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취업자의 절반 이상이 생성형 AI를 업무에 쓰고 있다. 인터넷 확산 속도의 8배다. 그런데 생산성은 고작 1% 올랐다. 같은 시기, 글로벌 CHRO의 98%가 “사람 중심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했고, 기업들은 중간관리자에게 ‘코치’가 되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언뜻 보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AI가 반복 업무를 맡으니, 사람은 사람다운 일을 하면 된다. 하지만 이 서사에는 한 가지 질문이 빠져 있다. 그 ‘사람 중심’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여성 사무직은 남성보다 2배 높은 AI 대체 위험에 놓여 있고,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은 정규직의 65%에 머문다. AI 시대 HR의 진짜 과제는 기술 도입이 아니라, ‘사람 중심’이라는 말이 조직 내 모든 사람을 실제로 포함하는지 점검하는 일이다.
절반이 쓰는데 효과는 1% — AI 생산성의 불편한 진실
한국은행이 2025년 가계조사를 기반으로 발표한 데이터는 꽤 인상적으로 시작한다. 국내 취업자의 63.5%가 생성형 AI를 사용하고, 업무 목적 사용자만 따져도 51.8%에 달한다. 미국의 업무 활용률 26.5%와 비교하면 거의 두 배다. 하루 1시간 이상 AI를 쓰는 ‘헤비 유저’ 비중도 한국이 78.6%로 미국(31.8%)을 압도한다.
그런데 생산성 수치로 넘어가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AI 사용으로 인한 근로시간 단축 효과는 평균 3.8%, 주 40시간 기준으로 약 1.5시간이다. 잠재적 생산성 증가 효과는 1.0%로, 같은 방법론을 적용한 미국(1.1%)과 비슷한 수준에 그친다. 솔직히, 세계 최고 수준의 AI 보급률을 자랑하는 나라에서 기대할 수 있는 숫자는 아니다. 더 의미심장한 건 AI를 쓰면서도 근로시간이 전혀 줄지 않았다고 답한 비율이 54.1%라는 점이다. 절반 넘는 사람이 AI를 쓰고 있지만, 절반 넘는 사람에게 AI는 아직 ‘생산성 도구’가 아니다.
OECD 고용전망 2026도 비슷한 톤이다. OECD 전체 실업률 4.9%, 고용률 72.1%로 표면 지표는 건강하다. 하지만 실질임금 증가율은 전년 2.7%에서 2.2%로 둔화했고, OECD 회원국 중 3분의 1은 실질임금이 5년 전 수준에도 못 미친다. AI가 확산되는 속도와 노동자의 지갑이 두꺼워지는 속도 사이에 간극이 벌어지고 있다.
51.8%
한국 취업자 중 업무 목적 생성형 AI 사용 비율
한국은행 Issue Note 2025-22
1.0%
AI 사용에 따른 잠재적 생산성 증가 효과
한국은행 Issue Note 2025-22
54.1%
AI를 사용하면서도 근로시간 감소 없다고 응답한 비율
한국은행 Issue Note 2025-22
2.2%
OECD 실질임금 증가율 (전년 2.7%에서 둔화)
OECD Employment Outlook 2026
관리자는 줄지 않았다 — 역할이 바뀌었을 뿐이다
AI가 중간관리자를 대체할 것이라는 예측은 지난 몇 년간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레티안 장(Letian Zhang) 교수가 미국 내 3,400만 건의 온라인 구인공고와 600만 건의 관리자 이력서, 43만 건의 직장 리뷰를 분석한 결과는 정반대였다. 미국 노동력에서 관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1983년 9.2%에서 2022년 13%로 오히려 늘었다. 2005년에서 2020년 사이만 23% 증가했다.
줄어든 건 관리자의 수가 아니라 관리의 성격이다. 구인공고에서 ‘감독(supervisory)’ 역량을 요구하는 비중은 23% 감소한 반면, 협업 관련 스킬 요구는 3배 증가했다. 이력서에서도 감독 경험을 강조하는 관리자는 8% 줄었고, 협업·팀워크를 부각하는 관리자는 37% 늘었다. 장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조직이 원하는 건 “군대 지휘관이 아니라 농구 코치”다.
맥킨지가 유럽 대기업 CHRO 70여 명을 인터뷰한 결과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98%가 기계적 역량 관리에서 역동적 직원 경험 중심으로의 전환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85%는 직원의 자율적 의사결정 권한 확대를, 90%는 개인 역량의 조직 전체적 인정 체계를 중요하게 봤다. 한 소비재 기업 CHRO는 이렇게 말했다. “직원과의 근접성이 핵심이다. 우리 사람을 모르면 HR은 아무런 영향력도 갖지 못한다.”
