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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증이 20만 장 쏟아졌는데 사람은 왜 계속 죽는가 — 중대재해처벌법과 안전의 자격증 인플레이션

자격증이 20만 장 쏟아졌는데 사람은 왜 계속 죽는가

2023년, 산업안전기사는 정보처리기사를 밀어내고 국가기술자격 응시자 수 1위에 올랐다. 2021년 9만 3천 명이던 접수 인원은 2025년 20만 2천 명을 돌파했다. 같은 기간 최종 합격자도 1만 5천 명에서 3만 1천 명으로 두 배가 됐다. 안전이라는 단어가 갑자기 한국 노동시장에서 가장 ‘핫한’ 자격증 키워드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자격증 홍수가 시작된 2022년 이후, 산업재해 사망자 감소 추세는 2025년에 멈췄고 오히려 반등했다. 605명, 전년 대비 16명 증가. 법이 만든 건 안전문화가 아니라 자격증 시장이었고, 그 자격증이 덮어버린 건 위험 그 자체가 아니라 위험의 가시성이었다.

한 줄 요약: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관리 ‘인력’을 40% 늘렸지만, 그 절반은 종이 위 직함이며 진짜 효과는 위험 노동을 규제 사각지대로 밀어낸 ‘자격증 인플레이션’이다.

+117%

산업안전기사 응시자 증가율 2021→2025

한국산업인력공단 국가기술자격 통계 (2025)

47%

건설 현장 안전관리자 중 겸임(비전담) 비율

KDI 450개 사업체 조사 (2026)

605

2025년 사고사망자 — 전년 대비 +2.7% 반등

고용노동부 산업재해 현황 (2025 누적)

-6.7%

고위험 직종 고용 감소 최대치

KDI 연구보고서 (2026)

40% 증가의 해부 — 숫자 뒤에 숨은 겸임의 구조

2024년 기준 안전관리인력 고용이 40% 늘었다는 수치는 사실이다. 문제는 그 40%의 내용물이다. 건설업 사업체 조사에서 안전관리자를 선임했다고 답한 81%의 기업 중, 전담 안전관리자를 두고 있는 곳은 27%에 불과했다. 나머지 47%는 겸임이다. 현장소장이 안전관리자 자격증을 따서 직함을 하나 더 얹은 형태, 공무 담당이 안전서류도 겸하는 형태. 서류상으로는 ‘선임’이 완료됐지만, 그 사람이 실제로 현장을 돌며 위험요인을 점검할 시간적·물리적 여유가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개인적으로는, 이 구조가 한국 노동시장의 고질적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고 본다. 법이 특정 자격을 요구하면 시장은 그 자격을 가장 싸게 충족하는 방법을 찾는다. 자격증을 따는 것안전을 관리하는 것 사이의 간극을 법은 통제하지 못한다. 2022년 하반기에 확인됐던 안전관리직 임금 프리미엄이 2024년 하반기에는 통계적 유의성을 상실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급이 폭발적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자격증 소지자가 넘쳐나면 임금은 떨어지고, 임금이 떨어지면 전담 안전관리에 투입할 인센티브도 사라진다.

사망자 130명 감소의 이면 — 특정 사고만 줄고 나머지는 꿈쩍 않았다

법 시행 전후 비교에서 연평균 사고사망자가 968명에서 838명으로 130명 줄었다는 결과가 있다. 그런데 그 130명 중 105명은 떨어짐·끼임·부딪힘이라는 3대 재래형 사고에서만 나왔다. 3대 재래형 사고의 사망만인율은 13.2% 감소했지만, 그 외 사고 유형에서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변화가 없었다. 법이 모든 산업재해를 줄인 게 아니라, 가장 눈에 보이고 가장 단속하기 쉬운 유형의 사고만 선별적으로 억제한 것이다.

이건 좀 아쉬운 지점이다. 떨어짐 방지 안전망, 끼임 방지 덮개, 부딪힘 방지 표지판 — 이런 것들은 눈에 보인다. 감독관이 현장에 들어오면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줄었다. 반면 과로사, 유해물질 노출, 밀폐공간 질식 같은 ‘보이지 않는 위험’은 자격증을 가진 겸임 관리자가 서류를 작성한다고 해서 예방되지 않는다. 법의 효과가 ‘가시적 위험’에만 집중된다는 것은, 법의 메커니즘이 실질적 안전이 아니라 감독 가능성에 의존하고 있다는 뜻이다.

고위험 직종이 사라진 게 아니라 비가시화됐다

가장 주목해야 할 데이터는 고위험 직종의 고용 감소다. 위험 노출도가 높은 직업의 고용이 저위험 직업 대비 3.2%에서 최대 6.7% 줄었다. 연구진은 이를 “법 시행에 따른 노동수요 위축”으로 해석했다. 그런데 한 발 더 들어가면, 그 일자리가 사라진 게 아니라는 점이 보인다.

경고 — 50인 미만 사업장 2025년 전체 사고사망 605명 중 351명(58%)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전년 대비 증가율도 50인 이상(+1.6%)보다 50인 미만(+3.5%)이 두 배 이상 높다. 건설업에서는 공사금액 5억 미만 소규모 현장의 사망자가 전년 대비 25명 순증했다.

50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법의 압력이 작동한다. CEO가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안전관리자를 선임하고 체계를 갖춘다. 그 과정에서 위험한 공정은 외주화된다. 원청이 직접 고용하던 고위험 작업자가 하도급으로, 하도급에서 다시 일용직으로, 일용직에서 다시 특수고용으로 밀려난다. 통계상 원청의 고위험 고용은 줄지만, 그 작업 자체가 없어진 건 아니다. 건물은 여전히 올라가고 배관은 여전히 용접된다. 다만 그 작업을 수행하는 사람이 법의 보호망 바깥으로 이동한 것이다.

