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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넣을수록 사람이 나간다 — 관리자 공동화의 역설

올해 상반기, 한국은행이 내놓은 숫자가 기존 상식을 뒤집었다. 한국 근로자의 63.5%가 이미 생성형 AI를 활용하고 있고, 이 확산 속도는 인터넷 보급기의 8배에 달한다. 미국(26.5%)과 비교하면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AI를 받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 숫자만큼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하나 더 있다. 고성과자의 이탈이다. 글로벌 HR 플랫폼의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소매업에서 고성과자 이탈률이 전년 대비 64% 치솟았고, 11개 산업 중 10개에서 내부 승진이 줄었다. AI 도입은 인터넷 보급의 8배 속도로 확산 중이지만, 중간관리자 역할 재설계는 사실상 제자리다 — 이 속도 격차가 ‘관리자 압착’과 ‘고성과자 이탈’을 동시에 만들고, AI 에이전트를 조직에 넣을수록 오히려 사람이 빠지는 역설을 낳고 있다.

한 줄 요약: AI 확산속도와 관리자 재설계 속도의 격차가 ‘관리자 압착 → 고성과자 이탈’의 악순환을 만든다. 조직이 AI 에이전트를 도입하면서 정작 사람 관리의 재설계를 미루는 한, AI를 넣을수록 사람이 빠진다.

63.5%

한국 근로자 생성형 AI 활용률 (미국 26.5%의 2.4배)

한국은행 BOK포커스 — 가계조사 (2025)

8

AI 확산 속도 vs 인터넷 보급기

한국은행 BOK포커스 (2025)

+64%

소매업 고성과자 이탈률 전년 대비 증가

Workday Global Workforce Report (2025)

10/11

내부 승진이 감소한 산업 수

Workday Global Workforce Report (2025)

9시간/주

관리자가 개인 갈등 해결에 쓰는 시간 (업무시간의 20%)

Gartner 관리자 효과성 조사 (2025)

확산은 8배, 재설계는 0배

한국은행 가계조사에 따르면 한국 근로자의 업무용 AI 활용률은 51.8%이고, 주당 평균 사용시간은 5~7시간이다. 전체 일자리의 약 12%(341만 개)가 AI 대체 가능성이 높다는 추정도 같은 보고서에 담겼다. 문제는 이 속도에 대응하는 조직 구조 변화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은 2026년 12대 AI 트렌드로 ‘스스로 일하는 AI 에이전트, 협업과 자동화로 재편되는 미래’를 꼽았다. 보고서는 AGI/ASI 전망까지 언급하며 기업의 AX(AI Transformation) 로드맵을 제시하는데, 그 초점은 AI 인프라 구축, 데이터 접근성, 서비스형 비즈니스 같은 기술 측면에 집중된다. 관리자 역할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의사결정 구조를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에 대한 분석은 찾기 어렵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최근 연구도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 AI 도입 효과를 ‘자동화'(인간 노동 대체)와 ‘증강'(역량 보완)으로 나누어 분석하면서, 청년층과 전문대졸 이상에서 고용·임금에 부정적 효과가, 중장년·고졸 이하에서는 상대적 안정이 관찰됐다고 보고한다. 하지만 이 두 범주 어디에도 ‘관리자의 역할 재정의’는 들어가 있지 않다. 대체되거나 증강되는 것은 실무 작업이고, 관리자는 그 사이에서 방향 없이 남겨져 있다.

패턴 — 속도 비대칭 기술 확산(인터넷의 8배) → 조직 내 AI 산출물 폭증 → 그러나 관리 구조·역할 재설계는 정체. NIA·KLI 모두 ‘기술’과 ‘일자리 수’에 집중하며, 관리자라는 중간 레이어의 역할 변화를 체계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중간관리자에게만 쌓이는 검증 노동

하버드 경영대학원 연구팀이 두 대형 컨설팅 회사를 심층 조사한 결과는 불편했다. AI 도입의 혜택이 조직 내에서 고르게 분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니어 리더는 AI가 만들어내는 인사이트로 전략적 판단 폭이 넓어졌다. 주니어 직원은 반복 업무 자동화로 더 깊은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그런데 중간관리자만은 달랐다. 이들에게 새로 부여된 핵심 역할은 ‘AI가 만든 결과물의 품질 검증’이었다.

연구팀은 이것을 ‘workslop 관리’라고 불렀다. 겉보기에는 그럴듯하지만 실질이 없는 AI 산출물을 걸러내고, 팀원의 AI 활용 역량을 코칭하고, 품질 기준을 유지하는 일이 기존 업무 위에 쌓였다. 구조 조정으로 이미 얇아진 중간관리자 층에 새로운 역할이 추가되었지만, 그에 상응하는 자원이나 권한은 주어지지 않았다.