두 연구를 겹쳐놓으면 하나의 흐름이 보인다. AI가 보고서를 요약하고 데이터를 분석하는 일을 가져가면서, 관리자에게 남은 일은 ‘사람 사이의 접착제’ 역할이다. 코칭, 갈등 조정, 동기 부여, 경력 설계 — 전부 기계가 못 하는 일이다. 이건 좀 아이러니한 전개다. AI가 똑똑해질수록, 조직은 사람에게 더 의존하게 된다.
CHRO 98%의 전환 선언이 가리는 것
“사람 중심”이라는 방향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그 선언이 전제하는 ‘사람’의 범위다. 맥킨지 인터뷰에서 CHRO들이 강조한 키워드를 살펴보면 — 역동적 직원 경험, 개인 역량 인정, 자율적 의사결정 — 전부 고숙련 정규직 인재에게 최적화된 개념이다. 조직이 “코칭형 관리”를 도입할 때, 그 코칭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ILO가 2026년 3월 발표한 연구는 이 질문에 불편한 데이터를 제공한다. 전 세계 고용의 24%가 생성형 AI에 일정 수준 이상 노출되어 있고, 최고 노출 범주에 속하는 일자리는 3.3%다. 여기서 성별 격차가 극명하게 갈린다. 여성 주도 직종의 AI 노출률은 29%, 남성 주도 직종은 16%. 최고 노출 범주로 좁히면 여성 직종 16% 대 남성 직종 3%다. 분석 대상 84개국 중 88%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높은 AI 노출을 보였다.
주의 — 성별 AI 노출 격차 ILO가 3만 건의 실제 업무 과업과 5만 건의 인간 평가를 분석한 결과, 고소득 국가에서 최고 AI 노출 직종에 종사하는 여성 비율은 9.6%, 남성은 3.5%로 거의 3배 차이가 난다. 가장 취약한 직종은 데이터 입력, 급여 사무, 재무 분석 등 전통적 여성 집중 사무직이다.
핵심이다 — 맥킨지의 CHRO들이 “현재 채용 스킬이 몇 년 안에 무용화될 것”이라고 말한 그 스킬의 상당 부분이, ILO가 AI에 가장 취약하다고 분류한 바로 그 사무·행정 직종에 집중되어 있다. “사람 중심 HR”이 고숙련 인재의 경험을 최적화하는 동안, 가장 시급하게 전환 지원이 필요한 집단은 오히려 HR의 레이더 밖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시간당 18,635원이 보여주는 구조적 단층
한국 고용노동부의 2025년 6월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를 보면, 이 문제가 이론이 아니라 현실임을 확인할 수 있다. 전체 근로자 시간당 임금총액 25,839원. 정규직은 28,599원(전년 대비 3.2% 증가), 비정규직은 18,635원(1.3% 증가). 비정규직 시급은 정규직의 65.2%에 불과하고, 임금 상승 속도마저 2.5배 느리다. 격차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벌어지고 있다.
28,599원
정규직 시간당 임금 (전년 대비 +3.2%)
고용노동부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 (2025.6)
18,635원
비정규직 시간당 임금 (전년 대비 +1.3%)
고용노동부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 (2025.6)
65.2%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 비율
고용노동부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 (2025.6)
월평균 근로시간도 의미심장하다. 정규직 162.1시간, 비정규직 104.8시간. 사회보험 가입률은 정규직 94% 이상, 비정규직은 산재보험을 빼면 68~82% 수준이다. 노동조합 가입률은 전체 10.2%에 불과하다. 비정규직에게 ‘코칭형 관리’나 ‘역동적 직원 경험’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월 104시간 일하고, 사회보험도 불완전하고, 조합 보호도 없는 노동자에게 HR이 제공할 수 있는 ‘사람 중심’은 무엇인가.
OECD 고용전망도 이 지점을 지적한다. 고용 성과가 가장 나쁜 지역의 실업률은 가장 좋은 지역의 2배 이상이고, 벨기에·캐나다·이탈리아·슬로바키아에서는 4배를 넘긴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노동시장은 전혀 다른 세계가 공존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격차를 무시한 채 “사람 중심”을 말하는 건 공허한 슬로건에 가깝다고 본다.
AI의 균등화 효과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한국은행 보고서에는 흥미로운 대목이 하나 있다. AI가 숙련 격차를 줄이는 “균등화 효과(equalizing effect)”를 보인다는 것이다. 경험이 적은 근로자가 AI를 사용했을 때 시간 절감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났다. 이 데이터만 보면 AI가 격차를 자연스럽게 줄여줄 것 같다. 하지만 같은 보고서의 다른 수치를 보자. AI 사용률은 대졸 이상 72.9%, 고졸 이하 38.4%. 18~29세 67.5%, 50~64세 35.6%. 남성 55.1%, 여성 47.7%. 균등화 효과가 작동하려면 먼저 AI를 써야 하는데, 정작 가장 그 효과가 필요한 집단 — 저학력, 고연령, 여성, 비정규직 — 이 AI 접근성에서 뒤처져 있다.