자격증 인플레이션의 메커니즘

산업안전기사 응시자 추이를 보면, 전형적인 자격증 버블의 궤적이 나타난다. 2021년 9만 3천 명 → 2022년 12만 2천 명(+30%) → 2023년 18만 5천 명(+52%) → 2024년 19만 6천 명(+6%) → 2025년 20만 3천 명(+3%). 폭발적 증가 이후 정체기 진입. 합격자도 2023년에 전년 대비 82.6%가 폭증한 뒤 정체했다. 3년 연속 연간 6만 명 이상의 안전 관련 자격증 소지자가 시장에 풀렸다.

문제는 이 인력을 흡수할 전담 일자리가 그만큼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임금 프리미엄의 소멸이 이를 증명한다. 자격증 소지자가 넘치니 기업은 가장 저렴한 방식으로 법적 요건을 충족한다. 기존 직원에게 자격증을 따게 하고 겸임 발령을 내리면 추가 인건비 없이 법을 준수할 수 있다. 솔직히, 기업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그 합리적 선택이 집합적으로는 법의 의도를 완전히 무력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법은 ‘체계’를 요구했지만 시장은 ‘서류’를 공급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4조가 요구하는 것은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과 이행이다. 안전·보건에 관한 목표와 경영방침의 설정, 전담 조직의 설치, 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 절차 마련, 재발방지 대책 수립. 법 문언만 보면 포괄적이고 실질적인 시스템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현장에서 이것이 어떻게 번역되는지 보면, 결국 서류로 환원된다.

안전보건관리 규정 문서, 위험성평가 보고서, 안전점검 체크리스트, 교육이수 확인서. 이 서류들이 갖춰져 있고 안전관리자 선임 신고가 완료돼 있으면, 행정적으로는 법을 준수하고 있는 것이다. 450개 사업체 조사에서 위험 요인이 존재한다고 스스로 인정한 기업이 69%, 위험 장소 작업이 존재한다는 응답이 56%였다. 위험을 인지하고도 체계가 형식적으로만 존재하는 구조. 이건 법의 실패가 아니라, 이행 메커니즘의 실패다. 법은 결과(사망)를 처벌하겠다고 했지, 과정(형식적 이행)을 감별할 도구를 제공하지 않았다.

국제 비교가 말해주는 구조적 한계

한국의 치명적 산업재해율은 근로자 10만 명당 3.11건(2022년 기준)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상회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이라는 강력한 형사 제재를 도입한 뒤에도 이 수치가 극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영국의 Health and Safety Executive, 독일의 Berufsgenossenschaften 같은 시스템은 사후 처벌보다 사전 예방에 무게를 둔다. 산업별 안전기준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기업이 그 기준을 실질적으로 이행하는지를 상시 모니터링한다.

한국의 접근은 다르다. CEO에게 형사 책임을 지우는 강력한 위협을 통해 기업 스스로 안전체계를 갖추도록 유인한다. 그런데 기업이 선택한 것은 실질적 체계 구축이 아니라 법적 면책을 위한 최소 비용 투자였다. 겸임 안전관리자 선임, 자격증 보유 인력의 서류 배치, 형식적 위험성평가 실시. 이것이 한국적 맥락에서 형사 처벌 위협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처벌을 피하기 위한 최적화가 안전을 위한 최적화를 대체한다.

2025년의 반등이 예고하는 것

2025년 사고사망자 605명은, 법 시행 이후 처음으로 감소세가 역전된 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건설업에서 공사금액 5억 미만 소규모 현장의 사망자가 25명 순증한 것은, 법의 사각지대에서 위험이 집중되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50인 미만 사업장의 사망자 증가율(+3.5%)이 50인 이상(+1.6%)의 두 배를 넘는다는 사실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사례 — 소규모 건설 현장의 현실 50인 미만 사업장 대부분은 안전보건 전문인력을 자체 보유하기 어렵다. 전체 산업재해의 70% 이상이 이 규모에서 발생한다. 2024년 1월 50인 미만 확대 적용 이후 2년이 지났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규모별 세부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것이다. 법은 있되 이행의 구체적 경로가 없는 상태.

법이 만든 인센티브 구조를 정리하면 이렇다. 대기업은 형사처벌을 피하기 위해 안전체계를 갖추되 고위험 공정은 외주화한다. 중견기업은 겸임 안전관리자로 최소 비용 준수를 한다. 소규모 사업장은 법의 존재는 알지만 이행 방법을 모른다. 위험은 이 구조의 가장 아래, 가장 작은 단위로 흘러내린다.

💡 실무 시사점 — HR이 이번 분기에 점검할 3가지:

① 겸임 안전관리자의 실질 업무시간을 측정하라. 선임 사실만으로는 법적 면책이 완성되지 않는다. 대법원 판례는 ‘형식적 선임’만으로는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보지 않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겸임자의 안전관리 투입 시간이 주 몇 시간인지 기록하라.

② 외주·하도급 구조의 재해 데이터를 자체 모니터링하라. 원청이 고위험 공정을 외주화했다고 해서 법적 책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도급·용역·위탁 관계에서도 실질적 지배·운영·관리 권한이 있으면 경영책임자에게 의무를 부과한다.

③ 안전 투자를 ‘서류 완비’에서 ‘현장 변화’로 재정의하라. 자격증 소지자를 배치하고 서류를 갖추는 것은 시작일 뿐이다. 실질적 위험성평가 주기, 근로자 참여형 안전회의 빈도, 아차사고 보고 건수 같은 선행지표를 KPI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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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링크

작성: 서재홍 | N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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