한국은행 데이터로 돌아가 보면 이 부담의 규모가 짐작된다. 근로자 절반 이상(51.8%)이 이미 업무에 AI를 쓰고 있다면, 그들이 매주 5~7시간 동안 만들어내는 AI 산출물의 검증 수요는 관리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자율로봇과 협업하는 근로자 비율도 현재 11%에서 27%로 확대될 전망이다. 검증해야 할 것은 늘어나는데, 검증하는 사람의 역할 정의는 업데이트되지 않은 것이다.

AI 시선 — 검증 비용의 비대칭 AI가 조직에 가치를 만드는 과정에서 비용(검증, 교정, 코칭)은 중간관리자 한 곳에 집중되고, 그 대가는 어디에도 반영되지 않는다. 시니어는 인사이트를 얻고, 주니어는 시간을 얻고, 관리자만 ‘workslop 필터’라는 보이지 않는 노동을 떠안는다.

솔직히 이건 좀 불공평한 구조다. AI 도입이 전사적 효율을 높이겠지만, 그 효율의 비용을 특정 직급에 몰아넣고도 성과 지표에는 반영하지 않는다면, 그 직급의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는 자명하다.

‘사람 먼저’가 만든 의외의 함정

코로나 이후 관리자들은 분명한 메시지를 받았다. ‘사람을 먼저 돌봐라.’ 실제로 가트너 조사에 따르면 관리자의 3분의 2가 people-first 접근법을 채택했다. 직원의 정신건강을 살피고, 유연근무를 지원하고, 개인 사정에 공감하는 것이 좋은 관리자의 조건이 되었다.

그런데 이 접근법이 낳은 의도치 않은 결과가 있다. 같은 조사에서 45%의 관리자가 비즈니스 필요보다 직원 이익을 우선하는 의사결정을 내렸고, 주당 평균 9시간(업무시간의 20%)을 직원 간 개인적 갈등 해결에 사용하고 있었다. 성과보다 관계에 치중한 결과, 관리자의 핵심 기능 — 전략 번역, 성과 측정, 경력 정렬 — 이 뒷전으로 밀렸다.

여기서 글로벌 HR 플랫폼의 인재 데이터와 교차하면 패턴이 선명해진다. 구직자의 57%가 ‘명확한 성장 경로가 보이지 않는다’고 답했고, 11개 산업 중 10개에서 내부 승진이 줄었다. 관리자들이 ‘사람 먼저’에 매몰된 나머지, 정작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 — 경력 성장과 다음 기회 — 을 제공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가트너 연구가 제시하는 대안은 performance-first 접근법이다. 공감을 버리라는 뜻이 아니라, 공감을 성과의 도구로 재배치하라는 제안이다. 이 접근법을 채택한 관리자는 비즈니스 결과 달성률이 21% 높았다. 결과 중심 관리와 구성원 돌봄은 양립 가능하지만, 그 우선순위가 뒤집히면 둘 다 무너진다는 뜻이다.

고성과자가 먼저 문을 나서는 이유

고성과자 이탈은 모든 산업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소매업 64%, 헬스케어 28% — 전년 대비 이탈률 증가폭만 봐도 단순한 경기 변동이 아니다. 그리고 이 이탈의 원인은 보상이 아니다. 내부 경력 기회의 소멸이다.

여기서 두 데이터를 겹쳐놓으면 구조가 보인다. 하버드 연구가 말하는 관리자의 ‘검증 노동 과부하’는 리더십 개발이라는 핵심 기능을 잠식한다. 연구팀은 “관리자들이 AI 산출물 검증과 이슈 해결에 과도한 시간을 쏟으면, 조직 전체의 차세대 리더 육성 역량이 상당히 감소한다“고 경고했다. 관리자가 ‘workslop 필터’에 빠져 있으니, 고성과자에게 새로운 프로젝트를 배정하고, 역량 개발 경로를 설계하고, 승진을 추천하는 기능이 마비되는 것이다.

사례 — AI 활용자 역설 글로벌 HR 플랫폼 데이터에 따르면, 고성과자는 AI를 활용할 가능성이 2배 높았다. 그리고 AI를 적극 활용하는 직원은 경력 경로를 인식할 가능성이 13%, 회사 전략에 정렬된다고 느낄 가능성이 15% 높았다. 역설은 여기에 있다: AI를 가장 잘 쓰는 사람이 가장 명확하게 ‘여기서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가장 먼저 떠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데이터가 가장 뼈아프다. 조직이 AI 도구를 제공하면 고성과자가 가장 먼저 받아들이고, 가장 빠르게 숙달하고, 가장 명료하게 ‘이 조직에서 나의 다음 단계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AI는 고성과자의 시야를 넓혀주지만, 조직이 그 넓어진 시야에 맞는 경로를 제시하지 못하면 이탈을 가속시키는 도구가 된다.

