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3건이던 온열질환 산업재해 승인 건수가 2025년 77건으로 치솟았다. 5년 만에 6배. 같은 기간 사망자도 누적 21명에 이른다. 올해 상반기(1~6월)만 놓고 봐도 이미 4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4배에 달하는 수치다. 건설업이 전체의 46.5%를 차지하고, 50~60대 고령 근로자가 절반을 넘긴다.
솔직히, 이 숫자들을 보면 ‘폭염 대비’라는 말이 더 이상 여름철 계절 이벤트가 아니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정부가 올여름 보여준 행보는 확실히 과거와 결이 다르다. 장관이 직접 야간에 물류센터를 불시점검하고, 안전 우수기업에는 대출금리를 깎아주는 금융 인센티브까지 설계했다. 채찍과 당근이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
한 줄 요약: 온열질환 산재가 5년 새 6배 급증한 가운데, 정부가 ‘체감온도별 작업중지 + 야간 불시점검 + 안전경영 금리감면’이라는 삼중 안전망을 가동했다 — 사업장의 대응 방식도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숫자가 말하는 폭염 산재의 현실
폭염이 단순한 ‘덥다’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재해의 직접 원인이 됐다는 사실은 통계가 증명한다. 온열질환 산재 승인 건수는 2021년 19건에서 2022년 23건, 2023년 31건, 2024년 51건, 그리고 2025년 77건으로 해마다 가파르게 올랐다. 사망 건수 역시 2022년 5명, 2023년 4명, 2024년 2명으로 줄어드는 듯했지만 2025년 다시 5명으로 반등했다.
77건
2025년 온열질환 산재 승인
프레시안·헤럴드경제 (2026)
6배
5년간 온열질환 산재 증가율
2020년 13건 → 2025년 77건
46.5%
건설업 비중 (전체 온열질환 산재)
프레시안 (2026)
2.1%p
안전경영 우수기업 대출금리 감면
고용노동부 (2026.7.30)
개인적으로는, 2024년 사망자가 2명으로 줄었을 때 ‘대책이 효과를 내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던 걸 기억한다. 그런데 불과 1년 만에 다시 5명이라는 숫자가 나왔다. 이건 좀 불편한 진실인데, 기후 변화의 속도가 제도의 적응 속도를 앞서고 있다는 뜻이다.
장관이 밤 8시에 물류센터를 찾은 이유
7월 31일 오후 8시.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경기도 파주의 한 택배 물류센터에 예고 없이 나타났다. 야간 불시점검이었다. 결과는 예상대로 씁쓸했다. 상·하차 구역과 분류 시설 내 온습도 모니터링 장비가 아예 없었고, 작업 공간 인근에 냉방 휴게 시설도 없었다. 즉시 개선 명령이 내려졌다.
사례 — 파주 택배 물류센터 야간 불시점검김영훈 장관은 “해가 진다고 폭염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택배 물량과 작업 속도가 노동자 생명보다 우선될 수 없다”고 말했다. 장관 직접 야간 현장점검은 이례적인 행보로, 물류센터 야간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이 수면 위로 드러난 계기가 됐다. 점검 결과 ‘폭염 5대 기본 수칙’ — 음용수 비치, 냉방 가동,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 냉각 장비 제공, 응급 시 119 신고 — 미이행 사항에 대해 즉시 시정명령이 내려졌다.
이건 핵심이다. 물류센터는 건설현장만큼 주목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였다. 해가 진 뒤에도 축열된 콘크리트 바닥과 컨베이어 벨트 열기가 체감온도를 높인다. 장관이 굳이 밤 8시에 현장을 찾은 건, 그 사각지대를 정면으로 겨냥한 시그널이다.
체감온도 33도부터 작동하는 3단계 시스템
8월 2일 오후 1시, 폭염 중대본이 2단계로 격상됐다. 이에 따라 노동부는 체감온도 기준 3단계 작업중지 체계를 가동했다.
