 신규 직무는 비기술 직무 대비 약 4배 높은 프리미엄을 준다.
문제는 이 열쇠가 모두에게 열려 있지 않다는 점이다. 신기술 관련 일자리 중 57%는 등장 시점에 대졸 이상 학력을 요구한다. 이 비율은 80년이 지나면 34%로 낮아지지만, 기술 등장 후 노동시장에 최대 영향을 미치는 데까지 35년이 걸린다. 미국 상위 1% 밀집 도시의 핵심 기술 연령은 34년인 반면, 하위 절반 도시는 48년이다. 새 기술이 만드는 일자리는 특정 도시, 특정 학력, 특정 연령대에 먼저 도달하고, 나머지는 프리미엄이 사라진 뒤에야 접근할 수 있다.
패턴 — 청년 고용의 역설 OECD는 젊은 대졸자의 실업 위험 증가가 AI 이전부터 시작된 구조적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한국에서는 청년(15~29세) 고용률이 43.9%로 전년 대비 1.7%p 하락, 26개월 연속 감소 중이다. 새로운 기술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든다는 NBER의 발견과, 그 일자리에 청년이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 사이의 간극이 크다.
한국 노동시장이 보여주는 양극화의 실시간 데이터
2026년 6월 한국 고용 데이터를 산업별로 분해하면 단층선이 또렷하다.
+214,000명
보건·사회복지 취업자 증가 — +6.6%
통계청 고용동향 (2026.6)
-97,000명
제조업 취업자 감소 — -2.2%
통계청 고용동향 (2026.6)
+160,000명
구직단념자 증가 — 전년 대비 급증
통계청 고용동향 (2026.6)
보건·사회복지가 21만 4천 명을 흡수하는 동안 제조업은 9만 7천 명을 내보냈다. 건설업도 6만 7천 명이 줄었다. OECD가 지적한 ‘자동화 가능 업무 50% 이상인 일자리가 전체의 27%’라는 수치가 한국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 사이에서 구직을 아예 포기한 사람이 35만 6천 명 — 전년보다 16만 명이나 늘었다. ‘쉬었음’ 인구도 243만 9천 명으로 5만 명 증가했다.
핵심이다 — 실업률 2.8%라는 숫자만 보면 한국 노동시장은 안정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2.8% 바깥에 구직을 포기한 35만 명과 쉬고 있는 243만 명이 있다. 이들은 실업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다. ILO가 말하는 ‘보이지 않는 노동자’가 해외에만 있는 게 아니다. 한국에서도 고용 통계의 사각지대에 보이지 않는 비경제활동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다.
단층선 위에서 HR이 결정해야 할 것
이 글이 다룬 7개 소스의 데이터를 종합하면 하나의 구조가 보인다. AI는 일자리 총량을 급격히 줄이지 않았다. OECD 고용률은 사상 최고, 미국 실업수당 청구는 사상 최저다. 대신 AI는 노동의 가시성을 재편하고 있다. 대기업에서 AI와 협업하는 지식노동자는 전례 없는 생산성 도구를 손에 쥐었고, 그 도구를 만드는 데이터 노동자는 시간당 2달러를 받으며 어떤 노동법의 보호도 받지 못한다. 같은 회사 안에서 30대 개발자는 에이전트를 “제2의 뇌”로 쓰고, 55세 동료는 짐을 싼다.
한국 HR 실무자에게 이 단층선은 추상이 아니다. 제조업에서 나간 9만 7천 명을 보건복지가 흡수하는 동안, 그 전환을 지원하는 체계는 누가 만들고 있나. 청년 고용률이 26개월째 하락하는데, 신기술이 만드는 ‘새로운 일자리’에 접근하는 경로는 설계돼 있나.
💡 실무 시사점 — HR이 이번 분기에 점검할 3가지:
① 세대별 AI 도입 격차 진단. 50대 이상 구성원의 AI 도구 활용률을 측정하고, 퇴직 리스크와 연결해 볼 것. “교육 기회를 줬는가”가 아니라 “실무에서 쓰고 있는가”가 기준이다.
② 외주 AI 노동의 공급망 점검. 우리 회사가 쓰는 AI 서비스의 학습 데이터가 어떤 노동 조건에서 만들어졌는지 파악할 것. ILO 플랫폼 노동자 협약(2026)이 발효되면 이는 ESG 리스크가 된다.
③ 비경제활동인구의 내부 버전 식별. 구직단념자 35만 명은 국가 통계의 이야기지만, 조직 내에도 ‘조용한 이탈(quiet quitting)’ 상태의 구성원이 있다. 몰입도 조사의 숫자가 아니라 실제 업무 전환·학습 참여 데이터로 확인할 것.
#AI노동양극화#보이지않는노동#세대별AI격차
참고 링크
- WSJ, “Big Companies Are Starting to Hire Again, Defying Predictions of AI Wipeout” (2026)
- WSJ, “Workers Opt to Retire Amid Shift to AI” (2026)
- OECD, “OECD Employment Outlook 2026: From Resilience to Risk” (2026)
- HBS Working Knowledge, “Who’s Adopting AI Agents—and What They’re Actually Doing With Them” (2026)
- ILO, “The Artificial Intelligence Illusion: How Invisible Workers Fuel the Automated Economy” (2026)
- NBER, “New Work, New Technologies, and the Skill Premium” (2026)
- 통계청, “2026년 6월 고용동향” (2026)
작성: 서재홍 | N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