ILO 보고서가 식별한 성별 AI 노출 격차의 3가지 원인이 여기서 겹친다. 첫째, 여성이 자동화에 취약한 직종에 과대 대표되어 있다. 둘째, 여성이 AI·STEM 관련 직종에는 과소 대표되어 있다. 셋째, AI 시스템 자체가 기존의 성별 편향을 반영하고 재생산한다.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작동하면, AI의 균등화 효과는 이미 유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만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트렌드 — AI 접근성의 역설 한국은행 조사에서 AI 사용자의 48.3%가 10년 내 실직 우려를 표했고, 33.4%가 교육·훈련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 훈련 참여율도 학력·연령·고용형태에 따라 분화된다. AI가 가장 필요한 곳에 AI가 가장 늦게 도착하는 구조다.
HBS의 장 교수가 발견한 ‘코치형 관리자’ 트렌드를 이 맥락에서 다시 보면, 불편한 그림이 완성된다. 협업 스킬 수요가 3배 늘고, 관리자가 코치가 되는 흐름은 혁신 중심 산업에서 가장 뚜렷하다. 기술 기업, 금융, 컨설팅 — 이미 정규직 고숙련 인력이 밀집한 섹터다. 반면 비정규직 비중이 높은 유통, 요식, 돌봄 산업에서 ‘코치형 관리’가 작동하려면, 전혀 다른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근로시간의 안정성, 최소한의 사회적 보호, 그리고 AI 도구에 대한 접근성.
‘모든 사람’을 포함하지 않는 HR은 전환이 아니라 분리다
여기까지의 데이터를 종합하면, AI 시대 HR이 직면한 과제의 윤곽이 드러난다. 한국은행 데이터가 보여주는 것은 AI 확산의 속도가 아니라, 그 속도 뒤에 숨은 효과의 불균등이다. OECD가 “회복에서 위험으로”라고 명명한 전환은 거시 지표의 건강함 이면에 있는 구조적 균열 — 임금 둔화, 지역 격차, 청년 실업 — 을 가리킨다. ILO는 그 균열이 성별 축을 따라 더 깊어지고 있음을 실증했다. 고용노동부 실태조사는 한국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단층이 임금·시간·사회보호 전 영역에 걸쳐 있음을 보여준다.
맥킨지의 CHRO들이 말한 “사람에게 돌아가자”는 방향은 맞다. HBS가 확인한 코치형 관리자의 부상도 올바른 흐름이다. 하지만 그 방향이 정규직·고숙련·혁신 산업에만 적용된다면, 그건 ‘전환’이 아니라 ‘분리’다. AI의 균등화 효과가 존재한다는 한국은행의 발견은, 역설적으로 그 효과가 균등하게 분배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읽어야 한다.
한 줄 요약: AI 시대 HR의 진짜 시험대는 기술 도입 속도가 아니라, ‘사람 중심’이라는 전환이 비정규직·여성·저숙련 노동자까지 실제로 포함하느냐에 달려 있다.
💡 실무 시사점 — HR이 이번 분기에 점검할 3가지:
① AI 도구 접근성 감사. 정규직만 Copilot을 쓰고 비정규직은 제외된 채 방치되어 있지 않은지. 한국은행 데이터가 보여주듯, AI의 균등화 효과는 접근성이 전제될 때만 작동한다. 비정규직·파견직에게도 동일한 AI 도구와 교육 기회를 설계해야 한다.
② 코칭형 관리 대상의 확장. 코칭이 혁신 부서 정규직에만 집중되어 있다면, 유통·서비스·돌봄 현장의 비정규직 관리자 역할 재정의부터 시작해야 한다. 근로시간 안정성과 사회보험 가입이 코칭의 전제 조건이다.
③ 성별 AI 노출 리스크 매핑. 자사 내 여성 비중이 높은 사무·행정 직군의 AI 대체 가능 과업 비율을 파악하고, 전환 교육을 선제적으로 배치해야 한다. ILO가 경고한 것처럼, 이 문제는 자동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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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링크
- 한국은행, “AI의 빠른 확산과 생산성 효과: 가계조사를 바탕으로” (2025)
- OECD, “OECD Employment Outlook 2026: From Resilience to Risk” (2026)
- McKinsey, “Back to human: Why HR leaders want to focus on people again” (2024)
- Harvard Business School, “The Middle Manager of the Future: More Coaching, Less Commanding” (2024)
- ILO, “Gen AI, occupational segregation and gender equality in the world of work” (2026)
- 고용노동부, “2025년 6월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 결과” (2026)
작성: 서재홍 | N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