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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딩보다 호기심 — 디지털 전환 시대, 리더십은 어디로 가고 있나

90개국 임원 1,500명에게 물었다 — “디지털 전환에 가장 중요한 리더 역량은?”

답은 코딩이 아니었다. 하버드경영대학원(HBS)이 90개국 이상의 임원 1,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대규모 서베이에서, 71%가 ‘적응력(adaptability)’을 디지털 전환 시대 리더의 최우선 역량으로 꼽았다. 코딩 능력이나 데이터 분석 스킬은 상위권에 들지 못했다. 더 주목할 점은 이것이다 — 응답 임원의 절반 이상이 “현재 자신을 포함해 경영진이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마인드셋과 스킬을 갖추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개인적으로는, 이 숫자가 꽤 충격적이었다. 디지털 전환을 이끌어야 할 리더의 과반이 스스로 준비가 안 됐다고 말하는 셈이니까. AI가 회의록을 요약하고 보고서를 쓰는 2026년, 리더에게 정말 필요한 건 뭘까. 세 가지 글로벌 연구·컨퍼런스 인사이트를 교차 분석해봤다.

한 줄 요약: 디지털 전환 시대 리더십의 핵심은 기술 스킬이 아니라 적응력·호기심·신뢰 분배 같은 ‘소프트 역량’이며, Z세대의 기대 변화가 이 전환을 가속하고 있다.

71%

디지털 전환 시대 리더 역량 1위로 ‘적응력’을 선택한 임원 비율

HBS Working Knowledge, 90개국 1,500명 서베이

50%+

“경영진이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고 인정한 비율

HBS Working Knowledge, 동일 서베이

200

21개 글로벌 라운드테이블에 참여해 리더십 프레임워크 검증에 참여한 임원

HBS Working Knowledge, 글로벌 라운드테이블

“소프트 스킬은 더 이상 소프트하지 않다”

HBS 연구팀(Linda A. Hill, Ann Le Cam, Sunand Menon, Emily Tedards)은 서베이와 별도로 21개 글로벌 라운드테이블을 열어 약 200명의 임원과 심층 토론을 진행했다. 여기서 도출된 디지털 시대 리더의 6가지 특성은 기존의 리더십 교과서를 상당 부분 뒤집는다.

핵심만 추리면 이렇다. 계획자가 아니라 촉매자(catalyst)가 되어야 한다. 순차적 전략 수립 대신 반복적 실험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권한을 쥐는 게 아니라 신뢰하고 내려놓아야(trust and let go) 한다. 그리고 탐험가(explorer)처럼 조직 바깥의 약한 신호를 포착해야 한다 —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한 한 아프리카 유통 기업 회장은 이를 “호기심의 실천(curiosity in action)”이라 불렀다.

솔직히 말해서, ‘촉매자’나 ‘탐험가’라는 표현이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이 연구의 방점은 다른 데 있다. “모든 답을 갖고 있으려는 리더에서, 불편함 속에서도 편안할 수 있는 리더로 전환하라”는 메시지다. 통제력을 내려놓는 것이 실력인 시대가 됐다는 뜻이다.

사례 — 아프리카 유통기업 회장의 라운드테이블 발언HBS 글로벌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한 한 아프리카 대형 유통 기업의 회장은 “소프트 스킬은 더 이상 소프트하지 않다(It’s the soft skills that I argue are not soft anymore)”고 단언했다. 그는 자사의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기술 도입보다 리더들의 마인드셋 전환이 훨씬 어려웠다고 회고하며, 현장에서 약한 신호를 포착하는 ‘호기심의 실천’이 전환의 전환점이 됐다고 강조했다.

AI가 루틴을 가져가면, 리더에게 남는 건 ‘인간적 행동’

이 흐름은 HBS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Inc.의 리더십 칼럼니스트 Marcel Schwantes는 2026년 리더십의 본질을 4가지 인간적 행동(Human Behaviors)으로 정리하면서, AI가 루틴 업무를 흡수할수록 긴장 상황 해소, 신뢰 구축, 심리적 안전감 조성 같은 역량이 ‘운영 스킬(operational skill)’로 재분류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건 좀 생각해볼 만한 관점이다. 지금까지 ‘대인 관계 능력’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되는” 보너스 역량이었다. 성과만 내면 됐다. 그런데 AI가 성과의 상당 부분을 대체하기 시작하면, 리더의 차별적 가치는 결국 사람 사이의 관계를 설계하는 능력으로 수렴한다. Schwantes는 특히 대인관계의 다양성이 부족한 리더십 팀이 조직 전체의 사각지대를 만든다고 경고했다 — 동질적인 리더 그룹은 같은 방향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Z세대는 ‘업무 방식’이 아니라 ‘리더십 자체’를 바꾸고 있다

여기에 세대 변수가 겹친다. 2026년 8월 열린 TechHR India 2026에서 Aditya Raj Kaul은 도발적인 테제를 던졌다. “Z세대는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게 아니다. 리더십 자체를 바꾸고 있다.”