33°C 이상(폭염주의보 수준)에서는 작업 시간 조정과 야외 작업 축소가 권고된다. 35°C 이상(폭염경보)이면 오후 2~5시 야외 작업이 중단된다. 38°C 이상(폭염 위기경보)에 이르면 긴급 작업을 제외한 야외 작업이 전면 중단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기온’이 아니라 ‘체감온도’를 기준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습도·복사열까지 반영한 체감온도는 실제 기온보다 5~10도 높을 수 있다. 건설현장이나 물류센터 같은 반밀폐 공간에서는 이 차이가 사망과 직결된다.
동시에 밀폐 공간 질식 위험도 경고 대상에 포함됐다. 하수처리장, 하수관, 정화조, 저장 컨테이너 같은 곳에서는 폭염 시 CO₂와 H₂S 농도가 급증하는데, 이 역시 매년 사망사고가 반복되는 구간이다.
채찍만으로는 안 된다 — 금리 감면이라는 당근
점검과 제재만으로 안전 문화를 바꿀 수 있을까. 정부도 그 한계를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7월 30일, 안전보건공단(KOSHA)과 NH농협금융그룹이 파격적인 협약을 맺었다. 위험성 평가 인정을 통해 ‘안전관리 우수 기업’으로 선정된 사업장에 대출금리를 최대 2.1%p 깎아주겠다는 내용이다.
아쉽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이 혜택이 아직 NH농협 한 곳에 한정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공공 안전기관과 민간 금융기관이 결합한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확장 가능성은 충분하다. 협력 영역도 대출금리 인하에 그치지 않고, 안전분야 ESG 경영 연계, 안전 신기술 생태계 강화, 농협 전국 지점망을 활용한 농촌 안전문화 확산까지 4개 축으로 설계됐다.
사례 — KOSHA·NH농협 안전금융 협약안전보건공단 김현중 이사장은 “안전이 가장 빠르다는 개념으로, 안전을 기업 경쟁력으로 전환하고 농협의 전국 인프라를 통해 농촌까지 확산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번 협약은 ‘안전 투자 → 금융 혜택’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민간 금융권으로 처음 확장한 것으로, 중소기업이 안전에 투자할 경제적 유인을 제공하는 정책 설계가 핵심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동안 산업안전 정책은 ‘사고 나면 제재’라는 사후적 접근에 머물렀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사업주의 불만은 “안전에 투자해도 돌아오는 게 없다”는 것이었다. 금리 2.1%p 감면이 거창해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중소 제조업체의 연간 이자 부담이 수천만 원인 점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인센티브가 된다.
현장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이번 정부 행보에서 읽어야 할 메시지는 분명하다. 폭염 대응은 더 이상 ‘여름철 안전교육 한 번’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체감온도 모니터링 시스템을 상시 운영하고, 단계별 작업중지 프로토콜을 취업규칙에 반영해야 한다. 물류센터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열 위험 사업장도 점검 대상이 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안전 투자를 비용이 아닌 자산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다. 위험성 평가 인정 → 우수기업 선정 → 금리 감면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미리 설계해두면, 안전관리가 곧 재무적 이득이 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올여름, 누군가에게는 ‘또 하나의 폭염’일 수 있다. 하지만 산재 통계가 해마다 갱신되고 있는 지금, 한 가지만 물어보자. 우리 사업장의 온도계는 어디에 있는가. 그 온도계를 마지막으로 확인한 게 언제인가.
💡 실무 시사점: 체감온도 33°C 기준 3단계 작업조정 프로토콜을 취업규칙에 반영하고, 물류·건설 현장의 온습도 실시간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KOSHA 위험성 평가 인정을 통한 금리감면 등 안전 투자의 재무적 회수 경로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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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링크
- 고용노동부, “폭염 중대본 2단계 격상에 따라 폭염 및 질식위험 대응 강화 긴급지시” (2026)
- 고용노동부, “노동부 장관, 택배 물류센터 야간 불시점검” (2026)
- 고용노동부, “안전경영 우수기업, 민간 금융권에서도 대출금리 2.1%p 감면받는다” (2026)
- 프레시안, “온열질환 산재 지난 6년 간 4배 급증” (2026)
- 헤럴드경제, “폭염 산재 5년 새 6배 급증” (2026)
작성: 서재홍 | N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