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동안 청년 일자리 28만 5,000개가 사라졌다. 그중 94%가 AI 고노출 업종에 집중됐다. 한국은행이 2026년 8월 내놓은 BOK 이슈노트는 이 숫자 하나로 뉴스 헤드라인을 장악했다. 정보서비스업 31.4%, 출판업 27.4%, 컴퓨터 프로그래밍·시스템 통합 16.6%. 수치만 보면 기술이 사람을 밀어낸 전형적인 스토리다.
그런데 같은 기간, 같은 업종에서 50대 일자리는 23만 개 늘었다. 숫자가 말해주지 않는 것이 있다. 솔직히, AI가 사람을 대체했다기보다는 ‘경력 사다리의 아래쪽 칸’을 걷어찼다고 보는 쪽이 훨씬 정확하다.
한 줄 요약: AI가 청년 일자리 26.8만 개를 줄였다는 숫자 뒤에 숨은 진짜 문제는 기술 대체가 아니라, 역량을 재정의하지 못한 채 경력 사다리만 고수하는 HR 시스템이다.
4년간 26.8만 개 — 숫자가 말해주는 것과 말해주지 않는 것
한국은행 조사국 고용연구팀의 분석은 한 가지 사실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에서 청년(15~29세) 일자리 감소가 집중됐다는 것이다. 2022년 6월부터 2026년 6월까지 청년 취업자가 28만 5,000명 줄었고, AI 고노출 업종이 그 감소분의 94%인 26만 8,000개를 차지했다.
26.8만 개
AI 고노출 업종 청년 일자리 감소
한국은행 BOK이슈노트, 2026.8
76%
직장에서 AI를 사용하는 근로자 비율 (2025)
McKinsey, 2026.4
43%
HR 분야 AI 도입률 (2024년 26%에서 급등)
SHRM/People Matters, 2026.5
그런데 이 데이터를 좀 더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같은 AI 고노출 업종에서 50대 취업자는 오히려 17만 3,000개(75.2%) 늘었다. 대졸 청년 실업률은 7.0%로 전문대졸 이하(5.4%)보다 높다. 기술 수준이 낮아서 밀려난 게 아니라, 조직 맥락을 읽는 경험이 없어서 밀려났다는 뜻이다.
한국은행 보고서의 표현을 빌리면, “청년층이 주로 맡는 매뉴얼 기반 업무는 AI로 대체하기 쉬운 반면, 조직의 특성과 맥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숙련 근로자의 업무는 대체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핵심이다. AI가 걷어찬 건 ‘사람’이 아니라 ‘경험 없이도 할 수 있던 업무’다.
‘대체’가 아니라 ‘과업 전환’ — 일자리 소멸론의 오독
맥킨지가 2026년 4월 정리한 보고서는 이 지점을 정확히 짚는다. “40%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공포의 출처가 된 맥킨지 원래 연구는 사실 ‘일자리(jobs)’가 아니라 ‘과업(tasks)’ 단위의 자동화를 말한 것이다. 직업 하나가 통째로 없어지는 게 아니라, 직업 안에 있는 업무 조각들이 재편된다.
개인적으로는, 이 구분이 한국 맥락에서 유독 중요하다고 본다. 한국 기업의 직무 설계는 여전히 ‘포지션 단위’로 되어 있다. 신입은 신입이 할 업무를, 대리는 대리가 할 업무를 하도록 짜여 있다. 그런데 AI가 과업 단위로 일을 바꾸면, 이 포지션 중심 설계가 통째로 흔들린다.
사례 — 정보서비스업 현장한국은행 데이터에서 정보서비스업 청년 취업자가 31.4% 감소한 반면, 같은 업종 50대 취업자는 증가세를 보였다. 초급 프로그래머가 하던 코드 리뷰, 문서 작성, 테스트 스크립트 같은 ‘반복적 기술 과업’을 AI가 가져갔고, 남은 업무는 시스템 아키텍처 판단, 고객 요구 해석처럼 10년 이상 경험이 녹아든 일이었다. 기업 입장에서는 신입 3명을 뽑는 대신 시니어 1명에게 AI 도구를 쥐어주는 편이 합리적이었던 셈이다.