Kaul이 제시한 새 리더십 프레임워크의 핵심은 ‘통제 대신 신뢰(trust over control)’다. “떠나고 싶으면 떠나겠다, 재택근무를 하고 싶으면 하겠다”는 Z세대의 태도를 단순한 세대 차이로 치부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자율성(autonomy)에 대한 근본적 기대 변화이며, 조직이 이에 맞춰 리더십 구조를 유연하게 재설계하지 않으면 이탈이 가속화된다.

흥미로운 건 HBS 연구의 ‘신뢰하고 내려놓기(trust and let go)’와 Kaul의 ‘통제 대신 신뢰(trust over control)’가 거의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는 점이다. 90개국 임원 1,500명의 데이터와, 인도 HR 컨퍼런스 현장의 목소리가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 권한 분배와 자율성 보장이 선택이 아닌 생존 조건이 됐다.

한국 HR에 시사하는 것 — 리더십 개발의 재설계

국내 상황을 돌아보자. 한국 기업의 리더십 개발 프로그램 대부분은 여전히 성과 관리 스킬, 전략 기획 역량, 의사결정 프레임워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HBS 연구가 말하는 ‘적응력’, ‘호기심’, ‘불편함에 대한 내성’ 같은 역량은 커리큘럼에 포함되더라도 부차적 위치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현실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2025년 말 단행한 대규모 임원 인사에서 219명을 승진시키며 40대 차세대 리더를 전면에 배치한 것도, 단순한 세대교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중심 모빌리티(SDV) 전환이라는 디지털 전환의 압력 때문이었다. 전통적 제조업 마인드의 리더로는 이 전환을 이끌 수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이다.

DBR은 최근 “조직개편이 일상이 된 시대”라는 특집에서 HR이 단순한 구조 변경의 실행자를 넘어 조직 효과성과 구성원 적응을 설계하는 전략적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것이 핵심이다 — 리더십 역량의 재정의는 곧 HR의 역할 재정의이기도 하다.

실무에서 점검해야 할 것들

HBS 연구가 도출한 6가지 특성, Inc.의 4가지 인간적 행동, TechHR의 5가지 리더십 기둥을 종합하면, 공통분모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적응력과 호기심 — 계획을 세우는 리더보다, 실험하고 피봇하는 리더가 디지털 전환을 완수할 가능성이 높다. 71%의 글로벌 임원이 이를 1순위로 꼽았다는 건, 이미 현장에서 체감하고 있다는 뜻이다.

권한 분배와 신뢰 — ‘통제하는 리더’에서 ‘내려놓는 리더’로의 전환은 HBS와 TechHR 양쪽에서 독립적으로 도출된 결론이다. Z세대의 자율성 기대와 맞물려, 이 전환은 선택이 아니라 조직의 생존 조건이 되고 있다.

취약성과 진정성 — HBS는 ‘현존(being present)’을 강조하며 공감, 취약성, 진정한 스토리텔링을 핵심 역량으로 꼽았다. AI가 분석과 보고를 대체하는 시대에, 리더만이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아쉽다면, 아직 국내 기업의 리더십 개발 프로그램에서 이런 역량을 체계적으로 측정하고 개발하는 사례가 흔치 않다는 점이다. ‘소프트 스킬은 측정할 수 없다’는 오래된 편견이 여전히 강하다. 하지만 HBS 연구팀이 90개국 1,500명의 데이터로 증명했듯, 이제 이 역량들은 더 이상 ‘소프트’하지 않다.

💡 실무 시사점: 리더십 개발 프로그램의 KPI를 재설계하라. ‘전략 기획 역량’이나 ‘성과 관리 스킬’ 대신, ‘실험 빈도’, ‘권한 위임 비율’, ‘팀원 자율성 만족도’ 같은 지표가 디지털 전환 리더의 실제 역량을 더 정확하게 반영한다. HR은 이 전환의 실행자가 아니라 설계자여야 한다.

#디지털전환 #리더십재정의 #적응력 #소프트스킬 #Z세대리더십 #HR전략

참고 링크

작성: 서재홍 | N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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