AI 도구와 AI 소통 사이의 간극

NIA 보고서가 그리는 미래는 선명하다. AI 에이전트가 업무를 자동화하고, 인간은 더 창의적인 일에 집중한다. 기업의 AX 로드맵은 AI 컴퓨팅 인프라 확충, 데이터 접근성 향상, 모델 개발과 서비스형 비즈니스로 이어진다. 기술적으로는 타당한 경로다.

하지만 조직 안에서 AI에 대한 구성원의 반응은 그 로드맵과 상당히 다르다. 글로벌 HR 플랫폼이 직원 설문 코멘트를 분석한 결과, 전략과 AI를 언급한 코멘트 중 거의 절반(44%)이 부정적 톤을 띠었다. 불안, 불만족, 방향 부재가 주된 감정이었다. AI를 도입하면서 ‘왜 이 기술을 쓰는지’, ‘당신의 역할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제대로 소통하지 않은 결과다.

한국은행 조사에서도 비슷한 긴장이 포착된다. 근로자의 48.6%가 AI의 사회적 영향을 긍정적으로 봤지만, 동시에 33.4%는 교육·재훈련에 나서고 있고 31.1%는 이직을 준비 중이었다. AI가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기 자리는 불안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건 모순이 아니다. AI 자체가 아니라 AI 시대에 자신의 위치에 대한 조직의 설명이 부재한 것이 불안의 원인이다.

경고 — 소통 없는 도입의 대가 AI 도구를 넣으면서 소통을 빠뜨리면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난다. 첫째, 구성원의 저항과 불안이 커지면서 도입 효과가 반감된다. 둘째, 그 소통의 부담이 — 또다시 — 중간관리자에게 떨어진다. 기술 도입의 비용이 관리자에게 이중으로 쌓이는 구조다.

관리자 재설계라는 빠진 퍼즐

지금까지 살펴본 데이터를 겹쳐놓으면 하나의 메커니즘이 드러난다. AI가 조직에 들어오면 → 시니어와 주니어는 혜택을 누리지만 중간관리자에게 검증 노동이 쌓인다 → 관리자가 검증에 빠지면 경력 개발·리더십 육성 기능이 마비된다 → 고성과자는 성장 경로를 잃고 이탈한다 → 조직은 AI 에이전트를 더 넣어서 빈자리를 메우려 한다 → 소통 없는 추가 도입이 남은 관리자의 부담을 더 키운다. 이것이 ‘넣을수록 빠진다’의 구조다.

이 악순환을 끊으려면 기술이 아니라 역할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제안하는 ‘디지털 스킬 프레임워크’는 노후화된 역량을 정비하겠다는 구상인데, 여기에 관리자 직급의 역할 재정의가 포함되어야 한다. 가트너 연구가 보여주듯 performance-first 전환은 21%의 성과 향상을 만들어냈는데, 이 전환의 핵심은 관리자의 시간을 ‘감정 돌봄’에서 ‘전략 번역·성과 측정·경력 정렬’로 재배치하는 것이었다.

이건 관리자에게 ‘더 일하라’는 요구가 아니다. 관리자가 지금 하고 있는 일 중 무엇을 빼야 하는지를 결정하라는 요구다. AI 산출물 검증은 시스템과 프로세스로 분산할 수 있다. 직원 간 갈등 조정은 전문 프로그램으로 이관할 수 있다. 그러면 관리자에게 남는 것은 이 직급만이 할 수 있는 일 — 팀의 방향 설정, 고성과자의 다음 기회 설계, AI와 사람 사이의 전략적 연결 — 이다.

💡 실무 시사점 — HR이 이번 분기에 점검할 3가지:

① 관리자 시간 감사(Time Audit)를 실시하라. 관리자의 주당 시간이 AI 산출물 검증, 갈등 조정, 경력 개발 각각에 얼마나 배분되는지 측정한다. 검증·조정이 50% 이상이면 역할 재설계가 시급하다는 신호다.

② AI 도입과 AI 소통을 분리하지 말라. 새로운 AI 도구를 도입할 때 기술 교육뿐 아니라 ‘이 기술이 당신의 역할을 어떻게 바꾸는가’를 설명하는 커뮤니케이션 플랜을 동시에 설계한다. 소통 비용을 관리자 개인에게 전가하지 않는다.

③ 고성과자 이탈 경보를 AI 활용률과 연동하라. AI를 가장 적극적으로 쓰는 직원이 내부 경력 경로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를 추적한다. AI 활용률은 높은데 경력 인식 점수가 낮으면 이탈 임박 신호다.

#AI관리자 #중간관리자 #고성과자이탈 #조직재설계 #AI에이전트

참고 링크

작성: 서재홍 | N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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