맥킨지 보고서가 강조하는 또 하나의 발견은 이렇다. 직장에서 AI를 사용하는 비율이 2023년 30%에서 2025년 76%로 급등했지만, 직원들이 근본적으로 중시하는 가치 — 의미 있는 업무, 유연성, 성장 기회 — 는 놀라울 만큼 변하지 않았다. 기술은 달라져도 사람이 일에서 원하는 것은 같다. 이건 좀 아이러니하다. 가장 빠르게 변하는 영역에서 가장 느리게 변하는 것이 사람의 기대라니.
역량에서 가능성으로 — HR이 묻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그렇다면 HR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EY India의 인력 컨설팅 파트너 비디아 모한은 People Matters 기고에서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AI는 더 이상 인재 기능의 실험적 도구가 아니다. 인력 결정이 이루어지는 방식의 기반이 되었다.”
HR 분야의 AI 도입률은 2024년 26%에서 2025년 43%로 뛰었다. AI 기반 인력 인텔리전스를 도입한 기업은 성과가 약 25% 개선됐다. 하지만 이건 도구의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묻는 질문’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전통적 역량(competency) 평가는 “과거에 무엇을 했는가”를 묻는다. 3년간 어떤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어떤 자격증을 땄는지. 하지만 AI 시대에는 “앞으로 무엇을 배울 수 있고, 다음에 무엇을 기여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된다. 모한은 이를 ‘역량(competency)에서 가능성(capability)으로의 전환’이라 부른다.
이 전환은 경력 구조도 바꾼다. 직선형 사다리(ladder)에서 유동적 격자(lattice)로. 대리 4년 차니까 과장이 되는 게 아니라, AI 도구를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있으니 프로젝트 리드를 맡는 구조다. 몇 주 걸리던 인재 의사결정이 AI로 몇 분 안에 가능해졌다면, 그 속도에 맞는 유연한 경력 경로가 있어야 한다.
한국은행 데이터를 다시 보자. 청년층의 월평균 노동시장 유출이 코로나 전 3,700명에서 4,900명으로 32% 늘었고, 유입은 3만 2,600명에서 2만 9,100명으로 11% 줄었다. 문이 좁아진 게 아니라 문 앞에 놓인 자격 기준이 현실과 어긋난 것이다.
경력 사다리가 사라진 자리에 무엇을 놓을 것인가
결국 이 이야기는 하나로 수렴한다. AI가 과업을 재편한 세계에서, 기존의 ‘포지션 → 역량 → 평가’ 파이프라인은 작동하지 않는다. 51%의 글로벌 기업이 이미 AI 때문에 초급 인력 수요가 줄었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초급 인력이 진입하는 경로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솔직히 말하면, 한국의 많은 기업이 아직 이 질문 앞에 서 있지도 못했다. AI 도구를 도입하면서도 채용 공고에는 여전히 “관련 경력 3년 이상”을 넣고, 직급 체계는 호봉제 기반이며, 역량 평가는 과거 실적 중심이다. 기술은 2026년인데 HR 시스템은 2016년에 멈춰 있다.
맥킨지가 말한 대로, 일은 변하지만 사람이 원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의미 있는 일, 성장할 수 있는 기회, 기여를 인정받는 경험. AI가 아무리 과업을 바꿔도 이 세 가지에 대한 갈증은 그대로다. 그렇다면 HR의 역할은 명확하다. ‘자동화할 수 없는 가치’를 중심으로 경력 경로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사다리가 아니라 격자로, 직급이 아니라 기여로, 과거 스펙이 아니라 미래 가능성으로.
💡 실무 시사점: 채용 공고의 자격 요건을 ‘경력 연수’에서 ‘학습 역량·프로젝트 성과’로 전환하라. 직무 설계를 포지션 단위에서 과업 단위로 재편하고, AI가 가져간 초급 과업 대신 멘토링·협업·맥락 해석을 신규 인력의 핵심 역할로 재정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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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링크
- 충북일보, “AI 고노출 업종서 청년 일자리 감소 집중…4년간 26.8만개 줄어” (2026)
- McKinsey, “How AI Is — and Isn’t — Changing the Future of Work” (2026)
- People Matters, “From Competency to Capability: How AI Is Accelerating the Future of Work” (2026)
작성: 서재홍 | N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